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차이나 인사이트] 시진핑의 민주생활회 부활…중국에 정풍 한파 몰려온다

기사 이미지

유상철 논설위원

미국의 시인 칼 샌드버그는 ‘인생은 양파와 같다’고 했다. ‘한 번에 한 꺼풀씩 벗기다 보면 눈물이 난다’는 것이다. 중국 알기도 양파와 같다. 쉽사리 그 속살을 드러내지 않는다. 너른 대지를 씨줄로 수천 년 세월을 날줄로 삼아 켜켜이 쌓인 역사가 너무나 많은 서로 반대되는 것을 담고 있다. 콕 집어 ‘중국은 이렇다’고 말할 수 없는 연유다. 이제 매주 수요일 심층칼럼을 통해 ‘천(千)의 얼굴’을 가진 중국의 다양한 모습을 살피며 우리의 갈 길을 점검한다.

“내가 보기에 저우번순(周本順) 동지는 체면을 생각해 경제발전의 속도만 중시합니다. 그래서는 형식주의에 빠지기 쉽지요.” “그런 당신은 남의 의견을 듣는 데 인내심이 없는 게 문제예요. 관료 냄새가 많이 납니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을 바로 앞에 앉혀 놓고 오간 말들이다. 상대에 대한 비판에 날이 서 있다. 2013년 9월 23일부터 25일까지 허베이(河北)성 상무위원회를 대상으로 개최된 ‘민주생활회’에서 벌어진 이야기다.
 
기사 이미지

체면만 생각한다는 비판을 받은 저우번순은 허베이성 당서기로 허베이성 1인자다. 또 관료 냄새가 난다는 비아냥을 들은 이는 허베이성 2인자인 장칭웨이(張慶偉) 허베이성 성장이다.

허베이성의 최고 권력자 두 명이 시진핑 앞에서 상대 비판에 열을 올린 것이다. 왜 그랬을까. 답은 민주생활회란 공산당원의 조직활동 제도에 있다. 매년 한 차례 열리는 민주생활회에선 상대에 대한 비판과 자신에 대한 비판을 강도 높게 전개한다.

그런 비판과 자아비판을 통해 당원의 문제점을 파악하고 반성과 함께 앞으로 나아가자는 취지다. 그 방침에 따라 허베이성 지도부가 민주생활회 지도 방문을 나온 시진핑의 면전에서 상대에 대해 가차 없는 비판을 전개한 것이다.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 것일까. 저우번순은 이후 뇌물 수수와 방탕한 생활 등 십여 가지가 넘는 죄목에 의해 당 서기 자리에서 파면되고 또 체포되는 비운을 맞았다.

중국이 떨고 있다. 시진핑이 중국인의 기억 속에서 희미하게 잊혀 가던 민주생활회 부활을 선언하면서 대륙에선 시진핑 집권 이래 세 번째 정풍운동(整風運動)이 펼쳐지고 있기 때문이다.
 
기사 이미지

민주생활회가 뭔가. 당원이 당 지부(支部) 등에서 사상 교류를 하는 것인데 그 주요 형식이 비판과 자아비판이다. 비판과 자아비판은 중국 공산당이 자랑하는 3대 우수 기풍(氣風) 중의 하나로 칭송받는다.

민주생활회의 역사는 짧지 않다. 1920년대 말부터 시작됐다. 창당 초기 당내 1인자가 전권을 휘두르는 가부장제(家父長制) 식 리더십에 반대하기 위해 출범했다.

자애로운 어머니에겐 무한한 애정을 보였지만 철권을 휘두르는 아버지에 대해선 증오심마저 품었던 마오쩌둥(毛澤東)의 개성엔 딱 맞는 제도였다.

마오는 42년 옌안(延安) 정부 시절부터 자아비판의 민주생활 방식을 적극 부르짖었다. 그러나 20년 후 마오 자신이 자아비판의 대상이 될 줄은 몰랐다.

‘영국을 15년 안에 추월하자’는 구호를 내걸고 추진한 대약진(大躍進) 운동이 실패하고 수천만 아사자가 속출한 뒤 열린 62년 1월의 7000인 대회에서 “오류가 있었다면 반드시 자아비판을 해야 한다”며 자신에 대한 자아비판을 했다.

당시 류사오치(劉少奇)가 “3할이 천재(天災)라면 7할은 인화(人禍)”라고 했을 때 인화의 주범은 바로 마오를 가리키는 것이었다. 이는 권력의 1선에서 물러나게 된 마오가 훗날 문화대혁명을 일으켜 류사오치를 박해해 비참한 최후를 맞게 하는 배경이다.

민주생활회는 81년 처음으로 당내 문건의 형식으로 회의 시간과 내용, 목표 등이 정해졌고 92년 14차 당 대회 때는 공산당 헌법인 당장(黨章)에 그 활동이 명시됐다.

그러나 장쩌민(江澤民) 집권 이후부터 고위 당원 사이에선 민주생활회라는 말 자체를 꺼내는 일이 기피됐다. 덩샤오핑(鄧小平)이 중국 인민의 사랑을 받던 후야오방(胡耀邦) 당시 총서기의 파면을 원로 몇 명이 모인 민주생활회에서 결정했기 때문이다. 이후 민주생활회는 밀실정치(密室政治)를 대표한다는 오명을 뒤집어썼다.

일반 당원의 민주생활회 또한 제대로 굴러갈 리 없었다. “외자 유치하기도 바쁜데 언제 민주생활회 참석하느냐”는 푸념이 나왔다.
 
