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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원화 계좌 유지 협의를”…콧대 높아진 이란 묵묵부답

서울 강남구 테헤란로에는 이란 최대 시중은행인 멜라트은행의 서울지점이 있다. 멜라트은행의 단 네 곳뿐인 해외 지점 중 하나로 2001년 개설됐다. 한국과 이란의 관계를 상징하는 존재다.

그러나 이 지점은 2010년 이래 최근까지 사실상 ‘개점 휴업’ 상태였다. 이란의 핵 개발 의혹에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대(對)이란 제재를 결의했고, 금융당국은 이 지점의 외환·무역 업무를 제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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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란과 한국의 교역액도 2011년 174억 달러에서 지난해 61억 달러로 3분의 1 토막 났다. 이란과 금융 거래가 엄격히 제한된 상태에서 그나마 교역이 유지될 수 있었던 건 우리은행과 기업은행에 개설된 원화 계좌 덕이었다. 한·이란 당국이 고심 끝에 연 ‘우회로’이자 ‘숨통’이었다.

 이 계좌에선 이란과의 거래가 원화로 이뤄진다. 국내 정유사가 이란의 석유회사로부터 원유를 수입하면 대금을 이란 측에 보내는 대신 이 계좌에 원화로 입금했다. 입금 사실이 통보되면 이란 중앙은행은 현지 화폐로 자국 석유회사에 대금을 내줬다.

반대로 국내 수출기업은 이 계좌에 쌓여 있는 원화로 수출 대금을 지급받았다. 이후 이 계좌에는 수조원이 쌓였다. 유가 폭등으로 원유 수입 대금이 급증하면서다. 많을 때는 5조원에 달했지만 현재는 3조~4조원가량일 것이란 게 금융권의 추산이다.

 이 계좌는 우리은행과 기업은행에도 ‘알짜 자산’이었다. 0.1%가량의 요구불예금 금리만 지급했기 때문이다. 예상치 못하게 거금이 쌓이면서 이란과 갈등이 불거지기도 했다. 2012년 이란 중앙은행은 금리를 높이지 않으면 계좌 이용을 중단하겠다며 우리 당국을 압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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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관계자는 “이후 협의를 통해 현재는 국고채 금리 수준(3년물 기준 1.6% 안팎)을 지급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 계좌에 문제가 생기면 대(對)이란 교역 전반에 파장이 미칠 수 있는 건 지금도 마찬가지다.

미국은 이란과의 달러 거래는 여전히 제한하고 있다.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화폐를 갖지 못한 데다 외환시장도 원-달러 외에는 없는 한국으로선 제재가 풀려도 당장 다른 마땅한 결제 수단이 없다. 게다가 대외자산 동결 조치가 해제되면서 이란의 입지는 더 강해졌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과거엔 미국이 허용하지 않으면 원화 계좌에서 이란이 단 한 푼도 빼 갈 수 없었지만 이제는 원칙적으로 ‘돈 주인’ 마음”이라고 말했다. 애매했던 ‘갑을(甲乙)’ 관계가 명확해진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이란이 계좌에 들어 있는 자금의 일부라도 본국으로 송금하겠다는 의향을 내비치자 한국 정부의 마음은 바빠졌다. 정부는 이란 중앙은행을 상대로 이런저런 협의를 하자고 제안하고 있지만 이미 이란의 콧대는 높아질 대로 높아진 분위기다.

정부 한 관계자는 “이란 측으로부터 아직 구체적 협의 일정조차 통보받지 못한 상태”라고 말했다.

 정부도 복안은 있다. 이란을 향해 설득전을 펼치면서 한편으로는 원화 계좌를 보완할 유로화 결제시스템 등을 구축하겠다는 계획이다. 이란 역시 결제통화를 원화 일색에서 벗어나 유로화·위안화·엔화 등으로 다변화하고 싶다는 의향을 나타내고 있다.

다만 새로운 시스템 구축엔 상당한 시간이 걸리는 데다 넘어야 할 고비도 많다. 당장 원-유로화 환전에 불가피한 달러의 개입을 미국이 어느 정도 허용해줄 것인지가 관건이다. 유로화 거래는 원화 계좌에 비해 위험도 크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유로화 거래는 한국 기업과 유럽계 은행, 이란 거래처 사이에 돈이 오가야 하는데 원화와 달리 금융당국이 완벽히 감독할 수 없다”며 “그 과정에서 달러화가 섞이거나 위법자금을 걸러내지 못하면 국내 기업과 금융사가 미국으로부터 제재를 받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미국이 사전에 상당한 수준의 ‘안전망’ 구축을 요구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이란 특수’ 기대보다 먼저 ‘발등의 불’부터 꺼야 하는 상황에 처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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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달 한·이란 경제공동위원회 개최를 대비해 27일 외교부·기획재정부·한국은행 등 관계부처가 연 ‘이란 태스크포스(TF) 회의’에서도 결제통화 문제가 논의됐다.

 전문가들은 강대국의 틈바구니에 낀 현실에서 막연한 기대나 우호관계를 내세우기보다는 ‘실리’를 고리로 해법을 찾아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란은 최근 또 다른 상업은행인 파르시안은행(Parsian Bank)의 국내 지점 개설을 타진하고 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이란 역시 한국과의 교역 확대가 필요하며 이에 대비하고 있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조민근·이태경 기자 jmi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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