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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석천의 시시각각] 7분이면 아이 살릴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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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석천
논설위원

지난 일요일, 당신과 나는 차에서 내린다. 밤 9시45분 경기도 부천의 어느 골목이다.

 수퍼마켓, 부동산, 치킨집, 정육점, 편의점…. 상점들이 드문드문 불을 밝히고 있는 일방통행 이면도로를 따라가다 안쪽으로 70~80m 들어간 곳에 빌라가 있다. 2012년 최모(34)씨 가족이 살던 곳이다. 빌라 맞은편 주차장 관리실 문을 두드리자 50대 여성이 얼굴을 내밀고 “죽은 아이 때문에 왔느냐”고 묻는다.

 -아이 때린다는 소문을 들은 적이….

 “전혀 못 들어봤어요. 아이 이름이 ○○라는 것도 이번에 알았으니까.”

 -평소에 무슨 소리 같은 게 들리진 않았나요?

 “차들이 계속 들어왔다 나가고, TV 소리 때문에….”

 최씨는 일곱 살 아들을 학대한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살해 혐의는 부인하고 있다. 시신을 냉동 보관한 이유에 대해선 “부패하면 냄새가 날 것 같아서…”라고 말했다. 아이가 얼마나 끔찍한 일을 겪었는지는 부모만 알고 있다. 가정폭력이란 뒤주에 갇혀 있었던 건 최군만이 아니다. 지난해 12월 학대를 견디다 못한 열한 살 여자아이가 맨발로 가스관을 타고 탈출했다. 지난 7일엔 또래 남자아이가 엄마를 때리는 아빠를 흉기로 찔러 숨지게 했다. 도시의 소음은, 이웃공동체의 해체는 견고한 방음시설이다.

 당신과 나는 빌라에서 최군이 다니던 초등학교로 향한다. 다시 이면도로로 나와 110여m를 직진한다. ‘어린이 보호구역 30’ 제한속도 표시가 그려진 왕복 4차로 도로 앞에서 우회전해 150여m를 더 걷는다. 횡단보도 너머 ‘△△초등학교’ 정문 앞에 선다. 4분33초. 다시 빌라로 돌아와 이번엔 ‘△△동 주민센터’까지 걷는다. 오르막길을 330여m 남짓 가자 왼편으로 붉은색 벽돌 건물이 나타난다. 7분25초.

 아이가 숨지고 시신이 훼손되는 동안 어른들은 어디에 있었던 것일까. 2012년 4월 최군이 무단결석하기 시작한 후 담임교사는 두 차례 최군 집을 찾았지만 아무도 만나지 못했다고 한다. 학교에서 주민센터에 거주 확인을 요청했지만 주민센터는 결과를 학교나 교육청에 회신하지 않았다. 주민센터 직원이 최군 집에 가보긴 했는지도 시청 감사가 끝나야 안다.

 최씨 주장대로 최군이 같은해 11월 숨졌다면 6~7개월의 시간이 있었다. 그 사이 4분, 7분 단위로 아이를 구할 수 있는 골든타임들이 계속 흘러가고 있었다. 만약 학교에서 아이 행방을 반드시 찾겠다고 나섰다면, 주민센터 직원들이 아이를 조금이라도 걱정하는 마음을 가졌다면 상황은 달라졌을 것이다.

 이제 최군 부모는 죗값을 치를 테지만 우리 사회엔 숱한 최군들이 있다. 2014년 한 해 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에 접수된 아동학대 의심 사례는 1만5000건이 넘는다. 주목할 건 언어폭력, 가족 내 왕따, 차별, 감금 같은 정서학대(6176건)가 신체학대(5699건)를 앞질렀다는 사실이다. 정서학대는 신체학대만큼 아이의 정신을 파괴하는 일인데도 죄의식 없이 저질러지고 있다. 정신적 폭력이 만연한 사회에서 ‘어른의 소유물’이자 최약자인 아이들이 폭력의 종말처리장이 되고 있는 것일까. 아이들에 대한 학대는 한국 사회의 양심이 차갑고 딱딱하게 냉동 보관돼 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지표 아닐까.

 당신과 나에게 묻는다. 남을 위해, 모르는 아이를 위해 7분의 시간을 쓸 수 있는가. 바쁘다는 핑계 대신 7분의 양심을 지킬 자신이 있는가. 어제 영면에 들어간 신영복 교수의 글 한 대목을 빌리자면 “인간의 가장 중요한 품성은 양심”이다. 그는 물을 들이켠 뒤 피를 팔고는 “물 탄 피를 팔았다”고 양심의 가책을 떨치지 못하던 소년가장을 떠올리며 서여(西餘) 민영규 선생의 ‘떨리는 지남철’을 인용했다.

‘여윈 바늘 끝이 떨고 있는 한 그 지남철은 자기에게 지니워진 사명을 완수하려는 의사를 잊지 않고 있음이 분명하며… 만일 그 바늘 끝이 불안스러워 보이는 전율을 멈추고 어느 한쪽에 고정될 때 우리는 그것을 버려야 한다. 이미 지남철이 아니기 때문이다.’(『담론』 중에서)

 나는, 당신은 떨리는 지남철인가. 떨리지 않는 지남철인가. <부천에서>

권석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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