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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강지처’ 내던지고 소프트웨어 올인한 이멀트…GE의 영웅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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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를 향한 공격성’. 미국 제너럴일렉트릭(GE)의 핵심 DNA다.

잭 웰치 전 최고경영자는 몇 년 전 중앙SUNDAY 칼럼에서 “GE는 수익을 위해 변화가 필요한 순간엔 망설이지 않았다”고 썼다. 공격성의 구성요소 가운데 하나는 비정함이다.

최근 GE는 조강지처나 다름없는 가전 부문을 도려 냈다. 발전설비 등 제조 부문 자체도 부차적인 비즈니스로 만들 요량이다. GE가 19세기 후반 등장한 이후 또 다른 변곡점을 그리고 있다. DNA 속 공격성이 여과 없이 발현되고 있다.

 GE의 공격성이 처음 발현된 때는 1891년이다. 에디슨제너럴일렉트릭(GE의 옛 이름)을 설립한 지 13년 뒤다. 설립자인 ‘발명왕’ 토머스 에디슨이 축출됐다.

월가 금융자본 JP모건과 독일계인 도이체방크가 수익을 위해 에디슨이 싫어하는 경쟁 회사와 합병을 하기 위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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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명왕은 쫓겨났다. 얼마 지나지 않아 회사 이름에서 ‘에디슨’도 빠졌다. ‘제너럴일렉트릭’으로 정리됐다. 에디슨 흔적이 제거된 것이다.

 그로부터 120여 년이 흘렀다. GE의 제프리 이멀트(60) 회장이 야수적 충동(Animal Instinct)에 따라 움직이고 있다. 성공 여부는 알 수 없는 도전이다. 일부에서는 도박이라고 본다.

그는 지난해 1570억 달러(약 191조원)에 달하는 자산을 팔아 치웠다. GE 전체 매출의 40%를 차지하는 금융사업과 GE 브랜드를 글로벌 시장에 알린 백색가전사업까지 과감히 포기했다.

대신 그가 선택한 건 소프트웨어였다. 금융을 버린 이멀트 회장은 오랜 맞수인 독일 지멘스 대신 마이크로소프트(MS)·아마존·IBM을 경쟁자 리스트에 올려놨다.

 이멀트 회장은 GE의 새 모습을 ‘디지털 산업(digital industrial) 기업’으로 표현했다. GE코리아 조병렬 전무의 설명이다.

“금융사업을 버리면서 GE가 선택한 것은 ‘제조’다. 굴뚝기업인 GE가 본원으로 회귀한다는 것을 뜻한다. 하지만 과거와 달라진 것이 있다. 바로 제조 앞에 ‘첨단’이란 수식어가 붙었다는 점이다.”

 이멀트 회장이 언급한 ‘산업’이란 제조+서비스를 포괄하는 개념이다. GE만의 특수한 사업 고리를 분석하며 나온 그만의 통찰이기도 하다. GE는 항공기 엔진이나 발전설비, 초음파기기 같은 산업장비 판매업에 오랜 시간 매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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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령 과거엔 항공기 엔진을 만들어 파는 것만으로 돈을 벌었다. 시간이 갈수록 엔진의 유지·보수와 같은 서비스를 통해 벌어들이는 매출 비중이 커졌다.

조 전무는 “스마트폰과 같은 일반 소비자에게 파는 상품은 고객 서비스를 하는 데 부가비용이 들지만 산업장비 서비스업은 비용이 아닌 수입을 가져다주는 고(高)부가가치사업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패러다임의 변화는 이멀트의 인사이트를 확신으로 만들었다. 정보통신기술(ICT)의 빠른 발전이 추진체 역할을 했다. 항공기가 한 번 엔진을 가동해 움직이면 테라바이트(TB)급 정보가 쏟아졌다.

GE는 엔진에 센서를 부착해 그간 버렸던 정보를 모으기 시작했다. 빅데이터를 분석하는 것만으로 항공기 사고를 사전에 예방 가능한 ‘예방 정비’가 가능해졌다.

전통의 제조업에 첨단기술을 얹는 것만으로 GE는 서비스 매출을 높이고 고객사에는 생산성을 높여 줄 수 있는 일거양득의 기회를 잡을 수 있게 됐다.

 마르코 아눈지아타 GE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이를 두고 “2010년 이래 연 1% 상승할 정도로 제자리걸음을 해 온 미국 제조업의 생산성 혁신을 촉발할 변화”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스마트폰이 상징하는 ‘소비자 인터넷’이 지금까지의 변화를 이끌었다면 이제부터는 산업 인터넷의 시대라는 게 GE의 시각이다. 한 나라의 경제에 영향을 미칠 이 변화는 2020년까지 8조6000억 달러(약 1경200조원)의 부가가치를 만들어 낼 것이란 분석도 덧붙였다.

 확신은 행동으로 이어진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이멀트의 ‘프레딕스(Predix)’가 2월 출시될 것이라고 예고했다. 프레딕스는 GE가 만든 운영체제(OS)다.

