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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동 느리고 손재주 없는 콤플렉스가 나를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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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희 대표는 “소비자와 눈높이를 맞춰 생활하지 않으면 그들이 무엇을 불편해하고, 필요로 하는지 알 수 없다. 앞으로도 집안일을 손에서 놓지 않을 생각”이라고 말했다. [사진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한경희생활과학’의 한경희(52) 대표를 만나고 싶어진 건 뜬금없게도 ‘가위’ 때문이다. 결혼 후 삼시 세끼 차리기의 어려움을 호소하던 친구 하나가 지난해 연말 모임에서 눈을 빛내며 이렇게 말했다

[사람 속으로] 스팀청소기서 가위칼까지 개발한 한경희 대표


. “야, 신기한 가위가 있더라고. 칼처럼 깍둑썰기도 막 되더라니까. 요새 이것 때문에 요리가 좀 편해졌어.” 검색을 해 보니 한경희생활과학에서 내놓은 ‘한경희 가위칼 싹둑’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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깍둑썰기, 고기·김치 자르기 등 용도별로 쓸 수 있는 한경희 가위칼 3종 세트. [사진 한경희생활과학]

지난해 12월 출시된 이 제품은 칼질에 서툰 초보 주부, 혼자 사는 젊은이들의 큰 관심을 모으며 현재까지 5억여원의 매출을 올렸다. 스팀청소기, 스팀다리미로 이름난 가전제품 전문 회사에서 가위라니? 호기심이 일었다.

 지난 20일 오후 서울 금천구 가산동 디지털단지 외곽에 있는 한경희생활과학 본사를 찾아갔다. 자그마한 체구의 한 대표는 “말주변이 없어 인터뷰를 잘하지 않는다”며 수줍어했다. 특히 최근 2~3년 사이엔 언론과 인터뷰를 거의 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한경희’라는 이름은 ‘한경희 스팀청소기’로 소비자들에게 각인됐지만, 그의 얼굴이나 회사를 일궈낸 사연 등은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 느릿느릿 조근조근 이야기를 시작한 한 대표의 목소리는 가위 이야기에서 갑자기 높아졌다.

 - 가전 회사에서 가위라니, 의외였어요.

 “내가 결벽증 비슷한 게 있어요. 호박 하나를 자르고도 도마를 박박 닦고 건조까지 시켜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에요. 설거지를 할 때마다 ‘아 진짜, 도마 좀 안 쓰고 살 수 없나’ 생각했거든요.

한국 주부들은 김치를 썰 때 가위를 주로 쓰는데, 당근·연근처럼 딱딱한 채소나 물렁한 고기, 두부까지 그냥 가위로 쓱쓱 자를 수 있으면 참 편리하겠다 싶었어요.”

 - 그런 생각을 한 주부가 많았을 것 같아요.

 “저도 10년 전부터 생각은 했는데 공학적으로 실현하는 게 쉽지 않더라고요. 5년 전에 한번 도전했다 실패하고 최근 1년 정도 집중적으로 다시 시도했어요. 연구원들이 ‘가윗날 각도’를 찾아내느라 진땀을 뺐죠. 사업을 할수록 느끼는 건데 아이디어는 중요하지만 또 그렇게 중요하진 않아요. 제품으로 만드는 건 90% 이상이 실행력이더라고요.”

 생활 속 아이디어를 기반으로 성공을 일군 중소기업 여성 최고경영자(CEO)다운 대답이다. 2000년대 초반 가열한 스팀으로 바닥을 청소하는 스팀청소기 열풍 역시 ‘쭈그리고 앉아 걸레질하기 싫은’ 주부로서의 경험에서 출발했다.

신생 회사인 한경희생활과학에서 스팀청소기를 내놓았을 때, 삼성전자 등 대기업에서 “왜 이런 제품을 생각해내지 못했느냐”며 임원들을 질책했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다.

