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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turday] 은행원 명퇴 바람…‘응팔’과 비교해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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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F 외환위기 전 26년간 한일은행에서 근속해 온 성동일(오른쪽)은 아내 이일화에게 명예퇴직 사실을 알린다. 거액의 명예퇴직금이 반갑지만 오랫동안 다닌 직장이 자신을 버렸단 생각에 시원섭섭한 마음을 감출 수 없다. [사진 드라마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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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문동 이웃이 명퇴를 기념하며 꽃다발을 안겨주는 모습. [사진 드라마 캡쳐]

“자네도 들어봤을 것이여, 명예퇴직이라고. 이제 정년까지 4, 5년밖에 안 남았는디, 조기 신청하면 퇴직금을 2배로 준다더만.” 가장 성동일은 조심스레 말을 꺼낸다.

94년 명퇴금으론 강남 아파트 구입 가능…지금은 4배 받아야

아내 이일화는 펄쩍 뛴다. 아직 학교에 다니는 막내아들과 시집 못 간 두 딸이 눈에 밟힌다. 평생 은행밖에 모르고 산 사람인데, 퇴직하면 무엇으로 살아야 할지 아내는 막막할 따름이다.

며칠 뒤 쌍문동 골목길. 아내는 대문 밖 평상에 우두커니 앉은 가장을 발견한다. “임자, 나 오늘 명예퇴직 당했네.” 가장은 미안하다는 말을 끊지 못한다.

 16일 종영한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응팔)’의 한 장면이다. 극중 성동일은 오랫동안 한일은행 대리(4급)로 근무한다. 고졸로 입행해 1994년까지 26년을 근속하고 과장으로 명예퇴직(명퇴)한다.

친구 빚 보증에 수년간 월급을 차압당해 온 성동일은 반지하 전셋집에서 적금 하나 못 붓고 산다. 은퇴자금이라곤 퇴직금과 특별퇴직금(명퇴금)이 전부다. 은행은 함께 명퇴한 30여 명 은행원과 그 가족을 불러 꽃다발을 증정한다. 성동일 과장은 그렇게 평생 해 온 은행원 생활을 마감한다.

 1994년 한일은행은 한국에서 손에 꼽히는 시중은행이었다. 성동일은 자신을 늘 ‘만년 대리’라고 자조한다. 그러나 당시 은행권 환경으로 따져보면 대리나 과장은 현재로 치면 차장·부부장에 해당하는 간부행원이다.

월급은 50만원 수준, 보너스를 합한 연봉은 1800만~2000만원 정도다. 적어 보이지만 같은 시기 대기업 대리 평균연봉(2074만원)과 맞먹는 수준이다. 당시엔 이런 연봉이면서도 퇴직금에 누진제가 적용됐다. 26년 근속하면 급여의 약 2.3배로 퇴직금을 계산한다.

드라마에 나온 대사를 종합하면 성동일의 명퇴금은 1억5000만원, 기존 퇴직금 1억원까지 합한 은퇴자금은 2억5000만원이다. 당시로선 적지 않은 금액이다. 명퇴를 결정한 후 성동일은 가족 앞에서 외친다.

“우리가 이때 아니면 언제 이런 돈을 만져볼 수 있겠는가. 공돈으로 1억원을 더 받는디. 잘한 것이제.”

 성동일이 다녔던 한일은행은 우리은행의 전신이다. 외환위기 이후 구조조정을 거친 한일은행은 1999년 한국상업은행과 합병해 한빛은행으로 이름을 바꿨다. 그러다 2001년 평화은행을 인수하면서 오늘날 우리은행이 됐다.

한일은행 성동일 같은 은행원의 명퇴는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22년이 지난 현재, 성동일이 우리은행에서 명예퇴직(전직지원제도)을 신청한다면 얼마를 받고 퇴직할까? 우리은행은 직급에 따라 9~30개월치 급료를 명퇴금으로 준다.

이에 더해 자녀학자금과 부부 건강검진 비용, 1인당 300만원의 전직지원 연수비를 지원한다. 다른 일을 할 수 있도록 돕는 퇴직자 교육프로그램도 운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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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은행 인사팀에 따르면 2016년 성동일의 명퇴금은 28개월치 급여인 2억원이다. 여기에 기존 퇴직금(일시금 기준 2억원)을 합하면 모두 4억원의 은퇴자금을 마련한다.

 명퇴금만 놓고 보면 2016년 성동일이 5000만원을 더 받는다. 그러나 1994년 받은 명퇴금을 한국은행 소비자물가지수(1994년 55.951, 2016년 110.21)로 환산하면 얘기가 달라진다.

물가가 22년 동안 거의 두 배가 됐다. 따라서 과거 성동일이 받은 명퇴금 1억5000만원은 2016년 현재 기준으로 3억원(2억9546만원) 가치다. 기존 퇴직금(1억원)까지 합한 은퇴자금으로 환산하면 5억원(4억9243만원)이 된다.

물가를 감안한 실질 명퇴금으로 계산하면 현재의 명퇴금과 퇴직금이 전보다 1억원가량 줄었다는 얘기다. 94년 강남권 부동산에 투자했다면 그 차이는 더 벌어질 수 있다.

당시 전국에서 가장 비싼 아파트는 압구정동 현대아파트였다. 109㎡(35평형) 가격이 2억3000만원(3.3㎡당 657만원)이었다. 성동일은 명퇴 직후 은퇴자금으로 반지하 전셋집에서 곧바로 당시 최고급 아파트로 이사하고도 2000만원을 남길 수 있다.

