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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가 만난 사람+]"A급 인재가 원하는 건 돈 아닌 최고의 팀"

조원규(50), 그의 이력을 확인하자마자 떠오른 단어는 ‘올드보이’였다.

응팔·응사 세대들이 90년대초 PC통신에서 한번쯤은 써봤을 ‘새롬데이터맨프로’(PC통신용 소프트웨어) 개발자다. 세계 최초의 무료 인터넷전화 ‘다이얼패드’(1999년)를 개발한 주역이다. 한때 핫했던 새롬기술의 드라마틱한 성장과 실패를 경험한 그는 이후 실리콘밸리에 남아 계속 창업에 도전했다고 했다. 2007년부터 7년간은 구글코리아 R&D 총괄 사장으로 일했다.

그런 그가 다시 창업에 나섰다고 했다. 벤처캐피탈도, 엑셀러레이터도 아닌 ‘창업을 위한 플랫폼’ 같은 일을 한다고···. 다시 창업을 한다고? 멋있어 보이면서도 궁금했다. 왜?

구글코리아 관계자에게 물어봤다. “모두들 그가 떠나는 걸 아쉬워했어요. 그런데 퇴사 이유가 ‘창업하겠다’는 건데 구글이 그걸 말릴 수 있나요? ㅎㅎ”

지난 1월 15일 오후 서울 이태원의 사무실에서 그를 만났다. 건네받은 명함엔 ‘스켈터랩스(SkelterLabs) 대표 앙트러프러너(Chief Entrepreneur)’라고 쓰여 있다. 최고경영자(CEO)가 아니라 최고 창업가, 회사명도 직함도 특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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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원규 스켈터랩스 대표의 명함엔 최고경영자(CEO)가 아니라 `최고 창업가(Chief Entrepreneur)`라고 쓰여 있었다. [사진 스켈터랩스]


-다시 창업을 하셨다고요?
 “제가 90년대엔 한국에서 벤처를 7년 했고, 2000년대엔 미국서 벤처를 또 7년 했어요. 2007년부터는 지금 세계 최대 인터넷 기업으로 성장한 구글에서 7년 일했고요. 전체 경력의 3분의 1씩을 그렇게 보내면서 여러가지를 배웠죠. 새로운 조직을 만들어서 제가 그간 느낀 것들을 실현해보고 싶었어요.”
 
-뭘 하고 싶으세요?
 “저는 이노베이션(innovation·혁신), 없던 것을 만드는 일, 불편을 해소하는 일에 대한 열망이 항상 컸어요. 그런 일을 하고 싶어요. 사실, 어느 정도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는 분들이 제 나이 정도되면 벤처투자쪽으로 가거나 멘토링을 하는 경우가 많죠. 여러 회사를 위에서 내려다보고 평가하고 도와주는 일이죠. 저도 처음엔 비슷한 일을 좀 했어요. 구글에서 나온 후 정부 창업지원프로그램의 지원 대상을 선정하는 심사위원 일을 몇 달 했어요. 이때 국내 많은 스타트업들을 봤죠. 국내에서 가장 훌륭하다는 기술기반 스타트업들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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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 어땠나요?
 “솔직히 말해서 굉장히 놀랬어요.”
 
-왜요, 너무 뛰어나서요?
 “아니요. 반대요. 생각보다 스타트업들이 너무 작은 문제를 푸는 데 몰려 있더라고요. 세상을 바꾸는 일이 아니라, 작은 문제에 집중하고 있었어요. 조그만 문제를 해결하려는 시도가 무의미하다는 뜻은 절대 아니에요. 젊은 친구들이 생활 속에서 느낀 작은 문제를 풀려고 이런저런 시도를 하는 게 사실 굉장히 재밌는 일이고 의미있죠. 그런데요, 그게 사업적으로는 큰 의미를 갖고 성장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았어요. 창업투자사마다 투자 기준은 다르겠지만 만약 제가 창투사라면 그중에 투자할 만한 회사는 1~2개? 그 정도 밖에 안 됐어요.”
 
