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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혁재 사진전문기자의 '뒷담화'] 김정운의 격한 외로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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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가지문제연구소’ 김정운 소장의 인터뷰 통보에 올 것이 드디어 왔다 싶었다.
인터뷰를 빌미로 속내를 듣고 사진을 찍고 싶은 사람으로 손꼽고 있던 터였다.

마침 『가끔은 격하게 외로워야 한다』는 책을 냈다고 했다.
게다가 ‘여러가지문제연구소’도 새로 꾸몄다고 했다.
사람도 사람이거니와 책과 그 공간도 궁금했다.

책 제목부터 묘한 끌림이 있었다.

책 제목으로 연상한다면 ‘여러가지문제연구소’는 ‘격한 외로움의 해소 공간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를 처음 만난 건 거의 일 년 전이었다.
혜민스님이 묻고 그가 답하는 대담에서였다.
여러 가지 사정으로 그 대담을 듣지 못할 형편이었다.
사진촬영도 대담 중간에 잠깐 짬을 내야만할 여건이었다.

아침부터 슬슬 내린 눈이 제법 쌓인 날이었다.
혜민스님과 김정운소장을 중앙일보 옥상 눈밭에 서게 했다.
그날 대담의 핵심 주제가 무엇인지 김 소장에게 물었다.

‘재미’와 ‘의미’라고 답했다.

‘삶은 재미있으되 의미 있어야 한다’는 뜻으로 들렸다.

눈밭에 재미와 의미를 써 달라고 주문했다.
그가 발로 ‘재미’를 가로로 먼저 썼다.
그리고 ‘미’자 위에 세로로 ‘의’자만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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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흥적인 질문과 요구에 한 치의 망설임 없이 눈밭에 쓴 ‘재미와 의미’,
가로로 읽으면 재미, 세로로 읽으면 의미였다.

사실 가로로 ‘재미와 의미’를 쓸 것이라 지레짐작 했었다.
그의 기발함에 감탄했다.

시간과 상황이 여의치 않아 다음을 기약해야 했다.
그리고 손꼽던 만남이 거의 일 년 만에 이루어진 게다.

그의 연구소로 들어섰다.
반갑게 인사를 건네는 그의 얼굴, 왠지 말끔했다.

얼굴에서 '격한 외로움'이 느껴지지 않는다며 농담을 건넸다.

“잘생겨 지신 거 같은데요?”

“좀 전에 사우나를 하고 와서 그래요”라며 거침없이 웃었다.

사실 카메라 앞에서 거침없이 웃을 수 있는 사람, 드물다.

대부분 거침없이 웃다가도 카메라를 의식하는 순간 표정이 굳어지게 마련이다.
카메라가 있건 없건 거침없는 표정, 남다른 내면의 자신감일 터다.
이십 년 이상 사진을 찍어 온 내 경험에서 보면 적어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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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기자가 물었다.

“교수를 관뒀으니 호칭을 뭐라 해야 할까요?”

“소장도 그렇고 이제 교수도 아니니 작가 어때요? 글 되지, 그림 되지….”

또 거침없이 웃으며 우스개처럼 말했지만, 이젠 작가로 살겠다는 의지가 담겨있었다.

취재기자가 공간에 대해 질문을 했다.
그가 기다렸다는 듯 답했다.
 

너무 좋아요. 이런 공간을 만들었다는 게. 친구의 건물인데 거의 공짜로 빌렸어요. 꿈만 같아요.”

‘꿈만 같다’는 그의 공간을 둘러봤다.

하나의 방으로 이루어진 공간이지만 그 안에서 나름의 구분이 있었다.

책장과 책상, 음향시스템과 소파, 이젤과 그림 도구, 커피 용기와 테이블.
공간으로 판단컨대,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음악을 듣고, 차를 나누는 일이 그의 꿈이었다는 얘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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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중 ‘가끔은 격하게 외로워야 한다’는 의미를 그가 말했다.
 

현대인은 고독하면 안 된다는 강박관념에 매여 산다. 평균수명이 짧았을 땐 문제가 안 된다. 백세시대가 되면 문제가 된다. 매년 건강검진 받는 시대이니 돌연사를 하고 싶어도 못할 정도가 된다. 그러면 고독이 필연적으로 따르게 된다. 외로운 개인은 외로움을 회피하려 적을 만들게 된다. 적을 만들면 내 편이 생긴다고 생각하게 된다. 분노·적개심으로 고독감·상실감을 해결하려는 것이다. 적을 만드는 건 이데올로기 때문이 아니라 외로움 때문이다. 쓰나미같은 집단 공황이 올 수도 있다.”

받아 적기도 만만치 않을 만큼, 빠르게 이야기를 풀어간다.
표정에서 웃음기는 어느새 없어졌고 진지함만 있었다.

“외로움은 해결하는 게 아니고 받아들여야 하는 거다. 자기를 상대화해서 자기를 들여다 봐야 한다. 외로우면 정말 나에게 중요한 것과 내가 좋아하는 것을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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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하게 외로워야 할 이유였다. 나아가 답까지 들려줬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공부해야 한다. 주체적인 삶은 내가 좋아하는 것을 공부할 때 비로소 가능해진다. 공부란 남의 돈 따먹기 위한 공부가 아닌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의 공부를 말하는 거다.”


갑자기 나의 카메라를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쉽게 말해 사진, 커피 같은 거 공부하는 거다. 평생 좋아할만한 것을 찾고 공부하는 거다.”

그는 교수를 그만두고 일본으로 가서야 자신을 살펴보게 되었다고 했다.
그 외로움을 통해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것을 찾았다고 했다.
바로 그림이었다.
심지어 외로움이 준 선물이라고 했다.

그러고 보니 책장에 기대어 있던 그림이 그가 직접 그린 것이었다.
그것이 바로 그의 책 표지 그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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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그가 인터뷰 내내 말했던 것은 바로 자신의 이야기였다.

바쁨과 성공을 동일시하며 살았고, 그렇게 산 게 제대로 된 삶이 아니었으며, 격한 외로움 속에서 답을 찾은 그의 고백이었다.

인터뷰 후 사진을 한 컷 더 찍자고 부탁을 했다.

“김 작가님, 예전 어느 방송에서 퍼머머리 이야기를 들은 적 있습니다. 인생을 퍼머 전과 후로 나뉜다고 하셨죠. 퍼머를 하고 보니 그에 맞는 옷 스타일이 있고, 옷 스타일을 바꾸니 행동도 바뀌었다고 하셨잖아요. 머리를 넘기고 사진을 한 장 찍고 싶은데요.”

“아! 맞아요”며 거리낌없이 포즈를 취했다. 당당했다.
머리 이야기를 꺼내고 사진을 찍은 건 그의 원초적 모습을 기록해놓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거기서부터 비롯되어 오늘에 이른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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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여수로 또 떠날 계획이라고 했다.
서울에 있으면 잘난 척만 하게 되고 자꾸 실수를 한다고 했다.
게다가 여기 있으면 또 바빠져 당신 속에 든 걸 제대로 꺼낼 수 없다고 했다.
‘격한 외로움’후 만든 공간과 현재의 모습, 여기가 끝이 아니란 얘기였다.

그렇다면 이 다음은 또 뭘까?

권혁재 shotg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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