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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니까 기억하죠, 40년 전 날씨·유니폼 색깔까지”

지난 1일 강남의 한 레스토랑에서 1970년대 축구 자료들을 놓고 ‘기억 배틀’을 하고 있는 장규홍(왼쪽) 대표와 장원재 박사. 강정현 기자.


“1973년 11월 3일인가 13일인가로 기억하는데요. 74 서독 월드컵 아시아-오세아니아지역 최종예선 호주와의 2차전이 서울운동장에서 열렸어요. 시드니에서 1차전을 0-0으로 비기고 서울에서 우리가 먼저 두 골을 넣었어요. 그런데 호주한테 어이없이 두 골을 먹어 2-2로 비겼죠.”


“11월 10일입니다. 그날은 날씨가 갑자기 추워진데다가 우박까지 내리는 어수선한 분위기였어요. 고재욱의 두 번째 골은 호주 수비수 다리를 두 번 퉁기고 굴절돼 들어갔죠.”


“제3국인 홍콩에서 최종전을 갖게 됐는데, 그게 11월 13일이네요. 우리 골키퍼 이세연이 군청색 상하의를 입고 나왔는데, 주심이 자신의 옷 색깔과 비슷하다며 갈아입으라고 했죠. 경기장 안에서 선수들이 빙 둘러서 인의 장막을 치고, 그 안에서 이세연이 옷을 갈아입었어요. 왠지 부당한 일을 당하는 것 같아 불길했는데 결국 1-0으로 졌죠. 골을 넣은 선수가 스코틀랜드에서 뛰고 있었는데…”


“짐 매케이 선숩니다. 30m 중거리슛을 때렸는데 그게 골키퍼 오른쪽 상단으로 빨려들어갔고, 그걸로 20년만의 월드컵 본선 진출이라는 우리 꿈도 날아갔습니다.”


지난 1일, 서울 강남의 한 레스토랑. 중년의 두 남자가 열띤 ‘토크 배틀’을 벌이고 있다. 40년도 더 지난 일들을 지난 밤에 본 듯 생생하게 묘사한다. 장규홍(51)채널인 대표와 장원재(49) 전 숭실대 교수다. 두 장씨는 스포츠계의 ‘걸어다니는 백과사전’이다. 이들은 축구 뿐만 아니라 야구·농구·복싱 등 각 종목의 기록과 데이터, 인물, 중요 경기 상황 등을 녹음기를 틀어 놓은 듯 재현할 수 있다. 화제는 야구로 넘어갔다.


“잠깐 반짝 하고 사라진 고교야구 팀이 꽤 있죠. 대광고, 배문고, 대구대건고, 상문고, 명지고, 오산고….”


“명지고에는 정삼흠이 다녔죠. 부산공고도 야구를 꽤 했어요. 김명성 감독, 황성록, OB 감독대행 한 이재우….”


“황성록은 75년 아시아야구선수권 때 이해창과 함께 센터필더를 봤죠.”


“그때 클린업 트리오가 3번 김봉연, 4번 김우열, 5번 윤동균이죠.”


“1번 이해창, 2번 배대웅, 6번 강병철, 7번 김재박, 8번 우용득, 9번 투수 이선희 또는 김호중.”


난형난제다. 장원재씨가 중계방송을 하듯 당시 상황을 속사포처럼 토해 내면, 장규홍씨는 사람 이름과 데이터를 가래떡 뽑아내듯 술술 풀어놓는다. 인터넷 생방송을 하면 대박 날 아이템이다.


 


스포츠 뿐만 아니라 문화·예술에도 관심요즘은 궁금한 게 있으면 인터넷 포털이 뭐든 알려준다(물론 틀린 내용이나 출처가 불분명한 것도 많다.) 그 전에는 친구들끼리 호프집에서 옛날 경기 스코어나 득점자 얘기 하다가 의견이 갈리면 “내기하자”며 신문사에 전화를 걸어 바쁜 야근자를 괴롭히는 사람들이 많았다. 두 사람은 그 정도 차원이 아니다. 그렇다고 특정 분야에 집착하는 ‘오타쿠’ 계열도 아니다.