-음···. 그들이라고 대단한 문제를 안 풀고 싶어서 그러는 건 아닐텐데요?
 “저는요, 벤처는 세상을 바꾸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본 많은 스타트업들은 벤처라기보다 ‘좋은 사업’을 하고 싶어하는 것 같단 생각이 들어요. 좋은 사업모델을 만들어서 회사가 20년쯤 지속될 수 있다면 만족하는 것 같았어요. 그게 나쁘다는 게 결코 아닙니다. 그런 벤처도 있어야 해요. 하지만 누군가는 제2의 구글이나 제2의 페이스북이 되어서 하키 스틱형(알파벳 J 모양) 급격한 성장 곡선을 그리는 벤처가 나와야 합니다. 그게 벤처의 사회적 임팩트죠. 그런 벤처가 얼마 없다는 게 안타까웠고 왜 그럴까를 생각하게 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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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대표는 "급속도로 성장하는, 하키스틱 모양의 성장곡선을 그리는 벤처기업이 한국에서 더 나와야 한다"고 말했다.

  
-저도 궁금합니다. 왜 그런가요?
“진짜 크게 될 ‘기술창업’(Tech Startups)이 나올 인적 토대가 너무 약해요. 2000년대 초반 닷컴버블이 터지면서 벤처의 싹을 싹 죽였죠. 사람들이 벤처를 기피했고 공대도 기피했고. 2000년대 초반 학번부터는 공대 인기가 절벽처럼 확 꺾였잖아요. 이 분위기가 한 10년 가까이 이어지다보니 우리에겐 쌓아놓은 인재도, 기술도 없어요. 그나마 있는 인재들도 곳곳에 숨어 있다는 게 문제입니다. 세상을 바꿀 수 있는 벤처를 하려면 각 분야 최고의 인재들이 모여서 해야하는데 뿔뿔히 흩어져 있거나 대기업에 숨어있어요”
 
-스타트업계에 최고 인재들이 아직 없다?
“대부분 창업가들이 초기에 겪는 어려움은 엔지니어, 기획자, 디자이너가 필요한데 각 자리에 최고 인재를 찾아서 팀을 꾸리기가 정~말 어렵다는 거에요. 여기서부터 꼬이면 참 힘들죠. 아이디어 넘치는 창업자는 있는데 이걸 구현할 뛰어난 엔지니어가 없으면 어떻게 창업이 성공하나요. 그래서 저는 각 분야에서 최고인 사람들을 랩에 모아서 이들을 팀으로 엮어주고 싶어요.“
 
-분위기가 조금씩 달라지고 있지 않나요? 삼성전자 나와서 스타트업 뛰어드는 엔지니어들도 종종 있고요.
“아직 턱도 없이 부족해요. 지금보다 엔지니어들이 10배는 더 스타트업으로 쏟아져 나와야 지금 이 스타트업에 살아나고 있는 기회들을 충분히 살릴 수 있어요. 그들이 스타트업 레버리지가 되야 해요.”
 
-엔지니어를 특히 강조하시는군요.
 “제가 바라는 것은 엔지어들이 스타트업에서 뛰어드는 문화를 만들고 싶어요. 만약 내가 데이터베이스(DB) 분야 최고 엔지니어인데 사업은 잘 모르겠다면, 스켈터랩스에서 진행 중인 3개쯤 되는 프로젝트 3개 참여해서 DB 분야 전문성을 발휘하는 거죠. 공동창업자로 참여한 것이니 보상은 지분으로 받을 수 있고요. 그러다 그 스타트업이 스켈터랩스에서 독립하더라도, 엔지니어는 계속 스켈터랩스에 남아 다른 창업 프로젝트에 참여할 기회를 얻을 수 있죠. 정리하자면, 스켈터랩스를 엔지니어들이 여러 스타트업을 하면서 창업 경력을 쌓을 수 있는 조직으로 키우고 싶은 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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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켈터랩스 팀. 조원규 대표는 "스켈터랩스를 엔지니어들이 창업 경험을 쌓을 수 있는 조직으로 키우고 싶다"고 말했다. [사진 스켈터랩스]

