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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 때 볼 만한 책들] 고난에 울지 않았다, 가족이 있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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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 따위 이겨주마
오고다 마코토 지음
오시연 옮김, 꼼지락
224쪽, 1만2500원


벤야민, 세기의 가문
우베 카르스텐 헤예 지음
박현용 옮김, 책세상
404쪽, 2만원


명절이다. 명절의 주인공은 가족이다. 오랜만에 얼굴을 보고 한 상에서 밥을 먹으며 별다른 주제도, 이벤트도 없는 시간을 함께 보낸다. ‘내 편’들을 만나 또 한 해를 살아갈 기운을 얻고 싶어서일까.

스트레스니, 갈등이니 말도 많지만 어쨌거나 명절엔 가족을 찾아간다. 시각장애 일본인 변호사 오고다 마코토(39)의 이야기 『운명 따위 이겨주마』와 독일 사상가 발터 벤야민(1892~1940) 일가의 궤적을 추적한 『벤야민, 세기의 가문』에서도 암울한 상황을 극복하는 힘의 원천, 가족의 가치가 선명하게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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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 고코로를 안고 있는 시각장애 변호사 오고다 마코토. 오른쪽은 아내 아야코다. [사진 꼼지락·책세상]


오고다 마코토는 선천성 녹내장으로 열두 살에 양쪽 눈의 시력을 완전히 잃었다. 세 살 아래 남동생 유타카도 같은 병으로 열한 살에 형과 같은 처지가 됐다. 와세다 대학을 졸업한 아버지와 조산사 출신 어머니 모두 눈에 전혀 이상이 없었으니, 영문을 모를 일이었다.

잔인한 현실이었지만, 부모는 아들들 앞에서 한 번도 한탄하거나 푸념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마코토는 “장애가 있었기에 더욱더 우리 가족은 힘을 합치게 됐고 집에는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고 회상했다.

고난을 에너지로 바꾸는 힘은 가족 안에서 자랐다. 동생 유타카는 2006년 12대 1의 경쟁률을 뚫고 교원채용시험에 합격해 고교 영어교사로 재직 중이다. 마코토는 “동생은 내가 포기하고 싶을 때 다시 기운을 차리게 하는 마지막 브레이크 같은 존재”라고 했다.

대학 졸업 후 사회와 단절된 채 고시 준비를 했을 때가 마코토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기였다. 있는 것은 장애뿐,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설명할 수 있는 정체성, 소속이 없었다. “공부가 잘 되지 않아 집에서 빈둥거려도 부모님은 나를 책망하지 않았다.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거리에서 지켜보기만 하셨다. 엄청난 인내가 필요했을 것이다.”

2009년 마코토의 어머니는 유방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2007년부터 변호사 생활을 시작한 마코토가 ‘이제 효도할 수 있겠구나’ 생각할 무렵이었다. 그는 “어머니를 만나려고만 하면 언제든지, 언제까지나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 큰 오해였다는 걸 깨달았다”고 했다.

마코토가 자신의 부모에게 배운 삶의 자세는 이제 세대를 넘어 전해진다. 그는 2011년 역시 시각장애를 갖고 있는 아내 아야코와 결혼해 딸을 낳았다. 그는 “인생을 가로막는 어려움으로부터 도망치지 않고 그 어려움과 잘 지내며 살아가는 모습을 딸에게 보여줄 수 있을 것”이라고 장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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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오르크 벤야민과 아들 미하엘. [사진 꼼지락·책세상]

『벤야민, 세기의 가문』이 다루는 20세기 벤야민 가족의 이야기도 시련의 연속이다. 발터와 게오르크(1895∼1942)·도라(1901∼46) 삼남매는 하필 20세기 독일에서 유대인으로 태어난 탓에 나치의 파시즘과 민족주의적 광기에 내몰리고 말았다.

1933년 파리로 망명한 발터는 40년 나치의 파리 침공 이후 스페인으로 가려다 실패하자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소아과 의사이면서 공산당원으로 활동했던 남동생 게오르크는 마우트하우젠 수용소에서 최후를 맞았다. 또 경제학 박사였던 여동생 도라는 33년 파리로 망명한 뒤 청소부 일을 전전하다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책이 집중적으로 다루는 인물은 도라의 친구이자 게오르크의 아내인 힐데(1902~89)다. 아리아인으로서 유대인인 남편의 비극적인 죽음을 목도한 힐데는 전후 동독 법무부 장관을 지내며 파시즘 청산에 평생을 바쳤다.

게오르크는 33년 4월 체포돼 강제수용소 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게오르크와 힐데는 편지를 주고받으며 서로 힘을 북돋웠다. 외아들 미하엘(1932∼2000)에 대한 관심과 사랑도 멈추지 않았다. “나의 가장 큰 안식처인 힐데, 난 당신이 운명에 정복당하지 않을 거라 믿어”(1936년), “자연·지리·체스 같은 것은 당신이 한 시간 정도만 가르쳐도 될 거야. 미하엘은 지금 무엇이든 잘 배울 나이거든”(1940년), “사랑하는 내 아들, 네가 낸 수수께끼의 답을 알아냈어. 물결이지?”(1940년) 등 편지글 한 줄 한 줄마다 수용소의 잔혹한 환경이 건드리지 못한 뜨거운 가족애가 담겨있다.

아들 미하엘은 모스크바와 동베를린에서 법학교수로 일하며 동독 현실사회주의의 실패 원인을 찾기 위해 고투했다. 더 좋은 세상을 꿈꾸었던 벤야민 가문의 신념은 그렇게 가족 안에서 키워지고 강해졌던 것이다.

이지영 기자 jy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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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