이후에도 주부 CEO의 혁신은 이어졌다. 옷을 옷걸이에 걸어둔 상태로 다림질을 할 수 있게 한 세우는 스팀다리미, 두드림이 필요 없는 진동파운데이션 등 ‘신통방통한’ 제품들을 연이어 내놓아 소비자들의 열광적인 지지를 받았다.

 - 사업을 시작한 계기가 있었나요.

 “사업가의 꿈이 있었던 건 아니에요. 하지만 내 힘으로 뭔가 해내겠다는 열망이 강했던 것 같아요. 대학(이화여대 불문과) 때는 교사 출신의 엄한 아버지에게서 독립하겠다며 두 번이나 가출을 시도했다 실패했고 외국으로 나가는 방법밖에 없단 생각에 외국어 공부에 죽도록 매달렸죠.

저를 뽑아달라고 국제올림픽위원회(IOC) 본부에 편지까지 써 졸업과 동시에 스위스로 떠났는데, 일이 적성에 맞지 않았어요. 그 뒤로도 2년 주기로 회사를 옮겨다녔죠. 그렇게 끈기가 없어 어떡하느냐는 말도 많이 들었는데, 제가 진짜 하고 싶은 일을 찾아가는 과정이었던 것 같아요.”

 - 공무원을 그만두고 사업을 시작했는데.

 “30대 초반에 한국에 들어와 교육부 행정사무관에 합격했어요. 대기업에 다니던 남편과 만나 1996년 결혼했고, 97년과 99년 연이어 두 아들을 낳았죠. 둘째 출산휴가 중에 스팀청소기 아이디어가 생각났어요.

주로 주말에 대청소를 했는데 바닥에 쪼그리고 앉아 걸레질하는 게 제일 힘들더라고요. ‘이건 내가 아니면 아무도 못 만들 것’이란 확신이 왔어요. 기술자 중 어떤 분이 5000만원에 6개월이면 개발할 수 있겠다 하는 거예요. 바로 사표를 냈죠.”

 - 생각대로 잘 풀린 건가요.

 “웬걸요. 2년 동안 7억원이 넘게 들었어요. 우리 집은 물론 시댁·친정집까지 담보로 잡히고 가족의 ‘걸어다니는 민폐’가 됐죠. 성능이 안 나와 만들어놓은 제품을 전량 폐기하기도 하고, 그렇게 2001년에야 제대로 된 제품을 낼 수 있었어요.

원래 하나에 꽂히면 끝장을 볼 때까지 파고드는 성격이에요. 절실하니까 매달리게 되더라고요. 절실함이란 게 인간의 가장 큰 저력이라고 지금도 생각해요.”

 - 그 절실함은 어디서 나왔나요.

 “부족함, 그리고 그걸 채우고 싶은 열망인 것 같아요. 저는 콤플렉스가 많은 사람이에요. 어릴 적부터 워낙 행동도 느리고 손재주가 없었어요. 친구들이 제가 뭔가 만드는 걸 보면 답답하다, 슬로비디오 보는 것 같다고 할 정도였으니까.

요리도 잘하고 살림도 능숙했으면, 스팀청소기도 가위칼도 없었을 거예요. 내가 못하니까, 나 같은 사람들에게 필요한 걸 내 손으로 만들고 싶다, 그런 생각을 많이 했죠. 결점들이 지금의 나를 만든 거예요.”

 사업 초기에는 가전 회사의 여성 사장이라는 이유로 오해도 많이 받았다. 스팀청소기를 들고 유통업체를 돌았지만, 남성 MD(merchandiser)들은 제품 자체를 이해하지 못했다. “요즘 진공청소기가 얼마나 좋은데, 누가 스팀청소기를 사겠느냐”는 말만 되풀이했다.

정부의 중소기업 지원 프로그램에 신청서를 내러 갔을 땐 “남편이 부도내고 도망쳐 바지사장으로 대신 나섰느냐”는 말까지 들었다. ‘세상에 없던 상품’을 만들겠다고 나섰지만 곧 비슷한 상품이 우후죽순처럼 쏟아져 나왔다. 2013년과 2014년에는 연이어 적자가 나 위기설이 나오기도 했다.

