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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투에 담긴 한·중·일 문화…두루미는 새 중에 으뜸, 닭은 날지 못해

평소에는 서랍장이나 장롱 깊숙이 숨어 지낸다. 설·추석 명절 때마다 나타나 온 가족을 즐겁게 해준다. 가끔 다툼과 시비를 일으켜 억울하게 질타를 받기도 한다. 주인공은 화투(고스톱)다.

그런데 그냥 치고 즐기기에는 화투 속에 숨은 이야기들이 의외로 많다. 예컨대 이런 의문이 들 수 있다. 화투에 다양한 새 중 왜 2, 4, 8월의 새만 ‘고도리(일본말로 새 다섯 마리)’로 인정하는 걸까. 여기에는 한·중·일 공통 문화와 일본 고유 문화, 여기에 서양 카드까지 접목된 화투의 비밀이 숨어 있다.

화투에 그려진 새·나무·사람·동물은 한·중·일 사계절 변화에 맞춰 생겨난 전통문화와 풍습이 동식물에 반영된 하나의 상징 기호다.

그래서 이 상징 기호를 알아야 단순한 놀이가 아닌 화투가 가진 문화·생태학적 가치를 이해할 수 있다. 그래서 화투 이야기를 알고 치면 더 재미있다.

화투는 광(光)·열(閱)·단(短)·피(皮) 등 네 장이 한 달로 구성된다. 최고 통치자(광)부터 일반 백성(피)까지를 의미한다. 음력 1월부터 12월까지 총 48장이다.

일본에서는 18세기 말 화투의 최종본이 만들어졌다. 이후 19세기 초부터 한국으로 넘어오는 과정에 여러 차례 바뀌었다. 그래서 한·일 간에 사용하는 화투 속 동식물도 일부 다르게 해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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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일본의 화투는 닮은 듯 다르다. 예컨대 새 그림이 들어간 패(왼쪽이 한국 화투, 오른쪽이 일본 화투)를 비교해보면 디자인과 색깔, 새의 종에 대한 해석 등에서 차이점이 발견된다. 식물에서도 흑싸리(가운데 아래)의 경우 한국은 싸리나무로 해석하지만 일본은 등나무로 해석하고 위아래 방향도 다르다. [사진 정대수]

◆화투의 새=새가 나오는 달은 1, 2, 4, 8, 11, 12월이다. 1월은 두루미(학), 2월은 꾀꼬리(한국)·동박새(일본), 4월은 비둘기(한국)·두견새(일본), 8월은 기러기, 11월은 봉황(일본·왕권 상징)·닭(한국), 12월은 제비 등으로 같거나 다르다.(사진)

겨울 철새 두루미는 한·중·일 모두에 친숙한 새다. ‘뚜루~ 뚜루~’ 하는 울음소리에 명사형 어미 ‘~이’가 붙어 두루미라 부른다. 두루미는 중국·일본에서는 학(鶴)이라고 부른다.

이 두루미를 고도리에 포함하지 않는 이유는 간단하다. 두루미는 한·중·일 모든 새 중에 으뜸으로 여겨 ‘예우’ 차원에서 포함하지 않는 것이다. 봉황(닭)은 상상의 새이거나 날지 못해 제외된다. 제비는 ‘비고도리’라 해서 넣을 때도, 뺄 때도 있다.

겨울 철새인 기러기가 음력 8월에 등장하는 것은 언뜻 보면 이상하다. 그러나 이 시기 기러기 선발대가 시베리아에서 한국을 거쳐 일본으로 가는 모습을 표현한 것이라는 해석이 많다.

◆화투의 식물=화투에서 사람들이 가장 아끼는 패가 ‘똥’이다. 광과 쌍피 한 장, 피 두 장으로 구성된 똥은 버릴 것이 없기 때문이다. 똥이라 불리게 된 것은 오동나무의 ‘동’을 강하게 발음하면서 ‘똥’이 됐다.

한국 화투에는 8월을 제외한 나머지 달에 모두 식물이 등장한다. 일본 화투 8월에는 억새까지 있다. 1~10월까지는 대부분 각 계절과 비슷하다.

1월 소나무, 2월 매화, 3월 벚나무, 4월 흑싸리(한국), 등나무(일본), 5월 난초(한국)·창포 혹은 꽃창포(일본), 6월 모란, 7월 홍싸리(한국) 싸리(일본), 8월 억새(일본) 9월 국화, 10월 단풍나무, 11월 오동나무, 12월 버드나무다.

