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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NBA 스타, 모형 운동화 만들어…지난해 2억5000만원 매출 올렸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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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규어 아티스트’ 이찬우 작가가 서울 성산동 작업실에서 실물 운동화(머리 위)와 디자인·무늬·재질까지 똑같은 모형 운동화를 선보였다. [사진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장난감을 수집하는 어른에게 ‘가혹한 시절’이 있었다. 불과 2~3년 전만 해도 ‘애 같은 취미’를 즐긴다는 시선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이들을 가리키는 ‘키덜트(Kid+Adult)’ ‘덕후(일본어 ‘오타쿠’에서 파생된 말로 한 분야에 몰입한 사람을 지칭)’에도 부정적인 의미가 담겨 있었다

[사람 속으로] 1세대 피규어 아티스트 이찬우


. 하지만 개인의 취향과 그 가치를 인정하는 사회 분위기가 형성되면서 이들은 세상 밖으로 나오고 있다. 이른바 ‘덕밍아웃(덕후들이 자신의 취미를 당당히 밝히는 것)’의 시대. 시장도 쑥쑥 성장하고 있다. 업계는 한국 키덜트 시장을 약 5000억~7000억원 규모로 추산한다.

 이제 키덜트족은 한발 더 나아가고 있다. 매니어적 전문 지식을 바탕으로 소비자에서 생산자로 거듭나는 추세다. 이런 사람들을 가리키는 신조어도 등장했다. 특정 분야에 대한 취향을 직업으로 확장시킨 ‘테이스테셔널(Tastessional, Taste+Professional)’이다.

트렌드 분석가인 김용석 ‘날카로운상상력연구소’ 소장은 “취향이 곧 콘텐트가 되는 시대, 덕후는 중요한 생산자 집단으로 변신 중이다”고 말했다.

 국내 1세대 피규어(Figure·인간과 동물 모양 장난감) 아티스트로 불리는 이찬우(44) 작가는 이런 추세를 대표하는 인물이다. 피규어 수집광이었던 그는 취미로 직접 피규어를 만들기 시작해 2007년부터는 아예 ‘피규어 아티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지난 13일 그의 닉네임 ‘쿨레인(cool rain·차가운 비)’에서 이름을 딴 작업실 ‘쿨레인 스튜디오’(서울 마포구 성산동)를 찾았다. 10㎡(3평) 남짓한 아담한 작업실은 그가 만든 피규어로 가득했다. 평균 신장 2m인 미국프로농구(NBA) 스타들을 13㎝짜리 피규어로 만날 수 있다.

2010년 NBA와 손잡고 만든 피규어 시리즈로 금방이라도 공을 잡고 뛰어오를 듯하다. 작업실 한편 벽장엔 새끼손가락 길이보다 짧은 모형 운동화 100여 켤레가 놓여 있었다. 2008년 나이키의 의뢰로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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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찬우 작가가 2010년 NBA와 손잡고 만든 피규어 시리즈. 그가 대량 생산한 첫 번째 피규어다.


그의 작업실에 둔 실물 운동화 ‘나이키 덩크 코르크’와 모형 운동화(5.5분의 1 크기)를 비교해봤다. 디자인과 무늬는 물론이고 재질(코르크)까지 똑같았다. 그는 “평균 너비 2㎜인 운동화 끈은 핀셋을 이용해 실제 운동화 끈을 묶듯 하나하나 묶었다”고 말했다.

 ◆수집가에서 예술가로=이찬우 작가는 20대 후반 피규어에 푹 빠졌다. 팀 버튼 감독의 클레이 애니메이션 ‘크리스마스 악몽’을 보고 나서였다.

당시 그는 2D 애니메이션 회사에서 후반 작업 일을 하다 직장을 옮겨 3D 애니메이터로 일하고 있었다. 주머니를 털어 ‘크리스마스 악몽’과 애니메이션 ‘스폰’의 피규어들을 사 모았다.

“화면 속 주인공을 손으로 만졌을 때의 느낌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어요.” 여기서 멈추지 않고, 피규어를 직접 만들어 보기로 했다. 하지만 배울 수 있는 곳이 마땅치 않았다. ‘크리스마스 악몽’ 아트북을 교본 삼아 ‘독학’에 나섰다.

