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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결 인사이드] 법원 "음주 흡연했다고 장해연금 감액은 부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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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의 한 지역 상수도사업소 배수지 관리원이었던 이모씨는 2003년 5월 어느 날 뇌출혈로 쓰러졌습니다. 배수지 주변 순찰을 마치고 오전 0시30분쯤 잠을 자러 관사로 돌아와 샤워를 한 직후였습니다.

이씨는 3년 남짓 공무상 요양 승인을 받아 투병했고, 결국 2014년 6월 명예퇴직을 하면서 공무원연금공단에 장해연금을 신청했습니다.

장해연금은 공무원이 공무를 수행하다가 걸린 폐질(廢疾)로 퇴직하거나 퇴직한 후 공무로 인한 폐질에 걸렸을 때 국가가 지급하는 장기 급여입니다. 공무원 연금법으로 보장받을 수 있는 권리입니다.

한 대학병원은 이씨의 장애가 "마비 증세로 왼손은 사용하기 어려운 상태지만 오른 손으로 일정한 동작을 할 수 있는 정도"라고 진단했습니다.

넉달만에 공단은 이씨의 장애등급을 5급으로 판정해 장해연금 지급을 결정했지만 그 금액을 절반으로 감액했습니다.

이유는 음주와 흡연. 사고발생 후 건강검진에서 이씨가 문진표에 '10년 이상 하루에 반갑 이상의 담배를 피웠고 주 1~2회 정도 소주 1병을 마신다'고 답한 게 화근이 됐습니다.

2002년 건강검진에서 ‘고혈압 의심’이라는 소견을 받았는데도 금연 등 별다른 노력을 하지 않은 것은 뇌출혈로 쓰러지는 데 '중대한 과실'을 범한 것이라는 게 공단의 판단이었습니다.
 

이 법에 따른 급여를 받을 수 있는 자가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면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해당 급여의 전부 또는 일부를 지급하지 아니할 수 있다. 

… (중략) …

1. 중대한 과실에 의하여 또는 정당한 사유 없이 요양에 관한 지시에 따르지 아니하여 질병·부상·장애를 발생하게 하거나, 사망하거나 또는 그 질병·부상·장애의 정도를 악화하게 하거나, 그 회복을 방해한 경우

- 공무원 연금법 제62조 (고의 또는 중과실 등에 의한 급여의 제한) ③항


생계가 막막해진 이씨는 “잘못된 장애등급 결정와 감액처분을 모두 취소해달라”는 소송을 냈습니다. “다른 사람 도움 없이는 일상 생활이 거의 불가능하고 신체 왼쪽을 전혀 사용하지 못하는 데 장애등급을 5급으로 정하고 그마저도 감액한 건 지나치다”는 주장이었습니다.

법원은 이씨의 “장애등급 결정이 잘못됐다”는 청구는 기각했지만, “감액처분이 지나치다”는 주장은 받아들였습니다.

서울행정법원 행정4단독 김수연 판사는 “음주나 흡연을 이유로 중과실이라고 판정한 것은 위법하다”고 판단했습니다. 이씨의 흡연 및 음주가 뇌출혈과 직접적인 인과과계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는 취지였습니다.

김 판사는 “뇌출혈 등은 고혈압, 뇌종양 등 여러 가지 원인에 의해 발생할 수 있다”며 “공무상 요양승인을 한 이상 중대한 과실이 인정되기 위해서는 위험인자가 될 수 있다는 점이 입증돼야 하는데 흡연 및 음주가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구체적인 자료가 없어 중대한 과실에 의해 병이 발생됐다고 인정할 증거가 없다”고 제시했습니다.

2002년 건강검진 결과 고혈압 의심 소견이 있기는 했지만 특별히 뇌출혈 발생 가능성을 경고받거나 흡연 및 음주에 관한 주의 또는 지시를 받은 적이 없다는 점도 고려됐습니다.

김 판사의 이같은 판단은 “퇴직 공무원이나 사망한 공무원의 유족들의 생활안정과 복리향상을 도모한다는 공무원연금법의 취지를 고려해 연금 감액사유인 ‘중대한 과실’의 인정범위를 엄격하게 제한해 해석해야 한다”는 대법원의 판례에 기댄 것입니다.

대법원은 “‘중대한 과실’이란 조금만 주의를 하였더라면 사고의 발생을 미리 인식해 이를 방지할 수 있었는데도 현저하게 주의를 게을리 해 사고 발생을 인식하거나 방지하지 못한 경우를 말한다”고 해석하고 있습니다.

이같은 입장에 따라 대법원은 1996년 순찰 중 동료와 함께 술을 마신 뒤 그 동료가 권총의 탄알집을 돌리는 장난을 하다 격발된 총알에 맞아 숨진 경찰관의 음주 역시 ‘중대한 과실’이라고 볼 수 없다고 보기도 했습니다.

이유정 기자 uu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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