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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틀스, 음악시장의 ‘중원’ 미국 뚫고 세계적 빅히트

지금으로부터 52년전인 1964년 2월 7일 미국 공연을 위해 뉴욕 케네디 공항에 도착한 뒤 열렬한 환호를 받고 있는 비틀스. 왼쪽부터 존 레논, 폴메카트니, 링고 스타, 조지 해리슨. 미국 공연이 성공을 거두면서 이른바 ‘영국의 침입’이 시작됐다.

명절 연휴 때마다 경부고속도로 상행선 충남 천안 나들목 인근 도로가 귀경길에 오른 차량들이 한꺼번에 몰리면서 거북이 걸음을 하고 있다. [중앙포토]


국토교통부는 이번 설 연휴 기간에 3645만 명이 이동한다고 전망했다. 아마 귀성길에서 이 글을 읽는 독자도 있을 것이다. 귀성길 대부분은 수도권과 지방 사이, 아니면 지방 거점도시와 근처 농촌 간의 이동이다. 지방과 다른 지방 사이를 오가는 사람들은 적다. 영호남 간에도 마찬가지다.


경상도와 전라도를 연결하는 철로인 경전선은 지금으로부터 꼭 48년 전인 1968년 2월 7일에 개통됐다. 경사와 곡선 구간 때문에 느리게 운행되는 경전선은 전라도와 경상도 간의 교류를 기대만큼 활성화하지 못했다. 좀 더 빠른 영호남 간 연결도로는 73년과 84년에 각각 개통한 남해고속도로와 88올림픽고속도로다. 남해고속도로가 90년대 4차선으로 확장되었고, 88올림픽고속도로는 지난 12월 4차선으로 확장되면서 광주대구고속도로로 명칭을 바꾸었다.


사람이 다니는 곳에 길이 생기기도 하지만, 길이 없던 곳에 길이 생기면 사람이 다니게 되기도 한다. 공급은 수요에 따라 만들어지는 동시에 수요를 창출하기도 한다. 그런 맥락에서 지역 간 교류, 화합, 동질화, 균형발전 등을 위해선 지방 사이의 연결이 필요하다. 이를 주변 간 연결, 즉 L2L(local to local)이라 부를 수 있다.


L2L 확대에는 비용이 들게 마련이다. 예컨대 5개 지역 간 모두에 직접 연결시키려면 10개(=5C2)의 연결로가 필요하다. 이에 비해 한 지역을 중앙으로 정하면 그 곳에서 나머지 4곳으로의 4개 연결로로 5개 지역이 모두 연결된다. 지역의 수가 100개일 때 직접 연결하려면 4950개(=100C2) 연결로가 있어야 하지만, 중앙 지역을 설정하면 99개의 연결로만 필요하다. 이처럼 연결로의 전체 건설비용은 중앙을 두는 방식이 훨씬 저렴하다. 그래서 주변과 주변을 연결할 때 직접 하지 못하고 중앙을 경유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사람과 물건의 교류뿐 아니라 문화 전파에서도 마찬가지다.


 

1965년 6월 파리 실내경기장에서 열린 비틀스 공연. 미국 공연이 성공을 거두자 파리 공연에도 많은 관중이 몰려왔다.


1964년 미국 공연이 흥행의 기폭제20세기 최고 인기 록 그룹인 비틀스 흥행의 기폭점은 세계시장의 중앙인 미국에 진출한 것이었다. 지금으로부터 꼭 52년 전인 1964년 2월 7일 비틀스가 탑승한 팬암 항공기는 뉴욕 케네디 공항에 착륙했다. 이른바 ‘영국의 침입’이 시작됐다. 영국이 군사적으로 미국을 공격했다는 의미가 아니라, 비틀스를 위시한 영국 록이 미국, 나아가 세계의 대중음악 시장을 장악하기 시작했다는 의미다. 이어 2월 9일 비틀스는 ‘에드 설리번 쇼’에 출연했다. 시청률 조사업체 닐슨에서 추산한 시청률만 해도 40%를 넘었고 시청자 수는 7370만 명에 달했다. 미국인 5명 중 2명이 이를 봤다는 이야기다.


