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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환영 칼럼] 착한 사마리아 사람



연말연시는 크리스마스 자선냄비에 기부하는 등 좋은 일을 하고 신년에 좋은 일을 하겠다는 계획을 세우는 때다.



[김환영 칼럼]

‘좋은 일’과 관련해 떠오르는 것 중에 예수가 말한 ‘착한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가 있다.



‘착한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는 어떤 율법교사의 질문에 대한 답으로 나왔다. 율법교사가 예수에게 물었다. “누가 저의 이웃입니까.”



루가 복음(10:29~37)에 나오는 줄거리는 대략 이렇다. 어떤 사람이 강도를 만났다. 가진 것을 다 빼앗기고 두들겨 맞아 다 죽게 됐다. 사제와 레위 사람이 그를 외면하고 지나쳤다. 어떤 사마리아 사람이 그를 여관에 데려가 간호하고 여관 주인에게 치료 비용을 미리 지불하고 떠난다. 레위 사람은 당시 종교적 특권 계층 사람들이다. ‘착한 사마리아 사람’이 바로 “누가 저의 이웃입니까”에 대한 답이다.



2000년 후 다른 시간, 다른 공간에서 이 이야기를 듣는 우리에게 감동은 있어도 ‘충격’은 없다. 당시 유대 사회에서 사마리아가 가졌던 의미가 우리에게 생소하기 때문이다.



‘착한 사마리아 사람’을 오늘 우리의 공간에서 번역하면 ‘착한 북한 사람’이다. 가상적으로 이런 이야기가 된다. 뉴욕이나 상하이(上海)에서 어떤 한국 사람이 강도를 만나 다 죽게 됐다. 목사·신부님, 사회 지도층에 속하는 한국인들이 그를 외면했으나 그에게 도움의 손길을 뻗은 것은 북한 사람이었다.



유대인과 사마리아 사람은 “서로 상종하는 일이 없었다.”(요한 복음 4:9) 무슨 뜻일까. 유대인에게 사마리아 사람은 ‘나쁜 사마리아 사람’이었고 사마리아 사람에게 유대인은 ‘나쁜 유대인’이었다.



예수에게 사마리아 사람이 착하다고 하는 것은 그리 현명한 일이 아니었다. 예수는 갈릴리 사람이었다. 유대인들은 갈릴리나 사마리아나 이질적 공간으로 봤다. 심지어 예수가 사마리아 사람이라고 했다. 요한 복음(8:48)은 이렇게 전한다. “유다인들은 ‘당신은 사마리아 사람이며 마귀 들린 사람이오. 우리 말이 틀렸소?’ 하고 내대었다.”



“누가 우리 이웃인가”라는 질문은 “누가 우리 민족인가”로도 번역할 수 있다. 예수에게 ‘우리’의 범위는 유대·갈릴리·사마리아였다. 흥미로운 점은 다 죽게 된 사람을 구해 준게 로마 병정은 아니라는 점이다. 로마는 ‘우리’로 수용할 단계가 아니라고 판단했을까.



다시 우리 상황으로 돌아오자. ‘착한 북한 사람’이라는 표현은 낯설다.



정권과 그 정권하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구분할 수는 있다. 그러나 북한 정부에 대한 신년 전망은 암울하다. 한국국방연구원(KIDA)은 25일 발간한 ‘2009 국방예산 분석·평가 및 2010 전망’이라는 제목의 정책서에서 “핵 보유를 기정사실화하기 위해 3차 핵실험을 하고 장거리 미사일을 시험 발사할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23일 오전 11시 판문점에서 북한 주민을 송환하는 절차가 진행됐다. 21일 서해상에서 표류하다 구조된 선원 7명이었다. 그들은 나흘을 굶으면서도 남측 음식에 손을 안 대고, 발을 잘라낼 동상에도 수술을 거부했다고 한다. 북한 정부 입장에서는 ‘착한 인민이요, 당성이 확실한 인민’일 것이다.



북한을 돕는 종교단체들은 우리가 ‘착한 사마리아 사람’이 돼 북한을 도와야 한다고 말한다. 이 비유가 갖는 본래의 구조에 따르자면 문제는 우리가 북한 사람을 착하다고 볼 수 있느냐는 것이다. 이쪽만 착하면 해결되는 문제가 아닌 것이다.



‘사마리아 사람들도 우리의 이웃’이라는 예수의 정의에 따라 제자들은 사마리아 지역에 복음을 전파했다. 사도행전(9:31)은 유다·갈릴리·사마리아 지방에 들어선 교회들이 터전을 잡고 수효가 차츰 늘어났다고 전한다. 그뿐만 아니라 결코 착하게 보이지 않는 사람들을 포용하는 예수의 비전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교는 전 세계로 퍼져 나가며 역사를 써 내려갔다.



종교와 현실 정치의 세계는 엄연히 다르다. 그러나 종교엔 현실 정치 세계에는 없는 더 큰 비전이 있을 수 있다.



지난 8월 『강대국의 흥망』 저자인 폴 케네디 예일대 석좌교수는 기자와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한국이 직면한 도전은 두 가지다. 첫 번째 도전은 북에 있는 ‘미친 정권(crazy regime)’이다. 다른 나라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오직 한국만이 안고 있는 문제다. 두 번째 도전은 4대 강국이 한국을 포위하고 있다는 점이다.”



두 번째 도전은 어쩔 수 없는 상수다. 우리가 그나마 어찌할 수 있는 것은 첫 번째 도전이다. 그 도전을 푸는 데 ‘착한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는 무엇을 시사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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