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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먼 아버지가 도전할 때마다…아들은 한 걸음의 힘을 배웠다

[최고의 유산]
4대 극한 마라톤 완주, 송경태 전주시각장애인도서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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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사하라사막 마라톤에 참가한 송경태씨. 이때 국제봉사자로 동행했던 큰아들 송민씨는 “다른 참가자가 캠프에 다 도착할 때까지 아버지가 보이지 않으면 높은 모래 언덕에 올라 하염없이 아버지가 오기만 기다렸다”며 “멀리서 비척비척 걸어오는 아버지가 시야에 들어오면 안도감과 함께 가슴이 너무 아팠다”고 떠올렸다.



군대서 수류탄 사고로 실명, 6번 자살 시도
라디오에서 들은 시각장애인 사연에 힘 얻어
‘대학, 결혼, 컴퓨터’ 3대 목표 28년 걸려 이뤄


사하라사막 250km 완주…“한 걸음씩 가면 돼”
어렵고 힘들수록 내일보다 오늘 할 일만 생각
부모 역할은 꾸지람 아닌 솔선수범



그는 매년 100권의 책을 읽고, 1권의 책을 쓴다. 2005년 사하라사막 마라톤 250km를 완주한 것을 시작으로 2007년엔 고비사막, 이듬해엔 아타카마사막과 남극대륙 마라톤을 뛰었다. 세계 4대 극한 마라톤이라 불리는 코스를 4년 만에 완주한 것이다. 학업도 이어갔다. 2000년 석사 학위에 이어 2011년엔 박사 학위까지 취득했다. 지난해엔 에베레스트산 정상을 정복하러 도전에 나섰다 네팔 대지진을 만나 다음을 기약하고 내려왔다. 그의 두 아들은 아버지의 끊임없는 도전을 보며 자랐다. 두 사람은 “학창시절, 공부하기 싫은 날이면 아버지를 떠올렸다”며 “매사에 목숨을 걸고 최선을 다하는 아버지를 생각하면 졸음이 확 달아나고 게으름을 피우는 나 자신을 채찍질하게 된다”고 말했다. 도전하는 모습을 본보기로 보이며 두 아들을 키워낸 아버지 송경태(55)씨. 그는 1급 시각장애인이다. 

밥 굶는 동네 아이 거둬 먹이던 부모님
 
송경태 전주시각장애인도서관장은 1982년 군대에서 시력을 잃었다. 집중호우에 침수된 무기고를 정리하다 수류탄 폭발 사고가 있었고, 파편은 송 관장의 두 눈을 후볐다. 그는 “‘번쩍’하는 섬광이 내가 마지막으로 본 빛”이라고 말했다. 입대한 지 40일 만에 벌어진 비극이었다.

사고 후 6개월간 세 번의 수술을 받았다. 스물한 살, 낙천적인 청년이었던 송 관장은 “치료가 끝나면 곧 볼 수 있겠지”라고 생각했다. 현실을 직시한 건 의가사제대를 하고 집에 돌아온 뒤다. 장남인 송 관장이 눈 멀어 돌아오자 화기애애했던 집안에 찬바람이 돌았다. “웃음이 사라지더군요. 내 밑으로 동생 넷이 있는데 시끌시끌하던 녀석들이 말을 잃고, 친구들도 찾아오지 않으니 ‘아, 내가 정말 장애인이 됐구나’라는 게 현실적으로 느껴졌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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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전주 모악산 자락에 새로 지은 집 테라스에 선 송 관장. 김경록 기자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절망감, 자신으로 인해 집안에 어둠이 드리워졌다는 죄책감이 송 관장을 좌절하게 했다. 자살을 여섯 번 시도했다. 집 앞 저수지에 투신하기도 하고, 철길을 찾아가 누워 있기도 했다. 그때마다 동네 사람들이 달려와 목숨을 건졌다.

