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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좀 가라’‘회사 싫어’…남몰래 쓴 진심, 낙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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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톡 메신저를 통해서만 하루 평균 80억 건의 메시지가 오간다고 합니다. ‘메시지 쓰나미’가 일상이 된 시대. 무슨 더 할 말이 남았을까요.

[젊어진 수요일] 청춘리포트- 술집?카페 벽에 새긴 독백들


펜을 들고 은밀한 곳에 자신만의 생각을 적는 청춘들이 적지 않습니다. 카페나 술집 등 청춘들이 모이는 곳엔 각양각색의 낙서가 가득합니다. 청춘리포트가 저 어지러운 낙서에 담긴 이 시대 청춘들의 고민을 읽어봤습니다. 삶이 고통스럽다는 비명이, 꿈이 멀어진다는 절망이 청춘의 낙서 속에 은밀히 담겨 있었습니다.

정강현 청춘리포트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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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다랗게만 느껴졌던 이 세상/피곤하기만 하고 싫증이 난다/소중한 내 꿈이/년(연)기가 되어 사라지는 건 아닐까…”.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 벽면에 적힌 낙서다. ‘커피소년’이란 말로 사행시를 풀었다. 커피를 마시다 문득 제 초라한 처지를 돌아보게 됐을까. 꿈이 사라지고 있는 현실을 한탄하는 목소리. 모르긴 몰라도 20대 혹은 30대 청춘이 남긴 낙서일 것이다.

 모바일로 실시간 채팅이 가능한 시대다. 그런데 청춘들은 왜 굳이 펜을 들고 낙서를 하는 걸까. 청춘리포트팀이 지난 11일 온라인 설문을 통해 20~30대 남녀 100명에게 ‘왜 낙서를 하느냐’고 물었다.

설문 결과 가장 많은 42명이 ‘화면이 아닌 현실 공간에 생각과 추억을 새길 수 있어서’라고 답했다. 이어 ‘나를 드러내지 않고 더 솔직해질 수 있다’는 응답(36명)이 뒤를 이었다. 공개적으로 드러내기엔 부끄럽지만 누군가와 공유하고 싶은 ‘진심’을 낙서에 남긴다는 얘기다. 말하자면 낙서란 청춘의 ‘공개된 일기장’ 같은 것일까.

 청춘리포트팀은 지난 9일부터 11일까지 서울 신촌과 종로, 노량진 등의 식당·카페·술집 등을 돌며 ‘청춘의 낙서’를 살펴봤다. 그 속엔 청춘들의 팍팍한 현실이 여과 없이 담겨 있었다.

“내년엔 제발 수능 대박 났으면”

 지난 10일 서울 노량진의 B카페는 문제집을 풀거나 동영상 강의를 듣는 재수생들로 붐볐다. 가게 벽면과 포스트잇엔 이들이 꾹꾹 눌러 담은 낙서들이 가득했다. 잠시 짬을 내 공부하던 필기구로 낙서를 하는 학생들이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연세대 언론홍보영상학부 17학번, 재수 성공하게 해주세요’.

 ‘오늘 놀러 왔지만 마음은 무겁네요. 노력하면 된다는 그 말, 실감하기를…’.

 ‘아 XX. 두고 봐라. 내가 좋은 대학 꼭 간다’.

 낙서들은 대부분 좋은 대학에 입학하고 싶은 희망과 올해 치러질 수능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자신의 처지와 고달픈 재수 생활에 대한 분노를 표출한 낙서도 있었다. 일부 재수생들은 낙서를 통해 현실에서 도피하고 싶은 소망을 드러내기도 했다.

 ‘나는 지금 시대의 중심에 있는데. 이 행렬에 가담하고 싶지 않지만, 나중에 후회할 것 같다…’.

 재수생 김정현(20)씨는 “페이스북이나 카카오톡은 글을 쓴 사람이 누군지 공개되기 때문에 속내를 드러내기 힘들다”며 “재수 생활이 힘들 땐 낙서가 허용된 카페나 식당 벽면에 괴로운 마음을 글로 적곤 한다”고 했다.

재수생 강하은(20)씨도 “남들에겐 차마 말하지 못하는 희망 사항을 낙서로 남기면 마음이 안정되고 스스로를 다독이는 주문 같이 느껴질 때가 많다”고 말했다.

“주머니도 가벼운데 취업은 멀기만 하네”

‘○○이는 오늘 돈을 왕창 썼다. 엄청 썼다. 알바비(아르바이트비)를 벌면 뭐하니. 하루 먹고 하루 벌고. 인생☆’.

 지난 11일 서울 신촌의 한 카페 벽면에 붙어 있는 빛바랜 ‘포스트잇’엔 이런 낙서가 적혀 있었다. 20대가 많이 찾는 신촌엔 대학생들의 경제적인 어려움을 반영하는 낙서가 제일 먼저 눈에 띄었다.

