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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M] '세기의 매치'로 돌아온 토비 맥과이어

‘스파이더맨’ 시리즈(2002~2007, 샘 레이미 감독) 팬들은 토비 맥과이어(41)를 잊지 못한다. 그가 거미 옷을 벗은 지 9년이 지났지만 말이다. 그 사이 맥과이어는 네 편의 영화와 한 편의 드라마에 주연으로 출연했다. ‘브라더스’(2009, 짐 쉐리단 감독)로 호평을 받기도 했지만, 이렇다 할 성공을 거두지 못한 그는 조금씩 대중에 잊혀졌다. 그가 주연과 제작을 맡은 ‘세기의 매치’(원제 Pawn Sacrifice, 1월 28일 개봉, 에드워드 즈윅 감독)는 빼어난 연기력과 스타성을 갖춘 맥과이어를 다시 돌아보게 한다. 냉전시대 미국의 영웅으로 떠올랐던 체스 천재 바비 피셔(1943~2008)의 삶을 다룬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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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이더맨2 [사진출처: `스파이더맨2` 스틸컷]

예전 이야기부터 해 보자. 2002년 맥과이어는 27세에 ‘스파이더맨’ 시리즈의 주인공 피터 파커 역에 캐스팅됐다. 스파이더맨은 마블 코믹스 중 일찌감치 영화화된 캐릭터였다. 유약하고 찌질한 모범생 소년이 섹시한 영웅이 되는 성장담을 액션 블록버스터로 풀어낸 영화에 관객은 열광했고, 전 세계에서 8억2000만 달러(약 9830억원)의 흥행 수입을 올렸다. 맥과이어는 피터 파커를 위해 태어난 배우 같았다. 작은 키, 잘 깜빡이지 않는 불안한 눈, 더듬거리는 말투. 그는 생계를 위해 피자 배달을 하는 가난하고 자신감 없는 파커를 완벽히 재현했다. 평단도 호평을 쏟아냈다. 당시 시카코 트리뷴은 “풍부한 감성이 깃든 큰 눈으로 감각적 연기를 해내고, 본능적으로 절제된 표현도 훌륭하다”고 평했다.

하지만 맥과이어는 스파이더맨의 인기에 건방지고 시큰둥하게 변했다. 1편의 호주 개봉 당시 홍보차 출연한 TV 인터뷰에서 “원작 만화책을 만져본 적도 없고, 읽고 싶다는 생각도 전혀 안 든다”고 말하는 건 예사였다. 1편의 성공 이후 그가 선택한 차기작은 대공황 시대 실존한 경마 기수를 다룬 ‘씨비스켓’(2003, 게리 로스 감독). 하지만 이 영화를 찍다 허리 부상을 당했고, 이를 이유로 제작사 소니에 추가 촬영 일정 변경과 출연료 인상을 요구했다. 제작사는 “당신이 조지 클루니라도 되는 줄 아느냐”고 핀잔을 주며 새 스파이더맨으로 제이크 질렌할을 낙점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당시 여자친구(지금은 아내가 된) 제니퍼 메이어의 아버지이자 유니버설 사장 론 메이어가 중재해 사건은 일단락됐다. 호사가들은 콧대가 높아진 맥과이어가 스타 행세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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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기의 매치 [사진출처: `세기의 매치` 스틸컷]

맥과이어가 바비 피셔를 만났을 때
‘세기의 매치’가 흥미로운 건, 극 중 바비 피셔(토비 맥과이어)의 모습이 과거 맥과이어의 실제 모습과 퍽 닮아 보이기 때문이다. 승부사 피셔는 망상증과 편집증에 걸린 오만한 체스 천재였다. 극 중반까지 피셔의 ‘톱스타 갑질’이 상세하게 그려진다. 그는 국가 대항 시합에서 승승장구하며 미국 정부가 붙인 변호사에게 돈을 더 달라, 더 좋은 호텔을 잡아달라 요구한다.

