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해양 실크로드에 국운 상승 기회 있다


한국전쟁이 한창 중이던 1950년대 아시아에는 일본 외에 잘 나가던 국가들로 자원이 풍부한 필리핀, 버마(현 미얀마) 등이 있었다. 하지만 이들 나라들은 사회주의나 독재 등 폐쇄적인 국가 운영으로 경제 성장이 정체되다시피해 아시아 최극빈국으로 전락했다. 반면 대만·한국·싱가포르 등은 개방 정책을 통하여 대외 무역을 적극적으로 하면서 아시아의 경제 강국으로 떠올랐다. 이들은 자원이 부족해 이를 수입하고 가공 수출하여 경제 입국을 한 전형적인 해상 실크로드형 국가들이다.


서양이 동양을 식민 침탈하기 이전부터 중앙아시아 실크로드와 남중국해-인도양을 잇는 해상 실크로드는 교역로 역할을 해왔다. 중국인·인도인·아랍인들은 멀리 로마제국이나 유럽의 제국들과 간접적인 교역을 해왔다. 중앙아시아 육상 실크로드를 이용하든가, 아니면 계절풍을 이용하여 남중국해, 동남아, 아라비아 반도까지 해상 교역이 이루어졌다. 중동 육상의 루트를 넘어 지중해로 중국의 비단·도자기나 인도·동남아의 향료 등이 교역되었다. 해양 실크로드상의 몇몇 지점, 즉 오늘날의 믈라카, 인도 서남단의 캘리컷, 방글라데시 치타공, 중국의 광저우(廣州)와 취안저우(泉州) 등에 동서 교역의 거점이자 문화융합의 중심이 등장했다. 특히 이탈리아인 마르코 폴로가 13세기경 이러한 루트를 넘어와 동방 지역들을 보고 돌아가 ?동방견문록(1271-1295)?을 저술했는데, 이를 통해 서양인들은 인도·중국 등 동양 소식을 접하고 이를 동경하기 시작했다.


이런 가운데 중국 명나라 때 정화(鄭和)는 7차례(1405~1433)에 걸쳐 동남아·인도·아프리카에 이르는 해양 실크로드를 원정했다. 그러나 이후 중국은 해금(海禁·해상교역에 대한 통제)정책으로 돌아선 반면 서양은 오히려 적극적으로 해상 진출에 나섰다. 1497년 포르투갈 리스본항을 출발한 바스코 다 가마가 희망봉을 돌아 이듬해 인도 루트를 개척하면서 상황이 반전됐다. 당연히 해상교역권은 해상 루트를 15세기 말부터 개척하고 신대륙을 발견하는 데 앞장선 포르투갈?스페인에게 돌아갔다. 이들은 동양에서 향료·비단·도자기를 유럽으로 가져가 국부를 챙겼다. 당시 영국은 해군력이 빈약하였으나 뒤늦게 해양력을 갖추어 이에 뛰어들었다. 1588년 스페인 무적함대와 싸워 이긴 영국과 네덜란드가 그 지위를 서서히 넘겨받게 됐다.


이후 세계 최고의 향료 섬 인도네시아 믈라카 제도를 둘러싼 전쟁(1641)에서 이긴 네덜란드가 인도네시아를, 전쟁에 패한 영국은 인도를 지배하기로 협약을 맺으면서 해상실크로드의 주인공은 완전히 바뀌게 되었다.


18세기 말 산업혁명이 일어나면서 영국은 산업혁명을 통해 인도에서 면화를 가져다가 석탄을 이용해 가공하여 전 세계에 되팔았다. 인도의 아편을 중국에 팔고 이를 은으로 받아 은이 비싼 유럽에서 되팔아 또 이익을 남겼다. 이익이 많은 해상 사업에 투자하는 각종 자본가들이 런던에 모이고 자연히 런던은 돈이 모이는 금융 중심지가 되어 영국은 ‘해가 지지 않는 나라’로 부상했다.


1890년 경 당시 대서양 국가던 미국은 해양전략가 알프레드 마한이 제시한 전략에 따라 하와이·괌·필리핀 등의 지역을 접수하여 태평양 국가가 되었다.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에서 승리하면서 양안을 아우르는 세계의 패권국으로서 수에즈·파나마·말라카 등 전 세계의 중요한 해상 길목을 지키면서 세계 경제를 통제하는 국가가 됐다.


이와 같이 역사적으로 보면 전 세계의 부(富)는 해양 루트를 지배하고 해상 길목을 지배하는 자들의 몫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길목에 위치한 런던·뉴욕·싱가포르·홍콩 등의 도시들은 금융가들이 모이는 해상 거점의 역할을 했다. 최근 세계 2위 경제대국으로 부상한 중국도 세계 경영 차원에서 ‘일대일로(一帶一路)’ 전략을 추진 중이다. 특히 서태평양의 미국 포위망을 뚫고 인도양·지중해 등을 통해 유럽·아프리카로 나가는 해상 실크로드를 개척하자는 것이 ‘일로(一路)’ 전략이다.


또한 북극해의 해빙(解氷)을 이용하여 러시아는 북극해를 새로운 해상 실크로드로 개발하려 하고 있다. 중국과 러시아가 국운을 걸고 개설하려는 해상 실크로드는 우리에게도 기회가 될 수 있다. 과거 ‘제국의 영광’을 재현하려는 적극적인 해양진출 전략이라 할 수 있는 해양 실크로드 정책을 잘만 활용한다면 한국의 국운이 다시 상승할 수 있는 기회를 맞게될 수 있다. 차제에 중국과 강대국들이 구축하려는 해상 실크로드를 적극적으로 연구하고 과거 해상 실크로드의 교훈을 잘 되새겨야 할 것이다.

구독신청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태그

중앙일보 핫 클릭

PHOTO & VIDEO

shpping&life

뉴스레터 보기

김민석의 Mr. 밀리터리 군사안보연구소

군사안보연구소는 중앙일보의 군사안보분야 전문 연구기관입니다.
군사안보연구소는 2016년 10월 1일 중앙일보 홈페이지 조인스(https://news.joins.com)에 문을 연 ‘김민석의 Mr. 밀리터리’(https://news.joins.com/mm)를 운영하며 디지털 환경에 특화된 군사ㆍ안보ㆍ무기에 관한 콘텐트를 만들고 있습니다.

연구소 사람들
김민석 소장 : kimseok@joongang.co.kr (02-751-5511)
국방연구원 전력발전연구부ㆍ군비통제센터를 거쳐 1994년 중앙일보에 입사한 국내 첫 군사전문기자다. 국방부를 출입한 뒤 최장수 국방부 대변인(2010~2016년)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군사안보전문기자 겸 논설위원으로 한반도 군사와 안보문제를 깊게 파헤치는 글을 쓰고 있다.

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