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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하며 살가웠던 판매원, 돈 없단 말에 “대출 받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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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군아! 우리가 처음 만난 게 지난해 11월이었지? “엄마, 몸도 불편하신데 어떻게 왔어! 얼른 들어와요.” 싹싹하고 선해 보이는 네가 첫인사를 했을 때 난 20년 전 소식이 끊긴 아들 생각이 났다. 오랜만에 들어보는 ‘엄마’ 소리에 마음이 시큰해지더구나. 넌 그런 내 손을 꼭 잡고 네가 운영하는 홍보관 안쪽 자리로 안내했어. 내 또래로 보이는 할멈들도 이미 많이 와 있었지. “우리 엄니들 여기까지 오셨는데 제가 노래 한 곡 뽑아야겠죠?” 같이 노래 부르고 손뼉도 치면서 그날 난 오랜만에 실컷 웃었다.

 널 만나기 1년 전 난 교통사고로 죽을 고비를 넘겼어. 머리를 다치고 무릎·팔꿈치 뼈가 부러져 한동안 하루 종일 방바닥에 누워 죽은 듯이 살았지. 남편은 이미 20년 전 다른 살림을 차려서 나간 지 오래라 난 늘 혼자였어. 노점 장사만 58년째 했는데 그마저도 할 수 없게 됐지.

 동네 친구가 내 소식이 뜸하니까 집으로 찾아왔더라고. 내 몰골을 본 친구는 “언니 이러다 진짜 죽는다”며 날 네가 있던 서울 은평구 불광동의 한 사무실로 데려갔어. 상호명이 ‘OO홈쇼핑’인 상품 홍보관이었지. 넌 한 달 전부터 동네를 돌아다니며 할멈들한테 홍보 전단을 돌렸더라. ‘삼십대 후반이면 딱 내 아들 또랜데, 열심히 사는구나’ 싶었어. 넌 처음 본 내게 계란·휴지·세제 등을 1000원만 받고 나눠 주기도 했어. “매일 와요, 엄마.” 넌 웃으며 말했지.

 그날부터 너의 미소가 눈에 선해 매일 홍보관을 찾아갔어. 언제나 살갑게 대해 주던 네가 어찌나 고맙던지. 정말 널 아들처럼 생각했단다. 연락이 끊긴 내 친아들보다 더 아들 같았어. 다른 할멈들도 그랬을 거야. 다들 나처럼 외로운 사람들이거든.

 “엄마, 요새 잠 잘 못 주무신다며. 우리 이불 진짜 좋은 거 있는데 하나 쓰실래요?” 일주일쯤 지났을 때 네가 말했어. 가격이 49만8000원이었지. 부담됐지만 그래도 네게 뭐라도 하나 해 주고 싶어 그 이불을 샀어. 그때부터 넌 본격적으로 이런저런 물건을 갖고 와 우리 앞에 내놓았어. 건강식품·이불·보험 등 종류도 다양했지.

 홍보관에는 총 3개의 팀이 있었는데 팀당 할머니가 50명쯤 됐을 거야. 난 네가 팀장으로 있던 3팀 소속이었지. 넌 제일 판매 성과가 좋은 팀장에게 회사에서 금 10돈을 준다고 했어. 그 말에 우리 팀 할멈들 모두 너 금 타게 해 주려고 물건을 사댔어. “팀 1등 하면 회사에서 엄마들 태국 여행 보내 준대”라는 말에 물건을 산 친구들도 있었지. 결국 지원금이 안 나와 가진 못했지만 말이야. 지금 생각해 보니 이것도 다 거짓말이었겠구나.

 네가 가시오가피 원액을 갖고 온 날 기억하지? 네가 직접 강원도에서 채취해 18개월 숙성시킨 제품이랬어. “엄니들, 이게 관절에도 좋고 당뇨에도 직빵이야! 치매에도 좋고. 진짜 만병통치약이에요.” 넌 아들이 장애인인데 이 제품을 팔아야 가족이 먹고살 수 있다며 하소연하기도 했지. 그 말에 마음이 아파 한 박스에 59만8000원 하는 걸 13박스를 샀어. 교통사고 당했을 때 나온 보험금으로 말이야. 넌 가시오가피 원액은 많이 먹을수록 좋다고 하루에 9개씩 먹으라고 했어. 네 말 듣고 열심히 챙겨 먹었지. 그런데 한 달쯤 지났나? 숨도 잘 안 쉬어지고 몸에 물집까지 생긴 거야. 병원에 갔더니 간이 부었다더라. 열흘간 입원했어.

 퇴원 후 홍보관에 갔더니 넌 놀란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어. “엄마, 미안해요. 어떡해. 나 때문에.” 미안해하는 네 모습을 보니 ‘그냥 가시오가피가 내 몸에 안 맞았나 보다’ 싶었지. 내 눈치를 살피던 넌 또 이렇게 말했어. “엄마, 마침 내가 이번에 다른 약을 가져왔거든? 이걸 가시오가피랑 같이 먹어야 된대. 부작용도 덜하고 효과는 두 배야.” 미련하게도 난 그 자리에서 49만8000원짜리 약 20박스를 사고 말았어. 내 아들도 어딘가에서 너처럼 고생하며 살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니 안 살 수가 없었어.

 급기야 넌 물건 살 돈이 없다는 내 말에 대출까지 권했어. 주민등록증을 달라며 내 집 앞까지 쫓아온 널 보며 난 네 본모습을 알게 됐지. 혼란스러워하고 있던 내게 열흘 전쯤 은평경찰서에서 찾아왔어. 노인들을 상대로 불법 영업하는 나쁜 사람들이 있다는 첩보를 듣고 얼마 전부터 홍보관을 염탐 중이셨대. 그래서 난 그분께 내 사정을 설명하고 진술서를 작성했어. 네가 판 건강식품을 먹고 부작용에 시달린 사람은 나뿐만이 아니더라. 게다가 원가가 2만원도 안 하는 걸 넌 몇십만원에 팔았어. 경찰관님은 “대표랑 팀장급 5명 다 14일에 붙잡았어요. 할머니처럼 진술서 쓰신 분이 23명, 피해액은 1억원이 넘어요”라고 하더라.

 박군아, 난 이제 네가 무서워. 친아들보다도 아꼈던 네 모습이 모두 거짓이었다는 생각에 화가 나다가도 이따금씩 눈물이 난다. 그래, 누구 탓을 하겠니. 다 내가 부족한 탓이지. 하지만 모든 게 너무나 허망하구나. 이제 살면서 누굴 믿어야 하는 거니. 난 그저 누군가의 따스한 손길이 그리웠을 뿐인데….

홍상지 기자 hongsam@joongang.co.kr

  ※서울 은평경찰서 지능팀과 피해 할머니 이모(71)씨 등을 취재한 내용을 토대로 이씨 할머니의 시점에서 재구성한 기사입니다. 경찰은 노인들에게 싸구려 물건을 고액에 판 혐의(사기)로 박모(37)씨 등 5명을 붙잡아 그중 한 명을 구속하고 나머지 네 명을 불구속 입건해 조사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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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