그를 일으킨 건 부모님이다. 송 관장이 장애를 입고 집에 돌아온 뒤, 부모님은 한 번도 그 앞에서 눈물을 보인 일이 없었다. “처음엔 ‘넌 눈을 뜰 수 있다’고 하셨고, 나중엔 ‘안 보여도 할 수 있는 일이 얼마든지 있다’고 하셨죠. 좋은 병원을 수소문해 데리고 다녔고, 내가 할 만한 일이 뭔지 알아봐 주셨어요.”

그의 집은 전북 전주에서 손꼽히는 부자였다. “천석꾼이었어요. 정미소, 어물전, 석유집까지 하고 집에서 일하는 머슴만 일곱 명이었고요. 가마니에 돈을 넣어서 광에 쌓아놓고 지냈으니까요.” 아침이면 동네는 물론이고 읍내에서부터 가난한 사람들이 집 앞으로 몰려와 길게 줄을 섰다. 어머니는 쌀이며 음식을 퍼서 나눠주는 게 첫 번째 일과였다. “어려서부터 부모님께 가장 많이 들은 얘기가 ‘흉년이면 곳간 문을 열어라’였어요. 동네 어린아이 중에 밥 굶는 아이가 있다는 소식을 들으면 어머니가 아예 거둬 먹이셨죠.”

장애인이 된 송 관장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민 건 그의 부모님에게 도움을 받았던 이들이었다. 어머니가 밥 차려 먹이며 키우다시피 했던 걸인 중에 목회자나 사업가로 성공한 사람이 꽤 많았다. 이들은 송 관장이 시력을 잃었단 소식을 듣고 한달음에 찾아왔다. 송 관장을 붙잡고 기도를 하고, 희망적인 얘기도 들려줬다. “‘자살’을 뒤집으면 ‘살자’가 된다”며 “삶을 포기해선 안 된다”는 얘기가 송 관장의 가슴에 박혔다. “그분들은 저한테 정이 있는 거죠. 한마디를 해도 진심이 담겨 있으니 제가 일어설 수 있었어요. 옛 어르신들이 ‘부모가 덕을 쌓으면 자손이 누리고 산다’고 하던데, 그 말이 하나도 안 틀려요.”

시각장애인용 컴퓨터 프로그램 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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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장애인용 컴퓨터. 송 관장은 이 컴퓨터에 2000권의 책 문서를 저장해놓고 1년에 100권 분량을 듣고, 지금껏 6권의 책을 썼다. [사진 김경록 기자]


홀로서기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으니 방문을 열고 화장실에 가는 것조차 혼자 힘으로 해결하기 어려웠다. 뭔가를 시도할수록 주변에 피해를 끼치는 것 같아 자꾸 위축됐다.

당시 세상과 소통하는 유일한 창구는 라디오였다. 그러던 어느 날 귀가 번쩍 뜨이는 사연이 들려왔다. “대학교 4학년이라는 시각장애인이 보내온 사연이 나오는 거예요. 나는 대학 3학년 휴학하고 군대 갔다 시력 잃은 뒤에 배움을 포기했거든요. 시각장애인이 대학에 다닐 수 있다는 게 믿기지 않았죠.”

곧바로 방송국에 전화를 걸었다. “그 사연이 사실이냐”고 따지듯 물었다. 방송국은 사연을 보낸 사람을 송 관장과 연결해줬다. 며칠 후 그 대학생이 점자책 한 권과 흰 지팡이를 들고 송 관장의 집으로 찾아왔다. 송 관장은 오돌토돌한 점자를 처음으로 만져본 생경한 느낌을 “꼭 누에 똥 같았다”고 기억했다. 하지만 “이걸 배우면 책을 읽을 수 있다”는 대학생의 한 마디에 송 관장은 그 자리에서 점자를 모조리 외워버렸다. “점자로 책을 읽고, 흰 지팡이 짚고 혼자 걸을 수 있다면 저도 다시 대학에 다닐 수 있겠다는 희망이 생겼어요. 그날부터 제 도전이 시작된 겁니다.”