  
-기술창업이 끊임없이 일어나는 창업 플랫폼 같은 거네요.
“네, 맞아요. 지금은 삼성전자 다니다가 나와서 창업하려면 엄청난 모험을 해야해요. 뛰쳐 나와서 창업했는데 실패한다면 그걸 커리어로 전혀 인정받지 못하고 돌아갈 길도 막혀있죠. 저는 의미있는 스타트업에 참여한 경험 자체를 엔지니어들이 커리어로 평가받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러자면 진짜 좋은 스타트업을 해야하는 거죠. 결과적으로 비즈니스로서는 실패하더라도 기술은 뛰어났다든가 하는 식의 의미를 남길 수 있는 스타트업을 여럿 한다면 충분히 경력이 될 수 있다는 거죠.”
  
-그러면 스켈터랩스는 일하는 방식이 좀 다른가요?
“음. 뭐랄까. 네, 좀 다르죠. 보통의 회사들은 뭔가 해야겠다고 프로젝트를 정하고 거기에서 일할 팀원을 붙여주기 마련인데 저희는 달라요. 좋은 아이디어를 가진 창업가는 우리 랩 안에 있는 최고의 엔지니어·기획자·디자이너들한테 ‘이런 거 같이 해볼래요?’ 하고 제안해서 한 번 트라이해볼 수 있어요.

그런데 아이디어가 있다고 누구나 그걸로 창업하겠다고 나서면 성과가 잘 나올까요? 그렇진 않아요. 처음엔 ‘한번 해볼까’ 하는 마음으로 가볍게 시작하는 거죠. 그러다가 괜찮다 싶으면 내부 회의를 통해 진지하게 의논해서 정식 창업 프로젝트로 채택하죠. 그때부터 정식으로 팀원들이 그 프로젝트에 시간을 투입해서 일을 진행시킬 수 있어요. 이게 우리 규칙이죠.

이렇게 하지 않으면 다들 그냥 어정쩡한 일만 하고 있고 성과도 잘 안나오고, 계속 해봐야 잘 안 될 것 같은 일을 자꾸 파고만 있게 돼요. 이런 식으로 가볍게 시도해 본 후 제대로된 조직으로 만들어 추진하는 방식이 사실 구글 초기 모델이에요. 2000년대 중반까지 구글이 그랬죠. 하지만 구글도 나중에 이게 안통하기 시작했어요. 조직이 커지다보면 쉽지 않아요.”

-명분은 좋긴한데, 으리으리한 회사 잘 다니고 사람들을 어떻게 빼올 수 있을지?
“최고의 엔지니어들이 원하는 게 뭔 줄 아세요? 높은 급여? 복지혜택? 그런 것 따지는 사람들도 있지만요. 이들이 진짜 의미부여하는 것은 업계 최고 수준의 동료들과 일하는 팀인가에요. 나와 실력이 비슷하거나 나보다 더 뛰어나서 뭐 하나라도 배울 게 있는 엔지니어들과 일할 땐 성과가 굉장히 잘 나와요. 그런데 그렇지 않고 팀 수준이 중구난방이면 일은 질질 끌리고···. 그러다보면 일 자체가 즐겁지 않아서 팀을 떠나게 되죠.

