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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의 제갈량은 모략의 완성형 모델



요즘 중국이 돋보인다. 북한이 핵 실험을 강행하고 미사일까지 쏘겠다고 도발을 벌여도 중국은 결코 꿈쩍도 하지 않는다. 냉정한 전략가의 시선으로 북한을 살피기 때문이다. 북한은 전략이라는 판도에서 따질 때 중국에게는 의미가 큰 카드다. 그러니 누가 뭐라 한들 내 갈 길 갈 뿐이라는 입장이 강하다.


남중국해의 산호초 기지 건설부터 일대일로(一帶一路)라는 새로운 실크로드 구상의 전개, 미국에 맞서는 금융카드인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의 출범 등 중국의 전략적 행보는 세계를 예전과는 전혀 다른 국면으로 몰고 들어간다. 최근에는 중국 공군기가 제주도 인근 이어도 상공의 한국 방공식별구역을 침범하면서 중국의 궁극적인 노림수가 무엇인지 큰 관심을 모았다.


개혁개방, 아니 그 훨씬 전부터 중국의 대외 정책은 뚜렷한 특징을 지니면서 등장했다. 끊임없는 계산이다. 정밀한 타산(打算)을 거치고 또 거친 정책을 선보이면서 이제는 급기야 세계 최강 미국의 위세에 과감히 맞서는 국면을 열고 말았다.


이런 중국의 계산과 타산의 속성. 우리는 이 대목을 한 번 곰곰이 따져야 할 때다. 먼저 계산과 타산에 관한 용어 두 개를 살피자. 『손자병법(孫子兵法)』에 자주 등장하는 용어 중 ‘묘산(廟算)’이라는 말이 있다. 묘당(廟堂)에서 벌이는 셈(算)이라는 뜻이다. 묘당은 종묘(宗廟)라고 풀어도 좋으나 정확하게는 궁중에서 대사를 논의하는 조정(朝廷)이라고 보는 게 더 낫다.


 

촉한의 유비가 죽은 뒤 제갈량이 군사를 끌고 여덟 차례 북벌에 나서며 거쳤던 쓰촨 북쪽의 검문관.


구전 설화 채집해 드라마로 엮어따라서 묘산은 국가의 중요한 일을 다루는 자리에서 따지고 또 따지면서 셈을 하는 행위다. 달리 말하자면 전략의 구성이다. 그런 전략을 ‘셈’이라는 의미의 한자 산(算)으로 표현했다. 다른 하나의 단어는 ‘운주(運籌)’다. 한(漢)나라를 처음 세운 유방이 자신의 최고 책사인 장량(張良)의 능력을 일컬을 때 써서 유명해진 단어다.


이 운주라는 단어 역시 뜻은 ‘셈’이다. 셈을 할 때 사용했던 나뭇가지가 주(籌)다. 그것을 움직인다는 뜻이 바로 운주다. 역시 셈을 하고 또 하는 행위다. 그로써 전략을 마련한다는 뜻으로 자리를 잡았다. 이 두 단어만이 아니다. 중국은 고래로부터 셈을 거듭하고 또 거듭하는 일에 익숙했다. 일상처럼 닥쳤던 수많은 전쟁에서 살아남고, 적을 꺾어야 했기 때문이다.


셈과 타산, 전략 또는 모략의 그런 오랜 중국 전통을 감안하면 요즘 현란한 전략적 행보로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는 중국이 이상할 것은 하나 없다. 더구나 유물론의 철학적 토대를 지닌 공산주의 중국이라 추상적 가치보다는 현실적 가치에 훨씬 예민하고, 전략의 운용이 아주 매몰차다 싶을 때가 많다.


오늘은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 이야기를 꺼내본다. 우리는 흔히 명나라 때 나관중(羅貫中)이라는 사람이 지은 책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이는 나관중이 집대성한 작품이라고 보는 게 낫다. 유비(劉備)와 제갈량(諸葛亮)이 활동했던 삼국시대로부터 약 1100여 년 정도 시간이 흐른 뒤에 만들어졌다.


