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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기의 시시각각] ‘문제해결형 민주주의’ 선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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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기 논설위원

총선의 시절이다. 선거엔 민심이 집중된다. 국민의 마음이 폭포수같이 흐른다. 시대정신이 탄생한다. 시대정신은 당대인들이 느끼는 결핍과 갈망이다. 나는 올 4월, 20대 총선의 시대정신이 ‘운동권 정치의 종말, 문제해결형 민주주의의 등장’이라고 생각한다. 독재와 싸우면서 내면에 증오를 축적했던 운동권식 민주주의는 30년 만에 수명을 다했다. 지금의 운동권 정치는 그때의 희생과 헌신을 잊어버렸다. 적대(敵對)와 극단, 분파 이익을 추구하는 권력으로 변색됐다. 오늘날 야권을 망친 친노 패권문화는 운동권 정치의 최종 단계다. 시대는 문제해결형 민주주의를 요구하고 있다. 책임과 이해(理解), 공동선의 추구가 문제풀이 민주주의의 정신이다.

 지난 일요일 나는 특별한 제주여행을 했다. 월간중앙이 초청하고 원희룡 제주지사가 장소를 댄 토론회에서 사회를 봤다. 모임의 참석자는 원 지사와 남경필 경기지사, 안희정 충남지사, 김부겸 전 의원이다. 내가 ‘한국의 위기, 정치의 회복으로 풀자’는 주제를 내놨더니 남 지사는 더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했다. “정치가 위기를 해결한다고요? 설정이 잘못된 것 같다. 정치, 자체가 대한민국의 위기다”고 말했다. 세 명의 도지사와 김 전 의원은 50대다. 이들이 30~40대 때는 비주류, 소장파, 포퓰리즘이라는 이미지가 있었는데 지금은 지사 경험 등에서 우러나오는 듬직함이 느껴졌다. 정쟁이 아니라 일을 하고 있다는 뿌듯함이 표정에서 묻어났다. 차세대 리더라고 불리는 이들에게서 나는 운동권 논리의 소멸과 문제해결형 태도를 발견했다.

 문제해결형 정치인은 운동권 문화의 그림자를 잘 인식하고 있다. 원희룡 지사는 “친노 패권주의라는 이름으로 운동권 출신이 공격받을 때 변호해주고 싶은 마음도 있다. 그러나 그들은 두 가지 공통적인 문제가 있다”고 말한다. 첫째는 너는 죽고 나만 살자는 태도다. 내가 아니면 안 된다는 독점욕이 너무 강하다. 둘째, 공부를 참 안 한다. 옛날에 봤던 이념 서적으로 오늘의 모든 것들을 판단하려 한다. 과도한 이기심과 지적 게으름이 운동권 문화의 멸종 원인이다.

 문제해결형의 또 다른 덕성은 인간의 한계를 인정하는 것이다. 실존적 겸손함이 유연함을 낳는다. 유연함은 시행착오를 거쳐 현실적인 답을 찾아낼 것이다.

 ▶남경필=“신은 완전하다. 인간은 불완전하다. 나는 틀릴 가능성이 굉장히 많은 존재다. 정치는 거기서 시작한다. 문제해결에 가장 필요한 자세는 내가 틀렸다는 인식이다. 내가 틀렸기에 문제가 발생한 것 아닌가.”

 ▶안희정=“젊은 날엔 불의와 싸워서 정의가 이기는 역사를 만드는 게 정치라고 생각했다. 세월이 지나면서 옳고 그름의 경계가 불분명해졌다. 정치는 서로 다른 이해관계들을 조절하는 일이었다. 평화와 타협으로 이끌어 가야 한다.”

 문제해결형 정치인은 적절한 수단과 정교한 기술, 대담한 발상을 구사해야 한다. “농부가 호미나 삽을 사용하듯 정치인은 말을 사용한다. 말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균열을 만들기도, 통합을 이루기도 한다.”(안희정), “경청하는 것만으론 불충분하다. 듣고 또 들어서 이해(利害)관계를 완전히 이해해야 한다.”(남경필), “제1당과 2당이 대연정(연합정부)을 구성하고 양극단 세력은 주변부에 좀 찌그러져 있어야 한다. 대연정으로 남북통일에 대한 국론, 사회적 대타협을 이룰 수 있다.”(원희룡)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은 많아도 문제를 해결하려는 사람은 적은 시대다. 김부겸은 “정치인은 문제를 해결해 보겠다고 스스로 책임을 떠안은 사람”이라고 정의했다. 그들이 역사 속의 거물 정치인들인데 요새는 문제를 제기하는 데만 익숙한 생계형 정치인들이 많다고 했다. 김부겸은 “정권이 바뀌어도 지속가능한 정치를 하고 싶다. 정당은 유한하지만 국민은 영원하다”고 말했다. 문제해결형 정치는 이미 여러 정치 단위에서 작동하고 있다. 운동권의 그림자에 파묻힌 여의도 정치만 보고 절망할 필요는 없다. 희망의 싹이 겨울 제주에서 트고 있었다.

전영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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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