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닫기
닫기

문화가 있는 먹거리 나눔, 농사짓는 의사 홍성직…상처받은 이들 손을 잡다, 연극 치유 20년 노지향

기사 이미지

홍성직 원장이 병원 휴게실에서 병아리와 햇볕을 쬐고 있다. 조금 더 자라면 초록생명마을에서 주민들과 함께 키울 계획이다. [사진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병원 휴게실 한편에 전자레인지처럼 생긴 부화기가 놓여 있다. 불이 깜박이는 기계 안엔 계란보다 약간 큰 알들이 담겼다. “오리알이에요. 농장에서 사람들과 공동 양계를 하려고 준비 중입니다.” 제주시 연삼로에 있는 ‘홍성직외과’ 홍성직(59) 원장의 설명이다. 옆방 커다란 박스 안엔 병아리 열 마리가 짹짹거리 고 있다. 곧 농장으로 이사 하게 될 어린 닭들이다.

[연중기획] 매력시민 세상을 바꾸는 컬처디자이너
제주도서 매달 ‘에코 파티’
극단 ‘연극공간 - 해(解)’ 대표


홍성직 원장은 ‘농부 의사’다. 외과의면서 병원에서 20여 분 거리에 약 3만3000㎡(약 1만 평) 규모의 농장 ‘생명공동체 초록생명마을’을 운영한다.

매달 농장에서 ‘에코 파티’를 여는 파티 기획자이면서 제주의 외국인 노동자와 이주민들을 지원하는 ‘제주외국인평화공동체’ 공동대표도 맡고 있다.

서울에서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군의관으로 제대한 후 1990년 제주로 이주했다. “서울 생활이 답답해 산과 물이 좋은 곳을 찾아다녔죠. 제주에 정착해 의사로서 사회에 기여할 방법이 뭐가 있을까 찾다 보니 여러 분야의 활동에 관여하게 되었습니다.”

경남 거창고 교감선생님이었던 아버지 덕에 시골에서 보낸 어린 시절의 영향이 컸다. 인성 노동 교육을 중시하던 이곳에서 거창고 이사진이었던 장기려(1911~1995) 박사, 함석헌(1901~1989) 선생 등을 알게 되면서 나누는 삶의 기쁨을 배웠다.

알베르트 슈바이처(1875~1965) 위인전을 읽은 것은 지금의 길을 선택한 직접 계기가 됐다. “슈바이처는 의사이면서 목사고, 음악가예요. 이런 삶을 살아야겠다고 어린 나이에 결심을 했습니다.”

90년대, 뜻 맞는 제주 의사 10여 명과 함께 외국인 노동자 무료 진료를 시작했다. 이 모임이 현재는 1만 명이 넘는 제주 거주 이주민에 대한 의료·주거 지원 등을 총괄하는 ‘제주외국인평화공동체’로 발전했다.

그가 하는 다양한 활동은 결국 인간의 생명을 고민하는 의사로서의 본분과 닿아 있다. 3년 전 시작한 ‘에코 파티’는 먹거리와 문화를 나누는 자리다.

 
기사 이미지
지역 주민들이 텃밭이나 농장에서 농약 없이 기른 채소 등을 가져와 사고파는 농부시장, 제철 재료로 만든 음식을 나누는 포트럭(pot-luck) 파티, 그림이나 조각 전시, 클래식·국악 공연 등이 함께한다.

“어떤 재료를, 어떻게 조리해, 얼마나 먹느냐의 문제가 인간 건강의 50% 이상을 좌우한다고 봐요. 그걸 함께 고민하는 모임이 에코 파티입니다. 문화를 향유하는 것도 중요해요. 몸과 정신 의 밸런스가 유지돼야 진짜 건강한 삶이라 할 수 있으니까요. 에코 파티에 참여하는 사람들과 함께 먹거리 자급자족이 가능한 생태공동체를 만드는 게 앞으로의 목표입니다.”

