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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그림 보고도…몸 상처 보여줘야 학대라는 어른들

40대 여성 E씨가 아홉 살 난 의붓딸을 학대하기 시작한 것은 2011년부터였다. E씨는 딸에게 설거지를 시켰다가 말을 듣지 않자 훈육 차원이라며 스케치북에 ‘엄마에게 대들지 않겠습니다’라고 쓰게 했다. 이어 스케치북을 들고 두 시간 동안 서 있게 했다.

2013년에는 아무런 이유 없이 보드마커로 딸의 얼굴을 검게 칠했다. 한 달 뒤엔 학교에서 할 발표 연습을 시끄럽게 한다며 빨래집게로 입술을 집고 청테이프로 감아놓았다. 급기야 2014년 한겨울엔 딸의 머리채를 잡고 물을 채운 욕조에 넣었다 뺐다를 15차례 반복한 뒤 옷을 벗겨 밖으로 내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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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여 동안 학대 수위가 갈수록 심해졌지만 주변에선 눈치채지 못했다. E씨는 지난해 상습 학대 혐의(아동복지법 위반)로 기소돼 광주지법에서 징역 1년을 선고받았다. E씨 행위는 대부분 ‘정서학대’로 인정됐다.

정서학대는 아이들에게 가해지는 폭언, 상처가 남지 않는 물리력 행사 등을 말한다. 신체·정서·성(性) 학대 등으로 나뉘는 아동학대의 한 유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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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혜정 명지대 아동심리치료학과 교수는 “정서학대는 그 자체만으로 아동의 삶에 트라우마를 남긴다”며 “겉으로는 멀쩡해 보여도 우울증이나 반사회적 행동으로 발전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국내에선 상대적으로 신체학대보다 경미한 것으로 인식돼 법적 처벌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지 않아 문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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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 중앙아동보호 전문기관에 따르면 매년 발생하는 아동학대 사건 유형 중 비중이 가장 높다. 2012년 전체 학대사건의 38.1%를 차지했고 2014년 40.0%로 늘었다. 같은 기간 성 학대가 4.5%에서 2.9%로 줄어든 것과 대비된다.

국내에서 정서학대 개념이 처음 명시된 건 2000년 아동복지법 개정안에서다. 하지만 대법원 판결은 2011년에야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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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서학대에 대해 ‘물리력 행사가 없는 학대 행위와 물리력을 행사했지만 신체의 손상까지는 이르지 않은 행위’라고 판시했다.

스펀지 블록으로 아동의 머리를 세게 때린 어린이집 교사, 지적 장애 딸의 허리에 끈을 묶어 다닌 아버지, 초등생 아들을 훈육한다며 세탁기에 넣고 돌린 아버지에 대해 정서학대를 유죄로 인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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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선고형량은 각각 벌금 300만원, 징역 1년6개월에 집행유예 3년,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에 그쳤다.

정서학대는 당사자 자백이 없으면 유죄가 인정되는 경우가 드물다. 광주지법은 지난해 생후 2개월 된 딸이 시끄럽게 운다며 칼을 들이대고 “죽여버린다”고 욕설을 하고 머리 등을 때린 혐의로 기소된 20대 남성의 정서학대에 대해 무죄로 판결했다.

재판부는 “어떤 행위가 정서학대에 해당하려면 아동이 정신적인 고통을 느껴야 하는데 생후 2개월의 영아는 ‘죽인다’는 말과 흉기의 위험성을 인지할 능력이 없다”고 설명했다. 신체학대만 인정해 징역 8개월을 선고했다.

반면 대전지법은 어린이집 교사 학대 사건에서 ‘아동이 정서학대를 당할 때 웃고 있었다고 해도 이를 아동의 심리가 그대로 표현됐다고 보기 어렵다’는 전문가 의견을 바탕으로 정서학대를 인정했다. 비슷한 사안을 놓고 정반대 판단을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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솜방망이 형량도 문제가 되고 있다. 지난해 의정부지법은 아이들을 흉기로 수차례 위협한 30대 주부 F씨에 대해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F씨는 남편과 다투고 “아이들과 함께 죽겠다”면서 13·6·5살 삼남매의 목에 흉기를 들이대고 이 장면을 동영상으로 촬영하는 등 정서적 학대를 한 혐의를 받았다. 삼남매는 정서장애를 호소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F씨가 반성하고 남편이 F씨와 아이들을 함께 잘 돌보겠다고 했다”며 그를 아이들 곁으로 돌려보냈다. 청주에선 자녀들의 멱살을 잡고 “개XX, 집에서 쫓겨나고 싶냐”라고 폭언한 아버지가 벌금 400만원을 선고받았다.

이런 경우 외국에선 엄벌에 처한다. 영국에선 2014년 아동을 정서적으로 괴롭힌 부모에게 최대 징역 10년을 선고할 수 있도록 한 ‘신데렐라법’이 의회를 통과했다. 미국은 아동학대 신고의무자를 ‘모든 성인’으로 규정하고 있다.

▶관련 기사
① 5.7세 아동학대로 숨져도 가해자 6.66년만 살면 나온다
② 딸 학대로 기소유예 계모, 다시 때려 숨지게
③ 엄마 인형 들고 아빠 인형에 죽어라’…“부부싸움 본 아이가…헉”

황옥경 한국아동권리학회장은 “외국처럼 이웃이나 친지로부터 가해자의 평소 양육 방식에 대한 진술을 확보해 이를 법정 증거로 적극 활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유정 기자 uuu@joongang.co.kr

Q. 다음 중 정서적 아동학대로 유죄 판결을 받지 않은 경우는?

① 지적장애 1급 딸이 통제가 안 된다며 딸 허리에 끈을 묶어 다닌 A씨
② 생후 2개월 된 딸에게 흉기를 들이대며 “죽여버린다”고 한 B씨
③ 11세 아들을 세탁기에 들어가도록 한 뒤 2초간 버튼을 누른 C씨
④ 스펀지로 3세 아동의 머리를 세게 한 대 때린 어린이집 교사 D씨

문제의 정답 ( ② )

B씨 사건을 심리한 광주지법은 “정서학대가 성립하려면 아동이 부정적인 인식을 해야 하는데 생후 2개월의 영아는 B씨의 언행을 인지할 능력이 없다”며 정서학대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①, ③, ④ 지문의 사건은 법원이 정서학대로 판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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