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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은 산 오를 땐 쿠킹 호일 갖고 가…온 몸 감싸면 절대 안 얼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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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인석 명예총장 뒤쪽으로 산 그림자를 비췄다. 그는 “도봉산을 가장 좋아한다. 아내를 처음 만난 첫사랑과 같은 산”이라고 했다. [사진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세속의 모든 굴레를/ 하나하나씩 벗으며 산을 오릅니다/ 한 발 한 발씩…// 수없이 많이 벗겨진 굴레가/ 나를 자연의 상태로 돌아가게 합니다.’

 한인석(58) 유타대 아시아(송도)캠퍼스 명예총장의 자작시 ‘한 발 한 발씩…’의 한 대목이다. 부제는 ‘산을 오르며’다. 산이든 삶이든 한발 한발 황소걸음을 내디뎌온 그를 빼닮았다.

조용필의 ‘킬리만자로의 표범’도 생각났다. ‘묻지 마라 왜냐고 왜 그렇게 높은 곳까지 오르려 애쓰는지 묻지를 마라.’ 그도 ‘살아가는 일이 허전하고 등이 시릴 때’마다 산에 올랐다. 그리고 찾았다. ‘고독과 악수’하는 가수와 달리 “가족을 깨달았고, 무상(無常)의 마음도 얻었다”고 했다

 한 총장은 2016년 사흘 전 남극 최고봉 빈슨 매시프(4892m)에 올랐다. 전 세계 7대륙 최고봉 등반 목표의 8~9부 능선쯤 된다. 남은 건 에베레스트(8848m) 하나다.

그는 아시아인 최초로 미국 50개주 최고봉도 완등했다. 내로라하는 전문 산악인이 아닌 평생을 실험실과 함께한 과학자의 기록이라는 점에서 값지다.

설 연휴 직전에 만난 그의 얼굴에선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외유내강(外柔內剛)과 마주한 듯했다. 성공한 학자, 빼어난 등반가라는 얼굴 뒤에 감춰진 슬픔도 내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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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총장이 각각 2009년, 2007년에 오른 북미 최고봉 드날리(6194m·왼쪽)와 아프리카 최고봉 킬리만자로(5895m).


 - 남극 등반 성공을 축하드린다.

 “왕복 26일에 걸친 장정이었다. 서울에서 출발해 칠레 푼타 아레나스를 거쳐 남극으로 들어갔다. 등반하는 데만 열흘이 걸렸다. 날씨가 좋지 않았다. 지금 돌아보니 기적 같다. 워낙 가기 힘든 곳 아닌가. 시간을 오래 비우기도 어렵고…. 에베레스트는 내년쯤 오를 계획이다. ”

 - 왜 오르고, 또 오르나.

 “산은 어머니같이 포근한 곳이다. 세상의 고통을 있는 그대로 받아준다. 치유 공간, 그 자체다. 가족과 직장, 사회라는 굴레에서 벗어나 자유를 숨쉬게 된다. 우리는 자연의 일부일 뿐이다. 절로 겸손해진다. 산은 정복의 대상이 아니다. 나와 산이 한 몸이 될 뿐이다. 숨이 턱턱 막히는 것을 이겨내는 극기의 과정이다.”

 - 대학 때부터 산에 다녔는데.

 “한양대 화학과 77학번이다. 입학 직후 산악반에 들어가 졸업 때까지 4년을 함께했다. 전공이 산악과라고 농담할 정도다. 암석·빙벽 등 전문가급 훈련을 받았다. 한 살 연상의 아내도 그곳에서 만났다. 당시 동아리 활동 덕분에 여기까지 온 것 같다. 산과 벗해온 지 어느덧 40년째다. 대학 새내기 때 처음 오른 곳이 도봉산 주봉이다. 옷도 몸도 만신창이가 됐다. 그때 생긴 별명이 ‘걸레’다. 오죽하면 걸레 예찬시도 지었을까.”

 - 문재(文才)가 있는 모양이다.