장 대표는 미국 일리노이주립대에서 정치학 석사를 받은 뒤 iTV·SBS CNBC 등에서 사회부·정치부 기자로 일한 언론인 출신이다. 고려대 국문과를 나온 장원재씨는 영국에서 연극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숭실대 문예창작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그런데 어떻게 스포츠 쪽 만물박사가 됐을까. 두 사람의 대답은 똑같았다. “스포츠를 좋아하니까. 좋아하면 관심을 갖게 되고, 관심이 깊으면 뇌리에 오래 남게 되니까.”


 

2 '비운의 고교야구 스타'로 기억되는 박노준은 김건우와 함께 선린상고를 이끌었다. [중앙포토]


어릴 적 아버지 손 잡고 서울운동장으로 축구·야구 보러 가는 게 가장 큰 즐거움이었다는 장 박사. “결정적인 장면들은 TV에서 반복해서 틀어주잖아요. 그걸 오래 보면 언제든 자동 재생을 할 수 있게 돼요. 스포츠는 현실과 비현실을 오가는 거잖아요. 그래서 스포츠는 돈 버는 것과 상관 없이 인생을 풍성하게 해 주죠.” 그는 해박한 축구 지식 덕에 팔자에 없는 ‘대한축구협회 기술위원’으로 활동한 적도 있다.


장 대표의 부친은 빙상 선수 출신인 장명희 아시아빙상연맹 회장이다. “아버지 영향으로 스포츠에 관심을 갖게 됐죠. 아는 게 많으니 친구들이 이것저것 물어봐요. 헷갈리는 건 자료를 찾아 확인하고, 이러다 보니 기억이 더 선명해지더라고요.” 영상 분야에 관심이 많은 그는 영상 한국야구 인물사를 제작하고 있다. 가칭 ‘열전 고교야구 시대.’ 한 시대를 풍미한 고교야구 스타 출신을 한 명씩 인터뷰 해 기록을 남기고, 생생한 에피소드를 담아내는 작업이다. 선린상고 편을 끝냈고, 군산상고 편을 찍고 있다. 선린상고 편에서는 배성서·김우열·유남호·윤석환·박노준·김건우 등 21명을 인터뷰했다.


두 사람의 기록에 대한 집착은 스포츠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장 대표는 각 분야 셀레브리티의 이면을 파헤친 『공감 소통 공유: 싸이에서 박근혜까지』라는 책을 냈다. 그는 한국 정치사의 숨겨진 얘기들을 끄집어내는 작업을 준비하고 있다. 장 박사는 배우론(論)을 담은 『배우란 누구인가』를 최근 출간했다. 그는 인터넷 방송인 ‘배우고 나누는 배나TV’ 대표도 맡고 있다. 정치·사회·문화·경제 등 각 분야에서 지식과 교양을 전해주는 방송이다. 최근 누적 조회수 400만을 돌파했다.


 


“필름 보존하기보다 다시 찍던 시절”두 사람의 만남은 한·일 월드컵이 열린 200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iTV 기자였던 장 대표는 장 박사가 1966년 잉글랜드 월드컵 8강에 진출한 북한 경기를 담은 비디오 테이프를 소장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장 박사가 영국 유학 당시 수소문해 사들인 것이었다. 당시 장 기자는 장 박사의 집에까지 찾아가 잉글랜드 월드컵 북한의 전 경기 장면을 확인했다.


기록의 힘은 강하고, 데이터의 가치는 갈수록 커지고 있다. 하지만 고도성장 과정에서 우리는 이를 무시해왔다. 장 대표는 “한국 스포츠의 결정적인 장면을 담은 자료 중 사라진 게 많아요. 80년대까지만 해도 방송사에서 영상 필름을 보존하는 사람보다 그 필름을 다시 돌려 새로운 걸 찍는 사람을 더 인정해 줬거든요. 최동원의 경남고 시절 다이내믹한 투구 장면이 ‘대한 늬우스’에 잠깐 나오는데 그것도 1루측에서 찍은 것이죠”라며 안타까워했다.


