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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기술 정책 자주 바뀌어 신성장동력 못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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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아 원장은 “과학기술이 주로 경제성장의 도구로 인식되지만 사실 우리 삶 전반에 녹아 있다”며 “일자리 창출을 위해서는 장기적이고 일관성 있는 과학기술 정책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사진 김상선 기자]


50여 년 전 대한민국 과학기술 정책의 시대가 본격 개막했다. 내년은 과학기술처 설립 50주년이다. 과학기술 정책의 과거와 현재를 짚어보고, 이를 바탕으로 미래를 조망하는 게 절실하다. 이를 위해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의 박영아 원장이 최근 『KISTEP 미래한국보고서』와 『혁신의 순간들』을 엮어냈다. 『KISTEP 미래한국보고서』는 과학기술과 통일, 과학기술 외교, 미래 일자리 등 미래 세상의 핵심 트렌드 10개를 뽑아냈다. 『혁신의 순간들』은 박영아 원장이 14인의 전직 과학기술 부처 장관을 인터뷰해 뽑아낸 혜안을 담았다. 박 원장을 지난달 5일 중앙일보 논설위원실 회의실에서 인터뷰했다.

[김환영의 직격 인터뷰] 역대 과학기술 정책 분석한 박영아 KISTEP 원장


- KISTEP이 하는 일은.

“과학기술 분야의 한국개발연구원(KDI)이라고 보면 이해하기 쉽다. 과학기술과 밀접한 정치·경제·사회·국제사회의 미래를 예측한다. 예측을 바탕으로 정부가 수행할 연구를 기획한다. 연구사업 결과가 나오면 평가 결과에 따라 다음 해 예산의 확대·축소를 권고한다.”

- 최근 『KISTEP 미래한국보고서』와 『혁신의 순간들』을 펴냈다.

“과학기술 관점에서 우리의 혁신·도전에 필요한 제안을 하기 위해서다. 미래 보고서는 많지만 보통 외국 관점에서 나왔다. 우리 시각이 필요하다는 문제의식에서 『KISTEP 미래한국보고서』를 구상했다.”

- 과학기술이 어떻게 현재 문제를 해결하고 미래를 대비하는지 그 인과관계가 일반인에게 반드시 설득력이 있는 것은 아니다.

“정부·정치권·산업계 인사들을 만나보면 과학기술이 문제 해결의 열쇠라고 모두 말씀하신다. 실제로 맞다. 과학기술 분야 종사자는 묵묵히 자기 역할을 했고, 상대적으로 사회와 소통이 부족했다. 그래서 과학기술의 축적으로 새로운 산업이 생겼고, 경제성장을 했다는 그런 고리 하나하나를 사회가 충분히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

- 『혁신의 순간들』의 의의는.

“우리나라는 열악한 환경에도 불구하고 1966년 최초의 정부출연연구소인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을 건립했다. 67년에는 개도국 최초로 과학기술을 전담하는 과학기술처를 출범시켰다. 그런 역사에서 미래를 위한 실마리를 얻고자 과학기술 부처 장관 14분을 인터뷰했다.”

- 역대 장관을 인터뷰해 보니 무엇이 인상적이었는지. 다른 분야와 다른 과학기술 분야 고유의 리더십이 있나.

“모든 분야의 리더십은 현실 파악, 미래를 보는 혜안, 비전이 바탕이다. 또 현재의 정보를 종합해 할 일을 기획하고 혁신적인 결정을 해야 한다는 점에서 다 똑같다고 생각한다. 14분을 뵙고 제가 감탄했던 것은 오래전 일도 아주 정확하게 기억하고 계시고 열정을 계속 가지고 계시다는 것이다. 장관들께서는 정책 일관성 문제와 추격형 성장 모델에서 선도자(first mover)형으로 전환이 잘 안 되는 것에 대해 많이 걱정하셨다.”

- 우리나라 과학기술 정책의 핵심 과제는.

“우리 사회는 과학기술뿐 아니라 전체적으로 국가 주도 압축성장이라는 수렁에 빠져 있다. 소위 ‘IMF 위기’가 왔을 때도 민간 부문이 이미 많이 성장한 상태였다. 개혁·변화의 주도권이 사실 민간에 있다. 지난 20여 년간 민간 주도 성장의 필요성이 끊임없이 제기됐으나 아직도 정부는 권한을 놓지 않고 정부 주도로 개혁을 끌고 가려고 한다. 연구개발도 정부는 꼭 해야 하는 부분만 하고 민간 창의성에 맡겨야 한다. 또 부처마다 연구개발을 수행하고 있는데 중복되는 부분이 있다. 종합적 조정 역할이 부족하다.”

