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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체벌로는 아이를 가르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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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양희 서울가정법원 판사

연일 아동학대 사건이 신문 지상을 장식하고 있다.

 늘 크고 작은 아동학대 사건을 다루고 있지만 사건을 접할 때마다 그 경중을 떠나 가슴이 아려오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법정에서 마주하는 아동학대 사건은 참으로 다양하다.

 놀라운 것은 아동학대로 법정에 선 부모들 중 상당수는 자신의 행동이 그저 아이를 위한 훈육이었을 뿐 학대는 아니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때로 매를 아끼면 자식을 버린다는데, 그럼 자식을 가르치지 말라는 것이냐고 반문하는 부모들도 있었다. 신체적 폭력이 아닌 정서적 학대의 경우도 아동학대에 포함되는지 알지 못했다는 부모들이 대부분이었다.

 속옷 차림으로 집에서 내쫓긴 아이를 만났다. 부모는 때린 것도 아닌데 그런 것도 아동학대에 포함되느냐고 물었다. 아이가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고 약속하고서도 곧바로 같은 잘못을 반복하는 경우도 있었다. 부모는 부모 말을 우습게 안다며 아이를 힐난했다. 아이는 심리검사 결과 경계성 지능장애로 밝혀졌다. 아이는 비난받을 이유가 없었다. 그제야 부모는 고개를 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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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리채나 문구용 자로 맞아 온몸이 시퍼렇게 멍든 아이들도 만났다. 역시 부모는 그저 따끔하게 가르치려 했을 뿐이라고 말했다. 오히려 몇 대를 맞을 것인지 아이 의사를 물어보았기 때문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과연 아이에게 선택권이 있긴 했던 걸까. 폭력이 아니라고 생각했던 가벼운 체벌, 일상적이기까지 했던 거친 말 한마디가 때로는 엄청난 학대의 결과로 발전할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하고서야 부모는 잘못을 인정했다.

 쓰레기가 쌓여 악취가 나는 집에서 며칠 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방치된 아이도 만났다. 아이의 어머니는 이혼 후 우울증을 앓고 있었고 심한 알코올 중독 상태였다. 어머니는 부모의 이혼으로 열두 살 때부터 혼자 살면서 타인과 관계 맺는 법을 전혀 배우지 못했다고 했다. 어머니 역시 피해자였다.

 술에 취한 아버지가 휘두른 쇠파이프에 맞아 머리를 심하게 다친 아이도 만났다. 그쯤 되면 부모도 잘못을 인정한다. 다만 우발적이었다고 변명할 뿐이다.

 체벌로는 아이를 가르칠 수 없다. 체벌이 두려워 규칙을 지키는 아이는 스스로 옳고 그름을 판단하지 않는다. 다만 규칙 위반이 발각될 것인지 아닌지가 중요할 뿐이다.

 옳고 그름의 기준에 따라 행동하는 법을 배우지 못해 잘못을 저지르는 아이들은 결국 소년 법정에 서게 된다. 어린 시절 심한 체벌을 경험해 폭력에 내성이 생긴 아이들은 너무도 쉽게 또 다른 폭력의 가해자가 된다. 일부 아이들은 정작 비행을 시작하면서부터는 부모의 제재조차 받지 않는다. 체벌하기에는 아이가 너무 커버렸기 때문이다. 또 다른 아이들은 한층 더 혹독한 체벌을 경험하고 결국 가출을 택하기도 한다. 그 어느 것도 이미 깊어진 아이의 비행을 막는 데 효과적이지 않음은 물론이다.

 아동학대 사건에서 만난 아이들은 더 이상 집으로 돌아가기를 원하지 않았다. 그렇게 재판과정에서 많은 아이가 가족으로부터 분리되었다.

 우리나라는 학대 피해 아동을 다른 가정에 위탁해 양육하는 제도가 정착되어 있지 않다. 법원에서 볼 수 있는 몇 건의 사례조차 거의 친인척 관계에 있는 가정이다. 양육 의사를 밝혀온 아이의 큰아버지나 고모, 이모나 할머니는 대부분 학대를 한 부모와도 친밀하다. 그래서 학대 사안이 중한 경우에는 가정위탁을 선택할 수 없다.

 피해 아동들을 전문적으로 보살피는 시설이 잘 갖추어져 있는 것도 아니다. 특별한 보살핌이 필요한 영아나 장애아동, 성 학대 피해 아동을 위탁할 수 있는 전문시설 또한 없다.

 이러한 이유로 대부분의 피해 아동들은 쉼터·그룹홈·보육원과 같은 일반 아동복지시설로 보내진다.

 피해 아동들은 대부분 심각한 정신적 외상을 가지고 있다. 몸의 상처가 치유되고 피멍이 사라져도 아이들 가슴속에 깊이 자리 잡은 상처는 그리 쉽게 낫지 않는다. 아동복지시설에 위탁된 피해 아동들이 또래 관계에서 폭력적인 모습을 보이거나 자해를 반복하는 등 문제를 일으키는 경우가 많은 것도 그러한 이유다. 일반 아동복지시설에서 피해 아동들의 이러한 부적응 행동을 얼마나 이해하고 보듬어 줄 수 있을지, 피해 아동들이 결국 상처 입은 어른으로 자라 또 다른 폭력을 대물림하게 되지 않을지 아이를 아동복지시설로 위탁하는 결정을 하면서도 항상 마음이 무겁다.

 이제는 우리 아이들이 더는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미 아픔을 겪은 아이들이라면 조금이라도 그 상처가 치유되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그 아이들의 아이들이라도 더는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다. 폭력의 악순환, 상처의 대물림을 이제는 끊어 주어야 하지 않을까.

 자녀에 대한 올바른 훈육방법을 배우고 상처 입은 아이들을 감싸 안는 것, 적어도 이 시대를 사는 우리 어른들의 책임이 아닐까 생각한다.

권양희 서울가정법원 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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