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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평양 공화국과 ‘헬 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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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종 통일문화연구소장

“연길(延吉)로 나갈 수 있으면 아예 서울로 가지 왜 이러고 있겠습니까. 여긴 지내(무척) 긴장합니다.”

 그제 오후 어렵사리 접촉한 함북 회령시 주민의 목소리는 쫓기듯 다급했다. 북·중 변경 경비병의 단속을 피해 성사된 서울~회령 간 국제전화 통화다. 대화가 가능한 시간은 길어야 3분. 더 끌다간 북한 공안당국의 감청망에 걸려 위치가 추적된다. 밀반입한 중국 휴대전화를 이용한 은밀한 연락은 야산 등으로 장소를 옮기며 몇 차례 이어졌다. “여기는 영하 30도”라고 운을 뗀 주민은 “그야말로 고난의 행군”이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생생하게 현장 중계된 변경지역 북한 민초들의 올겨울 삶은 눈물겹다. 붕괴된 배급망 속에 식량과 생필품을 구하는 게 전쟁을 방불케 한다는 얘기다. 노동자 평균 월급은 북한 돈 3000원. 그런데 쌀 1㎏은 장마당에서 7000~8000원에 거래된다. “월급으로 도무지 먹고살 방도가 없다”는 것이 이 주민의 말이다. 지난해 10월 노동당 창건 70주년 때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전체 주민들에게 월급의 100%에 해당하는 축하금을 줬지만 반응이 시큰둥한 이유다.

 장마당은 숨통이 될 수 있을까. 당과 국가가 해결 못하는 부족분을 조달할 수 있다는 게 우리 관계당국과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그래서 “노동당보다 장마당”이란 말이 유행한다는 브리핑도 했다. 하지만 신흥 부유층인 ‘돈주’ 세력이 장악한 이곳도 대부분의 주민들에겐 그림의 떡이란 게 현지 소식이다. 환율이 부리는 마법은 민생을 더욱 짓누른다고 한다. 공정환율로 1달러는 북한 돈 140원 안팎. 그런데 암시장에선 8000원까지 껑충 뛴다. 당연히 미 달러나 중국 위안화가 장마당을 지배한다. 이른바 북한 경제의 달러화(Dollarization)와 위안화(Yuanization) 현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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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김회룡]


 70대인 아버지가 뇌졸중으로 쓰러졌다는 이 회령 주민은 치료비로 1800달러(한국 돈 216만원)를 빚졌다며 하소연했다. 병원은 의약품이 바닥나자 환자나 가족들에게 웃돈을 주고 사올 것을 요구했다는 것. “한겨울에 약초를 구하는 심정으로 천정부지 약값을 대다보니 집도 팔아야 했다”는 얘기다. 북한이 자랑하던 ‘무상치료’는 옛말이 됐다.

 새해 벽두 불거진 핵실험이 주민들을 더욱 고단하게 한다는 말도 나왔다. 예년엔 노동신문에 빼곡히 적힌 김정은 신년사만 달달 외우면 됐다. 하지만 기록적 한파 속에서 ‘수소탄 실험 성공’을 축하하는 군중집회가 연일 이어진다. 두세 시간 전 광장에 집결해 대기하다 한 시간 넘게 김정은에 대한 충성결의문 등을 외치고 나면 온몸이 동태가 되는 느낌이란다.

 탈북은 답이 안 될까. 돈벌이를 위해 북·중 국경을 넘거나 서울로 가는 건 더욱 엄두 내기 어려워졌다고 한다. 4년 전 김정은 체제가 들어서면서 탈북자에 대한 단속이 삼엄해졌다. 회령 주민은 “곳곳에 설치된 도강(渡江) 방지용 촬영기(CCTV)가 제일 무섭다”고 말했다. 동선을 추적해 도움을 준 사람까지 잡아낸다는 것이다. 최근엔 강물 속에도 특수감지기를 설치했다는 소문까지 나돈다는 얘기다. 중국도 철조망을 촘촘히 치고 단속망을 강화했다. 지난해 국내 입국 탈북자 수가 20년 만에 처음으로 월평균 100명 미만으로 떨어진 것도 이런 사정 때문이라고 한다. 통일부 집계에 따르면 김정은 집권 직전인 2011년 2900명이던 데서 반 토막이 됐다. 회령 주민은 “김정은이 잡고 나서 먹고살기 나아져 탈북이 줄었다는 건 여기 실정을 모르고 망탕(되는 대로 마구)해대는 소리”라고 말했다. 서울로 가는 건 둘째 치고 북·중 국경길이 막혔다는 얘기다.

 이런 실상은 북한의 관영 선전매체들이 주장해온 모습과 큰 차이가 난다. 집권 5년 차에 접어든 김정은 제1위원장은 평양에 사계절 가동이 가능한 워터파크인 문수물놀이장을 지었다. 승마구락부와 골프장이 들어섰고, 강원도 원산 인근에는 12개의 슬로프를 가진 마식령스키장을 지었다. 평양 대동강변에 지난해 11월 완공한 높이 210m의 은하 주상복합아파트는 2015년 전 세계에서 건설된 200m 높이 이상 건물 106개 중 71위를 차지했다는 게 외신보도다.

 이 모두가 노동당과 군부, 외화벌이 기관 등에 종사하는 핵심 계층만을 위한 시설이다. 2400만 북한 인구 중 이들은 6만 명 수준. 4인 가족을 기준으로 계산해 24만 명이 부와 권력을 움켜쥔 수혜층이란 게 우리 관계 당국의 분석이다. 평양에 거주하는 엘리트 부류와 노동당 간부가 주축이다. 이들 1%가 지배하는 ‘평양 공화국’을 제외한 북한 땅은 그야말로 ‘헬 조선’이다. 지옥을 의미하는 헬(hell)과 북한 국호(國號)인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만남인 것이다.

 김정은 제1위원장은 4년 전 첫 공개연설에서 “인민들이 다시는 허리띠를 조이지 않고, 사회주의 부귀영화를 누리게 하겠다”고 공언했다. 하지만 진단뿐이었고 처방은 여태 내놓지 못하고 있다. 핵 보유와 경제개발의 두 마리 토끼를 잡겠다는 ‘경제·핵 병진 노선’도 제시했다. 54년 전 할아버지인 김일성이 내세운 경제·국방 병진 노선의 복사판이다. 전망은 밝지 않다. 피아(彼我) 구분도 못하고 국제사회를 겨냥해 핵 도박을 일삼는 그의 앞을 기다리는 건 깊게 파인 전철(前轍)뿐이란 점에서다. 북녘 주민들의 고단한 겨울나기를 어루만져줄 손길은 너무 멀어 보인다.

이영종 통일문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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