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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는 칭찬을 먹고 산다…입장 바꿔 생각하고 잔소리는 삼켜라

[최고의 유산]
5남매 의대
·약대 보낸 구룡포 농부 황보태조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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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보태조씨가 포항시 구룡포 마을 자택 앞에 서 있다. 그는 “비록 5남매는 장성해 고향을 떠났지만 동네 곳곳에 아이들과 함께한 추억이 남아있다”며 웃었다.


황보태조(70)씨의 아내는 남편을 ‘자식에겐 콩고물 같은 사람’이라고 말한다. 자식에겐 콩고물처럼 달게 대한다는 뜻이다. 그가 나고 자란 포항시 구룡포의 시골 마을 어른들은 “그렇게 키우면 아이들 버릇없어진다”고 걱정했다. 하지만 태어난 지 석 달 만에 아버지를 여읜 그는 아이들에게 자상한 아빠가 되고 싶었다. 황보씨는 “아이들이 아빠와 거리감을 느끼지 않도록, 아빠라기보다 친구처럼 가깝게 느낄 수 있도록 애썼다”고 회상했다. 그 결과 평생 농사만 지은 그는 다섯 자녀를 모두 공부를 즐기는 수재로 키웠고 2001년 자신만의 자녀교육법을 담은 책 『꿩 새끼를 몰며 크는 아이들』를 내 화제가 됐다. 지금도 마흔 살을 넘은 자식들은 그는 “아빠~”라고 부르며 친구처럼 지낸다. 자녀를 키우며 조언을 구하는 사람도 아빠 황보씨다. 농사 짓듯 정성을 들인 그의 자식 농사법을 들어봤다. 


공부 흥미 잃지 않게 놀이로 가르쳐
자녀들 어릴 때부터 친구처럼 대화
등굣길 영어 틀어주고, 입시는 직접 챙겨


고교 중퇴한 자신 돌아보며 항상 칭찬
시험 망쳐도 “실수니까 신경쓰지 마라”
“사람은 마음이 따뜻해야” 인세 전액 기부
 


황보씨는 포항의 작은 시골 마을 구룡포에서 30년 동안 농사꾼으로 살았다. 물 대기는커녕 사람조차 오르기 힘든 산기슭의 밭에 지렛대와 펌프를 이용해 물을 올려 수박 농사를 지었다. 무농약 토마토 재배에 성공해 친환경 농부로 이름을 알리기도 했다.

그런 그가 성공한 게 하나 더 있다. 바로 자식 농사다. 2001년 펴낸 『꿩 새끼를 몰며 크는 아이들』에 이어 2013년엔 개정판 『가슴 높이로 공을 던져라1』과 이후의 이야기를 담은 『가슴 높이로 공을 던져라2』를 냈고 전국을 찾아다니며 자신의 자녀 교육법을 전수했다. 휴대전화조차 안 터지는 시골 마을 평범한 농부의 5남매는 모두 의대·약대에 진학했다. 첫째 딸과 막내아들은 서울대 의대, 둘째·셋째 딸은 경북대 의대, 넷째 딸은 대구가톨릭대 약학과를 졸업해 현재 의사와 약사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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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딸(7세·오른쪽)·넷째 딸(5세)과 함께 있는 황보태조씨. 그는 아이들과 늘 친구처럼 지냈다.


아이들은 어릴 때부터 놀이하며 한글을 깨우쳤고 친구 이름을 익히듯 한자를 익혔다. 아빠에게 수학 공식을 설명하며 수학 공부를 했다. 황보씨의 학력은 고등학교 중퇴가 전부다. 하지만 교육 방식만큼은 어느 전문가보다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는다.
자기도 싫은 걸 자식에게 왜 시키나

그는 자신이 싫어했던 건 자신의 아이들도 하지 않도록 했다. 학창 시절 긴 이름 때문에 놀림 받은 게 싫어 자신의 아이들 이름은 모두 외자로 지었다. 공부는 지긋지긋하고 괴로운 것이었던 과거의 경험, 체벌 때문에 학교 가는 것도 공부도 싫었던 자신의 경험 때문에 아이들에게만큼은 ‘공부=놀이’라는 생각을 심어주려고 했다.