장 박사가 말을 받았다. “임진왜란 때 기록을 우리는 충무공의 난중일기, 서애 류성용의 징비록 정도에서만 확인할 수 있어요. 그런데 일본에는 배 타고 조선으로 건너오는 왜병들이 남긴 메모까지 보존돼 있어요. 선상에서 포르투갈 신부가 미사를 집전하는 장면까지 나옵니다. 임진왜란때 조선의 도공이 어디 출신이고 어디로 가서 일했는지도 다 기록돼 있어요.”


기록과 데이터를 잘 보존하면 그 자체로 상품과 콘텐트가 된다는 게 두 사람의 공통된 의견이다. 그런 점에서 사라진 동대문운동장(옛 서울운동장)을 얘기할 때 둘의 표정은 어두웠다. 없앨 만한 이유가 있다면 없앨 수도 있다. 그러나 너무 대책 없이 밀어붙였다. 그 과정에서 창고에 잠자고 있던 많은 자료들이 쓰레기장으로 갔다. 상해 임시정부 요인들의 환영 행사가 열렸고, 펠레와 에우제비오가 묘기를 보여줬고, 고교야구의 열기가 터져나온 곳이다. 건물이 없어지면 건물이 갖고 있는 역사를 재구성하기 어렵다.장 박사는 동대문운동장에 얽힌 에피소드도 들려줬다. “야구장 3루측과 축구장 본부석 오른쪽이 1m 정도 간격으로 붙어 있어요. 축구 빅이벤트가 열리는 날이면 사람들이 야구장으로 들어와 축구장으로 넘어갑니다. 사다리 아저씨가 500원씩 받고 사다리를 놔 주거든요. 내려다보면 아찔하지만 다들 그리로 건너다녔지요.”


 


“원로들 옛날 기억 잘 못할 땐 안타까워”저녁 메뉴를 시켜 놓고 ‘스포츠 메모리 배틀’ 제2라운드를 시작했다.


 

1 축구 대표 차범근은 동대문운동장에서 언더팬티 줄이 끊어져 노팬티로 뛴 적도 있었다고 한다.


장 박사가 먼저 포문을 열었다. “어렸을 때 우상은 역시 이회택이었죠. 지금은 상상할 수도 없지만, 우리 편이 밀린다 싶으면 이회택은 수비 가담은 하지 않고 하프라인에서 짝다리 짚고 인상만 박박 쓰고 있었어요. 스타킹도 항상 발목까지 내려오게 신고. 반항아 스타일이었지만 축구만은 정말 잘했죠.”


장 대표는 “스포츠 원로들이 자신들의 플레이나 쌓은 기록에 대해 의외로 기억을 잘 못해서 안타까울 때가 많았어요. 김인식 감독님도 모교인 배문고를 오래 맡았는데 성적이 잘 나지 않아 고생을 많이 했거든요. 그 얘기를 자세히 해 드리면 그제야 ‘맞아 맞아, 그때 그랬어'하시죠”라고 말했다.


장 박사가 말을 받았다. “77년 대통령배 국제축구대회 때 미들스버러 원더러스라고 영국 팀이 왔어요. 한국이 5-1로 이겼는데, 차범근 선수가 유니폼 하의 안에 입는 흰색 언더팬티 고무줄이 끊어진 거예요. 한동안 허리춤을 잡고 뛰던 차범근이 안 되겠는지 아예 벗어버리고 노팬티로 경기를 마쳤죠. 나중에 차붐에게 물어봤는데 기억을 못한다고 하데요.”


70년 멕시코 월드컵 당시 펠레 얘기가 나오자 배틀은 절정으로 치달았다. 장 박사가 열을 올렸다. “지금도 월드컵 사상 최고의 장면으로 기억해요. 펠레와 우루과이 골키퍼 사이로 스루패스가 왔는데 펠레가 공을 안 건드리고 슬쩍 건너뛴 뒤 골키퍼 뒤로 돌아가 슈팅을 했죠. 골대를 살짝 벗어났는데, 그게 들어갔다면…”


장 대표가 점잖게 말했다. “근데 당시 우루과이 골키퍼가 누군지 기억하시는지?” 허를 찔린 장 박사가 멈칫 하는 사이 장 대표가 말했다. “마주르키위치. 러시아계 선수죠.” 점입가경이다. 주문한 해물 스파게티만 퉁퉁 불고 있었다.


 


정영재 스포츠선임기자jerr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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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