기사 이미지

설사 열린다 해도 비판의 정신은 사라진 지 오래다. 상사를 비판하자니 후환이 두렵고 동료 비판은 체면이 깎이며 부하 비판은 인심을 얻지 못한다. 그리고 자아비판은 나의 약점만 천하에 공개해 남의 웃음거리가 된다는 우려에서다.

그런 민주생활회 부활을 시진핑이 외치고 있는 것이다. 시작은 2013년 6월이었다. 당시 시진핑은 ‘정치국 전문(專門) 회의’를 개최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실제 내용은 민주생활회였다고 한다.

이후 자신이 민주생활회를 지도하겠다고 택한 첫 번째 행선지가 허베이성이었다. 그리고 지난해 대미를 시진핑은 개혁·개방 이후 처음이라는 ‘정치국 민주생활회’로 장식했다. 12월 28일부터 29일까지 이틀간 25명의 정치국 위원 전원이 참가하는 비판과 자아비판의 민주생활회를 개최한 것이다.
 
기사 이미지

눈길을 끄는 건 공중의 시야에서 사라졌던 고위 간부들을 대상으로 한 민주생활회라는 용어를 시진핑이 부활시킨 점이다. 중국 CC-TV가 15분이나 할애해 전한 정치국 민주생활회에서 시진핑은 처음으로 5명의 반면교사(反面敎師)를 거론했다.

숙청된 보시라이(薄熙來) 전 충칭(重慶)시 당서기와 저우융캉(周永康) 전 정치국 상무위원, 전 군사위원회 부주석이었던 쉬차이허우(徐才厚)와 궈보슝(郭伯雄), 링지화(令計劃) 전 통일전선부 부장 등이다.

시진핑은 왜 이 시점에 정치국 민주생활회를 부활한 것일까. 일각에선 권력 공고화라는 분석도 나온다. 자아비판을 통해 속속들이 자신의 치부를 까발리게 함으로써 함부로 행동하지 못하게 하는 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말 중요한 이유는 정풍운동의 지속이란 점이다. 2012년 12월 당 총서기에 취임하자마자 회의 간소화 등 기강을 바로잡는 ‘8항 규정’ 선포가 시진핑 시기의 1차 정풍운동으로 꼽힌다.

2차 정풍운동은 2013년 6월부터 전개한 사치 바람과 같은 4대 악풍(惡風)에 반대하자며 펼친 군중노선교육실천활동으로 일컬어진다. 그리고 이번 민주생활회 부활이 시진핑 집권 후 3차 정풍운동이란 이야기다.

중국에 ‘한 사람이 도(道)를 깨달으면 닭과 개가 함께 하늘에 오른다(一人得道 鷄犬昇天)’는 말이 있다. 한 사람이 높은 자리에 오르면 친인척 등이 따라 세도를 부린다는 뜻이다. 중국은 특히 사람의 정에 약한 인정(人情) 사회라 그렇다는 이야기다.

시진핑의 중국 지도부가 현재 걱정하는 건 크게 두 가지다. 체제 불안과 경제 위험이다. 우선 정치적으론 색깔혁명 등 민주화 바람에 의해 공산당 체제가 무너질까 우려한다. 이에 따라 공산당이 어떻게 부패하지 않고 건전성을 유지할 수 있을까가 고민이다.

중국 공산당은 그 방법을 자아 감독에서 찾고 있다. 지난해 왕치산(王岐山) 중앙기율검사위 서기와 프랜시스 후쿠야마 간의 대화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다. 왕치산은 후쿠야마에게 ‘종교 내부의 치리(治理)는 무엇에 의지하는가’라고 물었다.

중국 공산당은 일당 전제(專制)로 견제 세력이 없다는 비판을 듣는다. 이에 대한 항변이 종교가 자아 감독에 의지하듯이 중국 공산당 또한 자기 스스로를 감독하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공산당의 자아 감독은 바로 공산당 당원의 자아비판에서 시작할 수밖에 없다. 이게 바로 시진핑이 민주생활회를 부활하는 중요한 이유다.

시진핑은 또 개혁·개방 이래 가장 나쁘다는 경제 상황을 호전시키기 위해 구조조정을 밀어붙이고 있다. 주요 내용은 정부 보조금으로 연명하는 국유기업 퇴출이다. 올해 철강·시멘트·화학·조선업 등 4대 분야에 대한 구조조정을 끝낸다는 계획이다.

문제는 국유기업엔 많은 당 간부가 기생하고 있다는 점이다. 향락주의에 물든 기득권 세력을 처리하지 않고선 개혁은 실패다. 시진핑이 민주생활회를 통해 추상같은 정풍의 칼을 빼들지 않을 수 없는 이유다.

시진핑의 정풍운동은 결국 공산당 일당제 유지와 그 공산당 중심의 개혁을 위한 몸부림으로 귀결된다. 경제는 모든 이가 참여하는 시장을 추구하는데 정치는 나 홀로의 일당제를 지키겠다는 시진핑의 실험은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세상 이치는 물을 거슬러 오르지 못하면 뒤로 밀리는 법인데(逆水行舟 不進則退) 마오 시대의 유물과 같은 민주생활회를 부활시킨 시진핑의 정풍운동이 얼마만큼의 성과를 거둘지는 미지수다. 아무튼 중국엔 한동안 더 한파가 몰아닥칠 전망이다.

유상철 논설위원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PHOTO & VIDEO

shpping&lif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