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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튀면 어때, 남과 달라야” 한복 사랑에 빠진 청춘들

국내 최대 한복 입기 동호회인 '한복 입기 좋은날'의 회원들이 지난달 31일 서울 종로구 북촌 한옥마을의 한 카페에서 브런치를 즐기고 있다. 왼쪽부터 심경아(26)·이나영(32)·박병숙(43)·하나래(22)씨. 사진 오이석 기자


지난달 30일 오후 1시30분쯤 서울 종로 경복궁 일대. 나들이 나온 시민들 사이로 원색의 물감을 찍어놓은 것처럼 한복 입은 사람들이 유별나게 눈에 띈다. 그들의 걸음을 따라가본 곳은 서울 재동의 북촌 한옥마을 입구의 한 한복대여점.

한복 사진 이벤트 행사를 찾은 이지수(24)씨가 꽃을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옷걸이마다 100여 벌의 한복이 걸려 있고, 10여 명의 손님이 가게 안에 마련된 스튜디오에서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한복을 입어보고 있다. 가족사진을 찍기 위해 온 경기 광명시에 살고 있는 강차임(48)씨와 딸 안지애(28)·지은(25)씨 역시 오랜만의 한복 입기가 낯선 모습이다. 한쪽에선 올해 간호학과를 졸업하는 이지수(24)씨 등 3명이 병원 첫 출근을 앞두고 학창 시절의 마지막 추억 남기기에 한창이다. 한복을 입고 사진 찍는 내내 다양한 표정과 포즈를 취하며 스튜디오 안을 웃음으로 가득 채웠다. 좀 더 좋은 사진을 찍어보겠다고 미리 준비해 온 스프레이로 인공 눈까지 뿌리며 밝은 표정으로 사진 찍기에 몰입했다. 전통 한복은 ‘격식과 예절’이라는 틀에 박힌 공식을 뛰어넘는 요즘 청춘 세대들의 활기 넘치는 모습이 차곡차곡 카메라에 담겼다. 이날 사진을 촬영한 한복 사진 전문작가 류영성씨는 “최근 한복을 즐겨 입거나 자신이 소장하기 위해 한복 사진을 찍으려는 젊은 사람이 부쩍 늘고 있다”고 전했다.

1 지난해 5월 한복을 입고 시베리아 횡단열차 여행에 나섰던 하나래씨가 당시 외국 여행객들과 함께 찍은 사진. 2 한날 회원들이 지난해 10월 일본 교토 여행에서 전통복장을 한 일본인 연인과 함께한 사진. 이 사진은 일본의 한 잡지에 실리기도 했다.


‘남과 달라야’ 개성 찾는 젊은이들명절이나 결혼식과 같은 특별한 날에만 옷장에서 나와 빛을 보던 한복이 달라지고 있다. 회사원 김민지(24)씨는 “한복은 다른 옷과 달리 나를 특별하게 만들어준다”며 “사진을 찍으면 다른 옷을 입을 때보다 (내가) 더 아름답게 나온다”고 말했다. 헤마스튜디오 박광수 PD는 “한복은 일반적인 사진에서 담아내기 어려운 색을 카메라에 담을 수 있게 해 준다”며 “전문 모델이 아닌 일반인도 독특하고 좋은 사진을 찍을 수 있기 때문에 (한복이) 사랑받고 있다”고 말했다. ‘튀면 안 된다’는 전통적 사고에서 ‘남과 달라야 한다’는 신세대의 감성이 한복을 찾는 이유라는 것이다.


한복 차림으로 해외 여행에 나서는 사람들도 등장했다. 모 전자회사 엔지니어인 하나래(22)씨는 지난해 5월 홀로 10여 일 동안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여행할 때 한복 한 벌만을 입고 다녔다. 세탁이 쉬운 화학섬유의 소재인 데다 양면으로 입을 수 있게 만들어 여행 내내 한복 한 벌로 버틸 수 있었다는 것이다. 하씨는 “좁은 기차 안에서도 편하게 지낼 수 있었다”며 “한복의 색과 선에 반한 외국인들이 ‘함께 사진 찍자’며 먼저 다가와 여행이 외롭지 않았다”고 전했다. 몸에 맞춰 옷을 만드는 입체재단 방식의 서양 옷과 달리 한복은 평면재단(옷을 내려놓았을 때 굴곡이 전혀 없는 디자인)으로 만들기 때문에 활동성이 탁월하다는 게 하씨의 설명이다. 하씨는 “전통한복을 고수하는 사람 중에는 여행 때마다 작은 손다리미를 가지고 다니며 옷 관리까지 하는 사람도 있다”고 귀띔했다.