인형놀이를 즐겨 하던 딸들이 인형의 이름을 붙여달라고 하자 황보씨는 아이들에게 직접 이름을 붙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렇게 붙인 이름의 글자와 같은 글자를 아이들이 좋아하는 과자 봉투에서 찾도록 했다. 처음에 그림 그리듯 글씨를 따라 쓰던 아이들은 입학 전 한글을 뗐다. 황보씨는 “입학 전 한글 익힌 게 뭐 대수냐 싶겠지만 중요한 건 한글을 익혔다는 사실보다 공부를 어려운 일이 아니라 놀이라고 생각하게 했다는 것이다”고 강조했다.
 
인형놀이를 즐기지 않던 막내아들은 편지놀이를 통해 한글을 가르쳤다. 읍내에 나가는 아내에게 아들이 그날그날 먹고 싶은 것을 적은 편지를 적어 건네도록 했다. 글씨를 모르는 아들에게 과일 그림과 글씨가 같이 적힌 책을 보여주자 아이는 글씨를 따라 그리기 시작했고 그렇게 한글을 익혔다.

막내 아들 율(35)씨는 “어릴 때부터 아버지가 재미있게 놀이식으로 공부하도록 도와줘 중학교 때까지 공부에 대한 스트레스 없이 보냈다. 무엇보다 아버지가 우리를 인격적으로 대했다. 윽박지르거나 강압적이지 않았다”고 말했다.

한글을 익힌 아이들이 책에 재미를 붙일 수 있도록 한 달에 한 번 아이들을 데리고 시내 책방을 찾기도 했다.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들어간 후에는 한자를 가르쳤다. 이때도 그만의 방법이 있었다. 난이도 별로 나뉜 4권의 한자책을 3권부터 시키는 것이다. 황보씨는 “단계가 높아질수록 어려워지면 사람은 지치기 마련”이라고 말했다. 3권을 끝낸 후 2권을 하면 쉽기 때문에 잘할 수 있다. 1권은 말할 것도 없다. 그렇게 3권을 익히고 나면 마지막 남은 4권은 자연스럽게 익히게 된다.

처음부터 한자를 쓰도록 하진 않는다. 그는 한자 읽기와 쓰기를 분리했다. 사람의 얼굴을 익히듯 한자와도 안면을 트는 게 바로 읽기 단계다. 그는 “사람 얼굴을 두세 번 봐놓고 그리라고 하면 그릴 수 있겠냐. 한문도 마찬가지다. 눈으로 충분히 익히는 게 먼저다”라고 말했다.

“오늘 외우고 내일 잊으면 된다” 강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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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책 출간 이후 전국에서 강연 요청이 쏟아졌다.

과거에나 통할 자녀교육법이라는 생각은 오해다. 여전히 그의 교육법은 통한다. 황보씨는 “손자·손녀를 키우며 내 교육법이 틀리지 않았다는 생각에 확신이 든다”고 했다.

4년 전쯤 대전에 사는 둘째 딸이 초등학교 2학년 아들이 수학을 어려워한다며 과외 선생을 붙인 걸 안 그는 “과외 끊고 엄마인 네가 직접 가르치라”고 했다. 엄마가 직접 가르치자 한 달 만에 외손주는 어려운 수학 문제를 척척 풀더니 학교 시험도 1등을 했다. 딸은 “아빠가 시키는 대로 했더니 된다. 아빠 맹탕이 아니었네”라며 웃으며 아빠의 교육법을 인정했다.

