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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홍콩 H지수 ELS가 보여주는 한국 금융의 실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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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장혁 고려대 경영대 교수

중수익·중위험 상품으로 선풍적 인기를 모았던 홍콩 H지수 주가연계증권(ELS)이 위기에 처했다. 국내에서 무려 37조원어치나 팔린 이 상품 중 4조원가량이 원금마저 손해 볼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지난해 5월 1만5000선을 넘보던 홍콩 H지수는 올 들어 급락해 지난 12일 7500선까지 밀려났다. 그런데 ELS 상품 중 다수엔 ‘홍콩 H지수가 반 토막 나지 않으면 연 5% 이상의 높은 수익을 준다’는 조건이 걸려 있다. 홍콩 H지수가 급락하면서 수익은커녕 손실을 보게 될 투자자가 수만 명이라고 한다.

경제 흐름 못 읽어 원금 손실 위기
투자 실패 거듭돼 투자자 등 돌려
전문 인력과 첨단 기법 갖추고
자기 상품 파는 판매 관행 바꿔야

 대부분의 산업에서는 다양한 기준 및 규격에 따라 엄격한 상품 품질관리를 한다. 품질에 문제가 있는 상품을 생산·판매하는 회사가 사업을 성공적으로 영위해 갈 확률은 상당히 낮다. 하지만 많은 소비자가 구매하고 있는 금융 상품, 특히 투자형 금융 상품의 경우 그 현실은 많이 다르다. 몇 년 전에도 브라질 채권을 필두로 한 이머징마켓 국채 투자 열풍이 불었다. 금융회사들은 이들 국가의 성장 속도가 빠르고 금리가 높다며 고객들을 끌어모았다. 하지만 지난해부터 달러 강세와 해당국의 경기 침체로 이들 채권 값이 급락해 투자자들이 골치를 앓고 있다.

 투자형 금융 상품은 속성상 원금손실 위험을 감수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런 상품을 구매하는 소비자가 그 위험을 객관적으로 파악하고 판단하긴 쉽지 않다. 특히 판매하는 방식에 따라 투자 손실 위험에 대한 인지 정도에 많은 차이가 난다. 예를 들어 예상 수익률은 비슷하나 위험이 더 큰 상품을 먼저 추천한 뒤 ELS를 내보이면 구매자는 ELS의 수익 대비 위험이 상대적으로 낮다고 판단하고 구매하는 경우가 많다. 마케팅에서 말하는 맥락 효과(context effect)다. 유명 금융사의 추천을 곧 원금이나 수익률 보장으로 받아들이는 고객도 여전히 많다. 투자 결과는 투자자 본인의 책임이라고 하더라도 금융회사의 역할이 그만큼 크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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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런 면에서 한국 금융사가 가야 할 길은 아직 멀다. 21세기 들어 금융사들은 틈날 때마다 저축이 아닌 투자의 시대라고 강조해왔다. 정부도 저금리 시대에선 투자밖에 방법이 없다고 거든다. 이를 위해 자본시장법 등을 개정해 업권·상품 간의 칸막이를 풀어주는 등 제도적 정비도 꾸준히 해왔다. 하지만 투자 성과를 보여주지 못하면 말짱 헛일이다. 투자 활성화와 자본시장 육성의 지름길은 “투자했더니 돈이 불더라”는 경험을 고객들에게 돌려주는 것이다.

 이를 위해선 몇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먼저 성과가 좋은 금융 투자 상품을 개발할 수 있는 인력을 양성하는 일이다. 좋은 자동차를 개발하기 위해 기계공학·유체역학·산업디자인 관련 전문 인력이 필요하다. 마찬가지로 좋은 금융 투자 상품을 개발하는 데 필요한 유능한 인재를 제공하는 교육이 필요하다. 다행히 10년 전부터 여러 대학에서 금융공학 연계 전공 학사 및 금융 전문 경영학 석사과정 등을 개설해 전문 인력을 양성하고 있지만 아직 그 규모와 전문성이 부족하다. 우수한 자산 운용 인력 양산을 위한 보다 적극적인 투자와 산학 연계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필자가 근무했던 영국 레딩(Reading)대학의 경우 1990년대 후반에 이미 ‘모의 거래실’을 설치했다. 투자은행(IB)이나 증권사처럼 실시간 금융 정보를 보여주는 모니터를 두고 정확한 상황 판단과 투자 결정을 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는 곳이었다. 이런 인력이 많아져야 세계 경제의 큰 흐름을 읽지 못해 고객들을 골탕 먹이는 홍콩 H지수 ELS나 브라질 채권 투자와 같은 실패를 막을 수 있다.

 둘째는 첨단 분석·거래 기법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시장 환경이다. 예컨대 주식에 대한 거래세율이 높으면 잦은 거래를 통해 수익률을 높이는 고빈도 거래(high frequency trading) 같은 첨단 기법을 적용하기가 어려워진다. 고빈도 거래의 후유증을 염려하는 시각도 있지만, 부작용을 최소화하며 첨단 기법의 활성화를 꾀하는 제도 운용의 묘책이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투자 금융 상품의 유통 구조 개선이 필요하다. ‘좋은 상품’이 아니라 ‘우리 회사 상품’을 파는 구조를 바꿔야 한다. 지금도 형식적으론 상품을 개발하고 굴리는 자산운용사와 상품을 판매하는 은행·증권회사가 분리돼 있다. 하지만 실제론 은행·증권사가 같은 계열 자산 운용사의 상품을 주로 권한다. 금융위원회 자료에 따르면 은행에서 판매한 펀드 중 계열사 펀드가 차지하는 비중이 최근 5년간 평균 45%에 이른다. 고객에게 최적의 상품을 추천, 판매하기보다는 가격 대비 성능이 떨어지는 상품을 권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려면 여러 운용사의 상품을 나란히 비교할 수 있는 ‘펀드 수퍼마켓’과 같은 채널이 보다 활성화돼야 한다. 인터넷이나 모바일 등 비대면 채널을 통한 투자형 금융 상품 판매를 보다 쉽게 할 수 있는 제도적인 보완도 필요하다. 이를 통해 소비자의 선택권을 늘리고 판매 경쟁을 강화해 보다 좋은 상품이 선택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 수 있다. 말로만 고객이 아니라 정말 고객을 먼저 생각하는 금융사 임직원의 인식 전환은 물론 필수다.

이장혁 고려대 경영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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