현재 같은 아파트 매매가는 16억원이 넘는다. 2016년의 성동일이라면 명퇴금과 퇴직금을 네 번 받아야 겨우 잔금을 치를 수 있다. 명퇴 조건이 전보다는 못하다는 방증이다.

 은행권의 명퇴는 현재 진행형이다. 신한은행은 올 들어 20일까지 2주간 명퇴 신청을 접수했다. KB국민은행은 지난해 상반기에만 1122명을, 우리은행은 두 차례 전직지원제도를 통해 240명을 줄였다. KEB하나은행은 4년 만에 특별퇴직을 받아 690명을 내보냈다.

금융권 구조조정 바람이 거센 데다 명퇴 조건까지 나빠지면서 은행원의 불안감은 깊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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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시중은행 지점장은 “응팔 성동일의 명퇴 조건을 현재 다시 제시한다면 명퇴 신청자 수가 훨씬 더 늘어날 것”이라며 “은행업 전망이 암울한 편이어서 미래도 불투명한데 이럴 때 명퇴금을 1억원 더 주면 나 같아도 바로 그만둔다”고 잘라 말했다.

그는 또 “갈수록 명퇴 조건이 나빠지고 있으니 더 안 좋아지기 전에 그만두고 은퇴 이후 삶이나 다른 일을 준비할 시간을 버는 게 낫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막상 명퇴하고 나면 앞으로 살 길이 막막하다. 명퇴한 은행원 대부분은 은행별 은퇴자 모임에 나가 시간을 때우거나 소소한 일거리를 찾는 데 주력한다.

공인중개사 자격증을 따 부동산 가게를 연 한 시중은행 명퇴자는 “수십 년 동안 한 일이 서류 보는 것뿐이라 특별한 기술이 없어 먹고 살 일이 암담했다”며 “함께 명퇴했던 동료 중엔 명퇴금으로 식당이나 커피점을 낸 사람이 많았는데, 안 해 본 일에 뛰어들어 대부분 실패하고 명퇴금만 날리더라”고 안타까워한다.

 또 다른 시중은행에서 명퇴하고 6개월 만에 제2금융권 감사가 된 전직 은행원은 “은행을 다니던 중에 알게 된 사람 소개로 재취업할 수 있었다”며 “급여는 좀 줄었지만 그래도 은행 일을 계속 할 수 있어 정말 운이 좋다고 생각한다”며 안도했다.

그는 또 “제법 큰 중소기업이라도 재무전문가가 없는 경우가 있는데, 시중은행에서 심사나 자금을 맡았던 사람이라면 중소기업 쪽에 자리를 찾아보면 좋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1994년이나 2016년 모두 같은 면도 있다. 은행은 명퇴자에게 별다른 퇴임식을 열어주진 않는다. 명퇴한 사람은 조용히 짐을 챙겨 떠났다. 지난 22년간 줄곧 그랬다.

 하지만 중소기업 등 일반기업에 다니는 사람 입장에선 ‘은행권 명퇴’는 부러운 일이다. 은행은 상대적으로 자금 여유가 있어 명퇴금을 주면서 직원을 내보낼 수 있다. 과거나 지금이나 형편이 어려운 일반기업은 명퇴금은 고사하고 정리해고를 하면서 위로금조차 주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S Box] 1995년엔 ATM, 작년엔 핀테크 도입하며 무더기 명퇴

국내 은행권 명예퇴직은 1993년 조흥은행(2006년 신한은행과 합병)이 시작했다. 그해 몇몇 시중은행에서 50명 안팎이 명퇴를 신청했다.

조흥은행은 55~56세 행원이 정년(58세)까지 근무했다고 계산해 특별 퇴직금을 지급했다. 부장 이상 간부(1급)는 명퇴금으로만 1억5000만~3억원을 받았다. 거금을 받는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명퇴가 꼭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인식이 퍼졌다.

1995년은 은행권 구조조정의 ‘빅뱅’이 일어난 해였다. 금융산업에 구조조정 바람이 불면서 이번 기회에 목돈 챙겨 떠나자는 신청자가 늘었다.

당시 서울은행(2002년 하나은행과 합병)에선 부점장급 1, 2급 간부 167명을 포함해 4급(대리) 이상 319명이 명예퇴직을 신청했다. 부장급 퇴직금은 4억5000만원에 달했다.

당시 구조조정 이유는 금융시장 개방과 현금자동입출금기(ATM)의 보급이었다. 당시 지점당 은행원은 100명이 넘었지만 ATM이 등장하면서 인력 수요가 줄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인터넷·모바일뱅킹과 핀테크 도입으로 은행원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 지난해 명퇴로 은행을 떠난 직원이 4000명을 넘은 것으로 추산된다.

한국에 들어온 외국계 금융회사는 국내 시중은행보다 더 많은 명퇴금을 주고 인원을 정리하고 있다. 한국에서 철수하겠다고 밝힌 바클레이즈는 명퇴금으로 44개월치 급여를 나눠줬다.

지난해 한국SC은행은 40세 이상, 10년 이상 근속자에게 32~60개월치 통상임금을 줬다. 명퇴금으로만 7억원을 받은 사람도 있다.

박상주 기자 sangj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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