이런 말 하기가 참 조심스러운데요. 기술창업에서 성공하려면 창업자도, 엔지니어도, 기획자도, 디자이너도 모두 최고의 실력을 갖춘 인재들이 모여야 해요. 물론 스타트업은 실력만 갖고 되는 건 아니에요. 실력은 기본이고 열정도 있어야 하죠. 이 둘을 다 갖췄더라도 성공할까 말까한 게 스타트업이에요. 그래서 스타트업이 어렵다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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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대표는 조심스러워했지만 솔직했다. 그의 말을 듣다보니 인터넷 VOD서비스업체 넷플릭스(Netflix)가 떠오른다. 넷플릭스는 실리콘밸리의 최고의 직장으로 꼽힌다. A급 인재가 아니면 회사에서 살아남을 수 없을만큼 평가가 엄격하다. 아무리 오래 일했더라도 실력이 예전만 못하다면 넷플릭스는 퇴직위로금을 충분히 쥐여주고서라도 회사 밖으로 내 보낸다. 이런 조직문화에 대한 평가는 분분하지만 넷플릭스의 급성장에 최고의 엔지니어들이 기여했다는 점엔 이론의 여지가 없다.

넷플릭스에서 14년간 인사 업무를 맡았던 패티 맥코드(Patty Mccord)는 하버드비즈니스 리뷰에 ”훌륭한 업무여건은 최고의 인재들만 모였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라며 “최고의 직장은 복지나 연봉조건보다 A급 직원들과 함께 일할 수 있는 회사다. 시간이 얼마가 걸리든 간에 A급 인재를 뽑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맥코드가 넷플릭스 창업자인 리드 헤이스팅스의 조직문화에 대해 정리한 발표 자료는 페이스북 COO인 셰릴 샌드버그가 ‘실리콘밸리에 대한 글 중 가장 중요한 문서’로 꼽기도 했다. 
 
-스켈터랩스엔 그런 최고 인재들이 모였나요?
 “네. 1년 전 처음 팀 꾸릴 땐 구글 출신 엔지니어 네댓명과 시작했는데 지금은 열댓명으로 늘었습니다. 저같은 창업가들, 엔지니어들, 서비스·상품 기획자, 디자이너. SKT·네이버·야후 등 대기업 출신들도 있고요. 합류하려고 준비중인 인재들도 많이 있습니다.”
 
조 대표는 서울대 컴퓨터공학과 84학번이다. 카이스트 전산학과 석박사를 마쳤다. 엔씨소프트 김택진 대표가 한 학번 아래(85학번)다. 86학번인 넥슨 창업자 김정주 NXC 회장, 네이버 창업자 이해진 의장, 송재경 바람의 나라 개발자(엑스엘게임스 대표)도 모두 서울대·KAIST 후배다.
 
-84~86학번에 국내 IT기업을 이끄는 창업가들이 많습니다. 특히 86학번은 유명하죠.
“세상이 한번 확 변할 때 기회가 많이 있기 때문이죠. 엔씨소프트나 넥슨 창업자들은 아케이드 게임 시대에서 전자게임으로 넘어가던 시기에 기회를 찾은 경우죠. 바람의 나라·리니지를 개발한 송재경(엑스엘게임스 대표)은 카이스트 전산학과에서 머드(MUD) 게임하던 친구들이에요. 대전 캠퍼스에서 먹고 자고 하면서 실험실에서 서버 띄워놓고 게임하던 후배들. 지금도 그때처럼 그런 기회가 왔어요.”
 
-새롬기술 얘길 안 물어볼 수가 없습니다.
“새롬은 90년대초반 도스체제에서 MS 윈도 운영체제(OS)로 시장이 확 바뀔 때 기회를 잘 찾았어요. 윈도OS에서 PC통신을 할 때 필요한 소프트웨어를 가장 먼저 만들어 시장을 주도했죠. 그게 새롬데이터맨프로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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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대표가 공동창업한 새롬기술은 도스에서 윈도로 운영체제가 바뀔 때 PC통신에 필요한 소프트웨어를 가장 먼저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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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기 드라마 `응답하라 1994`에서 PC통신에 푹 빠진 주인공들.