그는 대학에서 화학을 전공했다. 미술이나 조형을 전문적으로 공부한 적도 없다. 어린 시절 장난감 조립 등을 곧잘 해 “손재주 있다”는 말을 들은 게 전부였다.

우선 스컬피(찰흙의 일종), 실리콘, 도료와 같은 재료와 조형 도구들을 사야 했다. 그는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수집한 피규어들을 눈물을 머금고 하나씩 내다 팔았다”고 했다.

작은 완성품을 얻기까지는 생각했던 것보다 더 큰 노력이 필요했다. 피규어 제작 단계(스케치→조형→복제→도색)별로 혼자 터득해 나갔다. 원하는 얼굴을 얻기 위해 조형의 주재료인 스컬피를 빚고 또 빚었다. 운동화 피규어를 만들 땐 실제 운동화를 분해해 제작 원리를 터득하기도 했다.

“3년쯤 지나자 비로소 머릿속에 떠오르는 피규어를 실제로 만들 수 있게 됐어요.” 스스로 자신의 작품에 확신을 갖게 된 2007년 피규어 아티스트로 전업을 선언했다.

 그가 내놓은 첫 작품은 ‘몬스터즈 크루’였다. 한국의 비보이를 콘셉트로 한 시리즈였는데, 그의 개인 블로그를 통해 판매했다. 문제는 시간이었다. 모든 걸 ‘핸드메이드’로 하다 보니 20개를 만드는 데 6개월이나 걸렸다. 작업을 할 땐 행복했지만 현실은 팍팍했다.

“한 개를 80만원에 팔아 40만원을 남긴다고 했을 때 6개월이면 800만원을 벌어요. 한 달에 130만원가량으로 매달 카드 값 내기도 힘들 만큼 생활고를 겪었지요.” 부인과 그해 태어난 쌍둥이 두 딸에게 미안해 일반 회사에 일자리를 알아봤다.

그런 그를 다시 꿈꾸게 한 건 한 통의 전화였다. 나이키코리아 측이 “몇 년 동안 개인 블로그에 올린 피규어 창작품들을 지켜봤다”며 “전시회를 함께하자”고 제안했다. 온전히 수작업으로 만든 피규어 70여 개와 운동화 101켤레를 2008년 2월 선보였다.

그 후 그의 대표 캐릭터 피규어인 ‘덩키즈’(농구하는 원숭이)로 서울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전시회를 열 수 있었다. 2010년엔 미프로농구(NBA)와 손잡고 농구 스타들의 피규어를 제작하면서 세계 무대에 진출했다. 그가 대량으로 생산한 첫 피규어이기도 했다.

◆“최근 1~2년 사이 아티스트 급증”=피규어 아티스트는 세상에 없는 창작품을 만들어낸다는 점에서 기존 캐릭터를 똑같이 만드는 원형사와는 다르다.

이찬우 작가를 필두로 해외 수입 의존도가 높은 피규어 시장에 도전장을 내는 국내 아티스트가 늘고 있다. 이 작가는 “최근 1~2년 사이 아티스트들이 급증했다”고 말했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피규어 산업 종사자들의 말을 종합해 볼 때 현재 국내 피규어 아티스트는 70~100명으로 추산된다. 2000년대 들어 피규어 수집이 대중화되면서 피규어를 많이 접한 수요자들이 아티스트로 변신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20~30대 젊은 작가들은 아티스트 그룹을 만들어 작업실을 함께 쓰기도 한다. 각자의 개성을 살린 작품을 만들면서 공동 작업도 한다.

 한국인의 손재주는 이미 세계 피규어 업계에 정평이 나 있다. 이 작가는 “홍콩의 유명 피규어 제작사 ‘핫토이’에서 실력을 인정받는 상당수가 한국인”이라고 말했다.

피규어 아티스트로 명성을 얻으면 경제적인 성공도 뒤따른다. 이 작가는 “지난해 매출이 2억5000만원 정도 된다”고 말했다.

심태선(38) ‘태륜’ 대표도 취미를 자신의 전문 분야로 개척한 대표주자다. 태륜은 2012년부터 ‘로보트 태권 V’ 캐릭터를 피규어로 제작하고 있다. 심 대표는 “지난해 290만원대인 스태추(Statue·전신상) 50개가 완판됐다”고 소개했다.

