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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 TALK] 강헌 "우주는 가치의 우열을 두지 않는다 그저 다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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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눈앞에 두고서야 삶이 궁금해져 명리학 공부를 시작했다는 강헌은 “명리학은 모든 사람이 귀한 존재라는 걸 말하는 학문”이라고 했다.


‘운명’을 말하는 음악평론가 강헌의 『명리』

세상이 힘들고 불안해지니 역술 의존도 증가
큰 재물에는 약자에 대한 봉사의 뜻 담겨 있어
좋은 사주, 나쁜 사주란 없어…모두 귀한 존재


음악 평론가 강헌(54)은 한마디로 규정지을 수 없는 사람이다. 음악뿐 아니라 음식·축구 등 다양한 분야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말과 글로 풀어왔다. 급기야 그 관심이 명리학에까지 뻗었다. 지난해 12월 출간한 『명리』는 보름도 안 돼 초판 5000부가 모두 팔렸고, 두 달 만에 6쇄를 찍었다. 출간 후 열린 그의 강연회마다 독자들로 만원이다. 명리학을 다룬 책에 이렇게 관심이 쏟아지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강헌이 말하는 명리학이란 무엇일까. 그의 자택에서 만나 물었다.

- 이 책에 관심이 쏠리는 이유가 뭐라고 보나.

 “그만큼 세상이 힘들어진 거다. 외환위기(IMF) 이후 ‘88만원 세대’가 등장하고 비정규직이 늘어났다. 완전 고용의 신화는 무너졌고 양극화가 심해졌다. 변호사·의사 등 전문직도 사는 게 힘들다. 어릴 때부터 경쟁에 내몰린다. 가족이라는 최소한의 방어막마저 무너졌다. 극도의 불안감이 ‘운명’ ‘점술’에 대한 허약한 의존증을 낳게 된 것 같다. 역술 중독에 빠진 젊은이도 많다. 이를 이용하는 이들이 있기 때문에 명리학은 혹세무민의 잡술로 폄하되고 있다. 이를 양지로 끌어올리고 싶었다.”

-책이 어려울 거라고 생각했는데 술술 읽히더라.

“많은 명리학 책이 나와있고, 어마어마한 고수들도 많다. 나처럼 고작 10년 정도 공부한 사람은 비교할 수 없는 내공이다. 그러나 명리학만 파고들어서는 대중과 소통할 수 없다. 모든 학문은 시대를 따라 진화해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인문학적 바탕이 중요하다. 내가 다른 점이 있다면 그 점일 거다.”

 그가 이 공부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책 서문에 자세히 실려있다. 그에 따르면 강헌은 마흔셋 되던 해 갑자기 쓰러져 코마 상태에 빠졌다가 깨어났다. 삶이 길어야 2년밖에 남지 않았다는 말을 듣고 망연자실해 있던 어느 날, 고등학교 때 일이 불현듯 스쳤다. 역술가였던 친구 아버지가 당시 했던 예언이 모두 들어맞았던 것이다. 스스로 ‘트루먼 쇼’의 주인공이 된 것 같아 큰 충격을 받은 그는 그날로 명리학에 깊이 빠져들었다.

-자신의 삶이 궁금해 시작한 공부인데 일이 커진 셈이다.

 “몇 년 전 와인바를 운영했을 때다. 소위 상류층 사람들이 많이 왔는데 대부분 사주를 믿었다. 재미 삼아 사주를 봐주기 시작했는데, 다른 역술가와 달리 굉장히 새롭다고들 하더라. 인문학적 기반이 있어서 그랬던 것 같다. 그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강좌를 시작했고 3년 후 책을 냈다. 명리학을 본연의 자리에 돌려놔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보통 역술가라면 ‘재물복이 많다’고 말해줄 것을 두고, ‘재물에 관련된 이야기는 결국 나눔을 뜻한다’고 해석했다.

 “맞다. 떼돈을 번다는 게 명리학적으로 보면 ‘겁재’, 즉 겁탈한다는 뜻이다. 남의 재산을 빼앗지 않고선 큰 돈을 벌 수 없다는 거다. 큰 재물은 결국 약자에 대한 봉사의 뜻을 함께 담고 있다. 그런데 사람들은 ‘돈벼락을 언제 맞나요’라고 묻는다. 그런 질문에 어떻게 답을 해줄 수 있겠나. 나는 누구나 명리학을 스스로 공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스스로 공부해서 깨닫지 않으면 속물적인 질문밖에 할 수 없다.”

