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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 되는 유전자만 골라 제거…난치병 고치는 '기적의 가위'

병충해를 이겨낸 상추, 혈우병 발병 요인을 제거한 유전자, 애완견 크기 정도로 몸집이 줄어든 미니 돼지…. 셋의 공통점은 모두 ‘크리스퍼(CRISPR) 유전자 가위’가 지난해 일궈낸 과학 성과라는 것이다.
인류는 이제 세포 안에 있는 특정 유전자를 골라서 제거할 수 있는 ‘유전자 짜깁기’ 기술을 보유했다. 이런 기술을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이하 크리스퍼 가위)’라고 한다.

[궁금한 화요일] 생명과학 수퍼 스타 ‘유전자 가위’


과학 저널 사이언스는 ‘2015년을 빛낸 과학 성과’ 1위로 크리스퍼 가위를 꼽았다. 영국 프랜시스 크릭 연구소가 크리스퍼 가위로 유전자 변형 인간 배아를 만들 예정이라고 올해 초 발표하면서 이 기술은 더욱 주목을 받고 있다. 2013년 이후 단숨에 생명과학계 ‘수퍼 스타’로 떠오른 크리스퍼 가위의 원리를 알아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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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4일 서울대 화학부 연구동 1층 기초과학연구원(IBS) 유전체교정연구단에서 김소정 박사가 냉장고를 열고 새끼손가락 두 마디 크기의 ‘스냅 튜브’를 꺼냈다. 플라스틱 형태의 튜브엔 물과 같은 투명한 액체가 담겨 있었다. 김 박사는 “눈으로 볼 순 없지만 여기에 크리스퍼 가위가 녹아있다”고 말했다.

크리스퍼라는 말은 ‘주기적으로 간격을 띄고 분포하는 특이한 유전자 염기서열 구조’의 준말이다. DNA의 염기는 아데닌(A)·구아닌(G)·시토신(C)·티민(T)으로 이뤄져 있고, A는 T, G는 C와 결합한다.

그런데 이 구조는 ‘A-C-C-T’ 다음에 이와 대칭이 되는 ‘A-G-G-T’가 붙는 구조(회문구조)다. 세균은 자신의 몸 안에 바이러스가 침입했을 때 바이러스를 잘라내 바이러스의 유전자 정보를 몸 안에 감춰두고 기억을 하는데 이때 유전자 조각이 크리스퍼다. 세균이 바이러스의 침투를 방어하기 위한 방패 역할을 한다.

 그렇다면 가위는 무엇일까. 김 박사가 보여준 액체를 현미경으로 보면 두 날이 달린 가위가 관찰될까. 그렇지는 않다. 유전자를 자르는 역할을 하는 건 단백질(Cas9)이다. 크리스퍼 가위는 RNA 형태의 크리스퍼(CRISPR)와 카스나인(Cas9)이 짝을 이뤄 구성되는데 정확하게 말하면 화학반응을 일으키는 ‘유전자 교정(genome editing)’ 기술을 뜻한다.

 예를 들어 피부 세포 속의 유전자 일부를 잘라낸다고 하자. 이때 세포와 크리스퍼 가위를 생리식염수 등에 함께 섞고 2~3일 정도 기다리면 된다. 크리스퍼가 잘라야 하는 유전자 위치를 확인하면 카스나인이 나서 절단 작업을 진행한다. 유전자와 크리스퍼 가위 모두 수㎛(마이크로미터, 100만 분의 1m) 정도로 작기 때문에 반응을 맨눈으로 확인할 순 없다.

김 박사는 “유전자 가위는 일종의 화학반응”이라며 “반응이 일어나기까지 다소 시간이 걸린다”고 말했다. 유전자 가위라는 말을 국내 처음으로 사용한 사람도 연구단을 이끌고 있는 김진수 유전체교정연구단장(서울대 교수 겸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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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균 속 크리스퍼 가위 구조를 처음으로 확인한 제니퍼 다우드나 교수.

 크리스퍼 가위 구조를 처음으로 확인한 사람은 미 캘리포니아대 제니퍼 다우드나 세포생물학과 교수다. 이런 공로로 다우드나 교수는 지난해 노벨상 후보로 거론됐다. 서울대 연구팀은 2013년 세계 최초로 크리스퍼 가위를 활용해 유전자 교정에 성공했다.

크리스퍼 가위 하나를 만드는 비용은 1만원에 불과하다. 저렴한 만큼 연구가 많이 이뤄져 발전 속도가 빠르고 응용 분야도 넓다. 김진수 IBS 유전체교정연구단장은 “크리스퍼는 생명과학은 물론 의과학과 생명공학 분야 등에서 전방위적으로 활용되고 있다”며 “고부가가치 농작물이나 줄기세포를 활용한 유전자 치료 등에서도 관련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고 말했다.

 크리스퍼 가위를 활용하면 유전자 교정이 가능해 질병에 대한 근본적인 치료가 가능하다. 김 단장은 지난해 연세대 김동욱 교수와 함께 크리스퍼 가위로 혈우병 유전자를 자른 다음 정상 유전자로 복귀시키는 데 성공했다. 병충해에 강한 맞춤형 농작물 개발에도 성공했다. 유전자를 교정하면 쌀의 특정 영양성분(탄수화물 등)만을 높일 수도 있다.

 현재 개발된 크리스퍼 가위는 만능이 아니다. 우선 정확성을 높이는 과제가 있다. 크리스퍼 가위는 가위질에 서툰 아이처럼 원하지 않는 부위도 잘라낸다. 이를 ‘오프 타깃 사이트(off-target site)’라 부른다.

김 단장은 “크리스퍼의 정확성을 높이고 원치 않는 유전자 변이를 억제하는 연구도 앞으로 남은 중요한 과제”라며 “크리스퍼 이후 차세대 유전자 가위를 만드는 연구도 함께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유전자 가위를 활용한 유전자 조작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생명윤리에 대한 우려도 함께 커지고 있다. 유전자 가위와 관련한 윤리 문제는 지난 7일 황교안 국무총리 주재로 열린 국가과학기술심의회에서 주요 안건으로 다뤄졌을 정도다.

이날 회의에선 사람을 대상으로 한 치료에 유전자 가위를 적용하기 위해서는 추가 연구와 안전성에 대한 검증이 필요하다는 데 의견이 모아졌다. 인간 배아에 유전자 가위를 적용하는 문제에 대해서도 사회적 합의를 모으기로 했다.

강기헌 기자 emckk@joongang.co.kr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인간을 포함한 동식물의 세포에서 특정 유전자를 골라서 잘라내는 3세대 유전자 교정 기술이다. 세균에서 유래했다. 유전병 치료 등에 활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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