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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대협부터 한대련까지…학생운동 의장 32인 추적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ㆍ1987~1993), 한국대학생총학생회연합(한총련ㆍ1993~ ), 21세기 한국대학생연합(한대련ㆍ2005~ )… 전국의 학생운동(이른바 ‘운동권’)을 이끌었던 학생운동 연합체의 명칭이다.

화염병과 최루탄이 촛불집회와 물대포로 변하기까지 학생운동 단체들은 시대에 따라 다양한 모습으로 변모해왔다. 중앙일보는 전대협ㆍ한총련ㆍ한대련의 역사를 갈무리하고, 역대 의장 32명의 과거와 현재를 추적했다.

▶ 관련기사 전대협은 정치, 한총련은 시민운동, 한대련은 각자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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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9월 2일 중앙일보 5면 기사. 전대협 출범 이후 첫 개강을 앞둔 대학가의 긴장 상태에 대해 보도했다. [중앙포토]



◇ 어떤 단체들이 있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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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평양 통일축전 참가 결의에 나선 전대협 소속 학생들 [중앙포토]


전대협은 최초의 전국 단위 학생운동 조직이다. 각 대학 총학생회의 협의체적 성격이 강하다. 기치는 ‘구국의 강철대오’. (나라를 구하기 위해 나선 강철과 같은 무리라는 뜻이다) 1987년 ‘6월 항쟁’으로 민주화 열망이 최고조에 이른 가운데, 전국 단위의 대학생 조직이 필요하다는 의견에 따라 만들어졌다.

8월 19일 충남대에서 당시 고려대 총학생회장이던 이인영을 의장으로 1기 발족식을 했다. 자주적 민주정부 수립, 조국의 평화통일, 민중연대, 학원자주화, 백만학도의 통일단결을 활동목표로 내걸었다. 1987년 공정선거감시단 활동, 1988년 8 ㆍ15 남북학생회담 시도, 1989년 임수경 방북 사건 등이 유명하다.

핵심 간부에 대한 구속과 수배가 잇따르는 등 정부와 대립각을 세웠지만 학생들 사이에선 큰 호응을 얻었다. 학생들의 시위나 경찰의 진압 모두 과격했던 탓에 집회 현장에는 화염병과 쇠파이프, 최루탄이 난무했다.

1989년 ‘임수경 방북 사건’과 1991년 ‘강기훈 유서대필 사건()’ 등을 겪으며 논란이 커졌다. 결국, 1993년 3월 대의원 총회를 통해 해체를 결정했고, 1993년 5월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한총련)으로 재발족했다.
 

※ 강기훈 유서대필 사건

 1991년 5월 8일 전국민족민주연합(전민련) 사회부장이던 고(故) 김기설(당시 25세)씨가 분신자살한 것과 관련해 검찰이 김씨의 유서를 대필하고 자살을 방조한 혐의로 강기훈(51)씨를 기소한 사건. 대법원은 92년 7월 징역 3년에 자녁정지 1년 6개월을 선고했다.

“동료의 자살을 방조했다”는 여론이 들끓었고, 전대협은 도덕성에 큰 타격을 입었다. 그러나 2007년 진실ㆍ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가 “진상조사를 거쳐 진실을 규명하라”고 결정했고, 강기훈씨도 재심을 청구했다.

2012년 대법원은 재심 개시 결정을 내렸고, 국과수가 2013년 12월 유서 필체에 대한 새로운 감정결과를 내놨다. 대법원은 2015년 5월 14일 재심에서 최종 무죄 판결을 내렸다.

▶ 관련기사 : 24년 만에 … 강기훈 ‘유서대필’ 무죄 확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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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집회 도중 경찰과 대치 중인 한총련 소속 학생들 [중앙포토]


 한총련은 1993년 고려대에서 8만 명이 모인 가운데 출범했다. 각 대학 총학생회장단의 협의체 수준이었던 전대협을 확대해 전국 모든 대학 단과대 학생회장까지를 대의원으로 했다. 전대협에 비해 중앙집권적 성격이 강했다.

‘남북통일’, ‘노동운동’ 등을 전면에 내세우는 한편, 등록금 등 일반 학생들이 생활 속에서 느끼는 문제점도 화두로 던졌다. 창립 당시 기치는 ‘생활, 학문, 투쟁의 공동체’. 하지만 다수파에 의해 과격한 운동방식이 지지를 받으면서 1995년 ‘민족의 운명을 개척하는 불패의 애국대오’로 기치가 바뀌었다. 1996년 연세대 사태, 1997년 이석 프락치 치사 사건 등으로 도덕성 문제가 불거지면서 대중의 지지를 잃었다. 
 
 

대법원은 1997년 4월 한총련을 이적단체로 규정했다. 96년 8월에 있었던 ‘연세대 사태’가 결정적이었다. 당시 한총련은 “소속 학생 2명을 북한에서 하는 민족통일대축전에 파견하고 그들의 귀환에 맞춰 판문점까지 환영 행진을 하겠다”며 연세대를 점거했다. 연세대에 모인 한총련 학생 2만여 명이 경찰과 극한으로 대치하다 유혈사태로 번져 1명이 사망하고 수백 명이 부상당했다. 이 과정에서 수십 명의 학생이 구속돼 재판에 넘겨졌다.

