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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판 한 면 420자, 두 자만 삐끗해도 도로아미타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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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대 각수 박웅서씨는 취미로 서각을 배우다 본업인 인테리어업을 접고 아예 전업 각수로 나섰다.

영하 15도까지 기온이 뚝 떨어진 지난 22일 경북 군위군 사라온이야기마을.

유리문 뒤로 저고리에 청색 덧옷을 입은 각수(刻手) 박웅서(45)씨가 큰 돋보기 아래로 목판에 글자를 새기는 게 보였다. 관람객은 안중에도 없다. 눈과 손은 오직 14㎜ 크기 글자 하나를 파는데 집중해 있다.

경상북도와 한국국학진흥원이 지난해 8월부터 진행 중인 『삼국유사』(국보 제306호) 조선 중기본을 목판으로 복원하는 현장이다. 『삼국유사』는 판본만 13종이 전할 뿐 목판은 남아 있지 않다. ‘도감소(都監所)’로 이름 붙여진 공방은 고려 승려 일연이 『삼국유사』를 저술한 인각사(麟角寺) 인근에 설치됐다.

“하루에 5행 105자를 새기는 게 목표인데 몰입해야 가능해요. 아침에 와서 정신없이 새기다 고개를 들면 어느새 점심 시간입니다.”

박 각수는 본래 대구 달성군에서 고교과정만 마치고는 인테리어 공사를 했다. 서각은 취미로 시작했다. ‘동네 형님’ 노영수(60)씨에게 서각을 배우면서다. 그리고는 서각 동호인들과 틈나는 대로 작업하며 내공을 길렀다.

한국화 작가인 아내도 서각을 좋아했다. 하루도 글자를 새기지 않고는 못 견딜 정도가 됐다. 그는 기량을 점검할 겸 이번 경북도 사업에 도전해 당당히 합격했다. 그는 인테리어업도 접고 아예 전업 각수로 나섰다. 이번에 전국에서 뽑힌 7명의 각수 중 가장 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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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유사』 목판의 한 글자 크기는 평균 14㎜. 한 행에 대략 21자가 들어가며 다 새기려면 두 시간쯤 걸린다. 큰 돋보기로 들여다보며 45도 각도로 글자를 새기다 보면 어느새 시간이 훌쩍 지나가버린다.


박씨는 “한 행을 새기는데 2시간쯤 걸린다”며 “역사적 작업에 참여한다는 사명감 하나로 버틴다”고 말했다. 각수 일을 오래 하면 시력이 많이 떨어진다고 한다. 그래서 서각에 관심을 보인 아들을 얼씬도 못하게 했다.

각수 경력 15년째인 박씨가 맡은 부분은 『삼국유사』 권 4의 16개 판. 현재는 15번째 판을 새기는 중이다. 글자는 수직이 아닌 45도 각도로 새긴다. 전체적으로는 중기본 114개 판 중 90여 개가 만들어졌다.

목판 하나가 앞뒤로 새겨지면 검수 위원은 틀린 글자가 없는 지, 글자 획의 굵기는 적절한 지 꼼꼼히 살핀다. 틀린 글자는 한 면(420여 자)에 하나까지만 허용된다. 틀린 부분을 파내고 새로 새겨 끼워넣는다. 두 개가 넘으면 전체를 다시 새겨야 한다.

『삼국유사』 목판은 모두 산벚나무를 사용한다. “큰 나무에서도 판재 한두 개가 겨우 나와요. 그것도 제지한 뒤 옹이가 나오면 또 쓸 수 없어요.”

경북도는 군위군과 손잡고 『삼국유사』 목판 복원 과정을 관광상품으로 만들었다. 누구든지 목판 도감소를 찾으면 나란히 배치된 공방의 작업 모습을 유리문을 통해 구경할 수 있다.

노벨문학상을 받은 프랑스의 르 클레지오는 지난해 11월 이곳을 찾아 특별자문위원에 위촉됐고, 재무부 장관을 지낸 사공일 중앙일보 고문은 김관용 경북지사와 함께 목판사업 공동추진위원장을 맡고 있다.

김용만(63) 삼국유사목판사업 도감은 “다음달 중기본 목판 작업이 마무리되면 먹으로 찍어 책을 만들고 이후 『삼국유사』 조선 초기본을 새길 예정”이라고 밝혔다.

군위=송의호 기자 yeeho@joongang.co.kr 사진=프리랜서 공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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