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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아빠 불화에 ‘급전’으로 버텨…더는 감당 힘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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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0일 서울시의회 앞에서 유치원 보육비 지원 중단에 항의하는 서울 지역 유치원장·교사·학부모들이 집회를 벌이고 있다. [중앙포토]


누리과정 예산을 놓고 정부와 시·도 교육청의 줄다리기가 이어지고 있다. 교육감들은 “대통령이 해결하라”며 청와대 앞 1인 시위에 나섰고, 감사원은 예산을 편성하지 않은 교육청 7곳에 대한 감사에 착수했다.

지난달 시작된 유치원 보육대란은 가까스로 봉합했지만, 이르면 다음달부터 어린이집도 지원금이 끊길 위기다. 시행 5년째에 접어든 누리과정을 다섯 살 어린이, 정부와 교육청을 아빠와 엄마로 빗대 상황을 정리했다.

안녕하세요. 제 이름은 ‘누리(과정)’, 올해 다섯 살입니다. 누리는 ‘세상’을 뜻하는 순우리말이죠. 자랑 같지만 시민 공모를 통해 선정된 예쁜 이름이에요. 요즘은 아빠(정부)와 엄마(교육청)의 불화로 천덕꾸러기 신세입니다만 태어날 때만큼은 여야·국민의 축복을 받았답니다.

고백건대 저는 ‘속도 위반’한 셈입니다. 무슨 뜻이냐고요? 2011년 5월 제 출생을 예고할 당시 ‘태명’은 ‘만 5세 공통과정’이었답니다. 이름대로 만 5세 아동에게 월 20만원(현재 29만원, 교육비+방과후)을 지원한다는 뜻이었죠. 아빠는 5세부터 먼저 하고 예산 상황 등을 따져 4세, 3세로 차근차근 늘릴 생각이었죠.

그런데 여덟 달 뒤 3, 4세도 맡게 바뀌었요. 여기엔 사연이 있죠. 제가 태어나기 전인 2011년 1월 야당은 ‘3+1(무상급식·무상의료·무상보육+반값등록금)’을 당론으로 정했어요. 여당은 이런 무상복지 공약을 ‘복지 포퓰리즘’이라며 비판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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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상황이 변했어요. 그해 8월 오세훈 서울시장이 무상급식 주민투표에서 패배했고, 두 달 뒤 시장선거에서 한나라당 후보가 졌습니다.

그러자 여당도 무상보육 카드를 꺼냈습니다. 총선·대선에서 젊은 층의 표를 얻어야 했거든요. 그해 말 국회 예산 심의 중 갑작스레 0~2세 무상보육이 결정됐고, 이듬해 초 결국 제가 3, 4세도 맡게 됐죠(2012년 5세 시행, 13년 3~5세). 박근혜 대통령도 ‘0~5세 무상보육 실현’을 공약으로 걸고 당선됐고요.

급하게 몸을 불리면 건강에 무리가 생기게 마련이죠. 애초 아빠는 엄마에게 주는 지방교육재정교부금(내국세의 20.27%)이면 절 키우는 데 충분하다고 봤어요. “앞으로 교육교부금이 연평균 3조원씩 늘어난다. 이를 활용하면 유·초·중등교육에 지장이 없다”(교육부·2011년)는 거였죠. ‘장밋빛 예측’은 빗나갔습니다.

2015년의 경우 실제 교부금은 39조4000억원에 그쳐 기획재정부 전망(49조4000억원)과 10조원가량 차이가 났죠. 올해 제게 드는 비용(4조원)도 2012년 추정했던 것보다 8000억원 이상 더 많고요.

형편이 어려워지면 불화가 생기기 쉽죠. 요즘 아빠는 엄마가 “받을 돈은 다 받고 정작 써야 할 돈은 쓰지 않는다(박근혜 대통령)”며 화를 내고, 엄마는 아빠의 “무책임한 재정 대책에서 비롯한 문제(전국 시·도교육감협의회)”라며 맞서고 있어요.

저로서는 난감할 노릇입니다. 교육교부금은 유·초·중등교육을 위한 돈입니다. 아빠는 애초 저를 교육교부금으로 키우자고 협의했는데도 막상 태어나니 엄마가 말을 바꿨다고 합니다. 하지만 엄마는 정반대로 설명해요. 교부금을 늘리지 않고 저를 키우면 다른 교육사업이 위축된다고 경고했지만 아빠가 귀담아 듣지 않았다는 거죠.

화가 난 아빠는 “법대로 하자”고 합니다. 시행령에 따르면 엄마에게 예산을 편성할 의무가 있다는 거죠. 그래도 엄마는 꿈쩍 안 합니다. 아빠가 고친 시행령은 상위법 위반이라 엄마에겐 책임이 없다는 겁니다. 미리 누구 돈으로, 어떻게 키울 건지 ‘교통정리’ 했어야 할 텐데 저를 낳는다는 기쁨에 잊고 있었던 것 같아요.

요즘은 엄마의 살림 솜씨가 도마에 올랐어요. 아빠 생각엔 올해 형편은 괜찮은 편이에요. 지난해에 비해 교부금은 1조8000억원, 지자체가 주는 전출금은 1조8000억원 늘었죠. 그래서 “엄마 씀씀이가 너무 크다” “인건비·시설비를 절약하지 않는다”고 꼬집고 있죠.

아빠는 드러내 말하진 않지만 엄마가 저보다 다른 자식(무상급식 등 교육감 공약)을 좋아하는 게 불만이죠. 물론 엄마 생각은 다릅니다. 매년 증가하는 인건비를 충당하고 힘들 때 빌렸던 돈(지방채)을 갚고 나면 남는 게 없다는 거예요.

올해는 엄마 편을 들고 나타난 ‘친척’ 탓에 한결 힘들답니다. 지난 연말 서울·전남·광주의 지방의회가 유치원 예산을 깎았거든요. 야당 의원이 다수인 곳인데 저는 물론 엄마도 당혹스러웠죠. 부부가 다툰 건 어린이집 때문인데 난데없이 유치원 교사·직원의 월급이 끊어졌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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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보육대란이 닥쳐오고 있습니다. 전국 17개 시·도 중 올해 유치원·어린이집 예산 전액이 편성된 곳은 6곳에 그칩니다. 다음달 말이면 서울의 어린이집 6500여 곳에 대한 지원이 중단될 수 있습니다. 보육비를 받지 못한 어린이집이 부모에게 직접 청구할 수도 있죠.

언제나 해결될지 가늠하기 어렵네요. 아빠는 아예 엄마를 거치지 않고 양육비를 줄 방법을 고민 중입니다. 엄마 없이 홀로 키울 생각인가 봐요. 엄마는 “아빠가 해결하라”며 거리(교육감 1인 시위)로 나섰습니다.

다섯 살인 제가 감당하기엔 너무나 혹독한 시련뿐입니다. 그래도 저는 믿습니다. 저를 통해 도움받는 어린이가 130만 명에 이른다는 걸 아빠도 엄마도 잊지 않으셨겠죠.

당장은 ‘급전’(예비비, 지자체 지원)으로 버티고 있지만 이러다 제 미래가 어떻게 될지 걱정입니다. 독자 여러분께도 부탁드립니다. 이제 누군가 ‘증세 없는 복지’를 말할 때면 진짜 가능한지 꼼꼼히 따져 보셔요.

천인성 기자 guch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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