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중앙시평] 왜 대북정책은 실패하는가

기사 이미지

김병연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사회주의 경제와 체제 이행을 전공한 필자는 짧지 않은 외국 생활을 마무리하고 2003년에 귀국했다. 북한을 본격적으로 연구하고 싶었던 것이 주된 이유였다. 그러나 현실은 기대와 달랐다. 연구에 필수적인 데이터가 희소할 뿐 아니라 공개되지도 않았다. 더욱이 북한 문제는 이념에 투철한 전사들이 득실거리는 전쟁터가 돼 있었다. 학문이 설 공간은 지극히 협소했지만 표 계산에 밝은 정치인들이 활동하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무대였다. 학자들도 권력자의 지극히 상식적인 한마디가 진리인 양 이를 충실히 반영해 대북정책을 만들면 고위직에 쉽게 등용되는 듯했다.

사실을 모르면 표와 이념이 지배한다. 그 당시 여당(현재 야당) 국회의원 몇 명과 스터디 그룹을 했던 전문가로부터 들은 이야기는 충격적이었다. 그들은 북한 경제가 위기에 빠진 이유가 미국의 제재 때문이라고 믿고 있다는 것이다. 제재로 인해 펜티엄급 컴퓨터도 수입할 수 없으니 어떻게 북한 경제가 성장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었다. 그러나 북한의 위기는 제재가 아니라 나쁜 체제와 제도에서 비롯된 것이다. 지금까지 모든 사회주의 경제는 위기에 빠졌고 자본주의로 이행하지 않고는 그 위기를 벗어나지 못했다는 사실은 예외 없는 법칙이다. 더욱이 단둥에 한 번이라도 가 봤더라면 북한은 펜티엄급 컴퓨터를 비롯한 거의 모든 제재 품목을 마음대로 사 간다는 걸 쉽게 확인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념과 표에 눈이 가려 만든 정책이 실효성을 가지기 어려운 것은 당연하다.

학습하지 않으면 말뿐인 대책만 세운다. 10여 년 전에 세계적인 학자들을 초빙해 사회주의 경제 체제의 이행에 관한 국제학회를 조직하고서 관련 부처 관료의 참석을 요청한 적이 있었다. 답변은 거절이었다. 북한을 자극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뛰어난 전문성을 가진 학자들의 연구 성과를 학습하고 이를 정책에 반영하는 것은 관료의 의무다. 학교에서 열린 학회 참석까지 북한이 감시한다고 믿을 정도로 우리 공무원의 보안의식이 투철할까. 북한 문제처럼 창의적인 해결책이 필요한 주제에 대해 학습 의욕조차 갖지 않는 정부와 정치인으로부터 무엇을 기대할 수 있을까.

 
기사 이미지
급조한 정책은 실패한다. 지난 정부 초기 때 이야기다. 비핵·개방·3000 정책을 표방한 정부 부처 고위직을 몇 명의 전문가와 함께 만났다. 전문가들은 이 정책의 실현 가능성을 낮게 보고 이를 현실화시킬 어떤 방안이 있는지 궁금해했다. 그 공직자는 모든 준비는 완료됐고 이제 실행만 하면 된다고 장담했다. 그런데 다음 날 부처 실무자로부터 전화 연락이 왔다. 비핵·개방·3000을 실현시킬 방안에 대해 연구 용역을 수행해 달라는 것이었다. 조금이나마 우리 정부의 실력을 믿고 싶었던 희망이 여지없이 무너졌다. 아마 선거 캠프에서 주로 보수 성향 유권자의 표를 의식해 단기간에 만든 정책이었을 것이니 그 실현 가능성을 얼마나 고려했을까. 아니나 다를까 지난 정부 대북정책의 성과가 있었다면 준비되지 않은 정부의 원칙론은 빈약한 성과로 귀결됨을 확인시켜 준 정도였다.

박근혜 정부의 대북정책은 위의 경험에서 배웠어야 했다. 사실을 기초로, 학습을 통해 구체적이고도 치밀한 정책과 전략을 세워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반도신뢰프로세스라는, 창조경제만큼이나 개념이 모호하고 작동 가능성이 의심스러운 정책을 내놓았다. 그러다 보니 기회의 시기인 정권 초기에 대북정책을 적극적으로 펴지 못하고 미적거렸다. 그 후 드레스덴선언을 통해 내용을 일부 구체화했고 통일대박론으로 통일에 대한 국민 공감대를 확산한 성과도 있었다. 그러나 이 제안이 오히려 북한으로 하여금 현 정부의 통일론을 흡수통일로 믿게 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신뢰라는 것은 서로 주고받는 과정을 통해 형성되지만 대통령은 “우리는 급진 흡수통일을 추구하지 않는다”는 발언조차 아까워했다. 우방인 미국의 전문가마저도 과연 한국 정부가 추진하는 통일 방안과 전략이 무엇인지 알 수 없다고 고개를 갸우뚱한다. 이것도 전략적 모호성인가. 아니면 학습하지 않고 소통하지 않는 정책결정자의 실패인가.

잃어버린 세월 때문에 한반도가 맞게 될지 모를 잔인한 세월을 생각하면 가슴이 무겁다. 북한이 추가 핵실험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믿었다면 이는 무지(無知)며, 외교라는 빈약한 팔에만 달랑 의지해 비핵화가 가능할 것으로 믿었다면 몽매(蒙昧)다. 네 번이나 북한이 핵실험을 하고 광명성 미사일을 발사하기까지 우리 정치와 정부는 동일한 실패를 반복했다. 정치는 대북정책을 표와 이념으로 오염시켰고 학습하지 않는 정부는 순발력으로만 정치에 봉사해 왔다. 이런 수준의 대북정책으로 우리와 우리 아이들을 세월호보다 더 클 수 있는 재난에서 구할 수 있을까. 내 마음엔 또 다른 세월호가 가라앉고 있다.

김병연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중앙일보 핫 클릭

PHOTO & VIDEO

shpping&life

뉴스레터 보기

김민석의 Mr. 밀리터리 군사안보연구소

군사안보연구소는 중앙일보의 군사안보분야 전문 연구기관입니다.
군사안보연구소는 2016년 10월 1일 중앙일보 홈페이지 조인스(https://news.joins.com)에 문을 연 ‘김민석의 Mr. 밀리터리’(https://news.joins.com/mm)를 운영하며 디지털 환경에 특화된 군사ㆍ안보ㆍ무기에 관한 콘텐트를 만들고 있습니다.

연구소 사람들
김민석 소장 : kimseok@joongang.co.kr (02-751-5511)
국방연구원 전력발전연구부ㆍ군비통제센터를 거쳐 1994년 중앙일보에 입사한 국내 첫 군사전문기자다. 국방부를 출입한 뒤 최장수 국방부 대변인(2010~2016년)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군사안보전문기자 겸 논설위원으로 한반도 군사와 안보문제를 깊게 파헤치는 글을 쓰고 있다.

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