이들 나무는 한국에서도 흔히 볼 수 있지만 상당수 일본 자연생태 및 세시풍속과 관련이 있다.

월별로 보면 일본의 경우 가도마쓰라(門松)라고 정월 초하루부터 1주일 동안 소나무 가지를 문 앞에 걸어두고 복을 비는 풍습이 있다.

현재까지 이어지는 이 풍속이 1월 소나무에 반영됐다. 한국과 중국에서 겨울에도 푸른 소나무는 절개·지조·장수를 상징해 ‘한·중·일’ 공통된 정서로 볼 수 있다.

매화와 벚나무는 일본 대표 문화다. 매화는 꽃과 함께 열매, 즉 매실로 만든 우메보시(梅干)가 더 유명하다. 벚꽃이 3월에 배치된 것도 에도 시대 서민들의 벚꽃 축제가 투영된 것이다.

한국도 비슷한 시기 매실과 벚꽃 축제가 열리지만 역사 문헌에서 벚꽃을 감상하며 행사를 벌였다는 기록을 찾기 힘들다. 따라서 벚꽃놀이는 일제 강점기 이후로 보는 견해가 많다.

등나무는 일본의 초여름을 상징한다. 동시에 가문의 문장 혹은 이름에도 널리 쓰인다. 반면에 한국은 등나무를 절개 없는 덩굴식물로 여겨 한국화에서 소재로 쓰지 않았다.

따라서 한국 화투는 빗자루의 재료로 흔히 쓰인 싸리나무로 본다. 이 때문에 화투놀이에서도 일본 화투와 한국 화투는 그림도 서로 정반대로 들고 논다.

국화는 동양의 중양절(음력 9월 9일·양기가 가장 왕성한 날)과 관련이 있다. 한·중·일에서 중양절에는 국화주 등 국화와 관련된 음식을 먹으며 무병장수를 기원하는 풍습이 있다. 9월 ‘쌍피’에 목숨 수(壽)자가 들어간 것도 이를 뒷받침한다. 또 일본에서는 천황을 상징하는 꽃이기도 하다.

◆화투의 사람과 동물=화투에 사람이 등장하는 건 12월(일본 화투 11월)뿐이다. 그는 일본 3대 서예가 중 한 사람인 오노도후(小野道風·894~966년)다. 원래 일본 화투의 산적이 이 사람으로 바뀌었다.

그는 청개구리가 버드나무에 오르기 위해 수없이 노력하는 것을 보고 ‘노력의 중요성을 깨달았다’는 ‘오노도후의 설화’를 남긴 주인공이다. 이 사람으로 바뀌면서 여름에 볼 수 있는 청개구리와 제비가 12월에 등장한다. 이외에도 화투에는 6월에 나비, 7월에 멧돼지, 10월에 사슴이 나온다.

멧돼지와 사슴은 일본 사냥 풍습이 반영됐다. 그러나 사슴은 십장생(十長生) 중 하나로 한·중·일 모두에 익숙하다. 한국도 예전에는 10월에 수사슴이 암사슴에게 구애하는 울음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화투 6월에는 동양에서 꽃의 왕으로 불리는 모란과 나비가 나온다. 한·중에서는 모란을 나비와 함께 그리지 않는다. 모란은 부귀영화, 나비는 80세를 상징해 함께 그리면 80세까지만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다는 의미가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장수의 의미로 고양이(70~80세 상징)를 중복해 그린다. 그러나 이런 관례가 일본에서는 사라져 화투에 모란과 나비만 남았다. 이것이 한국 화투에 그대로 넘어왔다.

경남 창원시 해운초등학교 정대수(45) 교사는 “화투는 2000여 년간 한·중·일의 문화와 생태가 압축 요약돼 있어 이를 이해해야 진정한 가치를 알 수 있고 재미도 배가된다”고 말했다.

한편 화투의 기원을 삼국시대 ‘투전(鬪箋·종이에 인물·새·짐승·물고기 등과 글귀가 적힌 패)’으로 보고 동식물도 사군자(四君子, 매화·난초·국화·대나무)나 십장생 등으로 재해석하기도 한다.

위성욱 기자 w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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