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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가슴을 적신 이 한 권] 서로 모방·복제하며 문명 전달…인간은 정교하게 진화된 ‘밈 기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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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전 블랙모어 지음
김명남 옮김, 바다출판사
461쪽, 1만5000원


나는 소설은 잘 읽지 않는다. 일 년에 한 두 권쯤? 그렇다고 이야기 자체를 즐기지 않는 것은 아니다. 나도 재밌고 감동적인 이야기에 열광하고 독창적 이야기에 감탄한다. 하지만 스스로를 소설의 애독자라고 할 수 없는 이유는 내 감동 포인트가 이야기는 아니기 때문이다.

‘내 가슴을 적신 이 한 권’이라는 제목을 보았을 때, 어떤 류의 책이 떠올랐는가? 문학류나 에세이류인가? 곰곰이 보면, 내게는 그런 책들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동안 읽었던 소설이나 시·에세이집에 대해 서평을 써야 할까?’라는 생각이 맨 처음 들었다는 것은 매우 기이하다. 가슴을 적시는 책은 문학이어야 한다고, 왜 나는 생각하고 있을까? 이야기만이 감동일까?

내겐 과학책이었다. 어릴 때 멋모르고 끙끙댔던 문고판 『소립자 물리학』으로부터 인생 책들( 『과학혁명의 구조』와 『눈먼 시계공』), 여전히 나를 들뜨게 만드는 대니얼 데닛의 저서들까지, 나를 달군 책들은 죄다 과학책이다.

과학책은 기본적으로 ‘설명’을 한다. 물론 경험적 증거들로 엮어 만든 매우 그럴듯한 ‘이야기’라고도 할 수 있을 게다. 나는 진실을 알고 싶은 거다. 우주가 왜 이렇게 생겼는지, 생명이 왜 이렇게 다양해졌는지, 인간은 왜 이렇게 생각하고 행동하는지 말이다.

『밈』은 지난 10년 동안의 내 지적 화두가 고스란히 담겨진 책이다. 나는 진화학자로서 인간의 본성에 대해, 과학철학자로서 인공물의 본성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 싶다.

디테일도 알고 싶지만, 이 모든 것의 작동 원리(그런 것이 있다면)를 정말 알고 싶다. 왜 인간만이 자신들이 만든 제도·가치·이념·기술 등에 복속하는 존재인지가 정말 궁금하다. 강아지 사회에서는 자유를 위한 투사가 나오지 않는 이유에 대해서도 말이다.

이 책은 지난 40억년의 생명 역사에서 정교한 모방 능력을 지닌 새로운 존재의 진화에 관해 다루고 있다. 조상들은 어깨너머로 서로 배우면서 문명을 만든 유일한 존재로 진화했고, 그 후손인 우리는 책을 쓰고 학교를 만들어 서로를 가르친다. 요즘 이런 사회적 학습이 가장 활발히 일어나는 곳은 유튜브일 것이다.

저자는 모방을 통해 전달되는 모든 것을, 도킨스를 따라 ‘밈(meme)’이라 부른다. 밈의 관점에서 보면 인간은 밈(문화 복제자)을 퍼 나르고 전달하고 변형시키는 ‘밈 기계’이다.

우리가 만들어낸 자본주의나 인공지능 같은 밈들이 다시 우리를 옥죄고 있는 현상도 더 이상 미스터리가 아니다. 왜 나는 가슴을 적시는 책을 소개한다면서 뇌를 서늘하게 만드는 것일까? 나를 적시는 것은 ‘설명’이다.

장대익 서울대 자유전공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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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대익은

과학과 인문학을 오가는 과학철학자. 1971년 대전 출생. 카이스트를 졸업한 뒤, 서울대 대학원 과학사 및 과학철학 협동과정에 들어가 박사학위를 받았다. 『다윈의 식탁』 『인간에 대하여 과학이 말해준 것들』 등을 썼고, 한국과학기술도서상 저술상(2009년)과 대한민국과학문화상(2010년)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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