황보씨는 “아이가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게 바로 엄마의 말이기 때문이다”고 설명했다. “제 딸을 비롯해 엄마 아빠는 아이들이 선생님 말을 당연히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같은 한글인데 왜 못 알아듣느냐고 묻죠. 그런데 아니에요. 시골 사람들은 서울 사람 말 단번에 못 알아들어요. 악센트만 달라도 이해하기 어려워요.” 엄마가 수학 문제를 설명해주자 아이는 쉽게 이해하기 시작했다. 그는 지금도 강연 때마다 “초등학교 저학년 수학은 엄마 아빠가 직접 가르치라고 강조한다. 물론 윽박지르는 대신 재미있게, 칭찬을 곁들여야 한다.

황보씨는 딸에게 한 가지 더 당부했다. 바로 책 읽기다. 강연 다니며 자주 듣는 얘기 중에 하나가 “우리 애는 집에선 수학 문제를 잘 푸는데 학교 시험은 못 본다”는 얘기였다. 지문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실제 그는 늘 책을 가까이하라고 말한다. 어릴 때부터 서점에 함께 자주 가고 어릴 땐 부모가 책을 골라주고 아이가 크면 자기가 직접 책을 고르도록 한다. 황보씨는 “아이들이 고르는 책이 부모의 성에 차지 않더라도 아이는 자신이 고른 책을 더 잘 읽게 마련이니 참아야 한다”고 말했다. 아무리 좋은 책이라도 아이들이 읽지 않으면 소용이 없기 때문이다. 황보씨는 인터뷰가 있던 다음 날도 주말을 맞아 대전에 갈 계획이었다. 중학교에 가면 책 읽을 시간이 부족한 6학년 외손자가 겨울방학에 읽을 수 있도록 『로마인 이야기』를 선물하기 위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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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딸 중학교 졸업식. 왼쪽부터 황보태조씨, 둘째 딸, 아내, 막내 아들, 어머니

- 아이들과 친구처럼 지내는 건 쉽지 않다.

“나는 아버지 사랑을 못 받고 자랐다. 그래서 그런지 아이들하고 노는 게 너무 재미있었다. 일을 마치고 피곤해도 아이들 노는 거 보면 그렇게 예쁠 수가 없었다. 우리 시대만 해도 아버지는 가장으로 권위적이어야 하는 분위기였는데 나는 그런 게 없었다. 나나 아내나 천성이 아이들을 예뻐한다. 어릴 때부터 그렇게 친구처럼 지냈더니 아이들은 지금도 나를 편하게 대한다. 어릴 때부터 대화가 생활화되지 않으면 커서는 힘들다. 딸하고 엄마는 익숙한데 아버지하고는 틈이 있는 것도 대화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격의 없는 대화가 자녀 문제를 해결해주는 비결이다.”

- 대화는 언제 어떻게 했나.

“함께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아이들 등굣길은 항상 내가 챙겼다. 트럭을 몰고 학교 앞까지 태워다줬다. 아이들이 중·고등학교에 간 후에는 포항시에 방을 얻어 따로 지냈는데 30분씩 걸리더라도 자주 시내에 나가 아이들을 봤다. 일이 바빠 며칠 못 가는 날이 생기면 바로 아이와 사이에 틈이 생긴 게 느껴졌다. 그 틈을 메꾸기 위해 자주 가서 얼굴을 봤다. 일주일만 안 봐도 다른 애가 돼 있더라. 그래서 하루걸러 하루씩은 꼭 갔다. 그렇게 함께 대화하는 시간이 생기니까 자연스레 학교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시시콜콜 얘기하더라. 다섯 남매 모두 사춘기도 무난하게 지냈는데 다 격의 없이 대화한 덕분인 거 같다”

- 영어 공부는 어떻게 시켰나.

“등교를 시켜주면서 영어 테이프 틀어줬다. 영어 공부의 핵심은 듣기라고 생각했다. 듣기는 공부가 아니다.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거다. 내가 영어를 할 줄 몰라도 들려주는 건 할 수 있지 않나. 만약 우리가 미국 사람이라면 아이들과 매일 대화함으로써 그렇게 해줄 거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못하니 녹음기로라도 들려준 것이다.

