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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곳곳 4800점, 흩어진 신라 석재 모아 왕궁 복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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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경주시 북부동 경주읍성 복원 현장에서 발굴된 신라시대 석재. 이들 석재는 신라의 왕궁이나 귀족의 집, 사찰의 석재로 추정되고 있다. [프리랜서 공정식]


지난 15일 경북 경주시 인왕동 월성 동편의 해자 발굴 현장. 성벽을 오르면 석빙고로 이어지는 곳이다. 잔디 위에 옛 석재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다.

사적지에 3560점, 개인 1240점
교동 최부잣집 대문 주춧돌 등
고택·서원에 몇 점씩 남아있어
내달까지 2차 범시민 기증운동


 “구멍이 있으니 난간 돌이고…한쪽이 깨진 이 돌은 낙수 받침돌입니다.”

 동행한 박홍국(59) 위덕대 박물관장은 석재를 차례로 가리키며 쓰임새를 설명했다. 석재 앞에는 ‘신라왕궁 복원 때 귀하게 사용될 것’이라는 알림판이 세워져 있다. 모두 26점이다. 경주시가 신라 석재 모으기를 시작하자 지난해 7월 시민들이 1차로 기증한 돌이다.

아직은 많지 않다. 경주시는 2차로 다음달까지 범시민 기증운동을 벌이고 있다. 이들 석재를 내년부터 월성에 신라 왕궁 복원이 시작되면 활용하겠다는 것이다. 왕궁 자리 월성은 현재 발굴 중이다.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왕궁에 쓰인 석재를 본래 자리로 되돌리자는 것이고, 또 하나는 시민의 참여 속에 궁궐을 복원하고 싶어서다. 경주에는 현재 신라시대 석재가 얼마나 남아 있을까.

 경주시는 지난해 기증운동에 앞서 실태를 조사했다. 여기서 사적지 3560점, 개인 1240점 등 모두 4800점이 신라 석재로 확인됐다.

이경원 경주시 문화재과장은 “월성에서 멀지 않은 시내 웬만한 고택이나 서원 등지에는 신라 석재가 몇 점씩 있다”고 말했다. 1845년(조선 헌종 11) 간행된 『동경잡기』에도 월성 석재를 향교와 서원, 관아 건물에 활용했다는 기록이 나온다.

경주시는 신라 석재인지 감정하는 전문가도 위촉했다. 박 교수와 한정호 동국대 교수, 윤만걸 석공 등이다. 돌에 남은 가공의 흔적이 판단의 근거다.

이경원 과장은 “신라가 멸망한 뒤 왕궁과 사찰 등에 사용된 석재는 뒹굴다가 후대에 민간이 하나씩 가져가 여러 용도로 쓰게 된 것”이라고 추정했다. 특히 문화재보호법이 1962년에야 제정돼 그 이전엔 이런 분위기를 막기 어려웠을 것이다.

 교동의 최부잣집을 들렀다. 솟을대문의 주춧돌부터 정원을 두른 돌이 대부분 신라 석재였다. 그 옆 경주향교에는 더 많았다. 명륜당을 오르는 바닥 계단과 주변 주춧돌은 상당수가 신라 석재임을 알 수 있었다.

 향교를 나와 발굴 복원 중인 북부동 경주읍성을 찾았다. 복원을 마친 구간 앞에 신라 석재가 수백 점 전시돼 있었다. 조선시대 읍성을 쌓으면서 섞여 들어간 신라 석재를 복원과정에서 골라낸 것이다.

불에 타지 않는 만큼 그 중엔 신라 왕궁을 구성했던 석재도 있게 마련이다. 국립경주박물관도 들렀다. 그곳에도 궁궐이나 사찰, 귀족의 집에 쓰였을 신라 석재 수백 점이 뒤뜰에 가득 진열돼 있었다.

 박홍국 교수는 “신라 유물은 석조와 황금이 대표적”이라며 “다보탑과 석굴암에서 보듯 신라 예술의 극치는 석조였다”고 강조했다. 민가에 흩어진 역사의 파편이 한 자리로 모이면 사라져버린 신라 왕궁의 수수께끼를 얼마만큼이나 풀 수 있을까.

송의호 기자 yee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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