다음 날부터 당장 흰 지팡이를 더듬으며 대문 밖을 나섰다. 마주치는 동네 사람들마다 “아서라. 혼자 다니다 구덩이에라도 빠지면 황천길 간다”며 손사래를 쳤다. 대학에 다시 다니겠다고 하자 친구들은 만류했지만 부모님은 달랐다. 장애를 극복한 사람도 많다며 그를 북돋워줬다. “나중에 안 사실인데, 내가 지팡이를 짚고 대문을 나서면 아버지가 발소리를 죽여가며 저만큼 뒤에서 나를 따라오셨대요. 내가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거나 물구덩이에 빠질 때도 옆에 계셨대요. 만약 그때 아버지가 ‘거기 위험하다, 이쪽으로 가라’고 손을 잡고 이끌어주셨다면 오늘날의 저는 없을 겁니다. 아버지가 속울음을 삼키면서도 내가 혼자 설 수 있게 묵묵히 버텨주신 게 나를 온전히 성장시켜주신 겁니다.”

희망이 생기자 재활에 가속이 붙었다.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하나둘 늘어날수록 새로운 목표가 생겼다. “이때 내가 세운 3대 목표가 대학 졸업, 결혼, 컴퓨터 배우기였어요. 이 세 가지 목표를 다 이루는 데 28년이 걸렸습니다.” 엄밀히 말하면 28년간 그가 이룬 건 이 세 가지 목표를 훨씬 뛰어넘는다. 대학 졸업뿐 아니라 박사 학위까지 취득했고, 컴퓨터는 단순히 배우는 수준을 넘어 아예 텍스트가 음성이나 점자로 변환되는 시각장애인용 컴퓨터 프로그램을 개발했다. 아내를 만나 결혼했고, 송민(32)·송원(30) 두 아들을 훌륭하게 키워낸 아버지가 됐다.

사막 달리는 아버지의 눈이 돼준 두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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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아타카마사막을 횡단하고 있는 송경태(오른쪽)씨와 아들 송원씨. 사막마라톤을 부자(父子)가 완주한 세계 최초의 기록이다.


두 아들은 장교로 군 생활을 마쳤다. 송 관장이 의가사제대를 하는 바람에 끝마치지 못한 군 생활을 두 아들이 대신 명예롭게 마쳐주겠다며 장교로 자원한 거다. 둘째 아들 송원씨는 “아버지가 군에서 시력을 잃는 엄청난 사고를 당했지만 국가를 향한 원망이나 불평의 기색은 한 번도 내비친 적이 없다”고 말했다. 오히려 국가에 대한 소중함과 감사함을 강조했다. 송 관장은 “전 세계를 돌아다녀보면 국가가 없는 민족이 얼마나 비참한 삶을 사는지, 사막이나 극지방처럼 척박한 환경에서 사는 이들이 생존을 위해 얼마나 고통받는지 여실히 느낄 수 있다”며 “내가 처한 환경에 대한 소중함과 감사함을 아는 것부터가 삶의 근본”이라고 말했다.

사막 마라톤에 아들을 데리고 간 것도 이를 체험하게 하기 위해서였다. 송 관장이 사막 마라톤에 도전한 건 2005년 사하라사막부터다. 이때는 큰아들 송민씨가 국제봉사자로 동행했다. 사막 마라톤은 전체 250km를 6박7일간 완주해야 한다. 매일 40km 이상을 달려 정해진 시간 안에 캠프에 도착해야 다음 날 레이스를 이어갈 수 있는 방식이다. 다른 참가자에 비해 속도가 턱없이 느린 송 관장은 매번 마감 시간에 임박해야 가까스로 캠프에 들어왔다. 캠프에서 대기하고 있던 송민씨는 “다른 참가자가 모두 도착한 뒤에도 아버지 모습이 보이지 않으면 피가 마르는 것 같았다”며 “주최 측에 ‘아버지를 포기시켜 달라’고 몰래 부탁을 한 적도 있다”고 했다. 눈이 보이지 않는 아버지의 완주를 옆에서 지켜보면서 “사람은 무엇이든 마음 먹으면 못할 일이 없다는 진리를 새삼 깨달았다”고도 했다.

