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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동네 지형·길 그대로 살려 변화무쌍한 건축 만들 것”

서울 중계동 104번지 백사마을은 서울의 마지막 달동네다. 주변은 대부분 재개발이 됐지만 이 마을만 옛 모습 그대로 남아 있다. 골목길을 중심으로 다닥다닥 붙어 지어진 집들은 상당수가 비어 있는 상태다. 김춘식 기자


요즘 건축가들은 골목길의 가치에 주목하고 있다. 유현준 홍익대 건축대 교수는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에서 골목길의 추억을 이렇게 떠올렸다. “초등학교 때 할머니와 일하는 누나가 대문 앞 골목길에 앉아 앞집 할머니와 햇볕을 받으며 일하는 모습이 행복한 느낌으로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이 난다. 이웃과 담소를 나누는 골목길은 공동의 거실이었다.” 건축가 승효상 이로재(履露齋) 대표는 그의 저서 제목처럼 “오래된 것이 아름답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승 대표는 기존 지형과 길을 살린 새로운 방식의 실험을 하고 있다. 서울의 마지막 달동네 중계동 백사마을 프로젝트다.


지난 3일 오후 낙산을 바라보는 동숭동의 비탈진 골목길에 위치한 이로재에서 그를 만나 지속 가능한 건축, 행복한 도시에 대해 물어봤다.

1 비탈 지형과 골목길을 그대로 살린 도미니크 페로의 백사마을 설계안. 2 좁고 구불구불한 계단을 따라 건물을 배치한 건축가 정현아의 설계안.


-드라마 ‘응팔’(응답하라 1988)이 화제다. 태어날 때부터 아파트에서 살았던 젊은이들도 이 드라마의 골목길 공동체에 빠져들었다. 어떤 점이 이 같은 열광을 낳았다고 보는가. “부모님이 이북에서 부산으로 피란을 내려왔다. 그래서 난 부산에서 나고 자랐다. 어릴 때 살던 집은 길다란 마당을 두고 여덟 채가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마당 한가운데 변소와 우물이 있었다. 아침마다 공동화장실엔 순서를 기다리느라 북새통을 이뤘다. 점심 때 고요하다가 저녁 땐 가정마다 밥을 하느라 축제 같은 분위기였다. 마당은 여덟 가족이 함께 쓰는 공동체의 공간이었다. 아직도 연락을 하고 지내는 집이 있을 정도로 한 가족처럼 지냈다. 그 기억이 내 건축인자로 남아 있다. 비움의 기억이다. 스승 김수근 선생이 돌아가시고 내 스타일의 건축을 모색할 때였다. 금호동 달동네를 가다가 어릴 때 기억이 떠올랐다. 갑자기 그 공간이 너무 근사하게 느껴졌다. 이 느낌이 내 건축의 바탕으로 자리 잡았다. 이른바 ‘빈자의 미학’이다. 사람들은 집을 공간으로 기억하기 때문에 귀소본능이 있다. 그런데 요즘 아이들은 집을 몇 동, 몇 호라는 숫자로 기억한다. 똑같은 공간에서 자라왔기 때문에 기억할 특징이 없는 것이다. 지하주차장에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 각자의 집으로 들어간다. 요즘 아이들은 귀소본능을 잃었다. 이런 아이들이 위험에 빠지거나 막바지에 몰렸을 때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 한번 연구할 필요가 있다. 아파트도 새롭게 만들 수 있다. 옆집과, 한 층, 한 동이 공유할 공동공간을 만들면 된다.”

백사마을 프로젝트 승효상 이로재 대표.