 - 지난해 매각설이 돌기도 했는데.

 “계속 위기였고 지금도 위기예요. 기발한 상품을 내놓아도 그 프리미엄이 오래가지 않아요. 스팀청소기가 히트하니 국내 대기업은 물론 중국 회사들까지 앞다퉈 비슷한 상품을 내놓더라고요. 다각화했던 사업들을 정리하고 초심으로 돌아가 ‘가족을 행복하게 만드는 제품’을 만드는 데 집중하려고 해요.”

 - 여성사외이사회(WCD·Women Corporate Directors) 한국 지부 설립에 참여하는 등 사회활동도 활발합니다.

 “WCD는 사외이사를 뽑는 기업에 여성 사외이사를 추천하고 후보자들의 경력을 관리해주는 단체예요. 한국이 이렇게 성장했는데도 아직 지부가 없어 제가 나서기로 했어요. 회사 운영이 최우선이지만, 여성과 아동 문제엔 비교적 적극적으로 참여하려 합니다.”

 - 여성 친화적인 기업문화로도 유명합니다.

 “현재 직원 수가 73명인데, 여성이 40% 정도예요. 직원들의 출산휴가와 육아휴직을 15개월까지 최대한 보장하려 하고, 육아휴직에서 돌아온 직원에게 인사고과상의 불이익을 주지 않도록 하는 제도를 만들었어요. 제가 물러난 이후에도 한경희생활과학의 대표는 계속 여자로 이어 가고 싶다는 희망을 갖고 있어요. 적당한 시기가 되면 능력 있는 여성 전문경영인에게 회사를 맡기고 저는 제품 개발에만 집중하려 해요. 그게 저에겐 가장 재미있는 일이거든요.”

[S Box] “일하는 엄마라고 부채의식 가질 필요 없어”

“두 아들을 키우는 데 저랑 남편, 친정어머니, 시어머니, 그리고 도우미 아주머니까지 다섯 사람이 매달렸어요.”

영철(19)·영찬(17) 두 아들의 엄마인 한경희 대표는 “가정적인 남편과 가족의 지원 덕분에 육아와 일을 병행할 수 있었다”고 했다. 1999년 사업에 뛰어들었을 때 아이들은 겨우 한 살과 세 살. “그래도 하고 싶은 일은 해야 한다”는 남편의 지지에 힘입어 시작은 했지만, 손이 많이 가는 나이대의 아이들과 함께할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아이들이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진 주말은 물론이고 평일에도 퇴근 후엔 약속을 전혀 잡지 않았어요. 그렇게 사업을 할 수 있겠느냐는 이야기도 들었지만 육아도 할 수 있는 만큼은 최선을 다해야 후회가 없을 것 같았습니다.”

일하는 엄마들은 쉬는 날 아이에게 특별한 체험을 선물해주려 기를 쓴다. 한 대표 역시 놀이동산, 전시회장으로 아이들을 데리고 다녔다. 어느 날 아이들에게 기억에 남는 순간을 물었더니 “엄마랑 같이 자전거 탄 것”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일회성 이벤트보다 아이들이 하고 싶은 걸 꾸준히 같이해 주는 게 중요하다는 걸 알았죠.” 어린 시절 사진을 많이 못 찍어준 게 아쉬워 아이들을 키우며 특별했던 순간을 만화로 그려 『철이와 찬이네 가족 이야기』라는 책으로 만들었다.

첫째 영철군은 현재 미국에서 고등학교를 다니고, 둘째는 지난해 과천고에 입학했다. 한 대표는 “일하는 엄마라고 부채의식에 계속 시달릴 필요는 없다. 내가 일을 했기 때문에 아이들에게 자유로운 시간을 더 많이 선물할 수 있었다고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글=이영희 기자 misquick@joongang.co.kr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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