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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을 열며] AI와 대결, 승패보다 더 중요한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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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혜수
JTBC 디지털뉴스룸 부장

국민학교(초등학교) 5학년 때 담임 선생님은 ‘주산이 지능 발달에 좋다’고 믿었다. 덕분에 정규 교과목도 아닌 주산을 매일 한 시간씩 배웠다. 아침마다 연습을 하고 시험을 쳤다. 이어서 선생님은 시험 결과가 좋지 않은 아이들의 머리를 뾰족한 주판알로 아프게 짓눌렀다. 그 시절을 떠올리면 “일 전이요, 이 전이요…십 전이면”하고 읊조리는 선생님과 “오십오 전이요”라고 대답하던 아이들 목소리가 귓가를 맴돈다.

 그 시절 TV 프로그램 중에 ‘묘기 대행진’이라는 게 있었다. 단골 아이템 중 하나가 주산 천재, 암산 천재였다. 이들은 스튜디오에서 전자계산기(지금의 컴퓨터)와 계산 맞대결을 했다. 사회자가 부르는 숫자를 더하고 빼고 곱하고 나눠서 누가 더 빨리 정확한 답을 맞히는지 겨뤘다. 인간의 묘기에 초점이 맞춰진 프로그램답게 이기는 쪽은 늘 주산 천재와 암산 천재였다. 흥분한 사회자는 인간의 능력에 찬사를 쏟아냈고 방청객도 시청자도 탄성을 터뜨리며 이렇게 생각했다. ‘역시 기계는 인간을 이길 수 없어…’.

 ‘인간의 우월성’에 대한 믿음은 깨진 지 오래다. 지난 5일 PGA투어 피닉스오픈 프로암에서 ‘엘드릭’이라는 로봇이 파3 홀에서 홀인원을 기록했다. 다섯 번의 시도 만에 120m 거리의 홀컵에 공을 집어넣었다. 버디 한 번 못해본 입장에선 부러울 뿐이었다. 리오넬 메시가 2013년 일본의 한 TV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해 로봇 골키퍼와 페널티킥 대결을 벌여 한 골도 넣지 못한 영상도 덩달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재등장했다.

 지난달 28일 영국의 과학학술지 네이처는 “구글의 인공지능 자회사인 구글 딥마인드가 개발한 컴퓨터 바둑 프로그램 ‘알파고’가 유럽 바둑 챔피언인 판후이 2단과 다섯 차례 맞붙어 모두 이겼다”고 발표했다. ‘알파고’는 다음달 9일 우리 이세돌 9단과 12억원의 상금을 놓고 대결을 펼친다. 이세돌 9단 자신도, 우리 바둑계도 승리를 자신한다. 하지만 구글 딥마인드 측은 “알파고가 이길 경우 상금은 자선단체에 기부하겠다”고 발표했다.

 인간과 기계의 대결사를 보면 단순한 계산 기계에서, 센서로 움직이는 로봇을 거쳐, 인공지능(AI) 단계까지 왔다. 내심 ‘알파고’가 이기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이 있다. 그 기저에 깔린 건 AI에 대한 우려다. 이미 영화 ‘블레이드 러너’ ‘터미네이터’ 등을 통해 인류를 적으로 간주하고 파멸에 이르게 하는 AI를 간접 경험했다. 스티븐 호킹 박사와 빌 게이츠, 일론 머스크 등은 AI가 인류에게 위협이 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호모 사피엔스, 즉 현생 인류의 역사와 미래를 살펴본 책 『사피엔스』에서 저자 유발 하라리는 이렇게 지적했다. “우리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아무도 모른다. (중략) 더욱 나쁜 것은 인류가 과거 어느 때보다도 무책임하다는 점이다.”(588쪽) 이세돌 9단이 ‘알파고’한테 이길 수도 질 수도 있다. 승패가 중요한 게 아니다. 우리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분명히 알지 못한다면 결국 인간으로선 지는 게임을 시작했을 뿐이다.

장혜수 JTBC 디지털뉴스룸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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