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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는 우리 땅’ 세상에 알린 대한제국 칙령 41호

하야시 시헤이(林子平·1738~93), 대삼국지도(大三國之圖) 18세기 일본의 유학자이자 지리학자였던 하야시 시헤이(林子平·1738~93)가 제작한 1802년판 대삼국지도다. 조선은 노란색, 일본은 빨간색으로 돼 있다. 확대한 부분은 울릉도와 독도다. 당시 일본 명칭인 ‘마쓰시마(松島)’가 적혀 있고 노란색으로 조선의 영토에 포함시켰다. 울릉도 왼쪽에 ‘조선의 것(朝鮮ノ持之)’이라고 해설을 달았다. 중앙일보 2015년 7월 17일자 1면(1802년 일본 지도 ‘독도는 조선 것’). [사진 우리문화가꾸기회] 관련기사[이덕일의 事思史] 근대를 말하다
 


[총평]


두만강 북쪽 지역인 간도는 고조선, 고구려, 발해 등의 영토였으며, 우리 민족의 주요 활동 무대였다. 1712년 조선과 청의 관리가 영역을 둘러보고 경계를 확정해 백두산정계비(白頭山定界碑)를 세웠다. 이 비에는 서쪽은 압록강, 동쪽은 토문강을 경계로 한다고 기록되어 있었다. 19세기 후반 계속된 자연재해와 삼정의 문란 등으로 간도로 이주하는 조선인이 늘어나면서 간도 귀속을 둘러싼 분쟁이 일어났다. 백두산정계비에 명시된 ‘토문강’을 조선은 쑹화강의 지류라고 주장했고 청은 두만강이라 주장했다. 조선은 간도를 분명한 우리 영토로 인식했다.


대한제국은 1897년과 1898년 두 차례에 걸쳐 간도 현지를 답사하고 간도가 우리 영토임을 확인했다. 대한제국은 1901년 회령에 변계 경무서를 설치했으며 1902년에는 이범윤을 간도에 파견했다. 다음해에 다시 이범윤을 간도 관리사로 보냈으며 간도를 함경도의 행정구역에 포함하고 이를 청에 통고했다. 이범윤은 간도의 토지와 호구를 조사하고 조선인을 보호하는 영사의 역할을 수행했다. 그는 간도에 군대를 주둔시키고 관청을 설치하고자 간도에 거주하는 한국인에게 조세를 징수했다. 그리고 간도는 대한제국의 영토이므로 청에 세금을 납부할 의무가 없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그러자 청은 간도 지역에 연길청을 설치하고 행정 사무를 개시했다. 대한제국의 적극적인 영토 정책과 청의 대응 조치로 두 나라 사이에 국경 문제가 다시 불거졌다.


그러나 일제는 간도에 통감부 파출소를 설치했다. 이는 사실상 간도가 대한제국의 영토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었다. 간도 파출소가 편찬한 ‘한청국경문제의 연혁’이라는 문서에는 토문강이 쑹화강 상류로서 두만강과 관계없으며 두만강이 결코 국경선일 수 없다는 사실이 여러 조항에 걸쳐 논증되어 있다. 통감부는 1909년 청에 “간도는 조선 영토의 일부이기에 간도 거주 조선인은 청 정부에 대한 납세 의무가 없다”는 사실을 알렸다.


일제는 1909년 청과 ‘간도협약(간도에 관한 청일협정)’을 체결해 남만주 지역의 철도 부설권과 푸순 탄광 채굴권을 얻는 대가로 간도를 청의 영토로 인정했다. 일제는 을사늑약을 근거로 외교권을 불법적으로 사용해 간도 협약을 체결했다. 을사늑약은 조약체결권자(비준권자)였던 고종 황제가 비준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를 근거로 맺은 간도협약은 법리적으로 무효라고 할 수 있다.


간도와 마찬가지로 독도는 우리나라의 고유 영토다. 우리나라는 오래전부터 독도에 대한 영유권을 확립해 왔다. 이러한 사실은 『삼국사기』 『동국문헌비고』 『숙종실록』 『만기요람』 등의 기록과 지도를 통해 확인된다. 일본의 옛 지도에도 독도는 조선 땅으로 표시되어 있다. 일본 외무성이 최초의 독도 관련 고문헌이라고 주장하는 『은주시청합기(隱州視聽合記)』에서도 독도가 조선의 땅임을 인정하고 있다. 1877년 일본 메이지 최고 행정기관인 태정관의 문서에는 “울릉도와 독도는 일본과 관계없다”고 기록되어 있다. 19세기까지 일본은 울릉도와 독도를 조선의 영토로 인식하고 있었던 것이다. 대한제국은 1900년 10월 칙령 제41호를 반포해 이를 근대법적으로 재확인했다. 대한제국은 울릉도를 울도로 개칭하고 울도 군수가 관할하는 지역에 독도를 포함시켰다. 그리고 이 사실을 중앙 관보에 게재해 독도가 대한제국의 영토라는 사실을 세상에 공표했다.


독도 영유권을 부정했던 일본은 러일전쟁 중에 독도를 무인도로 규정하고 다케시마(竹島)라는 이름으로 일본 시마네현에 불법 편입했다. 일본은 1905년 ‘시마네현 고시 제40호’에 근거해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으나 법적 효력을 가지지 못한다.


최근 대학수학능력 문제 중 독도 관련 문항이 거의 없다는 점이 지적되고 있다. 독도 문제가 교육 현장에서 겉돌고 있는 것 아니냐는 우려 또한 커지고 있다. 이에 수능 한국사 시험에 독도 문제가 출제될 가능성이 높다. 독도 관련 예상 문제를 풀어보면서 수능 시험에 대비하는 것이 필요하다.


총평=김취정 (고려대 강사·문학 박사)


 



[핵심 키워드] 간도는 우리 민족의 주요 활동 무대였다. 청은 간도를 자신들의 발상지라고 하여 17세기 후반부터 간도 지역의 출입을 금지했다. 조선 숙종 때 청의 요청에 따라 1712년 국경을 답사하고 압록강과 토문강을 경계로 한다는 백두산정계비를 세웠다. 19세기 중엽 이후 간도의 귀속 문제로 논란이 다시 발생했다. 백두산정계비문의 내용에서 문제가 된 점은 동쪽의 경계로 삼는다고 새겨져 있는 토문강의 위치였다. 조선은 토문강이 쑹화강의 상류임을 확인하였고, 청은 토문강을 두만강이라 주장했다. 일본은 1909년 간도협약을 통해 남만주의 철도부설권과 탄광채굴권 등을 얻는 대가로 간도 지역을 청국 측에 넘겨주었다. 간도협약은 일본이 불법적으로 간도를 청국에 넘겨준 조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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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