2008년 도전한 아타카마사막 마라톤에서는 둘째 송원씨가 함께 출전해 아버지의 눈 역할을 했다. 호기롭게 출발했지만 송원씨는 첫째 날부터 아버지에게 “포기하자”고 말했다. “다른 참가자들이 모두 앞서 가버리고 사막에 아버지와 나 둘만 뒤처진 채 10여 시간을 달려야 했다”며 “내가 사막에서 아버지를 보호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그 상황이 되니 자신이 없어져 포기하고 싶었다”는 것이다.

송 관장은 “오늘 레이스만 마치고 결정하자”며 오히려 아들을 이끌었다. 마감 시간을 5분 남기고 이들이 도착하자, 이미 캠프에서 쉬고 있던 모든 마라톤 참가자들이 밖으로 나와 박수 갈채와 환호로 부자를 맞았다. 결국 250km를 완주한 뒤 송원씨는 “사막에서 느낀 아버지의 자리는 이루 말할 수 없이 크고 위대했다”며 “아버지의 정신력과 의지를 진심으로 존경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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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 관장은 지난해 에베레스트 등정을 시도했다가 네팔 대지진을 만나 철수했다. “산은 언제나 그곳에 있기에 곧 다시 찾을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이렇게 엄청난 도전을 이어가는 이유는.

“나에겐 집 밖을 나가 동네 한 바퀴 돌아보는 일이나, 에베레스트를 오르는 일이나 진배없다. 보이지 않는 사람에게는 일상을 살아가는 것 자체가 모험이다. 또 모험에 수반되는 고독과 극한 상황이 나에게는 일상이다. 사막도 에베레스트도 나에게는 특별한 곳이 아니다.”

-모험에 따르는 고독과 극한 상황을 이겨내는 방법은.

“산악인들의 법칙이 있다. 정말 높고 힘든 산일수록 정상을 보지 않고, 내 앞사람 발바닥만 쳐다보는 것이다. 시선을 낮추고 한 발짝 앞만 보면서 묵묵히 전진하는 거다. 우보천리(牛步千里·소걸음으로 천리를 간다)라는 말처럼 묵묵히 걸음만 떼는 사람이 정상을 밟는다. 마라토너도 그렇다. 42.195km를 뛰어야 한다고 생각하면 출발도 못한다. 내 앞사람만 보면서 한걸음씩 떼는 거다. 사는 것도 마찬가지다. 아이들에게도 항상 어렵고 힘들수록 내일 일은 생각하지 말고 지금 할 것만 차근차근 해나가면 된다고 말한다. 오늘 할 일은 미루지 말고, 내일 일은 내일 하면 된다.”

-자기 관리에 철저한 만큼 자녀 교육도 엄격했을 것 같다.

“지금껏 호되게 나무란 적이 없다. 아내가 ‘진짜 아빠 맞냐’고 했을 정도다. 특히 아이들의 성적이나 진학, 취업 등에는 관여하지 않고 스스로 선택할 수 있게 했다. 두 아들 모두 순탄하게 대학에 들어갔고 군대에 있을 때 취업까지 확정됐다. 교대에 다니던 큰아들은 군대에서 임용고시를 통과했고, 둘째는 최전방에 복무할 때 은행에 지원해 최종 면접까지 합격했다. 내 교육 철학은 아이가 시행착오를 겪더라도 스스로 선택하고 책임질 수 있게 시간을 주자는 것이다. 아이가 미숙하게 보일 때마다 내가 ‘이래라 저래라’하고 간섭했다면 아이들이 성장하지 못했을 것이다.”

