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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흔든 시 한 줄] 권영걸 한샘 사장·전 서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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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였던 그 아이는 어디 있을까

아직 내 속에 있을까 아니면 사라졌을까?

- 파블로 네루다(1904~73), 『질문의 책』 중에서
 
 
세상에 대한 물음표 316개
디자이너의 뇌를 뒤흔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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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시절 파블로 네루다의 시를 처음 접했다. 1971년 그가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던 때였다. 당시 내 수준에서 네루다의 시는 따라가기가 힘들었다. 관습적인 시의 리듬과 형식, 메시지와 달라서 당혹스러웠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읽고 나면 온종일 머릿속을 맴돌았다. 시집 『질문의 책』은 제목이 없는 74편의 시로 구성됐다. 세상에 대한 316개의 질문을 던진다. ‘나였던 그 아이는 어디 있을까’는 44번째 시의 첫 구절이다. 그가 던진 질문은 늘 나를 흔들어왔다. 화석화된 내 뇌를 마사지하고, 부드럽게 해줬다.

 디자이너, 디자인 교육가, 디자인 경영자인 나는 네루다의 시를 숙독해왔다. 시인처럼 디자이너도 매일 혁명을 하는 사람이다. 세상의 존재방식에 회의를 하고, 시비를 거는 자다. 대학에서 35년 동안 공공·공간디자인을 가르쳤던 것은 제자들과 함께 그 답을 구해가는 과정이었다. 네루다는 지구 정반대편 칠레에서 나보다 반세기 앞서 태어났다. “시는 필요로 하는 사람의 것”이라는 그의 말처럼 네루다의 시는 지금 나의 것이다.

권영걸 한샘 사장·전 서울대 교수


『질문의 책』
- 파블로 네루다


14
루비들은 석류 주스 앞에 서서
무슨 말을 했을까?

왜 목요일은 스스로를 설득해
금요일 다음에 오도록 하지 않을까?

청색이 태어났을 때
누가 기뻐서 소리쳤을까?

제비꽃들이 나타날 때
왜 땅은 슬퍼할까?


44
나였던 그 아이는 어디 있을까
아직 내 속에 있을까 아니면 사라졌을까?

내가 그를 사랑하지 않았다는 걸 그는 알까
그리고 그는 나를 사랑하지 않았다는 걸?

왜 우리는 다만 헤어지기 위해 자라는데
그렇게 많은 시간을 썼을까?

내 어린 시절이 죽었을 때
왜 우리는 둘 다 죽지 않았을까?


49
내가 바다를 한 번 더 볼 때
바다는 나를 본 것일까 아니면 보지 못했을까?

파도는 왜 내가 그들에게 물은 질문과
똑같은 걸 나한테 물을까?

그리고 왜 그들은 그다지도 낭비적인
열정으로 바위를 때릴까?

그들은 모래에게 하는 그들의 선언을
되풀이하는 데 지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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