이후 상당수 학교가 한총련에서 탈퇴하는 등 급격히 세력이 위축됐다. 공식해체 선언을 하진 않았지만, 2000년대 중반 이후 조직의 존재 여부조차 불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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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반값등록금 투쟁에 나선 한대련 소속 학생들 [중앙포토]


 2005년 출범한 한대련은 생활 이슈를 내세웠다. 통일 이슈를 전면에 내세웠다 지지기반을 잃고 몰락한 한총련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서였다. ‘등록금, 청년실업 문제, 대학생 주거문제’ 등 대학생 현실을 내세웠고, 시위 방식도 문화제, 1인 시위 등 과거보다 온건한 방식으로 바꿨다.

2008년 광우병 파동, 2011년 대학생 등록금 반값 요구 촛불집회 등에서 진보 정치권과 연계했다. 2012년 5월 통진당 중앙위원회 폭력사태에 한대련 전ㆍ현직 간부들이 연루되면서 정치성ㆍ도덕성 논란이 불거졌다. 이후 고려대, 숙명여대 등이 탈퇴했다. 현재 20여개 총학이 가입된 것으로 알려져있다.


◇ 역대 의장 32명… 그들의 삶의 궤적

역대 의장들의 삶 역시 시대에 따라 바뀌었다. 80년대에 주로 활동한 전대협의 경우 역대 의장 6명 가운데 4명(66.7%)이 정치권에 몸담을 정도로 정계 진출이 활발했다. 초대의장인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의원, 2기 의장인 오영식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적이다. 오 의원은 “전대협 활동을 하면서 얻은 경험과 의장 타이틀이 정계에 진출하는 데 자산이 됐음은 부인할 수 없을 것”이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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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총련 의장들은 주로 시민단체나 노동계로 진출했다. 15명 중 7명(시민단체 5명, 노동계 2명)이 관련 분야에서 활동 중이다. 부산에서 입시학원을 운영 중인 4기 의장 정명기씨, 인테리어 업체 사장인 2기 의장 김현준씨처럼 사회운동과 무관한 일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2005년 출범한 한대련의 역대 의장들 중엔 생활인이 많다. 극단 기획자, 공기업 근무, 군복무자 등 과거보다 세분화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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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학생회 의장들의 출신학교는 전남대가 9명으로 가장 많았다. 2위인 부산대(4명)보다 2배가 넘는다. 3위는 고려대(3명)ㆍ한양대(3명), 4위권은 경희대(2명)ㆍ덕성여대(2명) 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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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학을 졸업한 뒤엔 시민단체를 거쳐간 경우가 가장 많았다. 32명 가운데 13명이 한 차례 이상 시민 단체에 몸담았다. 정치권을 거친 이는 8명, 노동조합에서 활동한 사람도 6명이었다.

국가보안법이나 집시법 위반으로 형사처벌을 받은 전력이 있는 역대 의장은 전체(32명)의 절반인 16명이었다. 대부분 시위 문화가 과격했던 80~90년대 활동했다. 전대협의 경우 역대 의장 6명 전원이 사법처리 대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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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 만나본 역대 의장 3명은 “후배 학생들이 사회에 대한 고민을 계속 이어나가면 좋겠다”는 뜻을 드러냈다.

▶ 관련기사  “기성세력에 기죽지 않고 아이디어 창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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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왼쪽부터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전대협 1기 의장), 강위원 ‘더불어락 노인복지관’ 관장(한총련 5기 의장), 김지선 극단 ‘끼’ 연출가 겸 기획자(한대련 3기 의장). [사진=공다훈 기자]

 
학생운동은 제도적 민주화 이후에도 과격한 투쟁한 방식을 버리지 못해 대중으로부터 멀어졌습니다. 하지만 학생운동은 어느 시대에나 꼭 필요합니다. 학생운동은 기성에 주눅 들지 않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창조합니다. 오른손을 강요하는 사회에서 왼손을 드는 일이라고 할까요.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전대협 1기 의장)

 
숱한 고난과 고민에 괴로웠던 청춘이었지만 후회는 없습니다. 당시 학생운동을 하지 않았다면 지금쯤 승진이나 월급, 좋은 차에 집착하는 삶을 살고 있을지 모르죠. 한걸음 늦추고 주변 사람들을 둘러보는 여유를 줬고, 공동체를 위해 여러 활동을 하는 중요한 자산이 되고 있습니다.
강위원 ‘더불어락 노인복지관’ 관장(한총련 5기 의장)

 
운동을 통해 사람다운 삶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했어요. 타인과 공감하고 연대하는 삶이랄까요. 홀로 살아가기도 힘든 사회라지만, 후배 학생들이 이런 고민을 놓지 말았으면 합니다.
김지선 극단 ‘끼’ 연출가 겸 기획자(한대련 3기 의장)


전국단위의 학생운동을 이끌었던 경험을 살려 정계와 시민사회계 등에서 주요 직책을 맡고 있는 역대 의장들도 상당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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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인진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이에 대해 “80년대 학생운동이 정치권으로 진출하는 교두보 성격이 강했다면, 90년대 중반 이후 시민운동과 노동조합 활동이 활성화되면서 학생운동 출신의 진출이 늘어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손국희ㆍ공다훈 기자 9key@joongang.co.kr
기획=한영익 기자
그래픽=심정보ㆍ김하온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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