-아이를 키우면서 혼내지 않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혼 내키고 나무라는 그 속을 들여다보면 과잉보호인 경우가 많다. 아이 내면의 힘을 믿어주지 못하고, 부모 뜻대로 빨리 처리하고 싶어서 채근하는 거다. 나는 아들이 늦잠을 자도 한 번도 깨운 적이 없다. 지각을 해봐야 일찍 일어나기 위해 자기 관리를 하게 된다. 인성 교육도 강압적으로 시키지 않았다. 잘못을 해도 바로 혼내지 않고 생각할 수 있게 시간을 줬다. 둘째아들이 초등학교 5학년 때의 일이다. 내 손을 잡고 길을 안내하다 느닷없이 손을 놓더니 ‘아빠, 잠깐만’하고 사라졌다. 한참 만에 돌아와 슬그머니 손을 잡고 다시 걷기 시작했다. 그때 내 속으로 ‘친구라도 마주쳤나 보다’라고 짐작만 했다. 시각장애인 아빠의 손을 잡고 걷는 모습을 친구 앞에 들키는 게 어린아이 입장에선 충분히 상처가 될 만하지 않나. 아무 말 않고 아이의 손만 꼭 잡아줬다. 한참 지나서 원이가 ‘어렸을 때 아빠 손 잡고 가다가 맞은 편에서 친구가 오는 걸 보고 잠깐 숨었던 적이 있다’면서 ‘철이 없어서 그랬는데 정말 죄송하다’고 하더라. 다그치지 않아도 시간을 주면 아이는 제대로 성장한다.”

-지켜보기만 해도 될까.

“묵묵히 지켜보되, 부모가 스스로 솔선수범을 해야 한다. 아이에게 ‘일찍 일어나서 공부하고 주변 정리도 똑바로 하라’고 잔소리하기 전에 부모가 먼저 모범을 보이라는 것이다. 나와 아내 모두 아이들에게 ‘공부하라’는 잔소리 대신 항상 책상 앞에서 책을 읽고 글을 쓰는 모습을 보였다. 때가 되면 아이도 그 모습을 보고 자신의 생활을 바로잡는다. 큰아들은 ‘아침에 일어나 방문을 열고 나오면 아빠는 항상 책상 앞에서 점자 책을 읽고 엄마는 십자가 앞에서 기도하고 있었다’고 하더라. 부모란 이런 변함없는 모습으로 아이들의 기둥 역할을 해주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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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 관장은 아들에게 “새로운 일에 도전하려면 늘 굴욕을 겪게 돼 있다. 어떤 벽에 부딪쳐도 포기하지 않을 용기를 가져야 오뚜기처럼 도전을 계속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편지는 송경태씨가 직접 컴퓨터로 입력해 출력한 것이다. 송경태씨가 시각장애인이라 친필 편지는 부탁하지 않았다.)


-완벽한 아버지를 존경은 하면서도 가깝게 못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아타카마사막에서 첫날 레이스를 마치고 같이 뛰어준 둘째 아들이 안쓰러워 안아주려 했다. 아이가 뒷걸음질 치며 ‘아빠, 이상하게 왜 이래’라고 하더라. 그런데 6박7일 완주를 한 뒤엔 아들이 먼저 내게 달려와 안겼다. 그 뒤로는 포옹이 일상이 됐다. 몇 년 전엔 내가 먼저 아들에게 ‘안나푸르나는 올라가도, 나 혼자 사우나는 못 가겠다’고 했더니, 애들이 시간만 나면 ‘아빠, 사우나 갑시다’ 하고 찾아온다. 아이들도 부모에게 사랑을 표현하고 싶어한다. 부모가 아이를 사랑한답시고 ‘아이고, 나는 됐다. 네 몸이나 잘 챙겨라’고 말하는 건 결국 아이에게 곁을 내주지 않는 거다.”

