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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인사이트]맛 없는 한국 술, 술 맛 내려면…'삼불(三不)의 늪'건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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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좋아하고 많이 마시기로 한국인은 어느 나라 사람들과 견줘도 빠지지 않는다. 세계보건기구(WHO·2013년)에 따르면 한국인 일인당 알콜 소비량은 세계 13위로 러시아 등 동구권 국가를 바짝 뒤쫓고 있다. 도수가 높은 증류주는 9.57ℓ를 마셔 보드카를 즐겨마시는 러시아(6.88ℓ)를 압도하며 1위를 차지했다.

그러나 이렇게 술 줗아하는 한국의 술산업 경쟁력은 허약하기 짝이 없다. 세계적으로 알아주는 주류 브랜드는 전무하고, 2010년대 초반 일본 등을 중심으로 반짝 인기를 누렸던 막걸리는 거품이 꺼지면서 대표 주종도 없는 실정이다. 우리 국민이 일인당 연간 150병씩 마신다는 맥주도 맛없기로는 정평이 나 있다. 술의 무역역조도 심각하다. 지난해 주류 수입액은 7조9210만 달러인데 비해 수출액은 절반 수준인 4억 달러 남짓이다.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대표 상품으로 꼽히는 술이 수출한국호에 아무 보탬도 되지 못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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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족의 이미지로 자주 거론되는 게 '음주가무(飮酒歌舞)를 즐기는 민족'이라는 것이다. 가무를 대표하는 K팝 등 한국 엔터테인먼트 산업은 세계로 뻗어나가고 있는 반면 술의 경우엔 상품도 문화도 오히려 퇴행하는 조짐마저 보인다. 여전히 한국 술은 싸구려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한다. 미국·일본·프랑스·영국 등 문화 선진국일수록 대표 명주들을 가지고 있어 술의 수준의 그 나라 문화의 수준을 나타내는 상징성을 갖기도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한국 술의 고급화와 세계화를 주창한 지는 꽤 됐지만 눈에 띄는 진전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정부도 술 산업 경쟁력을 높이겠다며 올해부터 맥주뿐 아니라 탁주·약주·청주 등 다양한 주종에 대해 소규모주류 제조면허를 허용하고 하우스맥주 제조업자 등에게 과세 부담을 줄여주는 등 일부 주세법 시행령을 개정했다. 다양성을 확보하고 경쟁을 통해 상품의 질을 높이겠다는 의도다. 그러나 이 정도로는 국내 주류 산업 경쟁력을 높이는 데는 역부족이라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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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일부 세법을 개정하긴 했지만 국내 술 경쟁력을 높이기엔 역부족이다.


한국 술 산업의 발목을 잡는 장애물은 여전히 도처에 산재해 있다. 전문가들은 낡은 주세법, 폭음 위주의 음주 문화 등 다양한 요인을 지적한다. 이들의 지적을 종합해 보면 결국 '정부 정책의 부재-음주문화의 부재-기업의 근성과 장인정신의 부재', 즉 정부·소비자·기업 삼자 모두에게서 술과 관련된 철학과 비전을 찾을 수 없는 '삼불(三不)의 늪' 에 빠져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명주(名酒)만드는 경쟁력의 절반은 정부의 정책에서 나오는데
술 산업을 둘러싼 각국 정부의 정책 싸움은 치열하다. 프랑스와 이탈리아는 1980년대 와인 과잉생산에 따른 가격 하락 조짐이 보이자 10여 년간 포도밭을 갈아엎는 와이너리에 보조금을 주는 정책으로 생산량을 유지하며 세계 고급 와인의 주 수출국의 명성을 잇고 있다. 그런가하면 이들 두 와인 강국이 물량을 조절하며 가격을 고수하는 사이 스페인은 저가 와인 생산을 늘리고 수출에 드라이브를 거는 정책으로 맞서 현재 세계 1위 와인 수출국의 자리에 올라섰다.

스코틀랜드 전통주인 위스키 부문에서 일본 위스키는 세계 5대 위스키로 꼽힌다. 세계 4위 위스키 업체인 산토리만 유명한 게 아니다. 지난해 '월드 위스키어워드2015'에서 블렌디드 몰트 부문 1위도 일본 닛카 위스키의 '다케쓰루 17년'이 차지했다. 일본 위스키가 세계적 경쟁력을 갖게 된 데는 1920년대부터 위스키 생산에 들어간 오랜 역사도 있지만 정부가 1980년대부터 위스키 국산화 정책을 펼치며 전폭적인 지원을 한 점도 주효했다. 일본은 위스키뿐 아니라 전통술 사케의 발전도 놀랍다. 일본의 사케산업은 '1년 묵은 잉여쌀을 10년 묵혀 금값을 받는다'고 할 정도로 잉여 농산물 부가가치를 높이고 일본 전통술의 명성을 세계 각국으로 떨치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이는 2차 세계대전 패배 후 제조·유통 면허 조건을 완화하는 등 개방적 육성 정책을 편 결과다. 중국 역시 정부 차원에서 문화 유산으로써의 주류 발굴 계획에 따라 전국 각지의 명주를 찾아내 마오타이주 등을 세계적 상품으로 키워내고 있다.

