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고향, 내 착한 영혼이 숨어있는 곳


기다리지 않아도 명절은 참 제때 돌아오는 것 같다. 계절이 바뀌듯 건너뛰는 법이 없다. 일상이 아무리 피곤해도 사람들은 어김없이 길을 나선다. 고향집 부모님 곁으로. 잔뜩 찡그렸던 얼굴도 부모님 앞에선 활짝 펴진다. 평소 개미처럼 일하며 침묵하며 살았어도 고향 집에선 한숨 대신 재잘재잘 웃음꽃을 피운다. 모두가 가족을 향한 따뜻한 마음들 때문이다.


새해를 맞는 풍습은 세속이나 절집이나 크게 다르지 않다. 사찰에서도 스님들이 모여 만두도 빚고 윷놀이도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보통 집에서 차례를 지내고 세배를 올리듯 절에서도 ‘통알(通謁)’이라고 해서 부처님께 세배를 올리고 떡국을 먹는다. 윷놀이와 비슷한 ‘성불도(成佛圖) 놀이’도 하는데, 지옥-아귀-축생-수라-인간-천상으로 구분되는 육도윤회(六道輪廻)를 벗어나 부처님이 되는 과정을 게임으로 만든 것이다.


만두도 빚고 제사 지낼 준비를 마치고 차 한 잔 하는데, 명절이라고 오랜만에 고등학교 동창에게서 연락이 왔다. 친구 목소리가 가라앉아 있었다. 이유를 물었더니, 명절 때만 되면 듣게 되는 자신을 괴롭히는 질문들 때문이란다. 특히 이 질문, “너 결혼은 아예 포기한 거니?”


설 명절에 찾은 고향은 대개 행복으로 가득하다. 아니 그래야만 한다. 그런데 그 따뜻한 만남에 더러 행복을 파괴하는 함정이 숨어있다. 누가 먼저인지는 몰라도 갑자기 여기저기서 자랑이 시작된다. “우리 손주가 이번에 어디 어디 대학에 수시 합격했대.”“우리 아들은 취직해서 엄마 용돈 준다고 가져왔지 뭐야.” 민망함을 넘어 거짓말까지 보태가며 자식 자랑, 며느리 자랑, 손주 자랑이 줄줄이 이어진다.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이야기를 들은 이들은 곧바로 가족들을 향해 비교와 질타가 시작된다. ‘누구네 집 아들은 어쨌다더라, 너는 뭐 하는 거냐’ 등 세치 혀가 칼이 된다. 그토록 사랑스럽던 가족은 어디 가고, 금세 가족에게 상처만 남기는 무법자만 남아있다. 분명한 건 가족의 염려를 담은 비교가 실은 걱정이 아닌 아픔만 남긴다는 점이다. 가까운 사이일수록 말을 조심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부모에게 있어 자식은 희망이다. 성공이나 부·명예와 상관없이, 가족은 존재만으로도 삶의 기쁨이다. 아무리 힘들고 고단한 상황에 처해도 자식을 포기하지 않는 존재가 부모다. 목숨보다 소중한 자식이기에 그렇다. 그런데 속상한 나머지 감정 섞인 말 한마디 때문에 아물지 않는 상처를 주게 된다. 주위의 청년들 중에는 엄마 친구 아들이나 딸과 비교 당하는 것이 죽기보다 싫다고 말하는 이들이 많다. 그들이 어느 회사에 다니는지, 연봉을 얼마 받는지가 도대체 자신과 무슨 상관이냐며 말이다. 더구나 그 비교 대상이 남이 아니고 내 형제일 때는 더욱 힘든 일이다. 명절에 고향 집에서 만난 형제·자매 사이의 비교가 더 위험하게 느껴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만큼 심각한 상처를 남기게 되니까.


서산대사는 이런 말을 남겼다. “이치는 단번에 깨달을 수 있어도 버릇은 한꺼번에 고칠 수 없다.” 가족을 비교하는 것이 얼마나 나쁜지 알면서도 ‘아차!’하는 사이에 시한폭탄처럼 서로에게 좌절을 안긴다.


고향은, 그리고 가족은 내 착한 영혼이 숨어있는 곳이다. 기쁜 명절이니만큼 서로에 대한 따뜻한 배려로 현명하게 보내보자.


 


원영 스님metta4u@hotmail.com

구독신청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중앙일보 핫 클릭

PHOTO & VIDEO

shpping&life

뉴스레터 보기

김민석의 Mr. 밀리터리 군사안보연구소

군사안보연구소는 중앙일보의 군사안보분야 전문 연구기관입니다.
군사안보연구소는 2016년 10월 1일 중앙일보 홈페이지 조인스(https://news.joins.com)에 문을 연 ‘김민석의 Mr. 밀리터리’(https://news.joins.com/mm)를 운영하며 디지털 환경에 특화된 군사ㆍ안보ㆍ무기에 관한 콘텐트를 만들고 있습니다.

연구소 사람들
김민석 소장 : kimseok@joongang.co.kr (02-751-5511)
국방연구원 전력발전연구부ㆍ군비통제센터를 거쳐 1994년 중앙일보에 입사한 국내 첫 군사전문기자다. 국방부를 출입한 뒤 최장수 국방부 대변인(2010~2016년)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군사안보전문기자 겸 논설위원으로 한반도 군사와 안보문제를 깊게 파헤치는 글을 쓰고 있다.

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