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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영수 여사가 첫 건축 고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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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정수와 지순 부부 건축가는 서로 열심히 일하는 모습에 반해 결혼했고 평생 함께 일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1959년 결혼해 60년 가까이 부부의 연을 이어가고 있다. 남자는 같은 학과의 한 학번 위(57학번)의 선배였다. 배운 게 같아서 평생 함께 일했다. 여기까지는 어느 노부부의 이야기에 지나지 않을 것 같다.

간삼건축 설립자 원정수·지순씨
서울대 건축공학과 캠퍼스 커플
한국은행·포스코센터·코오롱 사옥
부부 건축 여정이 한국건축 역사
“요즘 젊은 건축가들 협업했으면”


부부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일찍 설립된 건축교육기관인 서울대 건축공학과를 나왔다. 아내는 당시 건축공학과에 입학한 다섯 번째 여학생이었다. 요즘 표현대로라면 원조 ‘공대 아름이’였다.

 종합건축사사무소 간삼건축의 공동 설립자이자 현재 상임고문을 맡고 있는 원정수(81), 지순(80)씨의 이야기다. 한국은행 본점부터 포스코 센터, 포항공대, 명동대성당 마스터플랜, 코오롱 과천 신사옥,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자택을 비롯한 국내 재벌가의 사택까지 두 사람의 작품 안에는 한국의 역사가 흐른다.

그도 그럴 것이 부부는 한국 전쟁 이후부터 지금까지 근 60년간 우리나라 건축 현장을 지켰다. 목천문화재단이 하고 있는 건축 아카이브 작업의 다섯 번째 기록으로서, 최근 일생의 이야기를 담은 『원정수·지순 구술집』을 펴낸 노부부를 만났다. 그리고 폐허와 재건, 초현대화로 이어지는 격변의 건축 시대를 몸으로 살아낸 이야기를 들었다.

두 사람의 구술은 ‘역경을 딛고’부터 시작한다. 전후 재건의 역사가 그렇고, 특히 지 고문의 경우는 여성 건축학도로서 남성 중심의 건축 현장을 뚫고 나가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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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행 본점. [간삼건축]

 - 여자 건축학도로서 어려웠던 순간을 꼽자면.

 ▶지순(아내)=의대를 가라는 아버지의 설득에도 건축 공부를 했다. 당시 학교에는 여자 화장실도 없어서 강의 끝나고 다른 과 여학생들이 망을 봐줘야 화장실에 갔다. 밥도 학교 식당 조리실 내에 따로 마련된 곳에서 먹었다. 건축가로 활동할 때도 건축 현장에 여자는 못 들어오게 했다. 재수 없다고. 그래서 공사 벽면에 전달사항만 적어 놓고 돌아오곤 한 시절이 꽤 길었다.

 ▶원정수(남편)=지 교수가 결혼 후 갓난아기인 셋째 딸을 옆에 뉘여 재워가며 건축사 공부를 해서 여성 1호 건축사가 됐다. 그 후 10년이 되도록 여자 건축사가 안 나올 정도로 건축업이라는 게 힘들었다.

 - 건축사 취득 후 첫 프로젝트의 건축주가 고 육영수 여사로 알려졌다.

 ▶아내=당시 육영수 여사와 고관들 부인의 모임인 ‘양지회’가 있었다. 육 여사를 필두로 회비를 걷어 불우여성을 위한 건물을 지으려고 했다. 여성의 돈으로 하니까 여성 건축가를 찾았다. 1호 건축사인 나한테 행운이 왔고, 집창촌 여성을 위한 시설인 ‘양지회관’(1965년 준공) 설계를 맡았다. 이후로 ‘어머니회관’ ‘서울여대 강당’ 등 여성과 관련한 집 설계를 많이 했다.

 ▶남편=여성의 손으로 설계했다고 해서 텔레비전 인터뷰도 하고 교양 프로그램에도 나가고 잘나갔다.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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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동대성당 마스터플랜. [간삼건축]

 - 한국은행 본점은 현상 설계부터 착공까지 12년이 걸렸는데.

 ▶남편=76년 첫 현상 설계에 당선하고, 88년에서야 공사에 들어갔다. 처음 당선되고 나서 무효가 됐는데 수도 이전 이슈 때문이었다. 한국은행도 같이 이전한다고 해서 본점 신축을 하지 않기로 결정났다.

이후 은행 총재가 6명이나 바뀌고 나서야 실제 공사에 들어갈 수 있었다. 3만여 평(약 10만㎡)이었던 부지가 1만여 평(약 3만3000㎡)으로 줄어들고 현상 설계만 두 번 거쳤다. 건축은 건축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게 우리의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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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코 센터. [간삼건축]

 부부 건축가는 전후 모든 건축자재가 군부대로부터 유통되던 시절에서 아파트 새시를 나무로 직접 짜 맞추던 시절을 지나, 국내 첫 첨단 빌딩인 서울 강남 테헤란로의 포스코 센터 설계에 이르기까지 줄곧 ‘사람이 사는 집’을 추구해왔다. 순수 국내파로서 새로운 시도도 많이 했다.

원 고문은 “90년대 중반 첨단 정보 빌딩(스마트 빌딩)인 포스코 센터를 지을 때 외장 유리를 국산으로 개발했다”며 “1400대의 자동차가 건물 지하에 지체 없이 주차할 수 있게 주차 번호 인식 시스템도 당시 처음 개발했다”고 말했다.

두 건축가의 작품은 이름만 대면 알 정도로 유명하지만, 정작 부부의 이름은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 자기 과시하지 않고 건축물과 거기에 사는 사람들만 생각하며 살아온 철학 때문이다.

우리나라 건축업계의 산증인이자, 원로 건축가로서 부부는 당부의 말을 했다. “해외 대형 건축사무소가 중동, 중국 등에서 굵직한 글로벌 프로젝트를 다 따가고 있습니다. 요즘 젊은 건축가들이 개인 명성만 추구하려 하지 말고 협업했으면 좋겠어요. 종합병원의 의사처럼 각 분야별로 재능있는 사람들이 파트너십을 갖고 일해야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한국 건축의 발전도 거기에 있고요.”

글=한은화 기자 onhwa@joongang.co.kr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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