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닫기
닫기

[송호근 칼럼] 우리에겐 그래도 희망유전자가 있다

기사 이미지

송호근
서울대 교수·사회학

을미년 세모는 우울했다. 청춘 시절보다 더 열심히 뛰어도 살림은 쪼들리고 나라 경제는 위태로웠다. 병신년 새해가 시작되었건만 희망은 떠오르지 않는다. 국민들이 힘을 실어 달라는 대통령의 간절한 호소도 그냥 귓전을 스칠 뿐이다. 가족과 국가를 위해 마냥 신나게 뛰었던 기억은 멀어졌다. 최근 의식조사에 의하면 사회 현실에 대한 시민적 냉소감이 최고조에 달했다는 것이다. 냉소는 불신의 표출창구이고, 불신은 이기적 은신처의 내벽을 강화한다. 해방 후 70년 동안 피와 땀으로 구축한 ‘희망 한국’이 냉소와 체념의 늪으로 빠져드는 것을 대책 없이 바라봐야 하는 이 시대의 삶은 괴롭다.

 그 ‘대책 없는’ 말춤으로 세계를 휩쓴 가수 싸이가 말했다. ‘한류 경쟁력은 치열함과 치밀함에서 나온다’고. 풀이 죽은 이때 그리 말해 주니 고맙기 그지없다. 정치, 기업과 사회지도자들이 한류 기획사들만큼만 해준다면 일본도 중국도 두려울 게 없을 것이다. 1, 2년의 세계흥행을 위해 10년의 혹독한 훈련과 기획투자를 감행하는 장기 안목의 집요함이 한류의 원동력이다. 치열과 치밀에서 한류를 따라올 국내 산업은 없다. 서울대 공대 교수들이 아프게 지적했듯 ‘축적의 시간’이 ‘흥행의 시간’보다 몇 곱절인 산업이다.

 축적의 요체는 개념설계와 진화능력. 발상전환과 파격적 해법의 구상능력, 널뛰는 시장시그널을 흡수하는 신감각의 개발능력이다. 경험지식과 기술, 재능을 착실히 쌓지 않으면 ‘독창적 해법’을 기대할 수 없고, 시장변동에 무디면 즉시 위험경고등이 켜진다. 어렵사리 세계 정상에 오른 휴대전화·철강·조선산업에 경고등이 켜진 것은 축적된 경험지식의 양과 질의 문제 때문일 것이다. 축적의 시간이 짧기는 했지만, 모방과 추격모델로 여기까지 온 것만 해도 대견하기는 하다. 50년 ‘치열한 시간’으로 축적 시간 100년을 넘긴 일본을 몇 개 분야에서 따돌렸으니까 말이다. 그 원동력은 희망유전자, ‘망(望)’의식이었다. 일본에 ‘은(恩)’의식이 있다면, 한국엔 ‘망’의식이 있다.

 
기사 이미지
 일본의 산업경쟁력이 장인정신, 이른바 모노쓰쿠리(제품만들기,もの造り)에서 나온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잃어버린 20년’에도 생산현장의 모노쓰쿠리는 살아 있었다. 장인의 주름진 손은 축적된 경험의 보고(寶庫)였고, 최고를 만든다는 집념은 보은(報恩)의식의 표현이었다. 고용주와 국가에 빚졌다는 생래적 채무감을 혼이 담긴 제품 만들기로 되갚는 ‘보은의식’이야말로 도요타·닛산 같은 글로벌 기업과 오기와라, 후지테크 같은 세계적 금형메이커를 낳은 원천이었다. 모노쓰쿠리에 엄청난 축적의 시간이 내장되어 있음을 뜻한다. 이를 사회학적으로 본다면 조금 다른 해석이 나오기는 한다. 일본의 폐쇄적 전통사회가 허용한 신분 상승의 유일한 통로는 장인이 되는 것! 아무튼 생래적 보은(恩)과 상승욕구인 장인(丈人)의식의 결합으로 일본인들은 장기침체의 늪을 건넜다.

 글로벌 저성장시대와 한국적 추격성장의 한계가 겹친 오늘날, 우리는 무엇으로 미래를 기약해야 하는가. 그것은 ‘망(望)의식’, 현실 환경이 열악할수록 대책 없이 치솟는 소망의 유전자를 살려내는 일이다. 싸이가 말한 한류의 치열함과 치밀함은, 따지고 보면, 100년은 족히 넘는 축적의 시간을 갖고 있다. 19세기 배고픈 서민들은 판소리와 농악, 탈춤 판으로 삶의 고단함을 돌파했다. 중인들은 여항문학단을 기획 공연함으로써 피지배층의 울분을 달랬고, 서민들은 여흥·오락문화를 만들어 시름을 날렸다. 절망의 시간에 흥을 돋운 것이다. 놀자는 게 아니다. 한(恨)을 흥(興)으로 전환시키는 능력, 어려울수록 소망의 불꽃을 지폈던 한국인의 기질을 말하는 것이다. 내일의 성취를 향한 망(望)의식은 빈곤탈출과 산업부흥의 에너지였고, 어두웠던 한국에 희망가를 넘치게 한 생래적 DNA임을 강조하려는 것이다.

 ‘헬조선’ ‘이생망’처럼 사방에 출구가 막혔다는 이 시대에 웬 어이없는 말이냐고? 아니다. 우리에게 언제 쉬운 나날들이 있었는가? 기술과 경험지식, 제도혁신의 축적 시간이 짧았던 대가를 지금 치르는 중이다. 독창·선도모델로 건너가려면 고도성장이 낳은 성장통을 치유해야 하고, 빈 곳을 채워야 한다. 제도개혁의 절박성은 누차 말한 바다. 당연히 시간이 걸린다. 돌아보면 까마득한 성장의 계곡에서 무엇을 놓쳤고 생략했는지를, 우리의 자화상이 어떻게 일그러졌는지를 살펴야 한다. 저성장, 경기침체, 소득정체는 견뎌야 할 눈물의 계곡이다. 그럼에도 끝내 붙들고 있어야 할 것은 희망유전자, 망(望)의식이다. 망의식은 곧 상승욕구이자 성취동기다. 소망·희망이 원망(怨望)과 절망(絶望)으로 바뀌면 ‘세계에서 가장 성취동기가 높은 나라’ 한국은 주저앉는다. 우리는 그것으로 20세기를 건넜다. 병신년 잔나비해의 바람(望)이다.

송호근 서울대 교수·사회학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PHOTO & VIDEO

shpping&life

많이 본 기사

댓글 많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