나관중은 그 오랜 기간 동안 민간에 구전으로 내려오던 삼국시대 전쟁의 각종 설화 등을 채집해 흥미진진한 한 편의 대하 드라마로 엮어냈다. 따라서 『삼국지연의』는 중국 민간에서 오래 이어져 온 인문적 사유와 관념 등을 나관중이 한 데 묶어 만들어낸 작품이라고 봐야 한다.


이 책은 새삼 설명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유명하다. 중국을 넘어 한국과 일본에도 아주 오랜 기간 동안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독자를 끌었던 명작이다. 『논어(論語)』 『도덕경(道德經)』 등 숱한 경전(經典)도 빼놓을 수 없지만 대중적인 기반으로 따지자면 『삼국지연의』는 중국 역대 최고의 고전이다.


조금 과장해서 말하자면, 이 책은 중국 문화 바탕의 ‘대표 선수’다. 민간의 오랜 입담이 가세했고, 중국인의 속내가 정말 진지하게 펼쳐지기 때문이다. 『논어』와 『도덕경』 등 경전들이 정색을 하고 멋있는 말만 골라 하는 ‘아나운서’라면, 『삼국지연의』는 실제 생활 속에서 얻은 아이디어와 관념 등을 체화해 표현해내는 ‘연예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이 책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중국 민간의 오랜 문화적 축적은 급기야 소설 속 최고의 영웅을 만들어낸다. 바로 제갈량이다. 소설 속의 그는 못하는 게 없고, 이루지 못하는 일 또한 없는 슈퍼맨이다. 바람과 비를 불러들이고, 싸움에 나서서는 반드시 승리한다.


게다가 『삼국지연의』가 민간의 오랜 구전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는 점을 다시 헤아려 보면 제갈량은 중국인의 문화적 심성이 만들어낸 ‘이상적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계산·타산·묘산(廟算)·운주(運籌)의 대명사다. 그러나 ‘지혜’라는 장식이 그 안에 담긴 음습함을 슬쩍 감추고 있다.


 

쓰촨 청두의 무후사에 있는 제갈량의 상


이 책의 내용은 여기서 풀어갈 필요가 없다. 모두 잘 아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책이 지닌 허구성만은 한 번 짚을 필요가 있다. 역사 무대에 실제 등장했던 제갈량과 소설 속의 제갈량은 아주 많은 차이를 드러내기 때문이다.


제갈량이 북방의 강자인 조조를 꺾는 장면은 적벽대전(赤壁大戰)에서 이뤄진다. 오나라 주유(周瑜)는 그의 ‘하수인’ 정도로 나온다. 그는 급기야 바람까지 불러들이는 신인(神人) 급의 인물로 그려진다. 그러나 실제 주유와 제갈량이 서로 만난 적이 없다는 점이 문제다.


어디 그뿐일까. 실제의 제갈량은 전쟁을 승리로 이끈 높은 수준의 책사(策士)나 지혜의 소유자라기보다 충직한 행정가에 가까웠다. 그러나 어쩐 일인지 제갈량은 전쟁에 나서면 반드시 승리하는 사람으로 그려졌다. 실제 역사 속의 제갈량은 실전에 나선 적이 많지 않다. 말년에 위(魏)나라를 공격하기 위해 나선 북벌은 죄다 실패했다. 전쟁에 나서면 거의 졌던 셈이다.


‘삼고초려(三顧草廬)’의 성어를 낳았던 장면에서 등장하는 천하삼분(天下三分)의 계책이라는 것도 제갈량의 아이디어가 아니라 오나라 장수였던 노숙(魯肅)이 최초 창안자였다는 얘기도 있다. 그럼에도 제갈량은 생존과 승리에 관한 중국인의 열망에 힘입어 삼국시대 최고의 이상적 인물로 그려진다.


그 이유에 관해서는 나중에 더 부연이 필요하다. 아무튼 유비와 조조, 관우(關羽)와 장비, 손권(孫權)과 주유 등 숱한 인물들이 소설에 등장하지만 그 정점은 아무래도 제갈량이다. 그리고 허구로 엮은 이 제갈량의 가장 큰 본색(本色)은 ‘지혜’로 포장한 모략의 정신세계다.