-‘좋은 사주, 나쁜 사주란 따로 없다’는 것도 책의 주요 메시지인데.

 “우주는 가치의 우열을 두지 않는다. 그저 다를 뿐이다. 남들이 볼 때는 별것 아닌데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사람들은 삶의 만족도가 높다. 인간의 삶은 겉으로 봐서는 절대 알 수 없다. 나는 과연 어떤 명을 타고났고, 어떻게 운영할 것인가. 이를 진지하게 사유하도록 돕는 것이 명리학이다. 어디에서 어떤 삶을 살든 자신이 얼마나 대체 불가능한, 존엄한 존재인지 깨닫게 해주는 것이 제대로 된 명리학이다.”

-이런 내용을 다룬 강좌 이름이 ‘좌파명리학’인 이유는 뭔가.

 “명리학은 사실 지배계급의 체제 유지를 위한 학문이었다. 그런데 왕이 될 운명의 사주라면 같은 시간에 태어난 평민도 왕이 될 수 있는 것 아닌가. 이런 점 때문에 명리학은 점점 체제 비판 세력의 무기가 됐다. 그러나 식민지 시대와 전쟁을 겪으며 우리 사회에는 ‘나 먼저 살자’는 기복적인 욕구가 너무 강해졌다. 그러면서 명리학이 다시 우파로 유턴했다. 명리학은 혼자만 잘살라고 만들어진 학문이 아니다. 어떤 행색을 하고 있든, 무슨 일을 하고 있든 한 명 한 명 인간의 존재는 모두 고귀하다는 데서 출발한 학문이다. 그 초심으로 다시 명리학을 돌려놓고 싶어 붙인 이름이다.”

-강헌의 다음 행보가 궁금하다.

 “여러 분야에 관심이 많다. 어차피 곧 끝날 인생인데 하고 싶은 건 다 하고 죽자는 생각이다(웃음). 서투르면 어떤가. 하고 싶은 게 많은 사람이 행복한 사람이다. 곧 명리학을 좀 더 깊이 다룬 책이 나온다. 그다음에는 클래식 음악사를 다룬 책을 내놓을 예정이다.”


강헌이 추천하는 명리학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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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변화의 원리
한동석, 대원기획출판

한국 사상사에 굵직한 획을 그은 한의학자 한동석이 1966년에 펴낸 책으로 동양 사상의 근원에 대한 심오한 결정판이다. 한의학과 동양 사상을 연구하는 이들이 꼭 한 번은 거쳐야 하는 저서로도 유명하다. 내용은 어렵지만 천천히 음미하다 보면 음양오행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을 얻을 수 있다. 현대 과학을 동양학에 접목시키기 위한 노력도 담겨있다.

연해자평정해
심재열, 명문당

명리학의 틀을 이룬 이는 송나라 시대 자평 서거이다. 전통의 사주학에 오행의 상생, 상극 이론을 결합해 팔자명리학 이론을 체계화했다. 그 이론을 남송의 서승이 계승 발전시켰고 이를 명조에 이르러 당금지가 『연해자평』으로 편찬했다. 현대에 적용하기엔 무리가 많지만 명리학의 원전 중의 원전이므로 한 번은 거쳐 나가야 한다.

적천수강해
구경회, 동학사

자평명리학의 최고 고전이라고 할 수 있는 『적천수』는 유백온이 지었다고 전해진다. 추상적이고 난해한 이 고전에 임철초가 주해를 달아 풀어 쓴 책이 『적천수징의』다. 『적천수강해』는 이를 원전에 충실하게 한글로 번역하고 다양한 해설을 담은 명저다. 누구라도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도록 쉽게 풀어 쓰는 데 중점을 뒀다.

사주첩경
이석영, 한국역학교육학원

한국 근대 명리학의 태두인 이석영의 역작. 사주학의 기본 원리인 신살법·육친법을 다룬 1권, 사주에 관한 2~3권, 고급 사주학이라 할 수 있는 격국용신을 담은 4~5권, 사주역학에 관한 의문점을 정리하고 예문으로 설명한 6권으로 이루어져 있다. 한자에 익숙하지 않은 이들에겐 매우 불편하겠지만 사례 연구가 무척 풍성하다.

글=임주리 기자 ohmaju@joongang.co.kr 사진=김경록 기자 kimkr8486@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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