- 과학기술인 입장에서 미래란 무엇인가.

“미래는 원하는 바에 따라 만들어가는 것이다. 미래를 어떤 지향성을 가지고 예측하면 들어맞는 경우가 많다. 공상과학(SF)이 상상한 대로 이뤄진 게 적지 않다. 현재의 위기를 넘어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기 위해서도 미래 예측이 필요하다.”

- 미래는 두렵다. 자동운전시스템이 개발되면 택시·트럭운전사는 일자리를 잃게 된다.

“기술혁신은 분명 일자리를 없앤다. 증기기관차가 나왔을 때 영국에는 300만 마리의 말이 있었다. 말에 의존하는 운송수단과 관련 직종은 사라졌으나 과학기술은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어냈다. 아무리 로봇·인공지능이 발달해도 사람만 할 수 있는 영역이 분명히 있다. 창의적·감성적·비정형적인 고부가가치 일을 하는 사람이 계속 필요하다. 평생교육시스템으로 변화에 대응하면 된다.”

- 고용환경 변화로 평생 재교육이 필요하다. 이명박 정부 때처럼 과학기술과 교육을 붙여놓는 게 효율적 아닌가.

“과학기술 연구자들이 대부분 대학에 있기 때문에 대학을 관장하는 교육부와 과학기술을 합쳐 교육과학기술부를 만든다는 게 이명박 정부 개편의 철학적 틀이었다. 하지만 다수 국민의 관심이 초·중·고 교육이다 보니 대학·과학기술 부문을 합쳐 시너지를 내려던 구상이 충분히 실현되지 못했다. 교육은 미래 이슈이기 전에 뜨거운 현안이다. 당면 교육 현안에 교과부가 집중했고 상대적으로 과학기술 부문을 소홀히 했다고 본다. 초·중·고 교육과 대학 교육을 분리하지 않고 교육 부문 전체와 과학기술 부문을 합친 것은 실정에 안 맞았다.”

- 과학기술인들이 만나서 얘기할 때 과학기술부만 따로 있으면 좋겠다고 하는지.

“교과부도 그렇고 미래부도 그렇고 복합부서·통합부서를 만들 때는 다 철학적 기반이 있다. 하지만 철학·현실·비전이 잘 맞아야 한다. 미래창조과학부라는 틀에서 과학기술 부문과 정보통신기술(ICT) 부문을 합쳤는데, 통신시장 등 ICT의 일부 부분은 당장 현실적으로 시장과 연결돼 있기 때문에 압도적으로 뜨거운 이슈다. 미래부 출범 이후 과학기술 어젠다가 뒤로 밀렸다는 우려가 나온다.”

- 한때 과학기술 부총리를 뒀던 이유는.

“부처마다 연구개발을 하기 때문에 부처 간 연구개발을 총괄·조정하는 컨트롤타워가 필요했다. 2003~2008년 참여정부 시절에도 혁신이 국정의 화두였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인식은 자본과 노동으로 경제가 성장하는 시대가 지났기에 기술혁신 중심의 혁신경제가 경제성장의 큰 틀이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자본·노동 중심의 경제성장은 경제부총리가, 혁신경제는 과학기술부총리가 담당하게 했다. 시대를 앞서간 면이 있었고 다른 부처들의 반발이 좀 있었다.”

- 우리 정부들은 좌파·우파를 떠나 과학기술 정책에서 일관성을 유지했는가.

“좌파·우파와 무관하게 과학기술 진흥 정책을 계속 추진했다. 그런 면에서는 한 틀이다. 그러나 5년 단임제 아래에서 정부가 바뀔 때마다 이전 정부의 정책을 일관성 있게 지속하기보다는 새로운 틀을 만들려고만 하는 잘못을 반복했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기 때문에 무엇인가를 만들지 못했다. 가장 큰 문제점이다.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아 정착시키려면 5년은 부족하고 10년, 15년은 해야 한다. 열매를 맺기도 전에 기존 사업을 검토·재조정하고 신규 사업을 추진하는 바람에 신성장동력을 못 만든 상황이 됐다. 안타깝다.”

- 미래창조과학부가 창조경제의 주무부서다. 미래창조과학부에서 ‘창조’는 정부가 바뀌어도 살아남을 것인가.

“박근혜 정부 들어서도 창조경제가 국정의 큰 키워드가 되었지만 다른 나라들이 과학기술·산업 분야에서 어떤 것에 주목하는지 살펴보면 창조경제·창업경제·혁신경제 등 명칭은 달라도 결국 다 창조경제다. 창업을 성장의 사다리로 삼고 기술의 융합과 혁신으로 새로운 분야를 만드는 것이다. 창조경제는 정부가 바뀌어도 계승돼야 한다.”