 피규어 박물관도 속속 생겨나고 있다. ‘토이키노’(서울 중구 정동)엔 피규어를 비롯한 장난감 30만 점이 전시돼 있다.

손원경(44) 관장은 2006~2012년 서울 삼청동에서 운영하던 박물관을 닫고 수집품을 더 늘려 지난해 3월 이곳에 재개관했다. 그는 30년 가까이 총 40만 점의 장난감을 모았다고 한다. 손 관장은 “10년 전엔 피규어로 박물관을 만든다고 하자 주변에서 손가락질했다. 그런데 지금은 전국에 피규어 박물관이 10곳쯤 된다”고 말했다.

피규어 제작을 배울 수 있는 강좌나 학원도 늘고 있다. 2010년 시작된 KT&G 상상마당 아카데미 ‘SSMD 디자인 피규어 제작과정’을 통해선 지금까지 30명가량의 아티스트가 배출됐다. “손재주가 특출나지 않은 일반인도 6개월 정도 배우면 피규어 제작 기술을 익힐 수 있다”는 게 이 작가의 설명이다.

 하지만 국내 피규어 산업은 아직 걸음마 단계다. 열악한 피규어 제작 환경은 시급히 풀어야 할 과제다. 20대인 한 피규어 아티스트는 “생업을 이어 가기 위해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고 했다. 피규어로 제작해 인기를 끌 만한 국내 캐릭터의 부재도 아쉬운 점으로 꼽힌다.

한창완 세종대 애니메이션학과 교수는 “사람들이 특정 피규어를 사는 건 그 캐릭터가 매력적이기 때문이다. 캐릭터 창조가 우선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또 피규어 작가들이 노력에 대한 충분한 대가를 받으려면 저작권 보호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글=임선영 기자 youngcan@joongang.co.kr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S Box] 실물 크기 피규어 ‘마이 론섬 카우보이’ 164억원에 낙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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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규어는 1960년대 미국에서 탄생했다. 캐릭터가 부각된 만화·영화 산업이 부흥하면서다. 60년대 중반 피규어로 처음 나와 인기를 모은 ‘지.아이.조’는 ‘액션 피규어(Action Figure)’의 시대를 열었다.

액션 피규어란 팔, 다리 등을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게 관절을 설계해 다양한 자세 연출이 가능하게 만든 제품이다. 일본도 60년대부터 액션 피규어 제작에 나서면서 미국 다음으로 주요 생산국이 됐다.

70년대 들어 배트맨·수퍼맨·스파이더맨과 같은 수퍼히어로 캐릭터가 인기를 끌었다. 만화가 토드 맥팔레인은 92년 자신이 그린 만화 ‘스폰’의 캐릭터로 액션 피규어를 제작해 큰 성공을 거둔다.

그 후 사이드 쇼, 젠틀 자이언트 등 여러 제작사가 생겨나며 본격적인 수집용(성인용) 피규어 시장이 형성된다. 2000년대가 되면서 피규어 매니어는 전 세계로 확산됐다. 2014년 기준으로 미국 내 캐릭터 피규어 제작사는 50여 곳에 이른다.

피규어의 종류는 다양하다. ‘액션 피규어’는 사이즈에 따라 12인치(약 30㎝), 7인치(약 16㎝), 3.37인치(약 10㎝) 등으로 나뉜다. ‘버스트(Bust)’는 상반신 조각을, ‘스태추(Statue)’는 전신 조각을 말한다. 실물과 1대 1 사이즈 스태추인 ‘라이프 사이즈(Life Size)’는 각종 경매에서 비싼 값에 낙찰되는 ‘초고가’ 피규어다.

세계에서 가장 비싼 피규어는 일본 현대 미술작가 무라카미 다카시가 만든 ‘마이 론섬 카우보이(My Lonesome Cowboy·사진)’로 알려져 있다. 높이 2m가 넘는 전라의 남성 피규어 작품으로 뉴욕 소더비 경매에서 1516만1000달러(약 164억원)에 낙찰됐다.

※참고: 손원경, 『더 토이북』(매일경제신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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