 
조 대표는 1993년 KAIST 박사 시절 동기들과 새롬기술을 공동창업했다. 그는 당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새롬데이터맨프로·팩스맨 등 PC통신용 소프트웨어를 개발한 주역이었다.
 이후 90년대 후반 실리콘밸리로 건너가서는 세계 최초의 무료인터넷전화 다이얼패드를 개발했다. 광고를 보면 무료로 국제전화를 할 수 있는 이 서비스는 1999년 10월 출시 직후 국내외의 주목을 받았다. 다이얼패드에 투자했던 새롬기술 주가는 코스닥에서 액면가의 600배 이상 폭등하며 ‘코스닥 황제주’에 올랐다. 그러다 2001년 닷컴버블이 꺼지면서 직격탄을 맞았고 결국 실패로 끝났다. 투자자들도 큰 피해를 입었다.
 
-1999년 내놓은 다이얼패드가 인기였죠, 논란도 됐고요.
“네. 그랬는데···. 스카이프(Skype) 이상의 회사가 될 수도 있었는데, 안타깝고 마음 아프죠. 이 일로 배운 게 많았어요. 다이얼패드 개발하고 서비스하면서 비로소 스타트업 생태계에 처음 눈을 떴고, 그때 처음 제대로 경험했어요. 기술벤처에게 매출·영업이익·주가 같은 숫자는 오히려 판단을 흐리게 할 수 있다는 점도 느꼈고요.”
 
새롬기술이 무너지면서 다이얼패드도 위기에 처했다. 광고 외의 수익모델을 찾지 못했던 다이얼패드도 투자금 조달이 어려워지면서 결국 서비스를 접어야했다. 다이얼패드는 기업으로선 실패했지만, 기술과 경험의 가치는 죽지 않고 이어졌다. 다이얼패드 회사는 야후에 매각됐고 다이얼패드의 일부 엔지니어와 경영진을 데려간 구글은 몇 년 후 무료 인터넷전화 ‘구글보이스’를 내놨다. 미국에 남아 계속 창업을 했던 조 대표는 온라인 평판관리 기술을 개발한 오피니티 등으로 실리콘밸리에서 기술창업가로 입지를 다졌다. 이후 2007년 조 대표는 구글코리아 첫 R&D 총괄로 영입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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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롬기술은 다이얼패드에 투자했다. 다이얼패드는 세계 최초의 무료 인터넷 전화였다.

 
-새롬기술 때는 스타트업 생태계를 몰랐나요?
“다이얼패드 이전까지 저는 ‘우린 사업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미국서 다이얼패드 개발할 때나 그이후 다른 회사를 창업할 때는 돈 버는 게 아니라 세상의 커뮤니케이션을 바꿀 최고의 제품을 만드는 데만 집중했어요.”
 
-투자도 받았는데 성과가 영 안나오면 힘들긴 할 텐데요.
“벤처는 실패할 확률이 성공확률보다 훨씬 높은 분야에요. 말로는 다들 동의하죠. 하지만 실제 실패 한번 겪어 보면...정말 힘들어요. 투자자도 창업자도 모두요. 하지만 정말 좋은 투자자는 열 번 중 아홉번은 실패한다는 걸 알고도 투자해요. 실패한 창업자를 존중하고 아껴주는 것이죠. 한번 실패하고 나면 다시 성공할 확률이 높아지니까요. 실패가 나쁜 게 아니에요. 실패를 어떻게 하느냐가 중요하죠. 스타트업 자체는 실패했지만 창업 과정에서 의미있는 기술을 개발한 사람에겐 다시 기회가 주어집니다.”
 
-회사 이름이 특이하네요. 무슨 뜻이에요?
“스켈터란 뜻 아세요?. 제 나이쯤 되는 연배는 일단 비틀즈(The Beatles)를 깔고 들어가는 세대입니다. 제가 락을 좋아하고 매주 밴드 연주도 하는데요. 비틀즈 노래 중에 ‘헬터 스켈터(Helter Skelter)’라는 노래가 있어요, 혹시 아시는지? 스켈터는 난잡한, 혼란스러운, 정리되지 않은 그런 뜻이에요. 카오스(Chaos)같은 그런 상태요.”
*헬터 스켈터=1968년 발매된 ‘The Beatles’ 앨범에 수록된 곡. U2ㆍ오아시스 등 유명 밴드들이 연주함.