-막내아들의 결혼식 주례사를 직접 했다고 들었다. 무엇을 당부했나.

“내가 주례사를 한 건 아니고, 주례 없이 양가 부모가 덕담을 하는 방식으로 결혼식을 진행했다. 나는 ‘너의 길을 스스로 걸어라’는 이야기를 했다. 부모가 아무리 자녀를 사랑해도 그의 길을 대신 걸어줄 순 없다. 그렇다면 스스로 걸을 수 있게 교육해야 한다. 스스로 걷기 위해서는 4가지 지침을 지켜야 한다. 첫째, 길을 걷기 전엔 미리 방향을 정해 놓아라. 둘째, 길을 떠날 때는 배낭을 잘 꾸려라. 셋째, 길이 안 보이면 잠시 멈춰 기다려라. 넷째, 안전한 길은 없다. 어떤 길도 순탄하지 않다는 걸 받아들여라. 이건 자식에게 당부하는 말이자, 내 삶의 원칙이기도 하다.”

-얼마 전 손자 육아 일기집 『하삐, 하삐』를 출간했다. 젊은 부모에게 조언하고픈 자녀 교육법이 있다면.

“자녀를 바꾸려 하지 말고, 부모가 먼저 자신을 갈고닦아 나가야 한다. 부모가 도전하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고 자녀는 스스로 성장한다는 걸 믿어라. 나는 지금도 1년에 책을 100권씩 읽는다. 10년째 지켜온 습관이다. 주변에 보면 1년에 책 10권은커녕 한 권도 제대로 읽지 않고 자녀에게 훈계를 늘어놓는 부모도 많다. 아무 공부 없이 자녀에게 쏟아내는 소리는 교육이 아니라 언어폭력이다. 아이는 나의 말이 아니라, 나의 행동과 습관을 보고 따라온다는 사실을 기억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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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경태는…

1961년 전북 전주시 오수마을 출생
 80년 전북대 기계공학과 입학
 82년 대학 3학년 휴학 후 군입대·수류탄 사고로 실명 후 의가사제대
 90년 전북 한일장신대 사회복지학과 졸업
 99년 미국 대륙 도보 횡단
2000년 전북 한일장신대 사회복지대학원 석사 학위 취득
2004년 대한민국 신지식인 선정.
2005년 사하라사막 마라톤 완주
2007년 고비사막 마라톤 완주
2008년 아타카마사막 마라톤 완주(아들 송원씨와 함께), 남극 마라톤 완주
2009년 나미브사막 마라톤 완주
2010년 타클라마칸사막 마라톤 완주
2011년 전북 서남대 일반대학원 사회복지학 박사 학위 취득
2012년 히말라야 안나푸르나 ABC 등정, 미국 그랜드캐니언 울트라 완주 
2014년 히말라야 아일랜드피크 6189m 등정, 아프리카 킬리만자로 5895m 등정
2015년 에베레스트 캠프1 6400m 등정(정상 도전 중 네팔 대지진으로 철수)
2016년 엄홍길휴먼재단 도전상 수상

○ 인생의 롤모델: 기다림과 지켜보는 교육의 자세를 알려준 아버지, 흉년이면 곳간 문을 열고 나눔과 봉사를 실천한 어머니
○ 내 인생을 바꾼 책: 앨빈 토플러의 『제3의 물결』(시력을 잃기 전 이 책을 읽고 앞으로 컴퓨터의 시대가 올 것이라 생각했다. 시력을 잃은 뒤에도 컴퓨터를 배우기 위해 부단히 노려했고 세상과의 소통의 끈을 놓지 않을 수 있었다)
○ 교육 철학: 부모는 자녀의 본보기다. 아이를 나무라기 전에 부모가 모범을 보여라

전주=박형수 기자 hspark9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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