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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후화 되는 파이크 작품 되살릴 방법 찾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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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초부터 백남준의 예술공방에서 협력자로 일한 5명. 왼쪽부터 이정성, 마크 파스팔, 폴 게린, 노만 발라드, 요헨 자우어라커. [사진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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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백남준의 손’이라 불렸다.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1932~2006·사진) 곁에서 그의 비전을 현실로 실현해주던 기술 테크니스트이자 협업자들이다.

이정성 등 공동 작업자 5명
“21세기 미디어 세상 내다본 사상가
영혼 자유로웠던 무정부주의자”
10주기 맞아 생전 모습, 추억 되새겨
“3월에 백남준사이트 오픈” 발표도

‘백남준 공장(Paik Factory)’에서 일했던 5명이 백남준 10주기인 지난 달 29일 20여 년 만에 다시 만났다. 이들이 모두 모인 건 백남준이 1993년 베니스 비엔날레 독일관 대표작가로 참가해 황금사자상을 받았던 때 이후 처음이다. 이정성(72), 마크 파스팔(66), 노만 발라드(65), 요헨 자우어라커(59), 폴 게린(58)은 백(白)의 독일식 발음인 파이크(Paik)를 그리움에 젖어 부르며 회상에 잠겼다.

“파이크는 공동 작업자를 창의력 넘치는 동지처럼 아꼈어요. 그는 엄마처럼 너그러웠고 우리는 가족 같았죠. 재미있으면 직접 해보라며 아이디어를 존중해줬어요. 21세기 미디어 세상을 내다보고 세계적 비전을 제시한 사상가였죠.” 23년 간 백남준의 공동작업자였던 자우어라커는 “그가 살아 있을 때 같이 만든 작품들을 관리하며, 죽은 작가를 위해 일하는 것은 특이한 경험”이라고 말했다.

백남준문화재단(대표 이사장 이영혜)이 27~28일 주최한 국제 심포지엄 ‘백남준 테크니스트 3인에게 듣는다/묻는다: 백남준 비디오 조각 보존과 뉴미디어 아트의 미래’에서도 그의 작품을 어떻게 관리해야 할지에 관한 다각적인 검토가 이뤄졌다.

한 예로 아날로그 텔레비전이 표준이던 시절에 제작된 그의 작품을 고해상도 디지털 텔레비전 시대에 어떻게 원작의 비전을 유지하며 훼손하지 않고 되살릴 수 있는가 등의 문제다.

81~97년 공동작업자였던 폴 게린은 “파이크와 같이 일하기 시작한 첫날부터 영상 작품의 노후화와 갱신의 주기는 큰 걱정거리였다”며 “그래서 더 우리 역할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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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러리 현대의 백남준 10주기 추모전에 나온 1990년 작 ‘샬롯 무어맨’. [사진 갤러리 현대]

백남준의 한국인 파트너로서 5명 중 맏형 구실을 하고 있는 이정성씨는 “돌아가신 지 10년이 흘렀는데도 작품 보존의 뚜렷한 줄기를 못 잡고 있어 선생님께 죄송한 마음뿐”이라고 울먹였다.

그러면서 “미국이나 독일에서는 백남준 작품의 특성을 고려해 장기 보존에 대비하고 있는데 반해, 한국은 현재 작동하는 모니터를 수리하는데도 예산상의 부담으로 미루는 경우가 많다”고 안타까워했다.

1986년 시카고아트페어에 최초 전시된 ‘로봇 가족’ 시절부터 백남준을 도왔던 마크 파스팔은 “그는 누구와도 눈높이로 대화하며 영혼이 자유로웠던 무정부주의자”라고 말문을 열었다. 지금 젊은 예술가들은 백남준 작품에서 협력의 중요함을 봐야한다고 조언했다. 특히 비디오를 공동체의 공동자산으로 인식한 점이 그의 혁신적인 태도였다고 말했다.

노먼 발라드는 “오는 3월에 백남준 웹사이트를 개설한다”고 밝혀 4명의 환호를 불러일으켰다. 발라드는 “그의 중요작품 50점을 선별하고 제대로 된 정보를 정리해 앞으로 백남준 연구의 초석을 놓을 계획”이라고 밝혔다.

백남준문화재단 이사인 이경은씨는 “국내에서도 백남준의 ‘전작 도록(카탈로그 레조네)’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지만 시작 단계에서 여러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전했다.

5명은 이날 오후 서울 봉은사 법왕루에서 열린 추모제에 참석해 헌화하고 앞으로 백남준 작품 보존과 평가를 위해 협력하기로 뜻을 모았다. 폴 게린은 “백남준은 몹시 복잡하고 복합적인 천재형 인간”이었다고 돌아봤다.

1960년대에 동양에서 온 ‘문화테러리스트’로서 그는 서구 중심의 예술질서를 교란하려 돌진했다. 박제된 서구 예술의 죽음을 선포하고 모든 사람이 즐길 수 있는 예술을 꿈꿨다.

백남준아트센터 초대 관장을 지낸 이영철 계원예술대 교수는 “백남준 만큼 문명사 측면에서 한국의 국가 브랜드를 놓은 사람은 그동안 없었다”고 평가했다. 백남준 10주기는 ‘글로벌 브랜드’ 백남준을 다시 보고 제대로 연구하는 원년이 될 수 있다.

글=정재숙 문화전문기자 johanal@joongang.co.kr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백남준=20세기 예술의 지형을 뒤흔든 비디오 아트의 창시자이자 지구 도시를 연결하는 위성 아트의 선구자다. 과학자이며 철학자인 동시에 엔지니어인 새로운 예술가 종족의 선구자로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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