한복 입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인 동호회도 활성화되고 있다. 2010년 다음에서 시작해 2011년 네이버로 둥지를 옮긴 ‘한복 입기 좋은 날(한날)’의 경우 첫해 1000여 명이던 회원이 올 1월 2만1000명을 넘어섰다. 창립 5년 만에 회원 수가 20배를 넘는 거대 동호회로 성장했다. 카페 운영진인 심경아(26·회사원)씨는 “창립 초기만 해도 한복을 입고 거리에 나서면 특이하다며 쳐다보는 주변의 눈빛들이 부담스러울 정도였지만 이제는 어디서나 한복 입은 사람들을 볼 수 있어 한복 사랑을 마음껏 표현할 수 있게 됐다”고 했다. 회원 중에는 한복 이론을 독학해 옷을 직접 만들어 입는 사람까지 있을 정도다.


박선영 한복진흥센터 기획팀장은 “요즘 젊은이들은 한복 입기를 자신을 표현하는 놀이로 받아들이고 있다”며 “한복을 격식 있는 옷으로만 생각하는 기성세대의 선입견과는 달리 종류가 다른 옷 정도로 생각하는 게 아닌가 싶다”고 분석했다. “나를 보여주는 최고의 아름다움”“한복이 제 인생을 바꿨죠.”


장아침(31·여)씨는 한복 때문에 인생 경로가 바뀐 한복 예찬론자다. 과학고와 카이스트를 졸업한 수재였던 그는 2007년 코이카 봉사단원으로 아프리카로 향하며 한복을 챙겨 들었다. 우리 문화를 보여줄 수 있는 옷이라는 생각에 챙겨 갔던 것이다. 현지에서 모임이 있을 때마다 한복을 입고 갔더니 주위의 반응이 놀라웠다. “한복의 아름다움에 탄복한 외국인들이 내게 높은 관심을 보였죠. 그 후엔 파티가 열릴 때마다 나를 빠지지 않고 초대했어요” 장씨는 그때 전 세계 어떤 전통의상보다도 한복이 선과 색이 아름답다는 걸 알게 됐다. 건축공학도로 앞날이 보장됐던 장씨는 한국으로 돌아온 뒤에도 한복 입기에 빠져 지내다가 아예 생활한복을 판매하는 온라인쇼핑몰 ‘한복편의점’을 차렸다.


전통한복 ‘돌실라이’의 대표 브랜드 ‘꼬마크’ 전속 디자이너 오한솔(27)씨 역시 어릴 적 한복 사랑이 인생을 결정지은 경우다. 오씨는 “평소 국악 듣기를 좋아했는데 엉뚱하게도 국악인들이 입는 한복에 반하게 됐어요. 그게 지금의 직업을 선택하게 만들었죠”오씨는 대학도 의류학과로 진학한 뒤 졸업 후 돌실라이의 디자이너로 합류했다. 그가 주로 만드는 것은 젊은이를 위한 한복이다. 비싸고 고급스러운 한복을 값싸고 편한 일상복으로 만들어놓은, 이른바 ‘신한복’이다. 남성 양복에 단추 대신 고름을, 깃 대신 동정을 넣거나, 전통한복의 프레임을 그대로 살리고 세탁이 쉬운 재질의 화학섬유로 옷을 만드는 식으로 요즘 젊은이들의 취향을 살렸다.


하지만 청춘세대들의 한복 사랑 열풍에도 불구하고 기존 한복업계의 불황은 나아지지 않고 있다. 최근 문화체육관광부가 실시한 ‘한복문화진흥을 위한 기초조사 및 중장기 발전방안 연구’에 따르면 국내 한복제조업체(제조·소매)는 모두 5200여 곳. 이 가운데 300개 업체 대상 표본조사 결과, 연간 매출액이 2000만원 이하인 곳이 101곳에 달했다. 3개 업체 중 1곳이 인건비조차 건지기 어려운 상황이어서 대책 마련이 시급한 실정이라는 것이다. 김정수 한복진흥센터 연구원은 “한복은 특별한 날에 입는 옷이란 인식이 많고 맞춤옷이란 특성 때문에 유통망이 제한되고 영세한 1인 업체가 많은 것이 문제”라고 분석했다. 한복 동호회 한날의 회원인 박병숙(43·공무원)씨는 “생활 속에서 한복이 자리 잡기 위해선 관련법 제정과 국가 차원의 제도 개선과 교육 등과 같은 적극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오이석 기자 oh.ise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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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