-아이가 공부에 흥미를 느낄 수 있게 한 비결은.

“아이들에게 문제를 낼 땐 일부러 쉬운 문제를 냈다. 예를 들어 한자 시험을 볼 땐 획이 적거나 분량의 맨 앞이나 맨 끝 부분 걸 내는 식이다. 칭찬하기 위해서다. 칭찬은 기술이다. 그래서 기술을 연마해야 한다. 칭찬하는 말도 여러 경우를 가상해 미리미리 생각해 둬야 한다. 생각해둔 말은 완전히 내 것으로 소화해 둬야 적기에 쓸 수 있다. 손주가 감기에 걸려 사흘 넘게 고열에 시달렸는데 처음엔 잘 먹던 약을 안 먹더라. 과자로 꼬셔도 안 먹던 아이가 손뼉 치며 칭찬하자 약을 먹더라.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사람은 누구나 칭찬을 먹고 산다. 아침 등교 전에 듣는 부모의 칭찬 한마디에 아이들의 학교생활이 얼마나 즐거워지겠나. 가족이기 때문에 더 인색해지기 쉬운 게 칭찬이다. 돈도 들지 않는데 말이다. 입장 바꿔서 매일 “공부해라” “게임 좀 그만해라”는 말을 내가 듣는다고 생각해봐라. 정말 짜증 나지 않겠나. 자녀를 격려할 수 있는 말부터 떠올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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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내아들 율씨에게 쓴 편지. 그는 막내뿐 아니라 자식들에게 늘 ‘마음이 따뜻한 사람이 돼라’고 강조한다. 편지에도 가족과 이웃을 돌아 보는 마음 따뜻한 사람이 되길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


-아이가 시험을 망치거나 했을 땐 어땠나.

“그때도 띄워줘야 한다. 실수니까 신경 쓰지 말라고 말해줬다. 다만 다음에 어떻게 할 것인지를 생각해보라고 했다. 자식을 키우면서 화날 때가 왜 없겠나. 그때 참는 나만의 비법이 있다. 나를 돌아보는 것이다. 나는 학교 가기 싫어서 학교를 그만뒀지 않나. 집안 형편을 핑계 삼았지만 사실 나보다 형편이 더 어려운 친구들도 무사히 졸업했다. 나는 그걸 못하고 핑계를 댄 거다. 그런 나에 비하면 아이들은 정말 훌륭한 거 아닌가. 나보다 공부도 잘하고. 내 학창시절을 떠올리면 아이들에겐 고함이 안 나온다. 그래서 아내가 늘 “당신은 애들한테 콩고물이다”고 말한다. 항상 나 자신을 돌아봐야 자식에게 잘 말할 수 있다. 가끔 자식들이 자녀를 키우며 힘들다고 하는데 그럴 때면 너네 어릴 때 생각해보라고 말한다(웃음).

또 한 가지 나만의 주문이 있다. 나는 성격이 정말 급한 편이다. 한 번 화를 내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어서 잘되어 가던 일도 곧잘 망쳐 버릴 정도다. 그래서 내 자신을 제어하는 방법을 생각했다. 그래서 얻은 결론이 ‘나 같은 사람은 나밖에 없다’라는 주문이다. 자식들이 항상 내 말을 잘 듣는다면 그들은 로봇 아니겠나. 자녀들이 내 말을 듣지 않는 것은 나와 다르다는 것을 의미한다. 내 자식이라고 해서 꼭 내 말을 들어야 할 이유는 없다. 잔소리를 삼키고 때를 기다려야 한다. 잔소리로는 결코 아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없다.”

-체벌은 전혀 안 했나.