1963년 이미 비틀스는 영국에서 최고 인기를 누리고 있었다. 다만 해외에서의 인기는 불확실했다. 비틀스는 미국에 가기 직전에 영국의 이웃나라 프랑스에서 공연을 가졌다. 1월 14일 비틀스가 프랑스 르브르제 공항에 도착했을 때 환영 인파는 수십 명에 불과했다. 1월 16일 파리 올림피아극장에서 미국의 트리니 로페스와 프랑스의 실비 바르탕이 주연처럼 공연했고 비틀스는 거의 조연에 가까웠다. 비틀스는 뜨겁지 않은 반응에 실망했다.


1월 17일 저녁 비틀스의 신곡 ‘I want to hold your hand’가 미국 캐시박스 차트에 1위로 올랐다는 소식이 파리로 전해졌다. 2월 1일에는 빌보드 차트에서도 1위를 기록했다. 이런 소식이 알려지자 파리 관객의 반응이 갑자기 뜨거워졌다. 2월 4일까지 진행된 올림피아극장 공연뿐 아니라 숙소와 길거리에서 파리 시민들은 열렬한 환호를 보냈다. 이듬해 파리 공연은 훨씬 넓은 장소인 실내경기장에서 열렸고 많은 관중이 열광했다.


영국에서의 비틀스 인기가 이웃나라 프랑스로 바로 전파되지 못하다가 미국에서의 인기가 확인된 후에야 비로소 프랑스에서도 인기가 치솟았던 것이다. 비틀스의 성공적인 미국 데뷔는 프랑스뿐 아니라 전 세계에서 비틀스 위상을 높였다. 덴마크, 네덜란드, 홍콩, 호주, 뉴질랜드, 이탈리아, 스페인, 독일, 일본 등지에서의 흥행도 미국에서의 성공에 따른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 세계시장의 중심 미국에서의 실적이 하나의 지표로 기능했던 것이다.


 


소비자 반응 더 중요한 현대 마케팅문학이나 예술처럼 논리보다 감성을 중시하는 분야에서는 남의 반향이 중요하다. 온라인에서 조회 횟수나 ‘좋아요’가 많은 기사는 그렇지 않은 기사보다 더 읽힌다. 영화도 남들이 많이 본 것을 보고, 음식점을 고를 때에도 손님이 많은 곳을 선택하는 경향이 있다. 모두 리스크를 줄이려는 선택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런 소비자 성향을 이용한 마케팅도 있다. ‘좋아요’가 많은 페이스북 페이지를 구입하여 마케팅에 활용하기도 한다. 또 도서 판매 순위를 매기는 서점에서 자신이 출간한 도서를 거꾸로 대량 구입하는 출판사도 있다. 광고비보다 더 적은 비용으로 하는 마케팅이다. 대중들이 좋은 책을 모르고 있으니 관심을 끌기 위한 마중물이라고 합리화하겠지만, 떳떳한 마케팅이 아님은 물론이다.


문학·예술·흥미·감동에 대한 평가는 주관적일 수밖에 없는데, 각종 문화 평론은 주관적 판단을 객관화시키는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그런 착각 때문에 각종 평가나 실적 자체가 이후의 실적에도 영향을 주는 것이다.


비틀스가 미국 시장에 진출했기 때문에 무조건 성공한 것은 아니다. 비틀스보다 먼저 미국에 진출한 클리프 리처드는 영국에서 만큼의 인기를 미국에서 누리지 못했다. 비틀스의 미국 진출은 타이밍이 좋았다. 같은 음악이라도 때와 장소에 따라 반응은 다르다. 너무 앞서가는 것은 대중성이 떨어지고, 조금 앞서는 것이 히트 치기도 한다. 하여튼 사람이든 물건이든 때가 맞아야 출세할 수 있고 또 히트할 수 있다.