-예전부터 달동네, 골목길의 가치를 강조해 왔다. 대표적인 작업이 백사마을 프로젝트인데 어떤 방향으로 개발하려 하는가. “기존 재개발 방식은 땅과 예전 집들을 깡그리 밀어 ‘터의 무늬’를 지운다. 그야말로 ‘터무니없는’ 건축이다. 유네스코는 역사마을 보존 원칙으로 네 가지를 권고하고 있다. 첫째, 필지를 보존한다. 둘째, 길들을 보존한다. 셋째, 지형을 건드리지 않는다. 넷째, 주민의 생활양식을 바꾸지 말라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지금까지 도시를 재개발하면서 이 원칙을 하나도 지키지 않았다. 우리나라는 토목, 건축, 인테리어, 조경, 간판 작업을 따로따로 한다. 전 과정을 일관되게 조정하는 사람이 없다. 서양에선 건축가가 이를 책임진다. 개발의 큰 그림, 풍경부터 그린다. 백사마을 프로젝트는 유네스코의 네 가지 원칙을 지켰다. 지형을 건들지 않았다. 백사마을은 외져서 재개발 대상에서도 제외됐다. 서울의 마지막 달동네다. 1960년대 청계천, 왕십리에서 쫓겨난 사람들이 6만 평의 땅에 1000여 세대를 이루고 살아왔다. 이들은 중기계를 쓸 여건이 안 됐기 때문에 건물들은 남루하지만 땅의 논리에 따라 지었다. 원래 서울시는 이 마을을 고층 아파트로 개발하려 했다. 그런데 오세훈 시장 말기에 예전 방식으로 개발하지 말자고 방향을 바꿨다. 임대부분 354세대만이라도 새 방식으로 개발하기로 했다. 지형, 필지, 길, 사는 방식을 보존하자는 원칙을 세웠다. 원주민들이 재개발이 끝나면 정든 마을을 떠나는 이유는 관리비 부담 때문이다. 관리비를 줄이려면 사는 면적을 최소화하면 된다. 모든 집이 부엌과 식당, 화장실이 있을 필요가 없다. 게다가 요즘엔 독거노인 등 1인가구 비중이 늘고 있다. 공동체의 중요성이 더 커졌다. 공유할 법한 시설을 만들면 공동체가 부활한다. 이 프로젝트엔 외국 건축가 3명이 참여했다. 파리 미테랑 도서관과 이화캠퍼스센터(ECC)를 설계한 프랑스의 유명 건축가 도미니크 페로도 참여했다. 사실 페로 정도 급이면 설계비를 많이 줘야 하지만 문화운동 차원에서 참여했다. 페로는 백사마을을 보고 “너무너무 신기하다”고 했다. 공동 참여한 영국 건축가 플로리안 베이겔도 “더 건드릴 필요가 없다. 지금 주민들의 공간보다 아름다운 건 만들 수 없다”고 말했다. 오히려 한국 건축가들은 많이 바꾸려고 하는데 이들은 거의 안 바꿨다. 길들을 그대로 두고 용적률을 올려야 하니까 1층을 2층, 3층으로 올린다. 건물은 바뀌지만 필지 크기는 그대로다. 기존 길들도 예전대로 살렸다. 굉장히 변화무쌍한 건축이 되는 것이다.”