“아니다. 몇 번 때린 적이 있다. 그러나 공부 못했다고 때린 적은 없다. 난 학교 다닐 때 맞는 게 싫었다. 체벌은 부모하고 자식을 원수지게 한다. 다만 부모가 싫어하는 건 아이에게 각인시켜줘야 한다. 성경을 보면 ‘매를 아끼는 자는 그 자식을 미워함이라’는 말이 있다. 무분별하게 때리는 건 안 된다. 그러나 못된 짓 하면 때려야 한다. 애들은 그게 못된 짓인 줄 모르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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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친환경·유기농 토마토 농사를 지어 5남매를 키웠다.


-등굣길까지 챙길 정도로 열혈 아빠였던 만큼 아이들의 진로도 챙겼을 것 같다. 큰딸과 막내아들이 11년 차이가 나는 만큼 입시 제도가 매번 달라 힘들었을 거 같다.

“아이들 입시 때면 나는 각 학교 과별 커트라인, 전년도 경쟁률을 꿰고 있었다. 미리 서점에서 진학 지도서와 학원에서 나온 진학 안내표 등을 사다 익혔다. 자연스럽게 머릿속에 학교별 점수가 그려졌다. 당시 학교 선생님은 한 반에 50명씩 되는 아이들을 챙겨야 했는데 아무래도 한 명씩 세심하게 챙기긴 어렵지 않겠나 싶었다. 막내아들은 의대 대신 공대에 가 교수가 되고 싶어했다. 그래서 공대 학과장실로 전화해서 졸업하면 교수가 될 수 있는지를 묻기도 했다. 아마 대학원생이 전화받은 거 같은데 힘들다고 하더라. 그래서 일단 의대에 가되 의사가 하기 싫으면 의공학이나 의사학 등의 교수가 될 수 있다고 책에서 본 내용을 알려줬다. 의대를 마치고 지금 의사가 됐다.”

-지금 어린 자녀를 키우는 다른 부모들에게 꼭 해주고 싶은 이야기는 뭔가

“아이들에게 ‘오늘 익히고 내일 잊어버려라’고 강조해야 한다. 아이들을 공부할 때 잊어버리면 어쩌나 걱정한다. 그리고 잊어버리면 자신의 머리가 나쁘다며 패배감을 느낀다. 아이들의 눈에는 다른 친구들은 보면 척척 아는데 나만 안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같은 반 친구들 이름을 일부러 외우는 아이가 있는지 생각해봐라. 자주 만나고 얼굴 익히면 저절로 익혀지듯 공부도 마찬가지다. 너무 애쓰게 하지 마라. 잊어버리면 어쩌나 걱정하지 말고 잘 보기만 하면 된다. 한 번 보고 다시 보면 훨씬 익히기 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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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보태조씨가 자녀교육법을 적은 『가슴높이로 공을 던져라』. 2001년 펴내 화제가 됐던 『꿩 새끼를 몰며 크는 아이들』의 개정판.


-2013년 『가슴 높이로 공을 던져라』 책을 내고 받은 인세 2000만원을 모두 기부했다.

“공부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사람은 가슴이 따뜻해야 한다. 강연할 때도 마지막엔 늘 이걸 강조한다. 기부는 손자·손녀들에게 이 메시지를 주고 싶었던 마음도 있다. 내가 복 받기 위한 게 아니라 아빠, 할아버지가 먼저 솔선수범해 보여주는 게 아이들에게 가장 좋은 교육이라고 생각했다. 기부한 걸 보고 셋째 딸이 “우리 아빠 멋있게 사네” 그러더라. 뿌듯했다. 내가 지금 그 돈 없다고 못 사는 것도 아니지 않나. 또 내가 살면 얼마나 살겠나. 사람이 늙어서 욕심을 부리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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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생의 롤모델: 사도 바울, 장준하
● 내 인생을 바꾼 습관: 내 말을 하기 전에 남의 말을 먼저 경청하는 것
● 자녀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 『성경』 『로마인 이야기』
●  좌우명: 성실

구룡포=송정 기자 song.jeong@joongang.co.kr
사진=김경록 기자 kimkr8486@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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