 “그렇게까지 볼 수는 없다. 자기를 더럽혀 주위를 깨끗하게 한다는, 평범한 작품이다. 다만 어려서부터 세상을 뒤집어 생각하는 버릇이 있었다. 고향이 강원도 영월 산골인데, 초등 5학년 때 영월 단종제 백일장에서 ‘잔디’라는 시제(詩題)를 받고 ‘사람들에게 짓밟히는 잔디가 얼마가 괴로울까’라고 써냈다가 혼났던 기억이 난다.”

 - 딸을 위해 미국에 갔다고 들었다.

 “육군 화학부대 기술장교로 제대하고 고교 교사와 대학원 생활을 병행했다. 딸이 골형성부전증, 즉 선천적으로 뼈가 잘 부러지는 장애가 있었다. 당시 국내에선 장애아 지원정책이 없어 워싱턴주립대 생화학과로 유학을 떠났다. 3년 반 동안 실험실을 지키며 93년 박사학위를 땄다. 이후 미시간대 연구원, 벤처기업 창업을 거쳐 2001년 유타대 화공과 교수가 됐고, 대학 측에 아시아 분교를 제안해 2014년 송도캠퍼스 초대 총장으로 부임했다.”

 - 아픈 데를 건드린 건 아닌지.

 “자칭 잡초 인생이다. 유학 시절 일곱 살 아들이 수영하다가 숨지는 아픔이 있었다. 공부하면서도 숱한 차별을 겪었다. 또 아무런 네트워크가 없는 미국에서 벤처사업을 하려면 얼마나 난관이 많았겠나. 당뇨병 환자용 혈당측정기를 개발해 특허도 냈었다. 무엇보다 기(氣)싸움에서 지지 않으려고 했다. 영어로 ‘거츠(guts)’, 우리말로 배짱이다. 망해도 죽기밖에 더하겠는가, 그렇게 배수진을 쳤다. 다 산에서 배운 거다.”

 - 딸아이는 요즘 어떻게 지내나.

 “어려선 1년에 3~4개월을 병원에서 살아야 했다. 100군데 넘게 뼈가 부러졌고, 뼈마다 철심을 붙여야 했다. 다행히 중학생이 되면서 뼈가 단단해졌다. 지금은 미국에서 애견용품 제조·판매업을 하고 있다. 회사명이 ‘바둑이’다. 우리 집에서 키웠던 강아지 이름이다. 사실 딸만큼 행복을 주는 사람도 세상에 없다. 뭔가 내게 메시지를 주려고 태어난 것 같다.”

 - 메시지라고 했다. 어떤 것일까.

 “학부 시절 무전여행을 떠난 적이 있다. 제주에서 부산으로 가는 카페리의 꽁무니에서 나오는 크고 작은 물거품을 보았다. 그 거품 중의 하나가 내가 아닐까 생각했다. 딸아이도 그 거품 중 하나일 수 있다. 그런 거품이 모여 배는 앞으로 나간다. 세상에 쓸모없는 거품은 없다. 딸 덕분에 결정적으로 성숙해졌다. 정상·비정상을 넘어 모든 사람은 가치가 있다. ”

 - 50개주·7대륙, 원래 목표지향적인가.

 “제 인생관 가운데 하나가 열매론이다. 일단 선택했다면 결실을 맺어야 한다고 본다. 무엇이든 정성을 다해 정진하면 도(道)가 튼다고 하지 않나. 한 분야에 도가 트면 다른 분야도 꿸 수 있게 된다. 그런 사람이 많아야 훌륭한 지도자가 나오고 사회도 튼튼해진다. 남을 탓해선 발전할 수 없다. 유학 시절 ‘미션 맨(mission man)’으로 불렸다. 과제를 한 번도 미룬 적이 없다. 밤을 새우기가 일쑤였다. 덕분에 6~7년 걸리는 석·박사 과정을 미국 학생들보다 일찍 마칠 수 있었다.”

 - 삶이 너무 빡빡한 건 아닌지.

 “아니다. 처음부터 목표가 거창했던 건 아니다. 딸아이가 안정을 찾으면서 산에도 자주 갈 수 있었다. 2004년 유타주 한인산악회를 결성하고 매주 8~12시간 산행을 했다. 아시아인 가운데 50개주 최고봉을 오른 이가 없어 도전하게 됐다. 일본·중국보다 앞서야겠다고 생각했다(하하하). 총 8년2개월이 걸렸다. 7대륙 등정도 2005년 한양대 산악부가 세운 계획이다. 빠짐없이 동참하려고 했다. 한 걸음 한 걸음, 꾸준히 왔을 뿐이다.”