인터뷰가 끝날 무렵 홍 원장은 지난해 초에 경험한 교통사고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급발진 사고로 열흘간 혼수상태에 빠져 있었고, 사고 후 정밀검사를 하다 십이지장에서 ‘기스트(gist·gastrointestinal stromal tumor)’라는, 세계적으로 환자가 1만2000여 명밖에 없는 유전성 희귀암을 발견해 치료 중이다. “내가 돌보는 환자 중 내가 가장 중환자”라며 웃는 홍 원장은 “환자의 고통을 헤아릴 줄 아는 의사로 남은 생을 살아가려 한다”고 말했다.

제주=이영희 기자 misquick@joongang.co.kr
 
기사 이미지

노지향 연출가는 연극의 치유 효과를 믿는다. 소외된 이웃들을 찾아다니며 함께 연극을 만드는 이유다. [사진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극단 ‘억압받는 사람들의 연극공간-해(解)’의 노지향(54) 대표가 연출하는 작품은 특별하다. 전문 배우가 아닌 일반인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연극 형식으로 풀어내고 직접 무대에 올라 연기한다.

연출가는 이들이 자신의 속내를 털어놓을 수 있도록 마음의 문을 여는 역할을 한다. 노 대표는 1997년 극단을 창단한 후 소년원 아이들과 기지촌 출신 할머니, 탈북 새터민, 결혼이주여성, 외국인 노동자 등을 찾아다니며 작품을 만들었다.

“브라질 연극 이론가 아우구스토 보알의 방법론에 따른 작업이에요. 상처받은 사람들이 자신의 상처를 드러내고 공감·이해받는 과정을 통해 마음속에 맺혀 있던 응어리가 풀어지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한자 ‘풀 해(解)’를 극단 이름에 쓴 이유도 그 때문이다. 그의 작업은 일종의 ‘치유 연극’이다.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한 노 대표는 90년대 중반 중앙대 연극학과 박사과정을 밟으며 보알의 이론을 접했다. “현실을 바꾸는 데 연극이 구체적인 도구가 된다”는 게 큰 매력으로 다가왔다.

97년 세계연극제 초청으로 방한한 보알을 직접 만난 뒤에는 보알의 이론을 실제 현장에서 적용하기 시작했다.

 
기사 이미지
특히 소년원 아이들과의 작업은 98년부터 지난해까지 아홉 차례나 이어졌다. 한 해 15명 정도의 아이들과 팀을 꾸려 매주 워크숍을 하면서 작품을 만들고 연말에 공연을 했다.

“아이들이 현실에선 못했던 행동을 연극 속에서 해보기도 합니다. 때리는 아버지에게 맞서 ‘이게 그렇게 맞을 짓이냐. 나도 이제 어른이니 말로 했으면 좋겠다’고 조리 있게 대항하는 식으로요. 현실 배경 그대로여서 아이들의 인식을 바꾸고 용기를 북돋우는 효과가 크지요.”

지난해 작품을 함께 만든 서울소년원의 한 학생은 “옛 기억을 연극으로 만들어 연기를 하면서 속이 후련해지고 자신감을 서서히 다시 찾아가고 있다”고 소감을 적었다. 이렇게 ‘배우’들이 마음의 상처를 이겨내는 모습은 노 대표의 가장 큰 보람이다.

노 대표가 20년 가까이 상처받은 이들의 치유에 몰두할 수 있었던 데는 남편인 권용석(53) 변호사의 지원도 큰 몫을 했다. “남 돕는 일을 해서 좋겠다”며 아내를 부러워하던 권 변호사는 2009년 사단법인 ‘행복공장’을 만들어 자신도 봉사활동에 뛰어들었다.

강원도 홍천에 교도소 독방 형태의 공간을 만들어 자기 성찰 프로그램인 ‘내 안의 감옥’을 운영하며 캄보디아 봉사활동 등을 벌이고 있다. 노 대표의 극단 활동도 함께한다. 살고 있는 서울 관악구의 아파트 한 채 빼고 전 재산을 다 털어 하는 일이다.

노 대표는 “300여 명의 후원자 덕분에 적자 안 내고 운영하고 있다”면서 “가까운 가족·친구들부터 후원해줬다. 이들과 ‘행복공장’ 사업을 함께 고민하고 격려하면서 그동안의 인간관계가 점점 좋은 쪽으로 발전되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이지영 기자 jylee@joongang.co.kr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PHOTO & VIDEO

shpping&lif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