- 창조경제는 성공할 것인가.

“성공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중인데 우리나라가 처한 환경에서 쉬운 일은 아니다. 창조경제가 성공한 나라는 전 세계적으로 몇 군데 없다. 미국 실리콘밸리와 이스라엘을 성공 사례로 꼽지만 우선 이스라엘은 워낙 시장이 작다. 미국에는 골드러시 시절부터 그야말로 ‘대박’을 바라고, 실패를 예견하고, 실패한 사람을 용인하는 문화가 녹아 있다. 실리콘밸리가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스탠퍼드대 등 많은 우수한 대학과 연구자·학생이 있고, 아이디어·특허만 있으면 미국이라는 거대한 시장을 지배하고 판을 바꾸는 게임체인저(game changer)가 될 수 있는 국가적 기반이 있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도 창조경제의 성과로 인용되는 성공 사례가 많이 나와야 하겠지만 아직은 사실 쉽지 않다. 국내 시장은 작다. 글로벌 시장에서 먹힐 수 있는 창업을 일으키기엔 환경이 만만치 않다.”

- 현 정부의 과학 부문 유산(legacy)은.

“결국 창조경제가 현 정부 과학기술 정책의 핵심이다. 사실 특허·자본이 대기업·수도권에 집중돼 있어 중소기업·지역 경쟁력이 떨어지는 게 우리나라의 약점이다. 그래서 정부는 대기업·중소기업·개인창업자를 연결해 혁신·창업 환경을 조성하려고 17개 지역창조경제혁신센터를 만들었다. 창업자들이 세계적인 성공을 거둘 수 있는 환경을 조성했다는 게 큰 업적이다.”

- 과학기술 정책에서 대통령의 역할은.

“과학기술 같은 미래 어젠다는 당장은 돈이 안 된다. 그래서 더욱 최고결정자의 열정이 중요하다. 건국 초기에 정말 먹고살 게 없었지만 이승만 대통령은 1959년 원자력연구소를 세웠다. 박정희 대통령은 66년 KIST를, 67년에는 과학기술처를 신설했다. 박 대통령은 또 ‘과학입국, 기술자립’이라는 구호로 사농공상 신분 체계 속에 얽매여 있던 국민의 인식을 깼다. 그래서 우리나라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미국·일본·중국의 수뇌들도 최고의 과학자들에게 존경심을 표출하고 전문가 중심의 정책 결정을 하고 있다. 아직 배워야 할 것이 많다.”

- 과학기술인의 처우 개선 문제가 있지만 일반인들이 보기에는 이미 처우가 좋다.

“KIST를 만들었을 때 대학교수 연봉의 몇 배를 주고 해외 우수 과학자를 유치했다. 집도 주는 파격적인 대우를 했다. 또 과학기술인을 선망하고 존경하는 사회 분위기가 있었다. 연구자들이 굉장히 자율적·창의적으로 연구할 수 있었다. 독일의 연구개발 철학은 지원하되 간섭하지 않는 것이다. 우리도 초창기 한 20여 년 동안에는 독일 모델을 본받았다. 연구개발 규모가 커지고 연구소도 많아지는 과정에서 정부 규제가 심해졌다. 그 과정에서 연구자들의 사기가 떨어졌다. 공공부문 개혁을 이야기할 때도, 공기업과 출연연구소를 같은 잣대로 보는 게 연구자들을 어렵게 하고 있다.”

- 과학기술 인력이 정부 수뇌부를 차지하는 나라도 많지만 혁신 주도국인 미국은 로스쿨 출신 비중이 높다.

“미국은 대통령 직속 과학기술정책실(OSTP)을 76년 설립했다. 미국에는 세계적인 과학자들의 직접적인 조언을 받아 실행하는 메커니즘이 있다. 우리나라는 과학기술 정책을 수행하는 기구들이 최고결정권자인 대통령과 상당히 멀리 떨어져 있다.”

- 마지막으로 강조하고 싶은 게 있다면.

“국정 철학이 많은 국민에게 전달되도록 ‘제2의 과학기술 국민운동’이 필요하다. 21세기는 새로운 문명의 전환점이다. 그래서 힘들다. 문명 전환의 핵심은 과학기술 혁신이다. 과학기술 혁신으로 새로운 희망을 만들고,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가능하다.”
 
  

글=김환영 논설위원
사진=김상선 기자


박영아 원장은…

학계 출신의 과학기술 정책 전문가다. 서울대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펜실베이니아대에서 물리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명지대 물리학과 교수로 재직했다. 제18대 국회의원(송파갑)으로 일했으며 2013년부터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 원장으로서 과학기술 정책 연구·실행에 매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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