 - 등산은 한국인의 첫 번째 취미다.

 “쉬운 산은 없다. 급하게 가면 어떤 산도 오를 수 없고, 천천히 가면 못 오를 산도 없다. 페이스 조절이 핵심이다. 쫓기다 보면 남의 엉덩이나 발뒤꿈치만 구경하다 오게 된다. 인생도 그렇다. 세상과, 자연과 호흡을 맞춰야 한다. 이런 면에서 국내 등반로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 세계에서 가장 가파른 편이다. 계단·사다리 등 직선 코스가 많다. 지그재그 돌아가는 길이 늘어났으면 한다. 70~80 노인도 즐길 수 있도록…. 참, 높은 산을 오를 땐 꼭 알루미늄 쿠킹 호일을 한 통 갖고 가는 게 좋다. 아무리 추워도 호일로 온 몸을 감으면 절대 얼지 않는다. 최고의 방한 용품이다.”

 - 지난해 한국 국적을 되찾았는데.

 “사업 관계로 미국시민권을 땄는데 1년 전 학술 분야 우수인재로 선정되며 국적을 회복했다. 미국에서 쌓은 다양한 경험을 살려 우리 대학생과 중소기업에 도움을 주려고 한다. 지난해 글로벌창업협회를 만든 이유다. 젊은이들도 눈앞의 취업·스펙보다 자신의 50~60대를 먼저 그려봤으면 좋겠다. 글로벌 시대에는 대기만성형이 살아남는다. 산악인으로 남은 꿈이 있다면 통일 한국의 전국 8도 최고봉을 오르는 것이다. 그날을 꼭 보고 싶다.”

[S BOX] 남극 얼음 속에서 살아난 섀클턴, 한국인 첫 에베레스트 등정 고상돈이 ‘산의 영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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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탐험가 어니스트 섀클턴(左), 고상돈(右)

산악인의 우정과 희생을 다룬 영화 ‘히말라야’가 인기를 끌었다. 한인석 명예총장도 ‘히말라야’를 봤다. 조난당한 동료를 구하려는 산사나이의 몸부림이 남의 일 같지 않았다. 엄홍길 대장과도 친분을 쌓았다. 최근 남극을 다녀온 이후 술 한잔 나누는 사이가 됐다.

한 총장에게 산악인은 모두 친구다. 누가 더 잘나고, 누가 더 못난 이가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그는 ‘산의 영웅’ 둘을 꼽았다.

우선 영국 탐험가 어니스트 섀클턴(1874~1922). 20세기 산악사의 신화다. 1914년 남극점 도전에 나섰다가 634일이나 얼음덩어리 속에 갇혀 지냈던 그는 불굴의 집념과 리더십으로 전 대원 27명과 무사히 귀환했다. 그들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인듀어런스’(2000)도 화제였다.

“섀클턴은 코리안 알피니즘(alpinism·산악정신)을 닮았습니다. 엄청난 통솔력과 기민한 판단력으로 팀워크를 이뤄냈죠. 산에서 숨진 사람도 데려오는 게 한국인이잖아요. 외국은 조금 다릅니다. 우리처럼 동료끼리 팀을 이루는 경우가 적어요. 잘 모르는 사람들이 등반대를 구성하기도 하죠. 목숨이 오가는 사고가 발생해도 서로 기댈 수가 없어요.”

또 다른 한 명은 1977년 한국인 최초로 에베레스트를 등정한 고상돈(1948~79)씨다. 77년은 한 총장이 한양대 산악부에 들어간 해다. 그는 고 대장이 하산 도중 숨졌던 북미 최고봉 알래스카 매킨리(6194m·지난해 드날리로 변경)를 2007년에 올랐다. “39년 전의 기억이 생생해요. 나라 전체가 열광했죠. 도전정신이 뭔지 배웠던 것 같습니다.”

글=박정호 문화전문기자·논설위원 jhlogos@joongang.co.kr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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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