달리 말하면 소설 속 제갈량은 오랜 중국의 모략 전통이 빚어낸 큰 상징이다. 강가에 앉아 물고기도 물지 않는 낚시 바늘을 드리우면서 중국 모략세계의 창문을 열어젖힌 강태공(姜太公)으로부터 『손자병법』의 손자(孫子), 기만술의 대가인 귀곡자(鬼谷子) 등을 거치면서 면면히 이어져온 중국 모략세계의 전통은 이 소설 속의 제갈량에 와서 완성형 모델을 이룬다.


그 제갈량이 대표하는 『삼국지연의』를 영웅과 호걸이라는 장식을 벗겨내고 읽어야 우리는 중국인들이 만들어낸 ‘모략의 바다’를 제대로 볼 수 있다. 속이 음흉한 사람만이 이기는 잔혹한 다툼과 경쟁의 무대다. 선량해 보이나 어정쩡한 태도로 늘 사람을 기만하는 유비, 권세로써 사람을 누르는 조조가 등장하면서 수많은 흉계(凶計)가 늘 번쩍인다.


 


책사라기보다 행정가였던 제갈량중국에 “어려서는 『수호전(水滸傳)』을 읽지 않고, 나이 들어서는 『삼국지연의』를 읽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앞의 『수호전』은 역시 ‘영웅’과 ‘호걸’로 겉을 감쌌지만 실제는 도둑놈들 이야기다. 그러니 어려서부터 이 책에 빠지면 그 정신세계의 지향이 어디로 흐를 것인지는 뻔하다.


나이 들어 『삼국지연의』를 손에 잡지 말자는 이야기도 마찬가지다. 세월의 흐름에 따라 평정(平靜)을 찾아야 할 나이에 기만과 편술, 반계(反計)와 흉계(凶計)만이 가득한 이 책을 손에 잡는 것은 어울리지 않는다는 얘기다. 그러나 이는 중국 민간의 극히 작은 경각심일 뿐이다.


삼국시대 이후로부터 1100여 년 동안의 구전을 한 데 모아 엮은 이 책은 명나라 이후 중국의 민간에서 가장 인기를 모은 초장기 베스트셀러다. 지금도 사정은 그렇다. 중국의 정치와 일반 사회, 비즈니스 등 대부분 영역에서 『삼국지연의』는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의 ‘성공 교과서’로 여전히 떠받들어지고 있다.


제갈량의 인기는 좀체 식을 줄 모른다. 그의 주군(主君)인 유비의 인기 또한 마찬가지다. 의리와 충직함, 용맹의 대명사였던 관우(關羽)는 오늘날의 중국인 주머니를 채워주는 재물신(財物神)으로 승격해 중국 곳곳의 상점에서 신상(神像)으로 모셔지고 있다.


『삼국지연의』의 정신세계가 무르익을 대로 익은 중국의 문화 바탕을 비판적으로 보는 사람이 없지 않다. 문화평론으로 유명한 류짜이푸(劉再復)는 “『수호전』이 지옥의 문이라면, 『삼국지연의』는 훨씬 더 심각하며 험악한 지옥의 문”이라고 지적한다. 아울러 “가장 어두운 사람의 마음, 중국인의 마음이 전면적으로 변질(變質)했던 신호”라고도 했다.


나는 그의 의견 일부에만 찬성한다. 『삼국지연의』가 생겨나 중국인의 마음이 변질한 게 아니라, 『삼국지연의』가 생겨남으로써 오랜 중국의 모략적 정신세계가 완성에 가까워졌다고 말하고 싶다. 오랜 모략의 전통에 그 완성작인 『삼국지연의』까지 둔 중국이다. 어둡지만 매우 깊은, 그런 모략의 정신으로 중무장한 중국인은 결코 가벼운 상대가 아니다.


 


유광종


뉴스웍스 콘텐츠연구소장ykj33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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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