50년대 중반부터 60년대 초반까지 영국은 2차 세계대전의 참화에서 벗어나면서 국가 경제가 나아졌다. 여성들은 세탁기와 가스레인지의 보급으로 손빨래와 땔감일이라는 가사노동에서 벗어날 수 있어 여가시간이 늘었다. 또 57년 병역의무 폐지로 젊은 남성들도 여가시간이 많아졌다. 이 때 비틀스를 포함한 영국 뮤지션들에게 극성 팬들이 생겼다. 비틀스의 극성 팬인 비틀매니아를 기존 억압에 저항한 세대라고 말하기도 한다.


 


적절한 타이밍과 전략 맞아야 성공이 시기 미국의 대중음악계 또한 큰 변화를 겪었다. 50년대 중반 미국 시장을 주름잡던 엘비스 프레슬리는 58년 군 복무를 위해 연예계를 떠났다. 60년 제대하여 연예계에 복귀했으나 반항아 이미지가 사라진 모습이라 젊은 층에게 그의 인기는 시들해졌다. 프레슬리 외에도 미국 젊은이들이 열광한 로큰롤 뮤지션은 몇몇 있었다. 버디 홀리, 리치 밸런스, 빅 바퍼가 대표적이었는데, 이들 모두 59년 비행기 추락사고로 같은 날 사망했다. 돈 맥클린이 ‘아메리칸 파이’ 가사에서 이 사고를 “음악이 죽은 날”로 표현했듯이, 당시 미국의 록큰롤 가수는 기근이었다.


무엇보다도 63년 11월 존 F 케네디 대통령이 암살되면서 미국 사회는 충격에 빠졌다. 비틀스는 이런 회색 분위기에 해맑은 혜성처럼 등장했다. 물론 비틀스 자신도 성공 후 염세주의를 피할 수는 없었다.


타이밍만으로 비틀스 성공을 설명할 수는 없다. 같은 장소, 같은 시간에 수많은 다른 뮤지션이 있었기 때문이다. 비틀스의 음악이 월등해서 그랬다고 설명하는 것 또한 불충분하다. 전략적 기획이 큰 차이를 가져다 주었다. 이런 기획은 매니저인 브라이언 엡스타인이 주도했다. 흔히 4인조 그룹 비틀스의 제5멤버로 불리는 엡스타인은 그 이전의 미국 진출 실패 사례를 반복하지 않았다.


엡스타인은 비틀스 음반 일부를 비제이 레코드와 스완 레코드를 통해 미국에 발매하면서도 메이저 음반사인 캐피틀 레코드와 계약을 체결하려고 노력했다. 브라이언은 캐피틀에게 관행적인 홍보비 규모 5000달러의 10배에 이르는 돈을 쓰라고 요구하여 관철시켰다. 캐피틀은 비틀스의 미국 방문을 앞두고 포스터와 자동차 스티커를 미국 곳곳에 뿌렸다. 캐피틀 회사 전화의 착신 멘트가 “캐피틀 레코드입니다. 비틀스가 오고 있습니다”였다. 엡스타인이 계약한 미국의 비틀스 상품 판촉회사는 케네디 공항에 나온 모든 팬에게 1달러와 티셔츠를 제공한다고 약속했다. 이후 비틀스는 케네디 공항에서 열렬한 환호를 받았고 대규모 공연도 성황리에 해냈다.


넓은 세계에 이르려면 사통팔달의 중원에 진출해야 한다. “모든 길이 로마로 통할” 때에는 로마를 경유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예컨대 한국과 일본 간의 연결보다 한국과 미국 간, 그리고 미국과 일본 간의 연결이 더 잘 되어 있다면 미국을 통한 일본 접근이 좋은 전략이다. 그렇다고 중원 진출을 무조건 고집할 필요는 없다. 사안에 따라 연결로를 살펴보고 진출 방향을 정하면 된다. 어디로 향하든 타이밍과 사전 준비는 필요하다.


 


김재한한림대 정치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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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