-그러니까 회사 이름이 ‘혼란스러운 실험실’이요?
 “나쁘게 보면 정리 안돼 있고 어지럽단 것이지만, 좋게 보면 아이디어가 여기저기서 막 튀어나오고 날아다니고···. 그런 상태죠. 우리의 이런 지향점을 이름에 담고 싶었어요. 그렇다고 완전히 막 나가겠단 게 아니고요. 최고의 인재들이 자유럽게 아이디어를 내면서도 창업 프로젝트를 성공시킬 수 있는 있는 ‘정돈된 카오스’를 만들겠다는 것이죠.”
  
-그런데 사무실은 왜 이태원에 잡으셨어요? 스타트업 허브인 역삼동이나 선릉이 아니라···
“여기는 ‘앤드비욘드(&Beyond)’라는 회사 사무실 한 켠을 저희가 쓰고 있어요. 저희가 앤드비욘드의 내부 테크팀으로 출발했거든요. 앤드비욘드는 현재까지 스켈터랩의 최대투자자이고요. 진행 중인 프로젝트 서너개 중 앤비욘드와 같이 하는 프로젝트도 있어요.”

조 대표는 2014년 앤드비욘드의 테크 분야 파트너로 합류했다. 앤드비욘드는 F&B·웨딩·패션·뷰티·엔터테인먼트 등 라이프스타일 영역에서 새로운 기업을 만들고 육성하는 창업기획사다. 글로벌 컨설팅사 베인앤컴퍼니 박철준 한국 대표와 홍용완 파트너 등 베인 출신들이 퇴사후 만들었다.

스켈터랩스는 올해 상반기에 앤드비욘드에서 독립해 본격적으로 준비한 프로젝트를 시장에 내놓을 예정이다. 이미 첫 프로젝트는 선을 보였다. iOS 앱스토어에 지난해말 공개한 일기장같은 앱 썸데이(Thumbday)다. 엄지손가락 끝으로 일상의 모든 것을 기록할 수 있는 서비스다.

조 대표는 이를 ”내 주변에 관련된 거의 모든 정보를 필기가 아닌 손가락 터치만으로 손쉽게 기록할 수 있다“고 소개했다. 음식점 정보 검색부터 맛 평가, 결제금액, 사진 등의 정보를 쉽게 찾고 흔적으로 남길 수 있다. 데이터가 쌓이면 개인별 성향에 따라 자동으로 추천해주는 서비스도 붙일 계획이다. 이외에 스켈터랩에선 O2O 관련 소프트웨어 개발 등 3개 프로젝트가 더 영글고 있다.
 
-지금 전세계가 IT기업들로 들썩이고 있죠. 이 흐름이 언제까지 이어질까요.
 “SF만화에나 나오던 얘기들이 현실이 되고 있고. 그 때가 이미 왔어요. 특히 오프라인 쪽에 기회가 아직 많아요. 전에는 상상도 못했던 일들이 엄청난 규모로 벌어지고 있습니다. 이제가 진짜 시작이에요.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이노베이션의 바탕엔 기술이 있다는 겁니다. 고급기술은 혁신과 영원히 뗄래야 뗄 수 없는 가장 중요한 핵심이에요.”
 
박수련 기자 park.suryon@joongang.co.kr

[J가 만난 사람+]는 중앙일보 경제산업 분야 인터뷰 코너인 [J가 만난 사람]의 디지털 풀 버전이다. 신문에 다 전하지 못한, 깊이있고 풍부한 내용을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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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중앙일보 입사 이래 북한 문제와 양자 외교 관계를 비롯한 외교안보 현안을 오래 다뤘다. 편집국 외교안보부장ㆍ국제부장과 논설위원ㆍ도쿄총국장을 거쳤고 하버드대 국제문제연구소(WCFIA) 펠로우를 지냈다. 부소장 겸 논설위원으로 외교안보 이슈를 추적하고 있다.

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