 ‘돈 좀 보내줘. (나) 거지야. 하늘에서 돈벼락 맞고 싶다’.

 ‘등록금 낼 돈도 없는데 오늘도 후배는 술 달라 하네’.

 취업의 어려움을 토로하는 낙서도 있었다. 짧게는 10자, 길게는 100자에 이르는 낙서 속엔 극심한 취업난을 겪고 있는 청춘들의 불안한 심리와 소박한 소망이 담겨 있었다.

 ‘올해엔 제발 취업 좀 하게 해주세요’.

 ‘○○기업 공채! 면접 남았습니다. 합격을 기원하며~’.

 ‘한 방에 취업하고 싶었는데, 어렵습니다’.

 과거 대학가 낙서의 단골손님이었던 연인 간의 ‘사랑 낙서’는 예상 외로 찾아보기 쉽지 않았다. 삼포세대(연애·결혼·출산을 포기하는 세대)의 현실을 반영하듯 사랑의 속삭임 대신 연애와 사랑을 갈구하는 ‘솔로’들의 애환이 녹아났다.

 ‘저는 올해 스무 살이 된 새내기 대학생입니다. 여의도와 엄청 엄청 가까운 곳(선유도)에 20년 살았지만 벚꽃 축제를 가본 적이 없어요. 이렇게 불쌍한 저에게 커피 한잔의 자비 좀 베풀어 주세여. 올해도 저의 봄은 갔습니다’.

 대학생 임도영(23)씨는 “지인들이 실시간으로 확인하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엔 혼자만의 신세 한탄으로 비칠 것 같은 글들을 올리기 쉽지 않다”며 “남들에겐 유치할지 몰라도 내 절실한 심정을 담은 짧은 글은 낙서를 통해서만 의미를 찾을 수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올해 대학 졸업반인 홍지영(25)씨의 생각도 비슷했다. “친한 사람들, 속 얘기를 털어놓을 수 있는 지인들과 함께 적는 낙서는 ‘우리만의 비밀’이라는 느낌을 공유할 수 있어 좋은 것 같아요. 취업에 실패하거나 면접에서 떨어졌을 때처럼 남들에겐 차마 말 못할 이야기를 낙서를 통해 풀어낼 때가 많죠.”

“야근에 파묻힌 내 청춘”

 11일 오후 서울시청 인근 먹자골목. 주변 식당 10여 군데를 돌며 곳곳에 적힌 낙서들을 관찰했다. 식당 벽면과 화장실 문 등엔 30대 직장인들이 적은 낙서가 많았다.

직장인의 낙서는 ‘밥벌이의 애환’으로 요약됐다. 야근에 지친 일상, 업무에 대한 부담감이 짧은 낙서 속에 압축돼 있었다.

 ‘회사 생활 고충은 분식과 함께 와구와구’.

 ‘회사 싫어 캭 퉤’.

 ‘금요 당직 싫어요. 아아아악 싫어요!’

 ‘세상을 한탄하며 오늘도 술 한잔. 캬~’.

 직장 생활에 대한 한탄은 자연스레 결혼에 대한 압박감을 드러낸 낙서로도 옮겨갔다.

 ‘청계천이 흐르고, 하늘은 높고 근데 참 외롭다. 결혼해야 할까봐’.

 ‘이번년도엔 꼭 만나자 내 짝아’

 ‘○○야 시집 좀 가라. 나도 가게’.

 회사원 임영환(34)씨는 “하루만 지나도 잊히는 술자리 푸념이나 뒷담화와 달리 낙서는 ‘기록’을 한다는 면에서 언제든 특정 장소에서 다시 찾아볼 수 있는 매력이 있다”고 말했다. 고대 동굴벽화에서도 확인되듯 낙서는 오래된 인간의 습성이다. 다만 시대에 따라 낙서에 담기는 인간의 생각은 조금씩 달라진다.

2016년 ‘청춘의 낙서’는 절규와 불안, 애환으로 요약됐다. 서울대 곽금주 심리학과 교수는 “2030 세대의 낙서엔 수험생, 대학생, 직장인 등으로 이어지는 생애 과정에서 직면하는 근원적 불안이 녹아 있다”고 진단했다.

 거듭, 청춘의 낙서는 이 시대 청춘들이 내지르는 비명 소리다. 이 비명은 서울 도처에서 들린다. 식당 벽면에서, 술집 테이블에서…. 사실을 말하자면 청춘리포트팀도 서울 시내 어딘가에 은밀하게 낙서를 남겨뒀다. 이런 내용이다.

 ‘지리멸렬한 정치인들! 청춘의 낙서만이라도 꼼꼼히 읽어보시길. 취업난부터 저출산까지 복잡한 난제를 풀 실마리를 발견할 수도 있을 테니…’.

손국희 기자, 김지아·강지민 인턴기자 9ke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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