우리에게 익숙한 것은 애플 운영체제(iOS)나 구글의 안드로이드 운영체제 같은 스마트폰용 OS나 윈도 같은 PC용 OS다. 프레딕스는 정보를 분석하고 판단하는 ‘생각하는 산업장비’를 위한 OS라는 게 다른 점이다.

 GE는 철저히 두 회사의 앞선 경험을 따랐다. 프레딕스를 개방해 GE만의 생태계를 구축하겠다는 것이다. 세계 최초의 클라우드 기반 산업용 운영체제인 프레딕스엔 일본의 도시바가 합류했다.

프로젝트성이지만 실제 프레딕스를 활용한 애플리케이션(앱) 개발도 진행 중이다. GE는 내년까지 프레딕스를 활용하는 산업기기가 50만 개에 이를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조 전무는 “헤게모니 싸움이 시작됐다”고 말한다. 소프트웨어 기업으로의 변신을 선언한 전통의 굴뚝기업인 GE와 기존 정보기술(IT) 기업 간의 경쟁이 그것이다.

GE는 이 싸움에서 승기를 잡기 위해 캐나다 보안회사인 월드테크도 인수(2014년)했다. 지난해 9월엔 디지털사업부를 신설했다. 이멀트 회장에게 직접 보고하는 최고디지털책임자(Chief Digital Officer) 자리엔 빌 루 부사장을 앉혔다.

이멀트 회장은 “모든 지구상의 제조기업은 어느 날 갑자기 자신들이 소프트웨어 회사가 돼 있음을 깨닫게 될 것”이라고 확언했다.

 변화는 급진적이지만 체화된 것이기도 하다. GE를 이끌어 온 리더들의 역사가 이를 뒷받침한다.

자신이 개발한 기술에 매몰돼 전기 산업을 예측하지 못했던 에디슨은 투자자인 JP모건에 의해 축출당하는 수모를 겪었지만 기술과 특허권을 활용해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는 에디슨의 철학은 GE에 남았다.

 제1차 세계대전과 제2차 세계대전을 지나며 미국 최초의 제트엔진, 무선통신과 레이더를 개발한 GE는 사업 영역이 21개로 폭증했다.

랠프 코디너(1950~63년 경영) 회장은 사업별 전문경영인 개념을 이때부터 도입해 ‘목표 관리’에 나섰다. GE 인재의 산실인 크로턴빌 연수원도 이때 설립됐다.

코디너 회장은 GE의 ‘경전’으로 불리는 블루북을 만들고 전문경영인을 위한 8가지 계명을 세웠다. 수익성과 시장점유율, 생산성 같은 것으로 객관적으로 측정 가능한 ‘수익’이 GE에서 경영자의 중요한 평가지표가 되도록 만들었다.

실수도 범했다. ‘전기회사의 대음모’로 불리는 정부 입찰사업 가격 담합사건에 휘말리며 불명예 퇴진을 했다. 이 일로 GE는 그간 수성했던 미국 시장 문을 독일과 일본과 같은 외국 기업들에 열어 줬다.

 바통을 이어받은 프레드 보크(1967~72년 경영) 회장은 신사업으로 눈을 돌렸다. 성장위원회가 추천한 대로 보크 회장은 컴퓨터사업에 뛰어들었지만 경쟁자 IBM에 가로막혀 쓴잔을 들이켜야 했다.

학교와 상업시설, 주택을 아우르는 도시개발사업에도 뛰어들었지만 토지 확보에 실패하는 우를 범했다. 9개 신사업을 동시에 진행한 쓰디쓴 경험은 이후 GE가 ‘포트폴리오 경영’에 나설 수 있는 교훈을 남겼다.

 잭 웰치(1981~2001년 경영) 회장에 이르러 GE는 금융사업을 앞세워 고속 성장을 경험한다. 웰치 회장은 방대한 GE의 사업구조를 단순화했다.

고강도의 사업 재편과 인력 감축에 나서면서 웰치 회장은 ‘중성자 잭’이란 무시무시한 별명을 얻기까지 했다. 그는 성장을 위해선 급진적인 사업 조정도 서슴지 않아야 한다는 유산을 이멀트 회장에게 물려줬다.

 이제 이멀트의 눈은 실리콘밸리를 향해 있다. 실리콘밸리와 GE와의 간극은 여전히 존재한다. FT는 “GE가 산업 인터넷의 리더가 된다면 왕관은 잭 웰치의 그림자를 털어 낸 이멀트가 쓰겠지만 이 전략이 실패하면 이멀트의 몰락을 부를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현예 기자 hykim@joongang.co.kr

제프리 이멀트(60)

잭 웰치가 7년간의 후임자 탐색 끝에 2001년 GE의 열 번째 최고경영자(CEO)로 꼽았다. 이멀트는 당시 45세로 23명의 후보군 중 가장 젊었다. 탁자를 내리치며 열변을 토하는 웰치와 달리 회의 때 농담을 잘하고 직원들과 격식 없이 e메일을 주고받는 등 소통에 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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