-고층 아파트를 안 지어도 개발비를 감당할 수 있는가. “높이 안 올리면서도 개발 이익을 지킬 수 있는 방법이 있다. 기대 용적률을 채워주면 된다. 우리 법규가 잘못됐다. 주택의 종류가 아파트, 연립, 단독밖에 없다. 법에서 딱 세 가지로 규정해 놓았다. 우리 아파트는 짓기만 하면 분양이 되니 주거공간 측면에서 전혀 고민을 하지 않았다. 설계적으로 하나도 발전하지 못한 것이다. 중국만 해도 디벨로퍼가 건축가를 초청한다. 디벨로퍼 입장에선 좋은 건축가를 찾는 게 잘 팔 수 있는 방법이다. 나도 중국에 자주 가는데 중국 아파트가 우리 아파트보다 훨씬 좋다. 우리 아파트는 세계에서 제일 낙후된 건축이다. 예전엔 분양가 제한 때문이라지만 이제는 풀렸다. 그런데도 아파트 구조는 안 건드리고 인테리어 재료만 바꾼다. 나는 중국에선 아파트 설계를 맡았는데 한국에선 해 본 적이 없다. 우리나라 땅은 대개 경사가 있다. 이것이 오히려 이점이 있다. 자연스럽게 지형을 살리면서 테라스형 건축을 할 수 있다. 백사마을은 마을 규모론 처음 시도되는 건축방식이다. 현재 조금 더디게 진행되고 있다. 하지만 이 프로젝트가 성공하면 모두 따라올 것이다. 환경이 바뀌면 삶도 바뀐다. 한꺼번에 하지 말자, 잘못되면 고쳐가면서 하자는 게 우리의 방향이다. 서구에서도 대규모로 전체를 바꾸는 마스터 플랜보다 ‘도시 침술’(Urban acupuncture) 방식을 쓰는 사례가 늘고 있다. 전에는 전체를 변화시켰는데 지금은 필요한 부분만 바꾸는 방식이다. 침을 놓는 것처럼 특정 지역을 자극하면 주변이 바뀐다. 콜롬비아 메데인은 악명 높은 마약도시였다. 빈부 격차가 엄청나고 범죄가 판을 쳤다. 주거환경은 개판이었다. 그런데 건축가 출신 시장이 도시 침술 방법을 썼다. 달동네에 도서관 같은 시설을 곳곳에 심었다. 도로 등 환경도 개선했다. 그러자 주민들이 바뀌기 시작했다. 범죄율이 떨어지고 도시 분위기가 명랑해졌다. 서울은 산의 도시다. 전체를 한꺼번에 개발하는 방식은 안 맞는다. 이는 평평한 공터에 지어진 라스베이거스에서나 어울리는 방식이다. 이제 정부가 해야 할 일은 경제 살리기만이 아니다. 수십 년 전부터 경제성장에 집착해 왔지만 과거보다 행복해졌나. 이제 행복이란 무엇인가를 따져야 할 때다. 21세기가 시작된 2000년 우리나라는 판문점에서 레이저 불꽃쇼를 펼쳤다. 그런데 프랑스 정부가 발표한 21세기 기획 이벤트는 프랑스 국영TV에서 지식인들이 모여 365일 동안 토론을 벌이는 것이었다. 주제는 ‘행복이란 무엇인가’였다. 그 기획을 보면서 얼마나 창피하던지. 가난했던 옛날이 정겹고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건 돈이 전부가 아니기 때문이다. 더구나 저성장 시대다. 어떻게 사는 게 행복한 것인지를 고민해야 한다.?


-젊은이들이 골목길로 모여들고 있다. 연남동, 홍대, 상수동, 경리단길 등이 인기다. 그런데 길이 뜨자 자본이 모여들면서 대기업 프랜차이즈가 들어서고 결국 원래 영세상인들이 쫓겨나고 있다. 이를 막을 대안은 있는가. “땅값이 오르는 것은 아무 도움이 안 된다. 집값이 상승하면 원주민들이 떠나는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이 일어나 결국 황폐화된다. 박정희 정부 때 서촌의 수성동 계곡을 덮어 서민아파트를 지었다. 나는 예전엔 정부도 사람들도 그 가치를 몰랐으니 차라리 그건 이해가 된다. 하지만 땅의 가치를 사유화하려는 것은 천민자본주의적 행태다.”


-서울시 총괄건축가로 세운상가를 어떻게 재생할 것인가. “60년대 후반 김수근 선생이 밑그림을 제안했다. 선생의 구상은 파격적이었다. 주거와 상업이 복합된 단지를 주부가 유모차를 끌고 데크를 걸으며 쇼핑을 즐기는 혁신적인 그림을 그렸다. 당시 선진국 건축가들도 그런 ‘수퍼 스트럭처’를 그리지 못했다.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후진국에서 완성된 것이다. 그런데 ‘불도저 시장’이라 불렸던 당시 김현옥 서울시장이 설계도 완성되지 않았는데 공사를 강행했다. 서울의 길은 대부분 동서방향이다. 남북방향 길은 세종로뿐이다. 세운상가 데크길이 종로에서 남산을 이으면 중간에 종로·퇴계로·청계로 등이 연결된다. 세운상가 주변은 재개발이 된다. 그 빌딩들이 데크로 연결되면 사람들이 길을 중심으로 모여들 것이다. 서울시가 세운상가의 일부분을 사들여 서울시립대 건축학부를 이전한다면 주위 환경이 많이 바뀔 것이다. 건축으로 혁명을 할 수 있다. ‘장식은 범죄’라고 주장했던 건축가 아돌프 로스가 문화혁명을 했듯이 건축은 시대를 좇는 게 아니라 시대를 바꾼다.”


 


 


정철근 사회에디터 jcomm@joon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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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