반면 한국 술 정책의 역사는 규제로 점철돼 왔다. 1960년대 이후 양곡사용 금지조치로 우리나라 대표 명주인 약주 제조가 중단됐고, 읍 소재지마다 있었던 재래식 소주를 통폐합해 고유 소주가 사라졌다. 40년 가까이 신규제조면허를 내주지 않으면서 한국의 술 산업은 일부 과점 기업들이 싸구려 수입주정으로 만든 획일화된 술에 점령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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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고가격에 세금 매기는 주세법에 싸구려 술만 양산되고
한국 술이 싸구려가 된 고질적 문제로 지적되는 것은 종가제 중심의 주세법이다. 종가세는 출고가격에 일정 비율의 세금을 매기는 방식으로 전통주를 제외하고 대부분 주종은 출고가의 72%의 주세를 부과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에선 5개 국만이 채택한 방식이다. 다른 나라들은 대부분 알콜 도수에 따라 세금을 매기는 종량제를 적용한다. 우리가 종가세를 유지하는 이유는 서민의 대표술인 소주의 알콜 도수가 높아 종량제를 적용할 경우 소주값이 더 오른다는 이유가 가장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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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제조원가가 비싸면 세금도 따라 올라가는 구조이다 보니 주류업체들은 원가 줄이기에 사활을 건다는 점이다. 주세법이 기업들로 하여금 품질이 아닌 가격 경쟁에 몰입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에 국내 소주의 80%이상이 국산 양곡이 아닌 베트남 등지에서 수입하는 저가의 타피오카 주정을 사용한다. 토종 위스키를 만들려던 시도도 지지부진하다. 국내 토종위스키로 출시됐던 골든블루도 처음엔 부산공장에서 생산했지만 지금은 90%이상을 호주 공장에서 들여온다. 주류기업이 종가세의 덫에 걸려 원가 낮추기에만 골몰하다 보니 고급주가 설 자리가 없다.

◇폭음을 권하는 음주문화에서 고급 술은 의미 없어
최근 카타르 민영위성TV 알자지라는 '만취한국'이라는 영상을 통해 '알콜중독자가 많고, 술과 관련한 사회적 비용이 연간 200억 달러에 달하는 최악의 음주문화를 가진 나라'라고 소개했다. 유로모니터의 통계를 인용하며 미국인은 한 주에 평균 독주 3잔을 마시고, 러시아인은 6잔을 마시는 데 비해 한국은 14잔을 마신다는 점을 지적했다. 또 "음주로 인한 폭력과 관련 사건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는 한국 경찰의 말을 인용하기도 했다. 실제로 술이 일으키는 사회적 비용은 엄청나다. 음주운전으로 연간 1000여 명이 사망하고 5만여 명이 부상하는가 하면, 주폭이 사회문제로 떠오를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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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음을 권하는 음주 화속에선 고급 술이 나오기 어렵다.


한국의 음주문화는 무절제한 것으로도 정평나 있다. 술과 관련된 화제는 얼마나 많이 마셨는지, 필름이 끊겼는지, 얼마짜리 술을 마셨는지 등 결과에 집중되는 경향이 강하다. 주당이라는 말은 말 그대로 폭음자를 이른다. 술의 족보와 흐름을 알고 맛을 알며 술 마시는 과정을 음미하는 주당의 개념이 없다. 또 30년산 위스키도 맥주에 섞어먹는 폭탄주 문화는 애당초 술의 맛을 음미하지 못하는 국내 술 문화를 그대로 드러낸다.

◇한국엔 스토리와 문화 만드는 술 회사 찾기 어려워
술의 상품성은 맛이 아니라 스토리와 문화에서 나온다. 일본 위스키는 1920년대 일본 '위스키의 아버지'로 칭송받는 다케쓰루 마사타카와 산토리 창업주인 도리이 신지로의 집념과 장인정신이 없었으면 탄생할 수 없었다. 이들은 많은 실패와 기다림을 견디고, 패전 후엔 값싼 외국산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포기하지 않으며 버텼다. 이런 과정을 거쳐 산토리는 일본 자국 위스키 시장의 절반을 차지하고, 미국의 빔사까지 인수하며 세계 4위 위스키 업체로 성장했다. 또 다케쓰루가 창업한 닛카 위스키는 '스코틀랜드 위스키보다 더 스코틀랜드적'이라는 칭송을 받으며 국제 위스키 관련 상을 휩쓸고 있다. 이들의 스토리는 스코틀랜드의 전통주인 위스키를 일본의 성공스토리로 재창조하는 역할을 했다. 그런가하면 긴 잔에 위스키에다 얼음과 탄산수를 섞어 반주로 마시는 '하이볼 프로모션'을 통해 일본식 위스키 문화를 창출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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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술 제조업체에선 스토리를 찾기 어렵다. 대중주는 양대 맥주회사와 10개 소주업체 등 독과점 기업들에 의해 공급된다. 서민주인 소주에 들어가는 주정도 값싼 외국산을 수입해 쓰고, 맥주 원료도 수입에 의존한다. 국내에서 술은 마시고 취하는 공산품일 뿐 문화상품이 아니다. 독과점 기업들이 사회적·문화적으로 기여하는 것도 별로 없다.

