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토지조사령은 일제의 함정 … 절차 어렵게 해 땅 강탈


[총평]


1910년 8월 총리대신 이완용과 조선통감 데라우치 사이에 한국병합늑약이 체결됐다. 국권 강탈 후 일제는 조선총독부를 설치하고, 초대 총독으로 데라우치 마사타케(寺?正毅)를 임명했다. 총독은 육군과 해군 출신 중에서 임명됐으며, 일왕에게 직속돼 행정·입법·사법·군사권 등에 걸쳐 전권을 행사했다. 총독은 일본 내각의 통제를 거의 받지 않는 막강한 권력을 행사했다. 총독 아래에는 행정사무를 담당하는 정무총감과 치안을 담당하는 경무총감을 두었다. 경무총감은 헌병사령관이 겸임했고 전국에 헌병분대와 파출소, 경찰서와 주재소를 두어 한국인을 감시했다. 총독부 관료는 대부분 일본인이었으며 도나 군의 관리 중에서도 중요한 직책은 거의 일본인이 차지하고 있었다. 일제는 조선인의 정치 참여를 선전할 목적으로 1910년 10월 1일 총독자문기관인 중추원을 설치했다. 중추원의 정책 심의나 의결 기능은 전무에 가까웠으며, 일제에 적극 협력해 온 친일적인 인사들로 구성됐기 때문에 한국인의 의사를 반영할 수 없었다. 일제는 중추원을 민족운동세력의 분할과 친일세력의 육성, 친일파를 통한 사회적 영향력 강화에 이용했다. 1910년대에 일제는 헌병 경찰제도를 바탕으로 강력한 무단통치를 실시했다. 전국 곳곳에 헌병대와 경찰서를 설치해 한국인의 일상생활을 속속들이 감시하고 통제했다. 헌병 경찰은 첩보 수집과 의병 토벌, 독립운동가 색출은 물론 산림 감시, 정치 협조, 호적 사무, 세금 징수, 농사 개량, 우편 업무, 일본어 보급 등 행정 업무까지 수행했다. 헌병 경찰은 범죄즉결례나 경찰범 처벌 규칙에 따라 정식 재판 절차도 없이 재량으로 조선인을 즉결 처분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 받았다. 1912년에는 조선태형령이 공포됐다. 이는 조선인에게만 차별적으로 적용된 악법으로, 헌병과 경찰은 즉결 심판을 통해 태형을 가할 수 있었다. 태형은 공포의 대상이었는데 태형을 당해 불구가 되거나 사망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것이 국제적 문제가 되자 일제는 1920년 태형령을 폐지했다. 일제는 지세 부담을 공정하게 하고 근대적 토지소유권을 확립한다는 명분으로 1912년 토지조사령을 공포하고 토지 조사 사업을 시행했다. 그러나 실제 목적은 식민통치에 필요한 재정의 안정적 확보에 있었다. 토지 조사 사업은 총독이 정한 일정한 기간 안에 토지 소유권자가 직접 신고해 소유지로 인정받는 신고주의 방식으로 진행됐다. 구비 서류나 절차가 매우 까다롭고 신고기간이 짧아 미신고 토지가 많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일제는 대한제국 황실 소유지인 궁방전과 관유지인 역둔토, 마을이나 문중의 공유지 등 특정한 소유자가 없는 토지를 총독부 소유의 국유지로 편입했다. 총독부는 늘어난 소유지 가운데 상당 부분을 동양척식주식회사에 넘겼고, 동양척식주식회사는 이를 일본 이주민에게 싼값에 분배했다. 토지 조사 사업에서 일제는 지주들의 소유권만 인정하고 농민들의 관습적인 경작권은 부정했다. 그 결과 농민들의 지위는 약화됐고, 토지를 빼앗긴 농민들은 대거 소작농으로 전락하거나 만주·일본 등 국외로 이주했다. 동양척식주식회사는 조선총독부의 공식 수탈기관이었다. 총독부는 1910년 12월 회사령을 공포해 회사를 설립할 때 조선총독의 허가를 받도록 했다. 이는 한국인의 회사 설립을 억제함으로써 민족자본의 성장을 막기 위한 조치였다.


총평=김취정(고려대 강사·문학박사)




 


[핵심 키워드]


조선 총독부 총독은 육군과 해군 출신 중에서 임명됐으며 행정·입법·사법·군사권 등에 걸쳐 전권을 행사했다. 1910년 10월 총독 자문기관인 중추원이 설치됐으나 실질적인 기능은 거의 전무했다. 일제 식민통치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것이 헌병 경찰제도였다. 일제는 이 제도를 바탕으로 강력한 무단통치를 실시했다. 전국 곳곳에 헌병대와 경찰서를 설치해 한국인의 일상생활을 속속들이 감시하고 통제했다. 일제는 지세 부담을 공정히 하고, 근대적 토지 소유권을 확립한다는 명분으로 토지 조사 사업을 시행했다. 그러나 실제 목적은 식민 통치에 필요한 재정의 안정적 확보에 있었다. 총독부는 1910년 12월 회사령을 공포해 회사를 설립할 때 조선총독의 허가를 받도록 했다. 이는 한국인의 회사 설립을 억제함으로써 민족 자본의 성장을 막기 위한 조치였다.



 



 

구독신청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중앙일보 핫 클릭

PHOTO & VIDEO

shpping&life

뉴스레터 보기

김민석의 Mr. 밀리터리 군사안보연구소

군사안보연구소는 중앙일보의 군사안보분야 전문 연구기관입니다.
군사안보연구소는 2016년 10월 1일 중앙일보 홈페이지 조인스(https://news.joins.com)에 문을 연 ‘김민석의 Mr. 밀리터리’(https://news.joins.com/mm)를 운영하며 디지털 환경에 특화된 군사ㆍ안보ㆍ무기에 관한 콘텐트를 만들고 있습니다.

연구소 사람들
김민석 소장 : kimseok@joongang.co.kr (02-751-5511)
국방연구원 전력발전연구부ㆍ군비통제센터를 거쳐 1994년 중앙일보에 입사한 국내 첫 군사전문기자다. 국방부를 출입한 뒤 최장수 국방부 대변인(2010~2016년)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군사안보전문기자 겸 논설위원으로 한반도 군사와 안보문제를 깊게 파헤치는 글을 쓰고 있다.

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