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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 2035] 내 나이가 어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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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미 JTBC 사회부 기자

며칠 전 충격적인 ‘카더라’를 들었다.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의 택이(배우 박보검)가 나랑 같은 고등학교를 나왔다는 거였다. 택아, 너도 기억하는 거니. 우리가 걷던 그 복도, 우리가 뛰놀던 그 운동장을. 가슴을 진정시키며 인터넷을 뒤졌다. 웬열(웬일이니). 맞긴 맞는데 더하고 뺄 것도 없이 나랑 딱 열 살 차이다. 교생과 학생의 로맨스로도 이뤄지기 힘든 나이 차. 순간 마음이 싸해졌다.

 학창 시절엔 그 흔한 H.O.T.나 젝스키스 팬클럽 한 번 거치지 않았던 나였다. 길에서 드라마를 찍고 있는 장동건을 만나도 눈길 한 번 안 줬다. 그런데 요즘엔 마음이 쉬이 동한다. 얼마 전 배우 강동원씨가 뉴스 출연을 위해 방송국을 찾았을 때도 난리였다. 혼자 한참을 고민하다 결국 못 갔다. 만나면 사진 찍어달라고 매달릴까 봐.

 얘가 다 늦게 왜 이래. 오랜 친구가 핀잔했다. 결혼은 했지만 자식은 없는 30대 초중반의 기자. 끔찍한 사건사고 현장에서 젊고 잘생긴 남성을 만날 확률은 적다. 하지만 또 누가 멋지다 한들 하루하루 사는 일이 바쁘니 빠순이 단계까진 못 간다. 얼마나 효율적인 팬심인가. 내 인생에선 지금이 연예인 좋아하기 딱 좋을 나이다.

 최근 취재 때문에 취업준비생들을 만났다. 올해 스물넷, 다섯, 여섯. 쪼르륵 그쯤 되는 친구들이다. ‘한창 일할 나이, 일하지 못해 서러운 20대’가 주제였다. 방학인데도 다들 여유가 없었다. 이른 새벽 학원 수업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아르바이트로 밤을 맞는다고 했다. 나는 그맘때 취업이 안 돼 유럽으로 여행을 떠났다. 돈은 없었지만 짱짱한 체력과, 빵빵한 웃음이 있어 몸 누일 곳만 있어도, 딱딱한 빵 한 조각만 먹어도 좋았다. 그때는 누가 뭐래도 일만 하기는 아까운, 놀기엔 딱 좋은 나이다. 나는 기사에서 ‘한창 일할 나이’라는 수식어를 뺐다.

 일본 동화작가 사노 요코라고 있다. 일흔에 암 선고를 받았는데, 그는 책에 ‘죽기에 딱 좋은 나이’라고 썼다. 자신은 일을 싫어하니 반드시 하고 싶은 일도 없고, 질병과 싸울 생각은 애초부터 없으니 그렇다는 거였다. 또 하나의 에피소드. 누군가 화장하는 중학생들에게 화장 안 해도 예쁠 나이라고 나무랐더니 이런 답이 돌아왔단다. “화장 안 해도 예쁜 나인데, 하면 얼마나 더 예쁘겠어요.” 100점 주고 싶다.

 그래, 뭐 하기 좋은 나이란 건 없다. 거짓말이거나 틀린 말이다. 있더라도 사람마다 다르다. 그래서 나는 택이를 애써 마음에서 떠나보내지 않기로 했다. 내 나이가 어때서.

김혜미 JTBC 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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