정헌배 중앙대 교수는 한국의 불건전한 음주문화가 지속되고 술 경쟁력이 떨어지는 데 대해 주류생산기업들의 책임이 크다고 지적한다. 정 교수는 건전한 음주문화를 확산하기 위해 운영하는 '음주문화시민연대'를 구성했을 당시 독일 맥주업체인 H사가 먼저 찾아와 자신들이 어떻게 도와주면 좋겠느냐고 묻더라고 했다. 이에 왜 도와주려 하느냐고 되물었더니 "술 만드는 회사이니 술로 인해 일어나는 문제에 대해 사회적 책임이 있기 때문"이라고 대답하더라는 것이다. 그러나 국내 주류업체에서 이런 '사회적 책임'에 대한 얘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는 것이다.

◇술 산업에 대한 인식의 패러다임 바꿔야
한국의 취약한 술 산업 경쟁력은 이처럼 정부·소비자·기업의 세 경제주체가 내는 불협화음과 역시너지의 결과다. 먼저 정부는 술 산업정책에서 기존과는 완전히 다른 창의성을 발휘해야 한다. 술은 국민 건강과 직결된 상품이라는 점에서 반드시 통제가 이루어져야 한다. 문제는 통제의 흐름이 지금과 반대방향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현재 제조는 규제하고 유통은 풀어놓은 상태에서 제조 면허는 풀고 소매 면허는 묶는 방향으로 전환하는 것도 생각해야 한다.

제조의 진입장벽을 없애 누구든 쉽게 시장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현 독과점 체제를 허물고 경쟁을 통해 술의 고급화와 경쟁력을 높이는 게 바람직하다. 그러나 술을 판매하는 점포와 시간대를 규제함으로써 절제가 필요한 상품이라는 이미지를 형성해야 한다. 지금처럼 모든 시간대에 아무 데서나 사서 먹을 수 있는 자유로운 상품이라는 개념이 지속되는 한 무절제한 음주문화를 제지할 수 없다.

또 현재 종가제 방식의 세금구조도 종량제로 바꾸는 걸 심사숙고해야 한다. 고도주일수록 세금을 더 높게 매기는 것이 국민 건강과 음주문화를 개선하는 데도 바람직할 뿐 아니라 과도한 가격경쟁으로 술이 저질화되는 것도 막을 수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전통주만 우리 술이 아니다. 술의 국경을 나누는 인식도 바꿔야 한다. 일본이 위스키로 세계를 제패하고, 세계적 보드카 브랜드인 그레이구스는 프랑스산이다. 외국 전통주라도 우리가 잘 만들면 우리 술이다. 한 예로 전북 군산시는 국내 사케 생산지다. 그러나 이 지역에서 나오는 사케들은 브랜드명으로만 팔릴 뿐, 사케임을 내세우지 않는다. 사케를 한국 쌀로 만들어 명주로 키우는 한국 사케 전략으로 세계 사케 시장을 공략한다는 야심찬 계획도 세우면 된다.

이처럼 술에 대해 갖고 있는 고정관념과 편협한 사고의 틀을 벗어나려는 노력이 선행돼야 술 산업의 고도화가 진행될 수 있을 것이다. 술 산업의 고도화는 술을 우리의 수출상품으로 만드는 길일 뿐 아니라 우리가 문화국가의 이미지를 얻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이루어야 한다는 점에서 더 이상 시기를 놓치면 안 된다.

◇View & Another
세금부과방식을 종가제로 하느냐 종량제로 하느냐는 해묵은 논쟁이다. 지난해 재정경제부도 종량제로의 개편을 논의한 적이 있지만, 결국 종가제를 유지한다는 방침을 재확인했다.

종량제로 빠뀔 경우 값싼 서민주인 소주값이 오르고, 오히려 수입양주는 값이 떨어지는 역전현상이 벌어지고, 세수가 줄어든다는 점이 가장 크게 지적됐다. 현 음주문화를 유지하는 차원에선 종가제가 종량제보다 우수하다는 게 정부의 판단이다.

그러나 현재 술 산업이 발달한 나라에선 종량제를 선택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가격 경쟁이 아닌 품질 경쟁을 유도할 수 있고, 고도주에는 높은 세금을 매김으로써 음주문화를 개선하는 효과가 크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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