프로듀서 게일 카츠는 기획 단계부터 “맥과이어를 완벽한 피셔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맥과이어는 “피셔가 반영웅적 면모와 복잡한 내면을 지닌 점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고 했다. 피셔가 정신 질환을 앓는 건, 짧은 시간 동안 수많은 수를 생각해야 하는 체스 선수의 고질병 때문만은 아니었다. 미국과 러시아의 총성 없는 전쟁에 동원되고 있다는 괴로움, 열다섯 살부터 홀어머니와 떨어져 살며 받은 상처도 그를 괴롭혔다. 맥과이어는 그런 피셔가 안쓰러워 보일 만큼 폭발적으로 연기해낸다. 주변 소음에 신경이 거슬려 체스 두기를 중단하는 모습부터 러시아 정부가 전화를 도청한다며 수화기를 분해하는 모습까지. 여기엔 그의 흔들리는 큰 눈과 가늘고 높은 목소리가 예의 큰 몫을 했다.

맥과이어는 타고난 연기력에 비해, 외부 상황과 조건에 쉽게 흔들리는 배우였다. 2007년 ‘스파이더맨’ 시리즈를 끝낸 후 그가 집중했던 건 연기가 아니라 포커 게임이었다. 그해 포커 월드 시리즈 대회에 출전해 적은 금액이지만 상금을 따냈을 정도였다. 2011년에는 사기 용의자인 헤지펀드 매니저와 포커 게임을 벌여 31만 달러(약 3억7000만원)를 땄다가, 피해자들이 맥과이어에게 피해 보상금을 내놓으라고 소송을 걸기도 했다.

그는 피셔처럼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를 낳았을 때 부모의 나이는 고작 열여덟 살, 스무 살. 철없는 부모 밑에서 태어나 열세 살까지 친척집을 전전하며 살았고, 학교 생활에 적응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열네 살에 그는 각본가이자 프로듀서인 어머니 뜻에 따라 아역 배우가 됐다. 그는 연예계에서 살아남으려 필사적으로 노력했다. 미국 중산층 가족의 이면을 그린 이안 감독의 ‘아이스 스톰’(1998)에서 내성적인 큰아들을, ‘플레전트빌’(1998, 게리 로스 감독)에선 흑백 TV 속 세상으로 들어가 어안이 벙벙해진 청년을 맞춤하게 연기했다. 어수룩하고 그늘진 10대의 초상, 그것은 그를 대표하는 캐릭터이자 그 자체이기도 했다. 그즈음 배우로서 궤도에 올랐지만 알코올 중독에 빠졌다. 후에 그는 “난 충동적이고 중독되기 쉬운 성향을 타고났다”고 스스로 인정했다. 연기 생활은 그에게 막강한 스타덤을 선사했지만, 그는 그것을 감당할 힘이 없었던 것처럼 보인다.

돌아와요, 피터 파커로
‘세기의 매치’는 피셔의 괴상한 행동을 세심하게 묘사한 것에 비해 정신 질환이 피셔의 체스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천재의 굴곡진 인생 너머엔 무엇이 있었는지 그려내진 못한다. 하지만 이러한 영화의 결정적 패착까지도 맥과이어의 인생과 묘하게 겹쳐진다. 섬세하고 정확한 표현력을 숙지한 베테랑 배우지만, 어디로 나아가야 할지 몰라 갈팡질팡하는 면모가 특히 그렇다.

현재 맥과이어가 방향을 찾은 건 연기가 아니라 제작이다. 2002년에 영화 ‘25시’(스파이크 리 감독)를 제작한 이후, 2010년부터 현재까지 거의 매년 한 편씩 꾸준히 영화를 제작해왔다. “퍼포먼스가 대단한 영화보단 미적으로 훌륭한 영화를 만들어야 한다. 어린 시절 나와 레오(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더 훌륭한 선배 배우와 감독과 함께 작업하기를 진심으로 원했다. 현재 스튜디오 시스템은 그렇지 않은 듯하다.” 맥과이어의 말이다. 그럼에도 팬들은 여전히 2017년 어벤져스 군단에 합류하게 될 스파이더맨을 맥과이어가 연기하길 바란다. 잘나지도, 밝지도, 부유하지도 않은 맥과이어의 피터 파커가 다시 관객을 위로해주고 통쾌함을 선사하길 기다린다. 대중의 사랑에 힘껏 보답해줄 것, 배우 토비 맥과이어에게 가장 열렬히 바라는 것이다.

김나현 기자 respir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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